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측 “이념 편향” 뒤집기냐, 진보 측 “정책 후퇴” 저지냐

남지원 기자

지방 교육권력 교체 향방

‘대선 연장전’ 기댄 보수 후보들, 이번엔 속속 단일화
진보 재선 땐 ‘자사고 유지’ 현 정부와 대립각 예고

다음달 1일 실시되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시·도지사와 기초자치단체장, 광역·기초의원과 함께 선출하게 될 교육감은 일명 ‘교육 소통령’이라 불린다. 유치원과 초·중·고교 교육을 책임지는 수장으로 올해 65조원에 달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어디에 쓸지 결정하고, 수십만명의 교사와 교육공무원 인사를 좌지우지한다. 학교를 신설하거나 폐지하고, 실제로 운영하는 교육과정을 결정하는 것은 물론 아이들의 등교시간과 급식 메뉴, 시험 횟수를 결정하는 것도 교육감의 권한이다.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 시작을 앞두고 선거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지만 후보자들이 난립하며 ‘단일화’가 주요 이슈가 된 교육감 선거에 대한 관심은 매우 낮다. 19일부터 시작되는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이번주 실시된 주요 언론사들의 여론조사 결과 70%에 육박하는 응답자들이 ‘지지 후보가 없다’거나 ‘모르겠다’고 답했다. 교육감 선거는 미래세대의 일상과 학업, 진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17개 시·도 교육감 선거를 관통하는 흐름과 주요 쟁점을 짚어봤다.

■ 정부와 임기 같이할 교육 수장들

이번에 뽑힐 교육감들은 윤석열 정부 출범 2개월 뒤인 오는 7월1일자로 4년간의 임기를 시작한다. 다음 지방선거는 정권 말에 치러질 예정이라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하는 셈이다. 2007년 첫 민선교육감이 선출된 뒤로 교육감들은 정부정책에 협력하기도 하고 각을 세우기도 했다. 2009년 당선돼 2선을 한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이 연일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비판하며 혁신학교와 무상급식 등을 진보교육감의 대표 브랜드로 만든 사례가 대표적이다.

박근혜 정부 때는 어린이집·유치원의 3~5세 공통교육과정인 누리과정 예산을 놓고 정부와 시·도교육청들이 정면충돌하기도 했다. 정부는 누리과정 예산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부담하라고 했지만 교육청들은 국고에서 별도 지원해야 한다며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 방식으로 맞섰고, 결국 중앙정부가 특별회계를 신설해 국고에서 누리과정 예산을 책임지게 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대거 당선된 진보교육감들이 정부의 자사고·외고 폐지 방침을 실행하는 데 협조했다.

윤석열 정부의 대표 교육정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 속에 진보교육감들이 당선될 경우 정부와 대립각을 세울 가능성이 크다. 특히 선거 결과에 따라 자사고·외고 문제는 ‘뜨거운 감자’가 될 수 있다. 자사고·외고는 문재인 정부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으로 2025년 일괄 폐지될 예정이었지만 새 정부가 존치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만든 국정과제 이행계획서를 보면 정부는 올해 하반기까지 고교체계 개편 방안을 마련하고 내년까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할 예정이라 ‘자사고 폐지’를 주장하는 진보교육감들과 정면충돌이 불가피하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후보는 지난 11일 “자사고 유지 정책으로 간다면 당연히 수용하기 어렵고 새 정부와 대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교육감이 자사고를 지정취소하려면 교육부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데다 진보교육감들이 지난 정권 시절 자사고 지정취소 소송에서 전패하면서 실제 정책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히 교육감 선거에서 어느 쪽이 우세하냐에 따라 7월 출범하는 국가교육위원회를 통해 기존 교육감 권한이 아닌 대학입시제도 등의 교육정책에 교육감들이 관여할 길이 열릴 수도 있다. 교육감들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를 결성해 전국단위 교육정책에 목소리를 내왔는데, 시·도교육감협의회 대표자 1명이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 진보 지우기 벼르는 보수 후보들

이번 선거의 또 다른 화두는 ‘지방 교육권력 교체’다. 교육감 선거는 정당공천이 금지돼 있지만 보수성향과 진보성향 후보가 암묵적으로 알려져 있어 선거 결과도 전체 지방선거 결과와 연동되는 편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했던 2018년 지방선거 당시에는 교육감 선거에서도 시·도교육청 17곳 중 14곳에서 진보성향 후보가 당선됐다.

하지만 이번 교육감 선거는 보수 후보들에게 유리하다는 평가가 많다. 일단 지방선거 자체가 ‘대선 연장전’으로 인식되고 있어 여당이 지방권력을 탈환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보수 후보들은 대부분 단일화에 실패했던 4년 전과 달리, 이번에는 상당수 지역에서 보수 후보들이 단일화를 이뤘다. 경기·부산·울산·경남·충북 등 4년 전 진보교육감이 당선됐던 지역에서 보수 대 진보의 일대일 구도가 만들어졌다. 진보교육감들이 일정 부분 교체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보수 후보들은 일제히 진보교육감들이 추진했던 정책을 ‘이념편향적’이라고 공격하며 이를 뒤집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가장 보폭이 큰 후보는 이명박 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냈고 윤 대통령의 특별고문 출신인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후보다. 현직인 이재정 교육감이 불출마한 경기도에서 인지도 높은 임 후보가 출마하면서 2009년 이후 처음으로 경기도에서 보수교육감이 당선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임 후보는 전직 교육감들의 대표 정책인 혁신학교·꿈의학교·미래학교 등을 연일 비판하고, 이재정 현 교육감이 실시한 ‘9시 등교제’ 폐지를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다. 전국 10개 시·도에 출마한 보수성향 교육감 후보들이 임 후보 주도로 ‘반지성·반자유교육, 전교조 아웃’을 슬로건으로 내건 ‘중도보수교육감후보연대’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진보교육감이 추진했던 노동인권교육이나 민주시민교육을 ‘좌파 이념교육’이라고 규정하는 색깔론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도 보수 후보들의 공통점이다. 조전혁 서울시교육감 후보는 조희연 현 교육감의 대표 정책인 학생인권조례와 민주시민교육을 폐지하고 헌법교육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하윤수 부산시교육감 후보는 “이념 중심의 노동·인권·민주 교육을 철폐하고 인성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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