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는 얼마나 공정한가(상)

부모 월소득 대비 자녀의 특목고 진학률…700만~1000만원 3.5%, 300만원 이하 1.4%

이호준·이하늬 기자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탄희 의원실 공동기획

능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능력주의는 얼마나 공정한가(상)]부모 월소득 대비 자녀의 특목고 진학률…700만~1000만원 3.5%, 300만원 이하 1.4%

부모 학력·재력, 자녀 미래 영향
‘수저 대물림’ 빅데이터로 확인

부모의 ‘수저 계급’이 정규 교육과정을 거쳐 자녀의 ‘수저 계급’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가 나왔다. 부모들 학력과 재력, 사회적 지위가 자녀의 사교육→특수목적고→수도권 대학→대기업 취업→고소득으로 이어지는 불평등의 연결고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력’과 ‘학벌’을 중심으로 부상 중인 능력 우선주의가 ‘공정’과는 거리가 멀다는 주장이 통계적으로 확인된 것으로, 능력주의의 허점을 검증할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부모 ‘수저’ 자녀 학교·직장 대물림

1일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입수한 ‘고교체제 발전을 위한 빅데이터 분석 연구’를 보면 부모들의 ‘수저’는 자녀들의 진학과 직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교육부의 2020년 정책연구과제로 서울교대가 용역을 받아 실시한 이 연구는 ‘교육체제가 고등학교 서열화 및 계층화와 어떤 관련성을 갖고, 교육을 통한 불평등에 어떻게 작용해왔는가’를 통계적으로 검증하려는 목적으로 이뤄졌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한국교육종단연구(2005)와 한국교육고용패널(2004)을 활용해 연구 당시 각각 중학교 1학년과 3학년 학생들의 고등학교·대학교 진학 및 노동시장 진입을 추적조사했다.

연구 결과 부모의 학력이 높고 고소득 직업일수록 자녀가 과학고등학교, 외국어고등학교 등 특수목적고에 진학할 확률이 월등히 높았다.

월평균 가구소득이 700만~1000만원인 가정의 학생들 중 3.5%가 특목고에 진학한 반면, 100만~300만원인 가정의 학생 비율은 1.4%에 불과했다. 반대로 월평균 가구소득이 1000만원 이상인 가정의 학생 중 전문계고에 진학한 비율은 4.1%에 불과했지만, 100만원 미만인 가정의 학생 중 전문계고 진학 비율은 10배인 43.7%에 달했다.

부모의 직업이나 학력도 자녀의 고교 진학에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아버지 학력이 대학원 이상인 가정의 자녀 중 4.8%가 특수목적고에 진학했다. 이어 대졸이 2.4%, 고졸이 1.1%였다. 반면 전문계고에 진학한 비율은 아버지의 학력이 중졸 이하일 경우 41%, 고졸 24.7%, 대졸 10.3%였다. 아버지 학력이 대학원 이상인데 해당 가정의 자녀가 전문계고에 간 비율은 3.8%에 불과했다.

연구진, 연구 당시 중1·중3 학생들
고교·대학·취업 진입 추적조사

2022학년도 영재학교 합격 40%가
서울 강남·서초 등 상위 10곳 출신

또 아버지의 직업이 사무직·기능직인 경우 다른 직종에 비해 자녀가 특목고에 진학하는 비율이 각각 3.1% 대 1.6%로 2배가량 차이가 났다. 반대로 자녀의 전문계고 진학 비율은 각각 7.9% 대 24.3%로 사무직이 3배 가까이 적었다.

이렇게 과학고·외고를 졸업한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보다 수도권지역 대학에 더 많이 들어갔다. 우선 대학 유형을 4년제대와 2~3년제대로 나눴을 때 특목고 졸업생의 85.2%, 일반계고 졸업생의 74.1%가 4년제대에 진학한 반면, 전문계고 졸업생은 34.7%만 4년제 대학에 간 것으로 집계됐다.

진학한 대학의 종류와 소재지도 큰 차이를 보였는데 특목고 졸업생 가운데 수도권 대학에 진학한 비율은 59.7%였지만, 일반계고와 전문계고 졸업생은 그 비율이 각각 36.0%와 39.1%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특목고, 일반고 졸업생이 지방국립대에 들어간 비율은 각각 13.6%, 16.3%였다. 반면 전문계고 졸업생이 지방국립대에 진학한 비율은 4.9%에 불과했고, 65.3%의 졸업생이 2~3년제 대학에 진학했다.

어떤 고등학교를 나왔느냐의 차이는 대학 진학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후 취업한 기업의 규모나 소득 수준의 차이로 이어졌다. 과학고 졸업생 중에는 76.7%가, 외국어고 졸업생 중에는 57.9%가 직원 300명 이상 대기업에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전문계고 졸업생 중에는 대기업에 취업한 비율이 28.7%, 일반계고 졸업생 중에는 37.7%에 그쳤다. 일반계고 졸업생의 40.7%, 전문계고 졸업생의 47.3%는 50인 이하 중소기업에 취업했다. 이 같은 취업 결과는 소득의 차이로 이어졌는데, 2005년 중학교 졸업자 기준 서울지역 과학고에 진학한 졸업생의 월급은 472만원으로 전문계고 졸업생 월급 190만원보다 2배 이상 많았다. 서울지역 외고 졸업생과 일반고 졸업생의 월급은 각각 314만원, 231만원이었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2000년대 경기도를 중심으로 외고가 많이 생기면서 이런 흐름이 시작했고, 2010년대 들어 자사고가 설립되면서 이런 불평등 고리가 본격화됐다”며 “이전에는 대입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자사고가 생기면서 고교 입시가 등장했다. 교육평등을 추구하는 흐름에서는 웬만하면 이런 입시를 없애는데 우리는 거꾸로 갔다”고 평가했다.

■ 영재학교, 의대도 부모 능력순?…능력의 ‘근원’ 재력 고착화

교육부 용역의 장기 추적조사와 마찬가지로 최근 입시 성적표에도 ‘수저 세습’ 현상은 강하게 확인된다. 소위 ‘의·치·한·수·약’ 의약계열 합격자나 과학고, 영재학교 진학생 가구의 소득분포는 ‘능력’의 근원을 ‘재력’으로 구체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장학재단에서 입수한 자료를 보면 2020학년도에 입학한 전국 39개교 의대 신입생 2977명 중 소득 1~8구간에 해당하는 학생은 577명으로 전체의 19.4%에 불과했다.

소득구간은 1구간이 가장 낮은 소득, 10구간이 가장 높은 소득으로 분류된다. 국가장학금 1유형은 소득 1~8구간에만 주어지는데, 2020년 기준 월 소득인정액 920만원 미만이 소득 8구간에 해당한다. 즉 지난해 의대에 입학한 신입생 10명 중 8명은 국가장학금 대상이 아닌 월 소득 920만원 이상 가구원이라는 의미다. 의대 신입생 중 소득 1~8구간 비율은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 2017년 24.9%였던 이 비율은 2019년에는 20.4%, 2020년엔 19.4%까지 떨어졌다.

최근까지 ‘n수생’ 연구를 진행해온 엄수정 경기도교육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많은 학생들이 좋은 삶이란 ‘안정적인 삶’이라고 생각한다. 외환위기가 오든, 코로나 사태가 오든 스트레스 없이 안정된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라며 “그러면 선택지는 의대, 치대, 한의대, 로스쿨, 교대 이런 학교만 남게 된다”고 짚었다.

엄 부연구위원은 “30만원만 내면 1년 내내 들을 수 있는 강의가 있는 반면 한 달에 몇백만원씩 하는 학원이 있다. 경제적 여건에 따라 접근할 수 있는 수험 방식과 교육의 질이 달라지는데, 재수를 제대로 하려면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든다”면서 “사회·경제적 배경이 뒷받침되는 학생들만 재수를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수능 한 번 못 봐도 또 한 번 보게 해줄 수 있는 부모의 재력과 배경이 더욱 중요해진 셈”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재수를 선택하기 어려운 여건의 저소득층 학생이 대학생이 될 기회는 점점 줄고 있다. 국가장학금 신청자가 가장 많은 일반대(4년제 종합대학)에서 기초·차상위 계층의 비중은 2017년 9.2%에서 2018년 8.0%, 2019년 7.6%, 2020년 7.5%로 감소했다. 그다음으로 가구소득이 적은 1~3구간도 2017년 29.5%에서 2020년 19.7%로 매년 비중이 줄어들었다.

“이것밖에 못했으니 이런 취급…
불평등 정당화하는 게 근본 문제”

영국 ‘역경점수’ 같은 가산점제로
입시·채용 때 격차 완화 검토 필요

문제는 이처럼 교육과정을 지나며 부모의 능력이 자녀에게 세습되는 현상이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비싼 사교육을 통해 ‘부모의 재력’이 ‘자녀의 실력’으로 치환되는 현상이 오히려 심화되면서다.

단적인 사례가 영재학교다. 의대 등 최상위 전공 진학의 디딤돌로 평가받는 영재학교 진학은 수도권 및 소위 ‘사교육 과열지구’ 출신이 독식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2022학년도 영재학교 합격자 출신 중학교의 시·구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사교육 과열지구인 서울 강남·서초·송파·노원구 등 수도권 상위 10개 지역 출신 합격자 수가 전체 영재학교 합격자의 40%를 넘는다.

송 정책위원은 “과거 고등학교 평준화 경험이 있기 때문에 교육불평등을 완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평준화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좋은 걸 가져와서 다른 곳에도 적용하는 것(확장)과, 그게 안 되면 없애고 통합하는 것”이라며 “외고 교육내용이 좋으면 그걸 일반고 내용으로 가져와 계속 확장시켜야 하고, 그게 안 된다면 외고나 자사고는 폐지의 영역으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능력주의를 둘러싼 보다 근본적인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홍민정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표는 “부모의 경제·사회적 배경은 불평등을 가속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이고, 근본적인 문제는 능력주의가 불평등을 ‘정당화’시킨다는 점”이라며 “학생들이 ‘나는 이것밖에 못했으니까 이런 취급을 받아도 돼’라며 자기부정을 한다. 능력주의가 신화가 돼버리면서 불평등을 내면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능력주의가 공정의 다른 이름으로 여겨지는데 격차를 완화하고자 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면서 영국이 제도화한 ‘역경점수’를 예로 들었다. 역경점수란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일정 수준의 성취를 낸 학생들에 가산점을 주는 제도다. 그는 “역경점수의 취지는 당장의 점수가 낮더라도 더 큰 잠재성이 있다고 보는 것으로, 입시나 채용 과정에서 이런 것들을 고려할 수 있는 장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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