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살리자며 “수도권 정원 증원”읽음

김태훈 기자

윤 대통령 “과학 인력 양성” 주문에 교육부 ‘규제 완화’ 검토

학령인구 줄며 쏠림 가속 …지방대 육성 국정과제와도 상충

윤석열 대통령의 과학기술 인력 양성 주문에 따라 교육부가 수도권 반도체 관련 학과의 정원 확대 검토에 나선 데 이어 한덕수 국무총리가 교육부 청사를 직접 방문해 인재 양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고등교육의 큰 방향이나 지역 간 불균형 해소 문제에 대한 고민 없이 이 같은 정책이 성급하게 추진되면서 수도권 집중 현상을 심화시키고 가뜩이나 어려운 지방대학의 몰락을 부추길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9일 교육부를 찾아 “4차 산업혁명의 근간이 되는 산업이 우리의 주력 산업과 융합돼 세계 최고의 산업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과거처럼 돈을 퍼붓는 것이 아니고 인재를 양성하는 전략이 가장 핵심”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 7일 국무회의에서 “혁신을 수행하지 않으면 교육부가 개혁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교육부를 강하게 질타한 데 이어 총리까지 교육부 청사를 직접 방문해 ‘개혁’ 메시지를 강조한 것이다.

한 총리는 특히 반도체 산업 관련 학과 증원에 대해 “수도권과 지방에 비슷한 숫자의 증원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면서 “범정부적으로 지원해줘야 제대로 된 인재 양성이 충분히 될 것”이라며 부처 간 협업을 통한 지원과 규제개혁 필요성을 언급했다.

교육부도 윤 대통령 발언이 나온 지 하루 만에 반도체학과 등 수도권 대학의 첨단 학과 정원 확대를 검토하겠다고 밝히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전날 “학부 이상 대학에서 반도체 관련 인력을 산업에서 원하는 수준만큼 키워내야 하는데 규제가 걸림돌”이라며 “관계 부처와 협의해 지금보다 파격적인 대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도권 대학 학부 정원 총량규제를 거론하며 “규제 안에서 할 것이냐, 전략산업이니 예외로 만들어줄 것이냐(의 문제)”라며 “반도체 분야를 집중 육성해야 하므로 여건이 있는 곳에 특례를 주는(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장 차관은 이날 창원대에서 열린 제2차 전국국공립대총장협의회에서도 가칭 ‘국립대학법’ 제정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히며 대학 규제 완화 의지를 다시 강조했다. 장 차관은 “국공립대학이 지역의 핵심 주체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며 “국립대학법 제정을 통해 국립대학의 역할 강화와 자율성 확보 방안을 제도화하는 작업도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새 정부에서는 기존의 4대 요건, 대학 평가, 대학 정원 등 대학이 환경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대폭 개혁해 대학에 더 큰 자율을 부여하려는 방향성을 가지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도권 대학의 정원 규제를 풀면 학령인구 감소 문제와 맞물려 수도권 집중 현상이 가속화될 우려가 있다. 반도체 산업 등에서 요구하는 인력수요를 맞추기 위해 이미 지난 정부에서도 꾸준히 수도권 대학의 정원은 유지하는 선에서 계약 학과 등 우회적인 방법으로 인재 공급을 늘리는 방안을 지속해왔던 터다.

이 같은 조치는 윤석열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건 지방대학 육성 대책과도 상충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관련 산업 분야의 기업들이 수도권 대학을 우선하는 상황에서 수도권과 지방에 정원만 비슷하게 분배한다고 해서 대등한 경쟁이 이뤄지긴 어렵다는 평가다.

김병국 전국대학노조 정책실장은 “이미 학령인구 감소로 재정자립조차 어려워진 각 지역의 대학으로 정원은 물론 정책 역량을 집중시켜 줘야 그나마 숨통을 틔우는 상황”이라며 “고등교육의 큰 틀을 고려하지 않고 구색만 맞추는 식으로 지방대에 일부 정원을 할당하더라도 이미 심각한 불균형을 개선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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