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실습, 교육인가 노동인가

이름은 교육, 실제론 노동…그 틈새로 사고 반복

이하늬·강한들·이혜리·박용근 기자

사고 나면 노동부와 교육부, 학교와 실습 기업은 서로 책임 미뤄

‘학생’에 초점 맞춘 2017년 개선안이 되레 근로자 보호막 걷어내

여수 요트장에 펄럭이는 추모 리본<br />전남 여수시 웅천동 한 요트장에 14일 애초 현장실습 계획에 없었던 잠수작업을 하다 지난 6일 숨진 여수해양과학고 3학년 홍정운군을 기리는 추모 리본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여수 요트장에 펄럭이는 추모 리본
전남 여수시 웅천동 한 요트장에 14일 애초 현장실습 계획에 없었던 잠수작업을 하다 지난 6일 숨진 여수해양과학고 3학년 홍정운군을 기리는 추모 리본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또 한 명의 현장실습생이 죽었다. 특성화고 3학년에 재학 중이던 홍정운군은 지난 6일 전남 여수 요트업체에 현장실습을 나가 물속에서 작업을 하다 사망했다.

14일 경찰에 따르면 홍군은 허리에 12㎏짜리 납 벨트를 차고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떼어내는 작업을 하다 수중으로 가라앉았다. 홍군의 학교와 업체가 맺은 ‘현장실습표준협약서’만 지켰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였다. 표준협약서에 따르면 홍군은 잠수작업을 하면 안 됐다.

현장실습생 산업재해는 늘 비슷한 양상을 띤다. 고용노동부는 교육부에, 교육부는 노동부에, 학교는 현장실습기업에, 현장실습기업은 학교에 책임을 미룬다. 신분은 학생, 명목은 현장실습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저임금 노동자로 취급되는 괴리가 수십년째 이어지고 있다.

사고가 날 때마다 정부는 대책을 내놨지만 실효성은 없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사망사고 일주일 만인 지난 13일 여수 추모의집을 방문해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고가 발생해 교육부 장관으로서 큰 책임을 느낀다”며 “현장실습 전반의 문제점을 살피고 제도를 보완하는 등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동·교육단체들은 “이제 대책은 현장실습제도 폐지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악’이 된 2017년 ‘개선방안’

현장실습생 사망사고는 잊을 만하면 반복됐다. 2017년 11월 제주도 생수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이민호군이 사망했다. 이군은 혼자서 작업을 하다가 프레스에 몸이 끼여 숨졌다. 그해 1월에는 전주 LG유플러스 협력회사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홍수연양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실습’이었음에도 홍양은 가장 악명 높은 부서로 배치돼 고강도 노동에 시달렸다.

사고가 잇따르자 그해 12월 교육부는 ‘직업계고 현장실습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조기취업 형태 현장실습을 2018년부터 전면 폐지하고, 6개월이던 현장실습 기간을 3개월로 줄여 ‘학습중심’ 현장실습으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교육부가 내놓은 방안에는 현장실습 분야 역시 전공에 맞는 직무 관련 분야로 한정되도록 유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홍양과 이군 모두 자신의 전공과는 관련 없는 분야에서 현장실습을 했다. 홍양은 애견학과, 이군은 원예과에 다녔지만 콜센터와 생수공장으로 현장실습을 갔다.

교육부의 제도 개선안은 저임금 노동으로만 여겨지는 현장실습을 교육으로 정의하고 보호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전문가들은 해당 방안이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라고 입을 모은다. 학생들이 일하러 가는 현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이 대책으로 인해 현장실습생의 근로자성은 사라지게 됐기 때문이다.

취업률 높아야 정부 지원금…학교들, 열악한 기업 찾는 ‘악순환’

하늘에선 잘 있니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 제거를 위한 잠수작업 중 익사한 전남 여수해양과학고 3학년 홍정운군의 사진이 담긴 현수막이 사고 현장인 여수시 웅천동 이순신마리나 요트장에 걸려 있다. 연합뉴스

하늘에선 잘 있니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 제거를 위한 잠수작업 중 익사한 전남 여수해양과학고 3학년 홍정운군의 사진이 담긴 현수막이 사고 현장인 여수시 웅천동 이순신마리나 요트장에 걸려 있다. 연합뉴스

참여 기업 기준 낮추는 등
현장실습생 보호 기준 완화
안전 이유로 빠진 기업이
다시 실습기업에 선정되기도
“고졸 취업 루트 다양해져야”

해당 방안에 따르면 학생과 근로자의 성격이 혼용됐던 현장실습생의 신분은 학생으로 규정됐고, 현장실습 계약은 표준협약서·근로계약서에서 표준협약서로 축소됐다. 수당 역시 임금에서 현장실습비로 바뀌었다. 이상현 특성화고등학교권리연합회 이사장은 “근로계약서, 최저임금 등을 받지 못하면서 현장실습제도는 2017년 이후에 더 퇴보했다”고 짚었다.

다만 현장실습생에 대한 특례 조항을 담아 현장실습생을 근로자로 규정한 산업안전보건법이 지난해 10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결국 현장실습에 대한 규정이 관계부처마다, 법마다 제각각인 셈이다.

■취업률에 뒷전으로 밀린 기준

2017년 당시 내놓은 대책 가운데 그나마 현장실습생을 보호할 수 있는 일부 기준조차 점점 완화됐다. 현장실습에 참여할 수 있는 기업에 대한 기준이 대표적이다. 당시 교육부는 ‘선도기업’ 중심으로 현장실습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선도기업은 노무사가 함께 기업을 방문해 현장을 점검해야 하고, 교육청 승인을 받아야 하는 등 상대적으로 절차가 까다롭다.

그런데 이번에 사망한 홍군은 ‘참여기업’에서 일했다. 참여기업은 학교 현장실습운영위원회 심의만 거치면 된다. 2019년 1월 교육부는 ‘직업계고 현장실습 보완방안’을 발표해, 선도기업에 선정되지 않은 기업도 참여기업으로 현장실습생을 받을 수 있게 했다. 기업 참여가 급감해 학생들의 현장실습 기회가 축소된다는 이유였다.

학교 입장에서 현장실습 기회는 취업률로 이어지고, 이는 정부 지원금으로 다시 이어진다. 장윤호 특성화고 교사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취업률을 언급하진 않지만 목적 사업비 기준 중 하나가 취업률이고 또 신입생 모집에도 영향을 주다보니 학교 입장에서는 현장실습 기회가 아쉬운 것”이라며 “악순환”이라고 말했다.

현장실습에 참여하는 기업의 기준이 느슨해지다보니 학생들은 더 열악한 노동환경의 기업으로 실습을 가게 됐다. 김경엽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직업교육위원장은 “현장실습 참여기업을 보면 2018년에 뚝 떨어졌다가 2019년에 다시 오른다”며 “학생들이 가서는 ‘안 된다’고 여겨졌던 기업에 다시 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전북지역에서는 안전을 이유로 빠졌던 반도체 기업들이 2019년 다시 참여기업이 됐다.

■폐지만이 vs 안전한 현장

정부가 내놓은 수많은 대책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열악한 현장으로 내몰리는 현실은 그대로다보니 현장실습을 폐지하는 것이 근본 대책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교육도 노동도 아닌, 학생도 노동자도 아닌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폐지밖에 답이 없다는 주장이다. 39개 교육·노동단체는 ‘현장실습 폐지·직업계고 교육정상화 추진 준비위’를 구성하고 공동행동에 나선다고 밝혔다.

김현주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 대표는 “12월까지는 정상적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학교·지자체·교육당국·중소기업지원청 등이 협업해 직업계고 학생이 갈 수 있는 기업을 적극적으로 발굴, 노동부가 관리감독을 하는 시스템에서 취업으로 연결되는 실습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북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14일 전북도교육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장실습제도의 즉각 중단을 촉구했다.

하지만 폐지는 섣부르다는 반발 역시 만만치 않다. 특성화고노동조합과 전국특성화고권리연합회 등이 준비위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다. 최서현 전국특성화고노조 위원장은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것을 현장에서 배우고 싶어 한다”며 “안전한 현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실습을 없애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상현 이사장은 “현장실습을 없애고 졸업 후 취업으로 나가면 특성화고 학생들이 처하는 현실이 바뀌겠느냐. 결국은 비슷한 수준의 기업에 취업하게 될 것”이라며 “고졸 학생이 취업하는 기업 자체가 좋아져야 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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