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사랑의 매’ 돌아오나

김나연 기자

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 위기

“지켜주세요” 서울학생인권조례지키기 공동대책위원회 소속 학생과 활동가들이 26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대책위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도를 규탄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권도현 기자

“지켜주세요” 서울학생인권조례지키기 공동대책위원회 소속 학생과 활동가들이 26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대책위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도를 규탄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권도현 기자

보수 종교 등 모인 시민단체
시의회에 폐지 청구서 제출
의석의 3분의 2가 국민의힘
본회의서 가결 가능성 높아

두발 자유, 체벌 금지 등 학생 인권 신장을 이끌어온 서울 학생인권조례가 26일로 공포된 지 11년을 맞았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날을 ‘학생인권의날’로 정하고 매년 기념식을 열고 있지만, 정작 학생인권조례는 ‘폐지’ 위기에 몰려 있다.

26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일부 보수 종교단체와 학부모단체 등으로 구성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 범시민연대’는 지난해 8월 서울시의회에 학생인권조례 폐지 청구를 냈다. 학생인권조례가 동성애와 왜곡된 성적 지향을 유도하고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등의 이유다. 이 청구가 서울시의회 심의를 통과해 본회의에서 가결되면 학생인권조례는 폐지된다. 서울시의회 의석 중 3분의 2를 국민의힘이 차지하고 있어 가결 가능성이 높다.

서울 학생인권조례는 2010년 당선된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주도해 전국에서 세 번째로 만들어졌다. 성별과 종교,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학생들을 차별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두발과 복장 규제, 체벌, 일괄적 소지품 검사 등을 금지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종교 과목 수강이나 종교행사 참여를 강요할 수 없도록 했고, 강제 야간자율학습이나 방과후 수업도 금지했다.

학생인권조례는 제정 과정은 물론 공포 이후에도 끊임없이 논란을 겪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2012년 1월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하자 이주호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학생인권조례는 학생 지도에서 학교별 재량권을 부여한 초·중등교육법에 위배된다”며 곽노현 당시 교육감에게 서울시의회에 재의를 요청하라고 지시했다. 교과부는 곽 교육감이 이를 따르지 않자 대법원에 무효확인 소송을, 헌법재판소에는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고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모두 서울시교육청의 손을 들어줬다.

2012년 당선된 보수 성향의 문용린 서울시교육감도 학생인권조례를 개정하려 했다. 2014년 문 교육감은 학교장이 복장 등을 규제할 수 있게 하고 소지품 검사를 가능하게 한 학생인권조례 개정안을 시의회에 제출했지만 통과되지 않았다.

빗나간 ‘사랑의 매’ 돌아오나

학생인권조례는 난관 속에서도 교육현장에 자리 잡았다. 서울학생인권센터가 지난해 학생인권조례 제정 10주년을 맞아 공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체벌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학생의 비율은 2015년 22.7%에서 2019년 6.3%로 줄었다. 2019년 기준으로 중학생 96.6%, 고등학생 92.5%가 학생생활규정에 두발 길이 자유가 허용돼 있다고 답했다. 2021년에는 조례에서 ‘학생들의 복장을 학칙으로 제한할 수 있다’는 조항이 삭제되면서 여학생 속옷 색깔까지 규제하던 일부 학교의 학칙이 모두 폐지됐다.

서울학생인권조례지키기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날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면 학생 인권침해를 구제할 수 있는 여러 기구가 없어지고 학생 자치와 인권교육, 소수자 차별 금지 조치도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A고등학교 허율군(18)은 “학생들은 규제와 탄압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를 짊어지고 나갈 미래세대”라고 말했다. 김성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장은 “교직 생활 초기까지만 해도 정기적으로 소지품 검사를 했다”며 “학생인권조례가 지난 11년간 학교를 많이 바꿔놓았는데 폐지를 거론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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