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도 경제부처” 윤석열 대통령 발언에···교육계 “박정희 시대 연상” 비판

김태훈 기자

전날 국무회의서 반도체 인재 양성 강조

교육계 우려…“미래세대 위한 고민 부족”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받은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살펴보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받은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살펴보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국무회의에서 “교육부는 스스로 경제부처라고 생각해야 한다”며 “교육부의 첫 번째 의무는 산업발전에 필요한 인재 공급”이라고 한 발언을 두고 교육계 안팎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래세대를 책임질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부처가 최우선적으로 담당할 소임을 ‘산업인력 공급’에만 국한한 인식에 문제점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또 과거 ‘과학입국’이란 구호를 개발독재 옹호에 활용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화법을 연상시킨다는 반응도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핵심은 휴먼 캐피털(인적 자본)”이라며 “교육부가 성장의 발목을 잡지 않으려면 대대적인 개혁을 통해 과학기술 인재를 배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기술과 산업이 성장을 이끌고 있으니 교육당국은 반도체를 위시한 첨단산업에 필요한 인력 공급에 주력하라는 메시지를 강조한 것이다. 이날 국무회의는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 소장을 지낸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반도체 관련 특강으로 시작했다. 국무회의에서 특강이 진행된 것은 이례적으로, 윤 대통령은 이 장관이 설명을 위해 가져온 반도체 웨이퍼와 포토마스크도 유심히 살펴보는 등 관심을 보였다.

이 같은 윤 대통령의 발언은 최근 일련의 행적들과 맥을 같이 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공장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지난 2일에는 ‘고졸 인재 채용 엑스포’에 참석해 “반도체와 인공지능 산업에 맞춘 고졸인재를 육성하라”고 주문한 바 있다.

교육계에서는 우려와 한탄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희정 실천교육교사모임 회장은 “60년대로 되돌아간 줄 알았다”고 했다. 교육을 산업 성장에 종속되는 영역으로 바라보는 윤 대통령의 인식에서 196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개발독재의 논리가 겹쳐보인다는 것이다. 한 회장은 “학교현장에서 보면 특히 저소득층 가구 학생일수록 코로나19 직격탄을 맞고 힘든 시기를 보낸 여파가 심각해 이를 극복하는 데만도 여러 해가 걸릴 것”이라며 “미래세대를 위한 고민 없이 교육이 산업인력 양성에만 주력해야 한다는 천박한 인식으로는 설령 경제는 성장시킨다 해도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높일 순 없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이러한 모습을 두고 ‘과학입국’의 기치를 내걸고 ‘과학대통령’을 자임한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정치적 의도를 담은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윤 대통령은 이전에도 전두환 정권에서 발탁한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을 언급하는 등 필요한 시점마다 과거 정권의 일들을 거론하는 화법을 썼다”며 “교육부 장관은 사회부총리도 겸직할 만큼 사회 전 분야를 두루 아우르는 직책인데 성격이 다른 경제만능주의적 주문을 내놓은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과학기술과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행정부의 수장으로서 교육정책에 대해 제언하는 자리라면 균형있는 시각이 필요했다는 지적도 있다. 고등교육 분야에서는 여전히 소외된 기초학문에 관한 아무런 언급이 없었을 뿐 아니라 산업인력 양성과는 성격이 다른 초·중등교육 분야에 대한 배려도 부족했다는 것이다. 고전 제주대 교수는 “고등교육에서의 인재 양성 목표를 제시하는 정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다른 주요 교육 영역과의 균형이 맞춰지지 않은 점은 아쉽다”며 “대학의 인력 공급 기능만큼이나 초·중·고교에서는 복지와 기회균등 같은 시민적 차원의 교육 내용도 중요한데 그런 고민이 엿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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