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교육청이 최근 소멸위기 지역인 군위군을 대상으로 이른바 ‘거점학교’를 육성하겠다는 구상을 밝히면서 지역 사회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폐교 위기에 몰린 작은 학교의 학생들을 한데 모아 가르치겠다는 구상이지만, 소규모 학교 통·폐합과 지역 소멸 가속화 등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10일 대구교육청에 따르면 군위교육지원청은 지난 7일부터 지역 초등학교 8곳을 대상으로 통학구역조정을 허용했다. 군위지원청은 지난달 12일 행정예고를 통해 “학생 학습권 보장과 배움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취지를 밝혔다.
이번 통학구역조정은 주소지를 이전하지 않고 학교를 옮길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이에따라 지역 초등학생은 현재 다니는 학교와 상관없이 7일부터 군위에서 가장 큰 군위초에 다닐 수 있게 됐다.
소멸위기지역에서 ‘큰 학교’만 키워보겠다는 대구교육청의 실험은 지난 8월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군위지역에서 규모가 가장 큰 군위초·중·고교를 각각 거점학교로 육성해 소규모 학교 통학구역 조정을 추진하는 것이다.
대구교육청에 따르면 군위지역에는 현재 14개 학교가 있다. 초등학교 8곳과 중학교 5곳, 고등학교 1곳이다. 군위초·중·고교를 뺀 나머지 11곳이 학생 수 40명 미만으로, 가장 적은 곳은 3명에 불과하다.
소규모 학교의 경우 다양한 선택 교육과정과 방과후 학교 운영이 힘들고, 또래 집단이 없어 사회·정서적 성장을 위한 교육에도 어려움이 있다는 게 대구교육청의 판단이다. 이에 거점학교에서 학생 간 협력학습과 창의적 체험활동 등을 통해 학생별 맞춤 교육이 가능하도록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거점학교로 육성되는 군위초·중·고에는 특별실을 증축하는 등 교육환경 시설을 개선하고 특색 있는 프로그램 운영, 돌봄시스템 등을 구축한다. 통학거리가 먼 학생에게는 통학택시를, 또 중학교에는 기숙사 확대 운영 등의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대구교육청은 군위군의 대구광역시 편입(2023년 7월) 논의가 나오던 시점부터 이 지역의 교육 수요에 맞는 방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거점학교 운영 및 통학구역 조정과 관련한 밑그림을 그린 뒤에는 군위군과 지역 의회, 군위교육지원청, 각 학교장, 학교운영위원장 등과 협의를 벌였다.
강은희 대구시교육감은 지난달 6일 군위지역 학부모 등 150여명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거점학교 운영의 필요성과 추진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대구교육청은 거점학교 운영으로 비게 되는 다른 학교도 일단 유지할 방침이다.
가령 A학교에 다니던 초등생이 모두 군위초로 옮기면 A학교는 ‘휴교’ 조치된다는 것이다. 대구교육청 관계자는 “현재 군위의 초등학교들이 통·폐합 기준(60명 이하)을 충족하지만 당장 없애지는 않겠다는 게 교육청의 입장”이라면서 “앞으로 (추진 중인)거점학교 운영 등에 따라 인구 유입 등의 변화가 있다면, 다른 학교를 추가로 거점학교로 지정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군위 지역 학부모들은 거점학교가 탄생하고 공동통학구역이 지정되면 결국 소규모 학교 통·폐합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현실적으로 휴교 조치된 학교가 다시 개교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초등학생 자녀 셋을 둔 문기환씨는 “거점학교 육성 정책은 결국 작은학교를 없애겠다는 것”이라면서 “지역에서 학교를 하나 없애는 건 결코 쉽게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 차원에서 작은학교를 살리는 정책을 펼치고선 이제와서 소규모학교를 없애는데 혈안이 돼 있는 것 같다”며 “대구로 편입된 군위지역의 학부모들이 마치 새로운 정책의 실험대상이 된 채 무시당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대구교육청이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중요 정책을 발표하고 밀어붙이는 움직임에도 불만도 크다. 현재 전교조 대구지부와 정의당 대구시당 등은 ‘군위 작은 학교 살리기 공동대책위’를 조직해 반발하고 있다.
전교조 등은 거점학교 운영은 인구소멸 위기 지역의 인구 공동화를 심화시키고 지역 소멸을 가속화시키는 위험한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통학구역 조정 이후 일정 학생 수 이상이 군위읍으로 옮겨가게 되면 학교 운영과 존립 자체에 심각한 영향을 받게 된다는 입장이다.
김봉석 전교조 대구지부 정책실장은 “거점학교로의 통학구역 조정에 따라 통학거리가 왕복 2시간까지 길어지는 경우가 발생한다”면서 “특히 장애가 있는 학생의 통학이라든지 위급 시 부모가 학교로 찾아가기 힘든 상황이 벌어지는 등 문제점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은학교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양질의 교육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지원책 마련이 더 시급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