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교육 개혁 1년

고교 ‘다양화’라 쓰고 ‘서열화’라 읽는다

남지원 기자

① ‘고교다양화 시즌2’

지난해 3월18일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현판이 걸리면서 윤석열 정부가 닻을 올린 지 1년이 됐다. 정부는 임기 초부터 교육개혁을 ‘3대 개혁과제’의 하나로 내걸었지만 이를 구체화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첫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 지명된 김인철 후보자가 낙마했고, 박순애 전 장관이 만 5세 초등학교 입학을 추진하다가 전 국민적인 반발을 사 자리에서 물러나며 임기 초 반년이 흘렀다.

‘산업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교육부의 책무라고 보는 윤석열 대통령, 이명박 정부 시절 ‘자율과 경쟁’을 강조하며 공교육을 뒤흔들고 황폐화시켰던 이주호 장관이 주도할 교육개혁 방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유보통합과 초등 늘봄학교, 제2의 고교다양화와 교육의 디지털 전환, 대학의 자율성 확대와 권한 이양 등 우리 유·초·중등교육과 대학교육에까지 큰 영향을 미칠 교육정책들을 살펴보고 예상되는 문제점을 짚어봤다.


‘일반고 전환’ 전 정부 정책 폐기
영재고 신설 등 상위권 늘리고
일반고는 협약형 등으로 세분화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외국어고(외고) 존치를 포함한 고교체계 개편은 현 정부 출범 후 가장 급선회한 교육정책 중 하나다. 지난 정부는 자사고·외고·국제고를 2025년에 일괄 일반고로 전환할 계획이었고 이를 전제로 고교학점제 도입과 새 교육과정 등 주요 정책을 짰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자사고·외고·국제고 존치를 공식화했다. 여기에 더해 ‘지역 명문고 육성’을 위해 일반고를 더 세분화한다는 정책 방향을 잡은 상태다.

2000년대 이후 전국적으로 정착된 고교평준화 체제가 깨지고, 서울 고교서열화의 부작용이 전국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정착된 고등학교 체계는 이명박 정부 시절 교육과학기술부가 추진한 고교다양화300 정책에 뿌리를 둔다. 당시 대통령실 교육과학문화수석과 교과부 차관·장관을 연달아 지냈던 이주호 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고교다양화 정책의 설계자다. 당시 고등학교 체계가 특목고·자율고·일반계고·특성화고로 정비되면서 영재고를 필두로 과학고와 전국단위 자사고, 외고·국제고와 광역단위 자사고, 일반고, 특성화고로 이어지는 ‘고교서열’이 고착됐다. 이 부총리는 지난해 지명 후 인사청문회에서 “고교다양화 정책이 서열화로 이어지는 부작용이 있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의 고등학교 정책은 이 체계를 더욱 세분화하는 방식이다. 먼저 고교서열의 최정점에 있는 영재고가 2027년 광주·충북에 2곳 신설된다. 영재고 신설은 2016년 이후 11년 만이다. 상위권 문과생들이 선호하지만 최근 경쟁률이 하락 추세인 외고는 현 정부 들어서도 한때 폐지가 검토됐지만 논란 끝에 존치로 방향이 잡혔다. 고교서열 상위권 학교들의 배치 구조가 바뀌지 않거나 오히려 서열 상위권 학교가 늘어나는 것이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일반고 내 학교 유형의 세분화다. 정부는 혁신도시를 중심으로 ‘협약형 공립고’를 내년부터 시범운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학교·교육청·지자체가 협약을 맺고 그 범위 안에서 학교를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모델로, 주정부의 공적자금으로 운영되지만 사립학교 수준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미국의 ‘차터스쿨’을 본떴다. 공기업과 공공기관이 이전한 혁신도시에서 교육 문제로 인구가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역 내 일반고를 차등화해 명문고를 만들겠다는 발상이다. 공기업이 이전 지역 내에서 자사고를 추가로 설립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지역 공립 명문고’ 키우려다 ‘서열화 전국 확산’ 키울라

‘협약형 공립고’ 내년 시범
공적자금에 사립의 자율성
나주·부산 등 유치전 시작

한국전력공사가 있는 나주, 한국수력원자력 고리본부가 있고 산업은행이 이전할 예정인 부산 등은 이미 협약형 공립고 유치전을 시작한 상태다. 초·중·고교 설립과 운영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학생 선발과 교원 채용, 교과 구성 등 학교 운영 전반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교육자유특구 계획에도 전국 지자체들의 관심이 몰린다.

교육계에서는 ‘지역 공립 명문고’의 등장으로 과거 서울에서 나타났던 고교서열화의 부작용이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고교다양화300 정책으로 등장한 자사고는 정부 지원금을 받지 않는 대신 등록금을 일반고의 3배까지 받을 수 있게 하고, 교육과정과 선발 자율권을 부여해 다양한 교육을 추구하도록 하겠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상위권 중학생들을 선발해 입시와 연계된 과목 수업시수를 확대한 입시명문기관으로 변질됐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자사고로 ‘선발’되면서 선발되지 못한 학생들이 진학한 주변 일반고는 슬럼화됐다. 전체 자사고 49곳 중 25곳이 몰렸던 서울에 이런 현상이 가장 뚜렷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을 지낸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는 “1974년 시작돼 2000년대 초반 전국에 정착된 고교평준화 시스템을 해체할 수 있는 퇴행적 정책”이라고 말했다. 성 교수는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소수에게는 양질의 교육이 보장되지만 나머지 다수는 소외감과 열등감을 갖도록 하는 구도는 보편교육 단계에서 굉장히 부적절한 방식”이라며 “명문학교 1~2곳을 살리기 위해 나머지 학교를 비선호학교로 만들 경우 교육을 통한 사회평등에 대한 기대, 교육기회의 평등한 보장 등의 가치가 위험해진다”고 말했다.

‘자사고 폐해’처럼 쏠림 현상
주변 일반고 슬럼화 불 보듯
“사교육비 폭등 요인으로”

‘고교서열의 세분화’는 고등학교 이전 단계의 사교육을 부채질한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자사고·외고 존치가 확정되면서 올해 통계청의 사교육비 조사에서 자사고를 지망하는 초·중생 사교육비는 1인당 월평균 61만4000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14.6% 증가했다. 일반고 지망 학생의 사교육비(36만1000원)보다 규모도 크고 증가율(11.8%)도 더 가팔랐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영재고 신설과 고교서열화 존치, 일반고 다양화 등 사교육 유발요인들이 제어되지 않고 있어 학원비 인상률이나 물가 상승률에 비해 사교육비가 폭등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사고·외고의 일반고 전환을 전제로 짜인 기존 교육정책과 고교서열 세분화 기조가 충돌하면서 부작용이 더 커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말 확정된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외고와 국제고 폐지를 전제로 전문교과에 편성됐던 교과목이 보통교과로 흡수되거나 사라졌는데, 외고 존치로 인해 앞으로 교육과정을 재개정해야 하는 엇박자가 생겼다. 2025년 도입되는 고교학점제의 핵심요소인 절대평가가 고교서열 체계와 결합하면 자사고·외고 쏠림에 가속도가 붙을 수 있다.

[윤석열 정부 교육 개혁 1년] 고교 ‘다양화’라 쓰고 ‘서열화’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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