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따라 입시 제도 변해도 부자가 입시 승자인 건 불변

유경선·강연주·최서은 기자

① 자주 바뀌는 입시정책, 웃는 자는 따로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 대입 교육] 정권 따라 입시 제도 변해도 부자가 입시 승자인 건 불변
우리 사회의 교육은 누구에게, 얼마나 유리할까요. 만일 누군가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다면, 즉 ‘불공정’하다면, 개선하고 바꾸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까요.

올해 서울 지역 대학들은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주요 전형으로 하는 정시 모집 비중을 40%까지 높였습니다. 2000년대 들어 가장 높은 비율입니다. 정시 비중을 확대한 배경에는 학생부 종합전형을 비롯한 수시 전형의 ‘공정성 논란’이 있습니다. 고위공직자 자녀들의 ‘입시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수시는 믿을 수 없고 어딘가 의뭉스러운 제도로, 정시는 시험이라는 공정하고 일률적인 잣대로 학생들을 줄세우는 투명한 제도라는 사회적 인식이 생겨났습니다.

정말 그럴까. 경향신문과 지식콘텐츠 스타트업 언더스코어, 불평등연구회는 20일부터 연재되는 시리즈에서 이 의문을 구체적인 데이터로 진단합니다.

1회에서는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바뀌는 입시정책에 발빠르게 적응하는 집단이 누구인지 학원 데이터를 통해 알아봅니다. 이어지는 보도에서는 ‘과연 정시는 공정한 시험인가’를 묻고, 미국은 왜 SAT와 같은 표준화된 시험에서 벗어나려 하는지를 진단합니다.


부자 동네 학원들, 발빠른 ‘정책 동조’…과실은 고소득층 자녀 몫으로

서울 강남대성학원에서 20일 열린 2023학년도 대입 수능 입시설명회에서 학부모들이 배치표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강남대성학원에서 20일 열린 2023학년도 대입 수능 입시설명회에서 학부모들이 배치표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20년 학원 데이터 분석해보니
사교육 인프라 많고 소득 높은 지역
변하는 입시정책에 기민하게 대응

“길어야 4~5년.” 한국 사회에서 대학입시 정책은 4년마다 바뀐다. 주요 대학이 자체 선발 정책을 미시적으로 바꾸고, 이에 맞춰 교육시장이 반응하는 주기까지 합치면 입시정책은 해마다 바뀐다고 봐도 된다는 교육 전문가들도 있다. 입시정책 변화의 명분은 ‘공정한 선발’이다. 그런데 ‘공정함’을 목적으로 한 제도가 채 5년도 안 돼 뒤집힌다면 결국 입시에서 승산이 높은 쪽은 어디일까.

경향신문과 지식콘텐츠 스타트업 언더스코어는 2000년부터 축적된 전국 학원 데이터를 분석했다. 입시정책이 자주 바뀌면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곳은 사교육 인프라가 탄탄하고,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이라는 것을 데이터로 실증했다.

특히 ‘교육 1번지’인 서울 강남은 모든 사교육 지표에서 독보적 지위를 점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서울대학교에 따르면 올해 서울대 입학생 중 ‘강남 3구’ 학생 비율은 11.9%로, 서울대 신입생 ‘10명 중 1명’ 이상이 이 지역 출신이다. 이번 분석은 입시정책이 자주 바뀔수록 상위 계층이 더 잘 적응한다는 것, 그 결과 교육 불평등을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시사한다.

교육부와 통계청 학원 데이터, 국세청에서 제공하는 지역별 소득 데이터 등을 분석했다. 교육부 데이터는 2015년부터 축적됐지만, 최근 3년치 자료만 공개되고 있어 최재성 성균관대 교수가 수집·분석한 것을 활용했다.

[기울어진 운동장, 대입 교육] 정권 따라 입시 제도 변해도 부자가 입시 승자인 건 불변

서울 강남, 모든 사교육지표 독보적
영어과목 절대평가 전환 발표 후
강남·양천 영어 수업 비율 크게 줄어
서울대 신입생 10% ‘강남 3구’ 출신

수능 영어 ‘절대평가’ 발표 후
서울 양천·강남 영어 학원 비율 ‘뚝’

2015년 10월 교육부는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부터 영어과목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영어 사교육 우선순위가 다른 과목에 비해 떨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자 서울 강남구와 양천구에서 전체 학원 개설 수업 대비 영어·외국어 수업 비율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양천구에는 사교육 강세 지역인 목동이 있다.

서울 내 자치구별 영어·외국어 수업 비율을 살펴본 결과 2015~2016년 양천구에서 감소 속도가 가장 빨랐고, 강남구에서도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양천구는 2015년 영어 사교육 비율이 25.3%로 서울 전체에서 3위였는데, 2018~2019년 저점을 찍은 후 2022년 현재까지 13위에 머물러 있다.

강남구도 영어·외국어 사교육 비율이 2015년 22.1%로 서울에서 5위였지만 현재는 22위 수준이다. 2015년을 기준으로 영어·외국어 수업이 많았던 곳일수록 2016년 이후 현재까지 수업 비율이 더 빠르게 감소했다.

입시정책 변화에 따라 학원들이 ‘새로 생겨나는’ 속도뿐 아니라, 중요도가 떨어진 학원들이 ‘사라지는’ 속도에서도 지역별 격차가 관측된 것이다. 소득 수준이 높고 학원 인프라가 많은 곳일수록 대응이 기민한 셈이다.

데이터를 분석한 강태영 언더스코어 대표는 20일 “신규 업종 진입뿐 아니라 퇴출 상황에서도 자원을 많이 보유한 곳일수록 더 빠르게 적응할 수 있다는 패턴이 발견됐다”고 했다. 불평등연구회 소속 최율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입시정책이 바뀌면 학생과 학부모뿐 아니라 사교육 제공 주체도 재빠르게 적응해야 한다”며 “적응의 속도가 양방향으로 나타난 사례”라고 말했다.

상위 계층일수록 정책 적응 빠르고
코딩·논술·컨설팅·진학상담 등
고소득 지역일수록 수업 개설 많아

사교육 시장 코딩 수업 인기 상한가
고소득 지역일수록 ‘강세’

학원에서 제공하는 코딩 수업, 논술 수업, 컨설팅·진학상담은 고소득 지역일수록 강세를 보였다. 코딩 수업, 논술 수업, 컨설팅·진학상담은 모두 입시정책에 관한 민감도와 관련이 깊다.

사교육 시장에서 코딩의 인기는 상한가다. 한양대·경희대·국민대 등은 2023학년도 입시에서 소프트웨어(SW) 특기자전형으로 신입생을 선발한다. 교육부는 지난 8월 초등학교·중학교에서 코딩 교육을 필수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코딩 교육 필수화를 대선 공약으로 내놓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이던 지난 1월 “학생들의 코딩 교육에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을 배정하고 입시를 본다면 국·영·수 이상의 배점을 둬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논술은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제외되기는 했지만 주요 대학들이 논술고사를 치르고 있어 여전히 중요한 입시 승부처다. 2025년 고교학점제 도입에 맞춰 수능이 논술·서술형으로 개편될 것이란 예측도 있다. 유성룡 에스티유니타스 교육연구소장은 “아직 고교학점제의 윤곽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강남 지역에서 글쓰기나 독서 교육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컨설팅·진학상담 수요도 학생부종합전형 도입 이후 꾸준하다. 컨설팅·진학상담은 해외유학·면접·특목고 입시도 취급한다.

코딩 수업, 논술 수업, 컨설팅·진학상담 개설 수가 전체 학원 수 대비 차지하는 비율은 모두 자치구별 1인당 연평균 수입과 비례관계였다. 서울·광주·대구·대전·부산·울산·인천 등 7개시의 주요 자치구 68곳이 분석 대상이다.

1인당 연평균 소득이 1800만원 이하인 13개 자치구를 ‘저소득 지역’으로, 3000만원 이상인 11개 자치구를 ‘고소득 지역’으로 분류한 뒤 두 지역 간 코딩, 논술, 컨설팅·진학상담 수업 비율을 비교해보니 차이가 뚜렷했다.

코딩 수업 비율은 저소득 지역에서 0.57%, 고소득 지역에서 1.10%로 나왔다. 논술 수업은 8.52%와 17.59%, 컨설팅·진학상담은 0.06%와 1.01%로 각각 나타났다. 컨설팅·진학상담에서 비율 차이가 가장 두드러졌고, 이어 논술 수업과 코딩 수업 순이었다.

2016년 이후부터 코딩 교육 증가 추이를 분석한 결과 서울 지역에서는 강남구에서 수업 수가 가장 빨리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에서는 2016년 이후 줄곧 해운대구에서 코딩 수업 수가 제일 많았다. 대구에서는 수성구가 우위를 보이고 있다. 부산 해운대구와 대구 수성구 모두 각 지역에서 사교육 지출이 가장 많은 곳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서울 강남에서 2016년 88개이던 코딩 개설과목 수는 2022년 666개로 8배 가까이 늘었다. 부산 해운대에서도 같은 기간 31개에서 99개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 기준 서울 강남구의 코딩 수업 수는 서울 전체 자치구 평균치보다 4.45배 높다. 부산에서도 전체 평균과 해운대구가 3.98배 차이, 대구에서는 전체 평균과 수성구가 2.36배 차이를 보였다. 강태영 대표는 “고소득 지역일수록 다양한 유형의 입시에 잘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논술 수업이 지역별 사교육 격차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연구도 있다. 최재성 교수가 2016년 발표한 서울시 사교육 공급 연구(문상균·배한나·최재성, ‘학원정보 공공데이터를 활용한 서울시 사교육 공급에 관한 분석’ 조사연구 17.3, 2016)에 따르면, 교습과정에 ‘논술’이 포함된 경우 시간당 학원비는 1만3759원으로 ‘논술’이 포함되지 않은 일반 수업의 시간당 학원비 9891원보다 39% 높았다.

건국대학교 입학처의 김경숙 책임입학사정관은 “국가장학금 수혜율이 가장 높은 유형은 교과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이고 이어 학생부종합전형, 논술, 수능 순”이라며 “논술과 수능으로 지원해 합격한 분포가 서울 강남 지역 학교에서 더 높다”고 했다. 국가장학금은 소득 분위를 기준으로 지급된다. 논술 과목이 지역 격차의 지표라는 또 다른 방증이다.

[기울어진 운동장, 대입 교육] 정권 따라 입시 제도 변해도 부자가 입시 승자인 건 불변

학원 수 서울 대치동 전국 압도적 ‘1위’
부산 해운대구·대구 수성구 각 지역 1위

지역별 학원 수는 입시정책 변화에 대응할 ‘맷집’을 보여주는 가장 기초적인 지표이다. 일단 학원 수가 많아야 입시제도에 맞게 지역 전체적으로 개설 수업을 변경할 여지가 넓어지고, 새 입시정책에도 그만큼 잘 적응할 수 있다. 또 학원 수는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에 많다. 이런 식으로 지역의 소득 수준과 입시 적응도가 동조화하는 것이다.

전국 읍·면·동 단위 통계를 보면 서울 강남구 대치동이 전국에서 학원 수가 가장 많다. 2022년 10월 현재 가장 학원이 많은 행정동은 대치동으로, 총 1216곳의 학원이 있다. 2위와 3위는 서울 양천구 목동(1035곳)과 신정동(835곳)이다. 이어 대구 수성구 범어동 725곳, 인천 연수구 송도동 604곳, 부산 해운대구 좌동 522곳, 서울 노원구 중계동 512곳 순이었다.

구 단위로 살펴본 결과도 같았다. 서울에선 강남구, 부산에선 해운대구, 대구에선 수성구에 가장 많은 학원이 있다. 다른 자치구들과의 학원 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는 양상을 보인다.

2000년, 2010년, 2019년 세 시점을 기준으로 서울·부산·대구 지역 모든 자치구의 학원 수 평균과 가장 학원이 많은 자치구의 학원 수를 비교해 분석했다. 이 격차는 2000년 세 지역에서 모두 1.5~1.6배 수준이었지만 2019년에는 두 배 이상으로 벌어졌다. 2019년 서울 전체 평균과 강남구는 2.06배, 부산 전체 평균과 해운대구는 2.10배, 대구 전체 평균과 수성구는 2.26배 차이를 나타냈다.

학원 범위를 입시·교과·외국어학원으로 좁혀도 지역별 분포가 뚜렷하게 대비됐다. 초·중·고교 재학생 100명당 입시·교과·외국어학원 수는 서울 강남구에서 2.9곳이었다. 대구 수성구(1.5곳)와 경기 성남시(1.5곳), 부산 해운대구(1.4곳)보다 두 배가량 높다. 강남구가 전국적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강남구는 평균 학원 교습비도 다른 지역에 비해 높았다. 서울·광주·대구·대전·부산·울산·인천 등 7개시의 주요 자치구 68곳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경제력(1인당 연평균 수입)과 평균 교습비가 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남구는 1인당 연평균 수입이 6607만원, 월평균 교습비가 36만979원이었다. 1인당 연평균 수입 1758만원, 월평균 교습비가 14만1847원으로 68개 자치구 중 가장 낮은 대구 서구보다 2.5배 높다.

“공정성 높이려 정책 바꾼다지만
되레 계층별 불평등만 심화시켜”

‘공정성’ 목표로 잦은 입시정책 변화
“오히려 불평등 강화”

교육과 불평등 분야 연구자들은 ‘공정성’을 목적으로 한 입시정책 변화가 도리어 불평등을 심화한다고 지적한다. 입시정책이 단기적인 ‘유불리’ 논의를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과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입시정책 변경보다 공교육 서비스 강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같은 맥락에서 제기된다.

불평등연구회 최성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계층별로 입시제도 변화에 적응 속도 차이는 분명하다. 문제는 모두가 비로소 적응을 해도 다시 제도가 바뀐다는 것”이라며 “제도를 설계할 때 불평등 요소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도 변화 논의의 중심은 ‘유불리’가 아니라 ‘양질의 인재 선발’이 되어야 하는데 더 중차대한 논의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고 했다. 최재성 교수는 “정부가 지역별 격차를 면밀히 검토하고, 교육 환경 낙후 지역의 학생들에게 어떤 교육 서비스가 필요한지 조사해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2000년대 이후 끊임없이 계속된 ‘정시 대 수시’ 논쟁은 입시정책이 유불리 논리에 갇혀 공회전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윤 대통령은 정시 확대를 공약했다. 경향신문과 언더스코어는 정시와 수시도 유불리의 틀 안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지, 실제로 어느 계층이 정시를 선호하는지 ②편에서 살펴볼 예정이다.

※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경향신문과 언더스코어, 최재성 성균관대 교수 연구팀은 전국 학원수 상위 1500개동에 대한 데이터를 정리해 웹페이지로 제작했습니다. 각 동의 총 학원수, 과목별 학원수, 학원당 평균 교습비 등 사교육 현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 동네 사교육 현황, 직접 확인해봅시다.

확인하러 가기 ☞
https://edu-inequal.khan.co.kr/


통계청 전국사업체조사 데이터
분석 기간 : 2000~2019년 | 포함 정보 : 학원 시·군·구 정보, 등록된 학원업 분류기사에 활용한 분석 : 자치구별 학원 수 분석

교육부 나이스(NEIS) 학원·교습소 정보
분석 기간 : 2016년~2022년 10월 (서울 2015년~2022년 10월) | 포함 정보 : 학원 위치 정보, 개별 학원명, 각 학원 제공 프로그램 내용 기사에 활용한 분석 : 읍·면·동 학원 수 분석, 평균 교습비(국세청 총소득 데이터 병합), 코딩수업/논술수업/컨설팅·진학 분석, 서울 내 자치구별 영어·외국어 수업 비율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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