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은 차별 요소인가, 아닌가

이성희 기자

교육부 “차별금지법에 ‘학력’ 제외해달라” 의견 국회 제출

‘학력’은 차별 요소인가, 아닌가

“법률로 규제하는 건 과도하다”
교육부 ‘차별 범위’ 신중검토 의견
문 대통령 공약·인권위 등과 배치

법 찬성 측 “불필요한 구분 방지”
유 부총리 “부처 의견, 다시 검토”

교육부가 ‘차별금지법’ 금지 대상에서 ‘학력’을 제외하자는 의견을 내 논란이 일고 있다. 교육부는 학력을 차별금지 사유로 명시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는 입장이지만, 학력에 따른 구분 짓기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차별금지법의 학력 명시는 일종의 경고등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27일 공개한 자료를 보면, 교육부는 장 의원이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안에 대한 검토의견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법무부에 제출하면서 ‘제3조 금지대상 차별의 범위’에서 학력을 삭제하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차별금지법의 학력 명시는 ‘신중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그 이유로 “(학력은) 성, 연령, 국적, 장애 등과 같이 통상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부분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상당 부분 성취 정도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합리적 차별 요소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고 밝혔다. “학력을 대신해 개인의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표준화된 지표가 일반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력에 의한 차별을 법률로 규제하는 건 과도한 규제라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고도 했다.

차별금지법안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학력·학벌을 이유로 고용, 재화·시설 이용, 교육훈련, 행정서비스 이용 등에서 차별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법안이다. 이때 학력(學歷)이란 고졸·대졸 등과 같은 교육과정 이수뿐 아니라 특정 교육기관 졸업·이수를 뜻하는 출신학교까지 포함한 개념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차별금지법의 학력 명시는) 학력으로 인한 어떠한 구분도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여태 아무 생각 없이 ‘대졸자만 된다’고 했던 것을 ‘과연 이 일이 대졸자만 할 수 있는 일인가’라고 생각하게 하는 등 주의의무를 주려고 하는 것”이라며 “대학교수를 뽑을 때 박사 학위자를 요구한다고 차별이라고 볼 수 없다. (이와 달리) 합리적 이유가 없거나 불필요한 학력 구분을 없애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이미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도 학력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차별금지 사유에 학력을 넣는다고 큰일이 나는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번 교육부 입장은 기존 정책이나 국정과제와도 맞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입학·고용·승진에서의 학력·학벌차별 관행 철폐’를 대선 공약으로 내놨으며, 취임 후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시켰다. 교육부는 2019년 고등학교 학벌에 따른 차별을 없애기 위해 대입과정에서 블라인드 평가를 면접뿐 아니라 서류심사로 확대했다. 장 의원은 “교육부가 블라인드 입시와 채용을 확대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법 제정을 반대하고 있다. 이중적인 모습”이라고 말했다.

우려의 목소리는 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채용과정 등에서) 출신학교까지 기록하지 못하게 하면 시험을 통해 뽑을 때 오히려 (좋은 교육여건의 혜택을 받은) 명문대 집중현상이 커지고 블라인드 면접에서는 인맥·가정환경·부모 등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한국 사회에서 학력은 실력과 유리된 게 아니다. 파벌 개념이 강하고 부패와 연결되는 학벌을 철폐하는 방안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논란이 일자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2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학력을 합리적 차별로 보는 사회적 인식이 있다는 점에서 (학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차별금지법 취지에 동의한다”며 “(교육부가) 법안 취지를 잘못 이해한 것은 아닌지 다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Today`s HOT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황폐해진 칸 유니스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경찰과 충돌하는 볼리비아 교사 시위대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개전 200일, 침묵시위 지진에 기울어진 대만 호텔 가자지구 억류 인질 석방하라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