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송란희 여성의전화 공동대표가 여성폭력 피해자들을 만나온 시간이다. 2003년 여성의전화 인권운동국에서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정당방위’ 인정을 돕던 신입 활동가는 2022년 이 단체의 대표로 피해자 곁을 지키고 있다. 돌아보면 “많은 것이 바뀌었다” 말할 수도 있겠지만, 변화는 언제나 애가 탈 정도로 더디게 찾아왔다.
지난해 10월 시행된 스토킹처벌법은 그렇게 찾아온 변화 중 하나다. 송 대표는 “얼마나 법을 안 만들어줬는지 동냥젖 먹여가며 만들었다고 우스갯소리를 했을 정도”였다고 표현한다. 1999년 최초 발의부터 제정까지 22년. 활동가들은 법조문까지 직접 써가며 의원실 문을 수도 없이 두드렸다. 하지만 오래 기다린 정부안은 스토킹 범죄의 정의나 처벌 수위 면에서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법안의 실효성을 따져야 할 국회의원들은 “기자들도 우리한테 맨날 전화하는데 이것도 스토킹인가”라며 웃기 일쑤였다.
지난 21일은 스토킹 처벌법 시행 1년이 되는 날이었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이후 반짝했던 세간의 관심은 어느새 사그라들었다. 법원은 ‘도주 우려가 없다’며 구속 영장을 기각하고, 그렇게 풀려난 가해자들은 또다시 여자들을 위협하고 죽인다. 대책을 마련해야 할 정부는 여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여성가족부를 보건복지부 산하 ‘인구가족양성평등부’로 격하하겠다고 선언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무엇이 달라지긴 하는 걸까. 기대와 낙담을 수없이 반복했을 20년차 활동가의 대답이 궁금했다.
지난달 27일과 지난 17일, 송 대표를 두 차례에 걸쳐 인터뷰했다. 서울 은평구 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만났고 전화로 추가 인터뷰를 했다. 그는 “가장 큰 변화는 여성들의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이라며 “사회 구성원으로 역할을 하는 여성들의 생각이 달라지면 사회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스토킹 범죄 대책에 대해서는 “꼭 입법을 거치지 않더라도 현행 제도만으로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면서도 “모든 대책에서 실효성보다 중요한 건 일단 그것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들 ‘없었던 일’인듯 입을 닫고 있다”
-신당역 사건 직후 정부 기관과 국회는 앞다투어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한 달이 지난 지금, 이행 상황은 어떤가.
“뭘 한 것이 없으니 실효성을 논할 수도 없다. 당장 범정부종합대책도 나온 것이 없지 않나. 이런 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패턴은 매번 똑같았다. 경찰과 검찰이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입법으로 해결하겠다며 국회로 공을 돌린다. 그러고는 ‘국회 상황이 안 좋아서 만료되었습니다’ 하는 식이다. 신당역 사건도 고작 한 달밖에 안됐는데 다들 ‘없었던 일’인 것처럼 입을 닫고 있다.”
-스토킹처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스토킹처벌법에 문제가 있는 것은 맞지만, 신당역 사건은 ‘제도적 공백’ 때문에 생긴 것만은 아니었다. 지금 있는 제도만으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현행 형사소송법 70조2항은 법원이 구속 사유 심사 때 피해자 위해 우려를 고려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완전히 무시했다. 경찰도 피해자 신변보호 조치로서 구금·유치 등의 잠정조치를 적극적으로 사용했어야 하지만, 하나도 안 했다. 스토킹 범죄를 보는 경찰이나 법원 인식도 ‘좋아하는데 안 받아주니까 생긴 일’이라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6일 여성가족부 폐지를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발표했다. 스토킹 범죄를 예방하고 피해자 지원을 하는 주무 부처가 폐지될 위기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피해자와 가해자의 1:1 관계에서 일어나는 문제로 봐서는 절대 해결이 안된다는 게 한국을 포함한 국제 사회가 쌓아가고 있던 상식이다. 여가부 폐지는 이러한 흐름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가해자의 개인적 일탈로 취급하고, 가해자만 처벌하면 된다고 보는 것이다.”
여가부 폐지는 지난해 4월 ‘서울시장 선거’ 이후 본격화된 백래시 흐름의 정점에 있다. 이러한 움직임을 주도했던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해 11월 서울 중구 오피스텔에서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이 살해된 ‘김병찬 사건’ 때 젠더폭력 근절을 요구하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의 주장을 “페미니즘 선동”으로 규정했다.그는 ‘고유정 사건’을 언급하며 “여성 강력 범죄자도 있지만 이를 ‘남성폭력 사건’이라고 일반화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폈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이 ‘여성 혐오 사건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또 나왔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이 신당역 추모 공간을 찾아 “이 사건을 남녀 프레임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시작이었다.
“여가부장관이 아닌 보통 사람도 추모 공간에 가서 그런 이야기 안 한다. 그게 인간의 기본적인 예의다. 장관 개인의 생각이라 하더라도, 그 생각을 피해자가 살해당하는 사건마다 쫓아다니면서 하는 저의는 무엇이냐. 그런데 그 발언을 ‘젠더 이퀄리티 미니스트리’의 장관이 했다? 국제 사회 기준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여가부를 폐지하건 안 하건, 정부조직법상 장관 업무는 여성폭력 피해자 보호와 예방이다. 지금 장관이 그 역할을 다 하고 있나.”
-현 정부와 여당은 ‘여성폭력’이라는 규정 자체에 일관되게 반대한다.
“만약 신당역 사건을 ‘여성 혐오 범죄’라고 한다면 ‘가해자가 아니라 국가가 여성 혐오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여성들이 매일 죽어 나가는데도 가해자들을 처벌하지 않고 방치하는 그게 바로 여성 혐오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여성 강력 범죄자도 있고, 남성 피해자도 있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피해자의 절대다수가 여성이고, 가해자의 절대다수가 남성이라면 그 기전은 성별권력관계 불균형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2021년 ‘여성폭력 실태조사’가 처음 실시됐다. UN 기준에 맞춰 신체적 폭력, 성적 폭력, 정서적 폭력, 통제, 경제적 폭력으로 5가지 유형에 따라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여성 폭력 피해를 한번이라도 경험한 여성 비율은 전체의 34.9%에 달했다. 여성 3명 중 1명이 여성폭력 피해자인 셈이다. 모든 여성폭력 유형에서 가해자는 남성이 79.3%~95.9%로 다수였으며, ‘당시 배우자’인 경우가 가장 많았다.
송 대표는 “수많은 개별 사건들을 ‘여성폭력’으로 규정하고 대응해 온 데는 역사와 구조적 맥락이 있고, 이는 한국만의 흐름도 아니다. 설령 개별 케이스를 가져와 싸운다 한들, 여성 가해자가 저지른 사건 중 언론에 알려진 건 고작 두건이다. 남성 가해자들은 신상 공개를 아무리 많이 해도 너무 많아서 이름을 외울 수도 없다”며 “이것이야말로 선동”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인사들의 ‘망언’에 가려지긴 했지만 더불어민주당도 젠더폭력 대응에 소극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신당역 추모 공간을 방문하지 않았고, 공식 석상에서 관련 언급도 없었다.‘망언’으로 논란이 된 시의원의 징계 요구에 대해서만 3일 뒤 대변인 서면 브리핑을 통해 ‘엄중 경고’ 입장을 내놓은 것이 전부였다.
“저는 정치 지도자들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입법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선언도 필요하다. 이것은 심각한 범죄이다, 다시는 있어선 안 될 일이다, 책임을 통탄한다, 대책 마련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이 정도 발언을 하는데 굳이 ‘여성 혐오’라고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그마저도 지지율이 떨어질까 염려하며 안 하는 것이다. 이제 이런 발언을 안 하면 지지율이 떨어진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20년차 활동가가 스토킹 피해자에게 하고 싶은 말
-‘좋아하는데 안 받아주니 죽였다’는 스토킹 가해자들의 말은 상식 선에서 이해하기 어렵다. 스토킹 가해자들의 심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스토킹,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등 여성폭력 가해자의 가장 큰 특징은 상대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이렇게까지 사랑을 표현하는데 왜 만나주지 않냐’며 화를 내고, 상대방을 내 마음대로 하기 위해 위협하고 해칠 마음마저 먹는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상대를 평등하고 동등한 관계로 여기지 않는다. 그리고 가해자들의 이런 생각을 허용해주는 게 가부장적 사회다.”
-최근 스토킹을 수반한 살인 사건의 60% 이상이 계획범죄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스토킹이 살인 등 강력범죄로 발전하는 패턴이 있나.
“제가 자주 쓰는 표현이 있는데, 스토킹은 ‘스스로 창의적으로 진화하는 범죄’다. 여러 전조가 쌓여 점점 생명을 해하는 수준으로 가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언제 어떤 양상으로 발전할지는 가해자의 상상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보통은 ‘만나자’는 연락에서 시작해, 거부할수록 집착의 강도가 세진다. 그래도 본인 뜻을 달성하지 못하면 피해자의 약점을 잡아 협박을 시도한다. 약점이라 하면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게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것들, 성관계나 낙태 경험 같은 것들이다. 피해자가 소중히 생각하는 물건을 훼손하거나 반려동물, 자녀나 가족을 해하는 경우도 흔하다.”
-스토킹이 중단되는 경우는 없나.
“스토킹은 성별 권력 관계에서 발생한 문제이기 때문에, 자기보다 ‘강한 상대’가 나타나면 멈춘다. 제가 공권력 개입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경찰에 신고한다고 말하기만 해도 가는 경우도 있고, 신고해서 경찰 조사 받고 멈추는 경우도 있다. 가해자가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고, 이로 인해 잘릴 것 같다면 조금 더 빨리 멈춘다. 가해자도 자기가 잃을 게 얼마나 있는지 계산을 한다. 너무 찌질한 범죄고, 그래서 더 기가 막히는 거다.”
-전주환은 피해자의 고소로 형사처벌을 받게 된 데 앙심을 품고 살인을 결심했다고 진술했다. 보도를 본 피해자들이 경찰 신고를 주저하게 될까 우려된다.
“스토킹은 원래 신고율이 낮은 범죄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 전에 성폭력이고 가정폭력이고 제대로 처벌받아 온 역사가 없지 않나. 신고한다고 국가가 나를 보호해줄 것 같지도 않은데, 괜히 해코지만 당하는 것 아닌가 염려될 것이다. 그럼에도 일단 신고하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우리 사회가 참 무능력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럼에도 눈물 나는 죽음들을 수없이 겪으면서 좀 더 나아지는 역사를 갖게 되지 않았나. 신고는 지금 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다음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피해자들이 신고를 주저하는 데는 경찰에 대한 불신도 크다. 물리적인 피해가 없다는 이유로 ‘당장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을 들었다는 경험담이 많다.
“스토킹은 일어난 범죄이기도 하지만 일어날 범죄라는 특성이 있다. 물리적 위협 없이 연락하거나 지켜보는 것도, 그 자체가 범죄인 동시에 다른 범죄의 예비 단계인 것이다. ‘당하면 오라’는 말은 이러한 스토킹 범죄의 특성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만약 경찰이 이를 모른다면 바로 잡아야 한다. 혼자서 하기 어려우시면 여성의전화로 전화해달라. 경찰 조사 받는 게 떨리면 활동가들에게 같이 가달라고 하셔도 된다. 국가의 충분한 보호를 받는 것은 피해자의 당연한 권리다.”
-이 인터뷰를 보고 있을 피해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피해자들이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성의전화같은 센 언니들이 여러분들의 뒷배에 있다는 점을 기억해달라. 언론에 비친 여성단체들 문턱이 높아 보일 순 있다. ‘고작 이 정도로 전화해도 되나’ 싶을 수도 있다. 그런데 실제로 상담 전화하는 분들 보면 전혀 안 그렇다. ‘이거 신고할 만한 건인가요’ 물어보시는 경우도 많다. 피해 경력이나 수준으로 나누어 상담하는 것 아니니 편하게 문을 두드리시라. 문제가 생긴다면 그때그때 해결하면서 함께 가자.”
스토킹처벌법 제정 당시 상황은
-법무부가 반의사불벌죄 조항 폐지를 반대한 이유는 무엇인가.
“논리는 없었고 감정이 있었다고 본다. ‘이 법을 만들기 싫어서’라고 밖엔 생각하지 못하겠다. 2018년 법무부 스토킹처벌법제정위원회에 제정위원으로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대선 공약이라 어쩔 수 없이 이행은 하지만, 최소한으로 만들겠다는 기류를 계속 느꼈다. 반의사불벌죄를 비롯해 현행 스토킹처벌법의 문제점은 당시에 이미 다 지적이 됐던 것들이다. 하지만 법무부가 마련한 최초안에는 이러한 우려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국회를 통과한 법안도 이 최초안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
-반의사불벌죄가 왜 문제인가.
“그건 스토킹 가해자들에게 피해자 찾아가라는 안내 문구를 써놓은 것과 똑같다. 강간죄·강제추행죄 등 형법상 성범죄도 반의사불벌죄였다가, 가해자의 합의 강요 문제가 심각해 2013년 폐지됐다. ‘피해자가 용서해주면 해결되는 일’로 봐서는 이 문제 절대 해결 안 된다. 하물며 스토킹 범죄는 따라다녀서 괴로워 죽겠는데 거기서 ‘피해자에게 합의받아 오면 처벌 안 받는다’는 조항을 넣은 거다. 스토킹처벌법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조항이 들어간 거다.”
-여성의전화는 스토킹을 어떻게 정의하고 싶었나.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싶었다. 앞서 스토킹을 ‘스스로 진화하는 창의적 범죄’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나. 가해자가 어떤 방식으로 나올지는 법을 만드는 사람은 물론 경찰이나 활동가도 100% 예측을 못한다. 그래서 스토킹 행위를 규정한 조항 가장 아래에 ‘기타 이에 준하는 행위’라는 포괄 조항을 넣고 싶었는데, 잘 안됐다. 좋아한다고 계속 연락하는 것도 ‘스토킹’이냐고 하지만, 좋아한다고 연락하는 행위가 전부 불안과 공포로 다가오나? 단순히 어떤 행위이냐 뿐 아니라 그게 피해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까지 보자는 게 입법 취지다.”
-가해자 처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피해자 보호다. 여성가족부는 당시 어떤 역할을 했나.
“거의 역할이 없었다고 보면 된다. 법무부에서 스토킹처벌법을 만들기 시작할 때 여가부에서도 스토킹피해자보호법을 거의 비슷하게 냈어야 했다. 그런데 지난해 4월 처벌법 제정 때까지도 피해자보호법 정부안이 안 나온 상황이었다. 지난 4월에서야 국무회의에서 의결이 됐는데, 늦어도 너무 늦었다. 늦었으면 정교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나쁘게 말하면 30분 만에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기존 보호법을 짜깁기한 수준이었다.”
-스토킹피해자보호법 정부안에 포함됐어야 할 조항 중엔 어떤 것들이 있나.
“대표적인 게 피해자보호명령제도다. 경찰이 잠정조치를 하지 않은 경우,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다. 원래는 수사기관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 스토킹 범죄에 대한 담당 수사관의 인식이나 이해도에 따라 처리가 미흡할 수도 있지 않나. 그럴 때 피해자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하다.”
그래도 달라지고 있다. 계속 달라질 것이다.
-피해지원 단체 입장에서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1년을 어떻게 평가하나.
“일단 피해자분들이 신고를 많이 하시긴 한다. 지금 저희에게 필요한 것은 피해자분들이 이 법에 대한 효능감을 갖는 것이다. 잘 처리되는 케이스들이 누적되어야 수사사법기관 사람들도 경험치가 쌓이고, 피해자들도 이렇게 하면 보호를 받는다는 신뢰가 쌓일 텐데. 그런 케이스들이 많이 누적되길 바라는데 아직은 적다.”
-제도적인 어려움은 없나.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상담소에서 스토킹 피해자 의료 지원이나 법률 지원이 가능해졌다. 문제는 스토킹 피해자 지원을 위한 예산이 별도로 증액된 것이 아니라, 기존 젠더폭력 지원 예산(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을 스토킹 피해자를 위해서도 사용하게 한 것이다. 그 결과, 지금 돈이 없다. 의료비 지원 예산 다 떨어졌고 쉼터 입소자들 생계비도 없다는 말이 나온다. 전국 상담소들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후 한 달. 여성들은 지금도 목숨을 잃거나 잃을 고비를 넘긴다. 4차례 가정폭력 신고 후 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고 있었음에도, 길 한복판에서 남편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죽은 여성. 안동시청 주차장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직장 동료에게 살해당한 공무원 여성…. 패턴은 허망하리만큼 비슷하다.
-여성폭력 대책을 마련하라는 이야기를 20년 가까이 하고 있다. 되풀이되는 죽음을 보며 무력감을 느끼진 않나.
“일단 사람이 죽게 되면, 단체에서 오래 일한 사람으로서는 자괴감을 느낀다. 도대체 이 세상이 변하긴 변하나 싶을 때도 많고…. 그래도 저는 정말로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2003년에 여성의전화 들어왔는데, 그동안 대통령도 여러 번 바뀌었다. 여성 이슈가 완전히 죽은 적도 있었고, 전국적인 유행이 되기도 했었다. 그런 시절을 다 겪고 나서 보니,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여성들의 인식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들도 사회에서 각자 역할을 하는 구성원이다. 이들의 생각이 바뀌면 사회가 바뀌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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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지 기자 sharpsim@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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