러시아 북동부에 사는 소수민족인 에벤족은 순록을 키우며 살아가는 유목민이다. 작은 천막 안에 선생님과 아이 셋이 모이면 거기가 학교다. 아이들은 거기서 사라져가는 유목 부족의 말과 전통을 배운다. 그들에게 학교는 전통을 지켜가는 곳이다. 하지만 이 아이들의 진짜 교실은 유목캠프를 둘러싼 시베리아의 자연 자체다. 순록을 키우고, 잡고, 사냥을 하며 살아가는 법을 자연이 그들에게 가르쳐준다.
건조한 케냐 초원지대의 마사이 소녀들은 부족의 악습인 할례를 피하고 조혼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 방학에도 학교에 머문다. 그들에게 학교는 안식처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하비밀크 고등학교에서는 동성애자가 소수자가 아니다. 그들에게 학교는 사회를 향해 놓인 징검다리다. 찰스 다윈이 진화론의 토대를 만든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에서 아이들은 멸종 위기에 처한 거북이와 함께 공존하는 법을 배운다.
외국 언론들이 한국의 교육을 들여다본다면 어떨까. 새벽같이 등교해 늦은 저녁까지 의자와 한 몸이 되어 꽉 채운 수업을 한 뒤 학원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아이들의 지친 하루가 담길 것이다. ‘명문대’ 진학률에 따라 급이 갈리는 우리의 학교는 5분만이라도 늦게 등교하고 싶은 곳, 온갖 괴담의 온상이 된지 오래다.
학교는, 교육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일까. 세상의 모든 학교가 엇비슷하게 생긴 콘크리트 건물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학생들이 입시경쟁에 시달리며 쫓고 쫓기듯 쳇바퀴를 도는 것도 아니다. 진로탐색이라는 명분으로 스펙을 쌓고 학원가를 맴돌며 문제풀이 기술을 익히는 획일화된 시스템은 교육의 본모습이 아니다.
늦은 겨울부터 이른 여름까지 세계의 낯설고 이상하고 신기한 학교 10군데를 찾았다. 그 학교들은 우리와 다르게 행복했고, 생기가 넘쳤고, 자유로웠다. 물론 우리와 다르게 환경은 열악하고 시시하며 공부 내용과 수업은 느슨하기도 했다. 다양한 학교의 현재 속에서 우리 교실의 문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었다. 네덜란드의 특수학교 헤이즐우드 아이들은 이웃과 어우러져 성장한다. 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역으로 선정된 쿠탁역 기찻길 학교 아이들은 학업과 구걸을 병행하며 산다. 콜롬비아의 빈민촌 아이들은 춤으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며 땀방울을 흘린다.
그렇게 아이들은 가난 속에서도 미래로 나아가는 법, 상처를 치유하는 법, 소수자를 배려하고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학교는 세상을 마주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곳이고, 교육의 미래에 대한 해답은 결국 학교에 있다.
학교로 가는 길
폭우가 쏟아지는 등굣길 아침, 학교가 우리 집 앞으로 왔으면 좋겠다는 상상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지리한 우기, 강물이 넘쳐 학교 가는 길이 끊겨도 걱정 없는 아이들이 있다. 학교가 스스로 움직여 학생을 데리러 가는 풍경을 찾아 방글라데시 북서부 파브나에 있는 베투안 마을을 찾았다.
인도와 가까운 국경도시 라지샤히는 ‘망고시티’라 불릴 정도로 유명한 망고 산지다. 지난 4월 중순 라지샤히를 떠나 파브나로 향하는 길, 수확까지 두 달 남은 망고나무는 앙증맞은 녹색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자동차로 2시간 넘게 달려 가닿은 칸치카타 시장 초입에 비정부기구 ‘시두라이 스와니르바 상스타(Shidhulai Swanirvar Sangstha·자립하는 시두라이 마을)’ 직원 카이바 호셀이 나와 있었다.
내비게이터가 없는 차량에 호셀을 태우고 길안내를 받아가며 학교를 찾아 떠났다. 차 한 대 겨우 지나갈만한 비포장도로를 지나 남의 집 앞마당을 넘나드는 구불구불 레이스가 시작됐다. 구글맵에는 분명 쭉 뻗은 도로가 있었지만 현지인들은 “이 길이 빠르다”고 입을 모았다. 집집마다 앞마당에 삼각뿔 모양으로 쌓아둔 볏짚탑이 보였다. 비가 와도 안쪽 볏짚이 젖지 않도록 솜씨있게 쌓아둔 볏짚을 주민들은 ‘나라’라고 불렀다. 농가의 살림밑천인 소와 양을 키우려면 없어선 안 될 자산이다.
구마니강 노바리아다리 밑 나루에서 작은 보트에 옮겨 탔다. 한껏 키를 높여 짓고 있는 다리는 고개를 뒤로 젖혀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하늘에 걸려 있었다. 우기가 되면 강물이 한껏 불어나 차오를 것에 대비한 방글라데시인의 막강 방어력인가 싶다.
강 주변 풍경은 더 없이 평화로웠다. 긴 낚싯대를 드리운 어부와 오리를 몰고 나온 아이를 슬로모션으로 지나치며 강을 따라 남쪽으로 40분여 이동했을 때, 통나무집을 얹은 듯한 배가 시야에 들어왔다. 순간 눈이 마주친 호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 아이들을 위해 강 위에 띄운 배, ‘떠다니는 학교(플로팅스쿨)’다.
8시30분에 등교한 1학년들의 막바지 수업이 한창이었다. 팽팽하지도, 느슨하지도 않은 공기가 흘렀다. 낯선 방문객을 응시하는 아이들의 눈망울에는 경계심보다 호기심이 커보였다. 오전 10시, 남국의 태양은 이미 중천에 있었다. 교실 밖으로 나오자 강 건너에 늘어선 아이들 무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등교를 앞둔 2학년 학생들이었다. 학교 가는 길이 저렇게 즐거울까 싶을 정도로 아이들은 들떠 보였다.
10시30분, 1학년 수업이 끝났다. 수업종은 없었지만 날랜 녀석들은 관리 담당 할아버지가 채 사다리를 놓아주기도 전에 배에서 폴짝폴짝 뛰어내렸다. 오늘 수업이 더없이 재밌었던 모양이다. 아이들은 구름 위를 걷는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역시 학교생활이 즐거워야 하굣길도 즐거운 법이다. 학교 주변 ‘학세권’ 거주자들의 하교가 끝나자 플로팅스쿨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시동을 걸고 스쿨버스로 변신하는 시간이다.
플로팅스쿨은 지그재그로 강을 누비며 1학년을 내려주고 2학년을 태웠다. 모든 과정은 ‘물 흐르듯’ 이어졌다. 배에 오르는 2학년 담임교사 레헤나 카툰 선생님에게 먼저 등교한 한 남학생이 의젓하게 손을 내밀었다. 원피스와 반바지 등 알록달록 자유로운 옷차림을 한 아이들과 달리 선생님은 머리까지 감싼 전통의상 샤리 차림이다. 방글라데시인의 약 90%는 무슬림이다. 취재진이 찾아간 4월 22일은 일요일이었으나 그들의 휴일은 금요일이다.
시골 소년, 학교를 만들다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없다면, 학교가 그들에게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방글라데시 북서부 작은 마을 시두라이에서 자란 모하메드 레즈완에게 우기는 학교에 가지 못하는 우울한 시즌이었다. 어떤 부모들에게 이 시기는 아이들에게 집안일이나 농사일을 시키기 좋은 핑계가 됐다. 길이 끊기고 농사가 엉망이 되어 먹고 사는 일이 고생스러울 때, 자녀 교육은 후순위로 밀린다. 방글라데시는 아직도 학교와 도로, 통신 기반시설이 취약해 초등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인구 중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이 2015년 기준으로 40%대에 불과한 것에는 이런 환경 탓도 크다.
인도, 미얀마와 이웃한 방글라데시는 3계절을 가졌다. 아주 더운 여름, 조금 덜 더운 여름, 그리고 우기. 국토의 3분의 1이 해수면에서 불과 1m 높이다. 그래서 7월부터 본격화되는 장마철이면 침수는 예삿일이 된다. 지난해 인도를 비롯한 남아시아 3개국에서만 여름 몬순 폭우와 홍수로 1200명 이상이 사망했다. 방글라데시는 40년 만에 최악이라 불리는 홍수 피해를 입었다. 최소 140여명이 숨지고 주택 70만 채를 잃었다. 홍수가 재앙인 이유는 일상을 파괴하고 아이들의 꿈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수도 다카의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레즈완은 오랜 소망을 이루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스쿨버스와 학교를 결합한 플로팅스쿨을 짓는 것이었다. 학교가 물 위에 떠 있다면 그깟 홍수는 두렵지 않을 것이라는 소년의 꿈은 1998년 SSS를 설립하며 현실에 다가섰다. 장학금과 저축으로 모은 500달러와 오래된 컴퓨터 한 대가 토대가 됐다.
초창기에는 일반 보트에 바닥 공사만 한 상태에서 수업을 했다. 도와달라는 메일을 수백통 보내며 후원금을 모았다. 건축가 출신인 레즈완은 2002년 현지에서 수급한 목재로 마을 사람들을 고용해 배를 만들고 아이들 30명을 들일 수 있는 번듯한 교실로 개조했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다층식 지붕은 폭우 피해를 줄이는 데에 최적화된 디자인이다. 레즈완이 이사를 맡고 있는 SSS는 현재 파브나에 10대, 나토르에 12대 총 22대의 플로팅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길이 16m, 폭 3.4m의 학교는 넉넉하진 않지만 부족함도 없다. 아이보리색 교실은 아늑했다. 딱 아이들의 집중을 흐트러뜨리지 않을 높이에 열린 창으로 강바람이 넘나들었다. 입구에 놓인 두 개의 책장에는 위인의 회고록, 역사책, 시집 등 여러 장르의 책이 꽂혀있다. 교사를 위한 노트북과 아이들의 땀을 식혀줄 천정고정형 선풍기도 구비했다. 벽돌색 지붕에 붙은 태양광 패널 덕분에 전기도 쓸 수 있다. 3명까지 앉을 수 있는 긴 책걸상이 5열로 2분단을 이뤘다. 정원 30명은 개교 이래 넘치거나 모자람 없이 채워졌다.
출석체크는 필요 없어요
교실을 쓱 둘러본 레헤나 선생님은 곧바로 수업에 들어갔다. 출석 체크는 필요 없었다. 정부가 정한 초등학교 공식 과목은 국어, 영어, 수학. 그 외 학교 재량에 따라 과목을 추가할 수 있다. 1교시는 국어(벵갈어)는 선생님의 선창으로 시작했다. 선생님이 읽은 구절을 아이들이 따라 읽었다. 노래를 부르듯 리듬이 살아있다. 좋이 3회는 넘게 낭독을 하고 나서 아이들은 그 구절을 공책에 옮겨 적었다. 선생님은 아이들 사이를 돌며 제대로 썼는지 살폈다. 집중력이 흐트러지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 훼방꾼이 등장했다. 오리였다. 꽥꽥 소리 너머로 염소 울음도 간간히 섞여 있었다. 컴퓨터 및 기타 관리 담당 톨브르 호라안이 재빨리 튀어나갔다.
다음 과목은 수학. 선생님이 화이트보드에 몇 문제를 낸 뒤 한 아이를 불러내 풀게 했다. ‘38+34=?’ 벵갈어 숫자는 아라비아숫자와 생김새가 다르다. 벵갈어 숫자 8은 아라비아숫자 4와 꼭 닮았다. 통역자가 없었더라면 전혀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맞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절반 이상의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정답을 쓴 아이에게는 박수가 쏟아졌다. 교실에 웃음꽃이 피었다.
“레인보우 레인보우 아이씨유 그린 앤드 오렌지, 인디고….” 언어만 다를 뿐 영어 수업도 국어 수업과 방식은 같았다. 낭독하는 리듬과 박자도 판박이였다. 다른 점은 영어에 자신 있는 몇몇 아이들 목소리가 도드라졌다는 것. 통역자는 “방글라데시 아이들은 수학보다 영어를 더 어려워한다”고 귀띔했다. 짧은 영시임에도 노트에 옮겨 적는데 걸리는 시간은 제각각이다. 나비드는 일찌감치 시를 다 쓴 뒤, 보란 듯이 머리, 어깨같은 신체부위를 또박또박 적어내려갔다.
화이트보드로 불려나간 친구가 새터데이(Saturday)의 뜻을 적지 못하자, 선생님은 나비드를 불렀다. 팔을 힘껏 뻗어 화이트보드 꼭대기에 ‘월요일’부터 순서대로 써내려가는 손길에서 하늘을 찌를 듯한 자신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일곱 살 나비드의 노란 티셔츠 등판에는 패뷸러스(FABULOUS·굉장한)라고 적혀 있었다. 1분단 맨 앞자리에 앉았던 수미가 그 뒤를 이어 영어로 숫자를 썼다. ‘우리에겐 이렇게 우수한 학생들이 있습니다’. 멀리서 찾아온 손님에게, 선생님이 뽐내고 싶었나 보다.
마지막으로 그리기 수업이 진행됐다. 아이들은 교본에 나온 거북이 밑그림 위에 습자지를 대고 따라 그렸다. 꼼꼼하게 한 점 한 점 잇듯 그리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일필휘지로 슥슥 그려나가는 아이도 있다. 선생님의 지목을 받은 아이는 화이트보드에 방글라데시 국기를 그렸다. 1971년 파키스탄으로부터 분리 독립할 당시에는 중앙의 원 안에 방글라데시 지도가 들어있었으나 이듬해 빠졌다. 짙은 초록 바탕에 가운데 빨간 원이 있는, 세상 그리기 쉬운 국기다. 그럼에도 펜을 잡은 아이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화이트보드는 이내 아이들이 그린 국기, 거북이, 가족 그림으로 가득 찼다. 선생님은 또 교실을 돌았다. 아이들은 선생님께 그림을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난 듯 보였다. 수업 중 가장 많이 들은 단어는 아이들이 선생님을 부르는 “마담, 마담!”이었다. 선생님의 “잘했어” 한마디에 아이들은 세상을 얻은 표정이 됐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책
“아이들을 무척 좋아해서 수업 시간보다 일찍 학교에 나와요. 수업이 없는 날이면 시간이 빨리 흘러갔으면 하고 바라죠.” 플로팅스쿨에 몸 담은 지 8년째인 레헤나 선생님은 내내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담백한 표현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우기가 되면 인도에서 강물이 넘어와 수위가 높아지고 유속도 빨라서 일반 학교는 다니기 힘들어요. 하지만 여긴 우기에도 수업에 차질이 없어요. 여기는 라마단 기간에도 수업을 하죠.” 선풍기와 노트북 등 학교 자랑은 끝이 없었다.
베투안, 파스베투안같은 주변 마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플로팅스쿨에는 현재 1학년 30명, 2학년 25명이 재학 중이다. 3~4학년 학급은 2시간30분 거리에 있는 또 다른 플로팅스쿨에 개설돼 있다. SSS의 프로그램 매니저인 수프라카시 폴은 “내년이면 당초 목표대로 5학년 과정도 오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레헤나 선생님은 수업 시간이 짧고 초등 전 과정을 다루지 않는 학교 성격상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시선을 경계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시험을 치르고 SSS에서 결과를 확인하기 때문에 여기 학생들이 일반학교 학생들보다 더 뛰어나다”고 힘주어 말했다. 학교 측에서도 상급학년 진학생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레헤나 선생님은 나임, 잔나툴, 샤밈 등 상급학교로 올라간 제자들 이름을 줄줄이 읊었다.
“지금 공부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한다고 설득하면서 가르쳐요. 한 번에 안 되면 두 번, 세 번, 네 번 설득합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도 지치거나 피곤하지 않아요.” 아이들이 즐겁게 학교를 다니는 비결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교사 스스로가 기꺼운 가르침이야말로 아이들의 행복한 학교생활의 큰 원천이다.
플로팅스쿨의 교육은 무료다. 재학생에게는 정부의 무상 교과서 말고도 SSS가 자체 개발한 농업·환경 교과서가 제공된다. 지속가능한 농법, 생물 다양성, 기후 변화와 인권 등 환경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주민들을 위한 필수 실용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는 원래 다양한 물고기, 나무 등이 많았는데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요즘 아이들은 이름조차 모르죠. 우리 학교는 특별히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가르치고 있어요. 더불어 환경오염이 얼마나 인간의 삶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 환경을 어떻게 보존해야 하는지 가르치는데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등하굣길에 아이들이 품에 꼭 안고 다니는 교과서는 연한 갈색 종이로 곱게 싸여있었다. 우리도 달력이나 패션카탈로그로 새 교과서를 싸던 시절이 있었다. 곱게 쓰려고 꽁꽁 싼 교과서는 얼마나 자주 들춰보았는지 책장 끝이 하나같이 돌돌 말려 있었다.
한낮의 기운이 충만한 오후 1시. 시끌벅적 동네 아이들이 물장구치는 소리가 교실로 새어 들어왔다. 선풍기 바람이 달아오른 아이들의 이마를 식혔다. 허기와 나른함에 어른들은 슬슬 지쳐갔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기운찼다. 작은 교실은 아이들이 내뿜는 활기로 터질 듯 했다. 아이들의 시간은 길게, 느리게, 그리고 촘촘히 흘러간다.
줄리의 꿈, 엄마의 꿈
핑크색 오로나(스카프)를 머리와 어깨에 둘러쓴 중년여성이 플로팅스쿨 앞을 서성였다. 짐짓 염소 꼴을 먹이러 나온 척 했지만, 한눈에 봐도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였다. 처음엔 줄리 엄마인줄 알았다. 줄리의 하굣길을 함께 한다고 하자 누구보다도 반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줄리 엄마가 아니라 이 마을 어디선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날 것 같은, 파키 엄마다. 앞장선 파키 엄마를 따라 줄리와 함께 강변을 걸었다. 오른쪽 나무계단 위로 아담한 마을이 보였다. 우기가 오면 계단은 불어난 강물 속으로 사라진다.
“보통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씻고 밥을 먹어요. 쉬다가 시간이 되면 공부도 하고요.” 줄리의 얘기를 잠자코 듣던 엄마 아이말라는 딸에 대해 묻자 “좋은 아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외에 별말을 하지 않았다. 과묵한 엄마를 대신해 이웃들이 “청소와 설거지를 하며 엄마를 돕는 기특한 딸”이라고 한마디씩 거들었다. 줄리의 엄마는 연로하고 한쪽 눈도 불편했다. 적극적이던 수업 때와 달리 가정방문에 잔뜩 긴장한 줄리는 “평소 하는 대로 해도 된다”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단짝 파키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염소 ‘로힝가’의 끼니를 챙기는 것도 줄리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풀이 무성한 강가로 나가는 길, 소녀들은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핑크색 원피스를 입은 줄리의 팔은 헤나타투로 가득했다. 엄마 솜씨인줄 알았더니 제 힘으로 했다고 했다. 방글라데시 달력의 첫 번째 날, 즉 새해 첫날인 포헬라 보이샤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국경일로 계급, 인종, 종교를 초월해 전 국민이 참여하는 축제다. 이날은 남녀노소 모두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곱게 치장한다. 올해의 축제일은 4월 14일이었다. 줄리도 이날을 위해 헤나타투를 새겼다. 장래희망은 이런 감각을 뽐낼 수 있는 것이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돌아온 답은 간호사였다. 일찍 철든 아이는 이렇게 덧붙였다. “공부를 잘하면 간호사가 될 수 있어요.”
줄리네와 마주한 작은 집에는 알마스와 라베마 남매가 살고 있다. 수업 중간 레헤나 선생님이 알마스의 머리를 양손으로 스윽 어루만지는 장면을 목격했다. 애정을 표현하는 따뜻하면서도 절제된 손놀림이었다. 알마스는 기자를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뿌듯함을 누군가에게 확인받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좁은 현관을 지나 부엌으로 쓰는 작은 마당을 지나자 알마스 가족이 침실 겸 거실로 쓰는 공간이 나왔다. 침상이 방의 절반을 차지했다. 2단 선반에 놓인 세간은 정갈하게 정돈돼 있었다. 엄마 라비아의 성격이 보였다. 선명한 빨간색 셔츠와 청바지, 하얀 운동화를 신은 알마스를 보고 아이의 엄마가 궁금하던 참이었다. 반갑게 취재진을 맞은 라비아는 “알마스가 얼마 전에 학교에서 운동으로 상을 받았다”면서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어서 너무 좋다”며 웃어보였다.
라비아에게 아이들 나이를 묻는 순간 의도치 않은 갈등 국면이 조성됐다. 레헤나 선생님과 엄마의 답이 엇갈렸던 것이다. 통역자에 따르면 아이의 생년월일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부모가 드물다. 학교에 입학하면서 교사가 정해주는 대로 나이가 굳어 성인이 되는 경우가 숱하다. 삶이 팍팍해서일까, 달력의 숫자 따위는 중요치 않기 때문일까. 엄마가 기억하는 알마스의 나이는 10~11살, 선생님이 알고 있는 나이는 8살이었다. 딸 라베마는 그나마 ‘7살 추정’으로 비교적 쉽게 합의가 됐다.
어느새 알마스네 좁은 앞마당은 구경 온 이웃들로 가득 찼다. 파키 엄마가 목소리를 키웠다. “아버지 없이 엄마 혼자서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있어요.” 모두가 동의의 눈빛을 보냈다. 숟가락 개수는 물론 속사정까지 알고 보듬는 이웃의 정이 전해졌다. 오늘의 훌륭한 조연들은 알마스 모자가 카메라 앞에서 쭈뼛쭈뼛하자 한마디씩 거들며 자연스러운 웃음을 끌어내는 조력자 역할까지 해냈다.
“가사 도우미를 하며 생활비를 벌고 있어요. 이 집은 남편과 사별한 첫 번째 부인의 아들 집이에요. 힘들어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아이들을 가르칠 거예요.” 가끔 플로팅스쿨을 찾아서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을 지켜본다는 라비아는 “내가 어렸을 때 이런 학교가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알마스는 묻지도 않았는데 “공부가 제일 즐겁다”고 말했다. 엄마와 선생님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는 아닌 듯했다. 엄마의 꿈은 아이들이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이다. 그 직업이 의사인지, 변호사인지는 크게 중요치 않았다. 항상 “친구들과 싸우지 마라, 남의 물건에 손대지 마라”를 강조하는 엄마다웠다.
물 위의 병원, 물 위의 도서관
푸른 카펫처럼 수면을 뒤덮은 구마니강의 부레옥잠은 작은 모터에 의지해 내달리는 보트에는 그저 성가신 존재였다. 모터에 낀 아름다운 장애물을 제거하며 가느라 전진이 영 더뎠다. 결국 기름이 떨어져 비상급유하는 사태도 빚어졌다. 불안해 하는 기자에게 통역자가 건넨 말. “부레옥잠은 강물의 정화작용을 하고 소, 염소 등 가축의 먹이로도 쓰여요.”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파스베투안 마을 입구에는 익숙한 모양의 배가 정박해 있었다. 보름에 한 번 마을을 찾는 ‘물 위의 병원’이 뜬 날이었다. 진료소 내부와 입구를 가득 채운 사람들 뒤로 육중한 몸매의 검은 물소 두 마리가 그림처럼 서 있다. 철퍼덕. 물소가 큰일을 보는데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 물에서 아이들은 물놀이를 하고 어른들은 빨래를 한다. 강물은 흐르겠지만, 위생에 대한 우려는 고스란히 남는다.
“주민들은 강에서 씻고 그 물을 마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식중독과 피부 염증이 흔합니다. 진료뿐만 아니라 위생교육도 함께 하고 있지요.” 자부심 강한 인상의 압둘 마지드는 방글라데시 보건부 산하기관에서 경력을 쌓은 의사로 벌써 12년 째 진료를 담당하고 있다. 한 마을을 찾으면 보통 3시간 동안 환자 100여명을 상대한다.
10km 정도 떨어진 일반 병원에서는 5000~7000원 정도의 진료비를 내야 하지만, 여기서는 진료도 약도 무료다. 대기실, 진료실을 비롯해 항생제와 기생충약, 영양보충제 등을 상비한 약국도 갖췄다. 다만 공간이 좁아서 환자의 프라이버시는 포기해야 한다. 마지드 선생은 빈혈기가 있는 여성 환자의 처방전을 적는 동시에 왼쪽 침상에 누운 노파의 상태를 살폈다.
배가 제법 부른 툭투키는 “예전에는 멀리 가서 진료를 받았지만, 이제 동네에서 임신 중 검진을 받을 수 있어서 편하다”며 만족스러워했다. 두 달 앞둔 둘째 출산도 첫째 때와 마찬가지로 여성 조산사의 도움을 받아 집에서 할 예정이다. 스무 살 임신부는 “의사가 아무 이상이 없으니 칼슘과 비타민만 먹으면 된다”고 했다며 손글씨로 쓰인 처방전을 보여줬다. SSS는 수술실을 갖춘 진료소의 확장형 모델을 구상 중이다.
그림자가 길어진 오후, 마을 사람들이 모여드는 사랑방이 또 있다. 플로팅도서관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동네의 아이들이 5대의 노트북 앞에 앉아있었다. 책을 펼쳐들었으나 노트북을 곁눈질 하는 이들은 대기자로 추정됐다.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한 도서관 관리자 아리훌 이슬람은 “플로팅도서관은 하루에 3개 마을을 돈다”며 “마을마다 일주일에 3일씩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등학교 졸업시험을 치른 예비 대학생 무사뭇 암비야 카툰은 “3년 전부터 컴퓨터 교육을 받고 있는데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게 제일 마음에 든다”고 했다. 국제뉴스와 관련 영상, 영화도 볼 수 있어서 좋다는 소녀의 으뜸 즐겨찾기는 유튜브였다.
학교가 마을을 바꿨다
“2002년 처음 학교를 열었을 때는 지역 주민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어요. 보트 위의 학교라니, 이런 학교에 아이들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반응이었죠.” 폴 매니저는 지역 학부모회와 꾸준히 교류하며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시켰다고 했다. 국립학교는 학비 걱정이 없지만 학생 수에 비해 학교 수가 턱없이 적다. 때문에 넉넉하지 않은 형편임에도 울며 겨자 먹기로 사립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집도 있다. 시골은 남아선호가 여전하지만 도시를 중심으로 딸을 선호하는 풍토가 자리를 잡고 있다. 씁쓸하지만, 딸은 돈을 벌어 집안에 보탬이 된다는 인식 덕이다. 요즘 방글라데시 최고 인기 직종은 공무원이다. 어지간한 공무원 시험은 1000:1에 육박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파스베투안 마을에 사는 주부 타헤라 카툰은 “집에서 장난치거나 밖에서 싸우며 시간을 보내던 아이들이 플로팅스쿨에서 공부를 할 수 있으니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 마을 아이들이 플로팅스쿨에 다니기 시작한 지는 올해로 7년째. 카툰은 아이들의 미래가 궁금하다. “플로팅스쿨이 생기고 나서 모든 것이 바뀌고 있어요.”
그 ‘모든 것’은 비단 학생들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오후 3시, 좌식으로 설계된 또 다른 플로팅스쿨에 주부 20여명이 아이와 함께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여성을 위한 수상농업교육 학교였다. 우기에 삶의 터전을 잃는 주민들을 위해 SSS에서는 수경재배를 통한 수익모델을 구축하고 월 1회 교육하고 있다.
“전 세계 환경이 많이 안 좋아졌지만 우리가 조심하면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어요. 물도 재산입니다.” 시청각 수업 중 강사가 “수경재배가 가능한 농작물 중에서도 가지보다는 호박의 벌이가 낫다”고 하자 학생들 눈빛이 반짝였다. 또 하나 강조하는 것은 친환경 유기농법이다. 농약의 힘을 빌지 않고 병충해를 퇴치하는 방법을 일러준다. 우기에 큰 곤란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목축업 의존도가 높은 이 지역 주민들의 체질 개선을 위한 것이다. 수업을 듣는 것이 이날로 세 번째라는 나르기스 바르빈은 “강에서 오리 키우는 법, 양식업, 채소 수경재배법에 대해 배웠다”며 “이런 학교를 통해 신기술을 배우게 돼 기쁘다”고 들려줬다.
교육 받던 여성들은 “바쁜 남편을 대신해 나왔다”고 말했지만, 마을에서는 전혀 바빠 보이지 않는 남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여성 농민을 가르치려고 배를 띄운 목적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플로팅스쿨에 소속된 총 66명의 교사도 모두 여성이다.
폴은 “살림만 하던 이들이 교사 일을 병행하면서 수입도 얻을 수 있어 모두 만족해하고 있다”고 했다. 가뜩이나 취업이 힘든 주부들은 남편의 반대로 주저앉는 경우가 많다. 일을 구하려면 번화한 읍내로 나가야 하는데 긴 통근시간을 남편들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플로팅스쿨은 여교사들에게는 통근버스가 된다. 폴은 “예전보다 남자들 인식도 바뀌어서 주부들이 교육받고 취업할 필요성을 잘 알고 있다”며 “봉제나 가구 제작같은 교육을 통해 여성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플로팅스쿨 사람들은 ‘희망’을 강조했다. SSS의 플로팅스쿨은 홍수로 안정적인 삶을 담보할 수 없는 주민들을 위해 생겨났지만, 교육이라는 양분을 통해 주민들의 삶 속에 희망을 뿌리내리게 했다. 이제 주민들은 미래를 이야기한다. SSS는 학교 외에 병원 5척, 농업학교 5척, 도서관 10척 등 총 111척의 배를 운영하고 있다. 200여명을 채용해 지역 고용을 창출했고, 3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함께하는 교육의 가치를 더했다. 앞으로는 아이들 놀이공간까지 확보하기 위해 2층짜리 플로팅스쿨을 짓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꺼내 놓았다.
“교육은 웃으면서, 즐기면서, 그리고 선생님과 학생이 친구처럼 지내면서 해야 해요. 여기 오는 학생들은 그런 즐거움이 있기에 열심히 배우고 있어요.”
플로팅스쿨이 생긴 뒤, 이 일대 습지대 아이들의 학교 입학률은 두드러지게 높아졌다. 조혼과 지참금 제도로 차별받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던 여학생들의 중퇴율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는 보고도 있다. 떠다니는 학교는 해마다 홍수에 휘둘리던 어린이 7만여 명의 삶을 바꿨다. 이 학교에서 파생한 편의시설들은 최소 10만 가구에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공지능이 일기예보를 알려주는 시대, 여전히 대자연의 위력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소년의 절실함에서 출발한 방글라데시판 ‘신기한 스쿨버스’는 희망의 신화가 됐다.
물살이 잔잔해지고 물소를 탄 목동이 집으로 향하는 시간. 저무는 해를 따르며 베투안 마을을 떠나는 길, 멀리서 누군가 손을 흔들었다. 일과를 마치고 한가롭게 수영을 하던 파키와 파키 엄마였다. 취재 기간 내내 주인공보다 더 돋보였던 신스틸러 모녀는 취재진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작아질 때까지 작별 인사를 멈추지 않았다.
■ 특별취재팀
장회정(토요판팀), 남지원·노도현(정책사회부), 박효재·심진용(국제부), 이석우·정지윤·강윤중·권도현(사진부), 배동미(디지털영상팀) 기자
■취재지원 : 한국언론진흥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