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옷’ 승소한 신학생들, 목사 되는 길 ‘가시밭’

정희완 기자

징계무효 이어 손배소 이겼지만, ‘동성애 옹호’ 낙인에 목사고시 합격 등 취소

장로회신대 신학대학원 학생 서총명씨 등 학생들이 2018년 5월 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무지개색 옷을 맞춰 입고 채플에 참석했다. / 서총명씨 제공

장로회신대 신학대학원 학생 서총명씨 등 학생들이 2018년 5월 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무지개색 옷을 맞춰 입고 채플에 참석했다. / 서총명씨 제공

[주간경향] 한국 교회에서 ‘동성애 옹호자’로 한번 낙인찍히면 이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목회자가 되려는 학생들에겐 더 치명적이다. 이들은 성소수자 차별·혐오에 반대하는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부당한 징계를 받았다. 목사고시에 최종 합격하고도 이런 전력을 이유로 없던 일이 됐다. 한번의 낙인으로 목회자의 꿈조차 불투명해진 것이다. 학생들은 그럼에도 길을 잃지 않았다.

무지개옷 입고 채플 참석

2018년 5월 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아이다호 데이)’이었다. 장로회신대(장신대) 신학대학원에 재학 중인 서총명씨(당시 27세) 등 학생 6명은 각자 빨강·주황·노랑·초록·파랑·보라 등 무지개색 옷을 맞춰 입고 채플(예배 수업)에 참석했다. 예배 후에는 무지개 깃발을 들고 예배당 단상 중앙에서 사진을 찍었다. 서씨는 이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혐오에 반대한다는 취지의 퍼포먼스였다.

한 종교 매체가 이를 보도해 논란이 됐다. 그러자 학교는 서씨에게 정학 6개월, 나머지 3명에겐 근신의 징계를 내렸다. 봉사활동 100시간과 반성문 제출 등도 부과했다. 수업 방해, 학교 및 구성원의 명예훼손 등 4가지 사유였다.

이에 서씨 등 학생들은 징계가 부당하다며 징계무효 소송과 징계효력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법원은 2019년 5월 징계 사유로 볼 수 없다는 이유 등으로 본안 판결 전까지 징계효력을 정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해 7월 본안 재판에선 징계 절차에 문제가 있다며 징계 무효를 선고했다. 학교가 항소하지 않아 이 판결은 확정됐다.

학생들은 2020년 5월 학교의 부당한 징계로 학습권과 양심의 자유, 인격권이 침해됐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학교는 이들을 징계한 뒤 이 내용을 담은 소책자를 교단 총회 사무국에 제출했다. 학교의 이런 행위들로 인해 ‘동성애 옹호자’로 낙인이 찍혔다고 학생들은 주장했다. 2021년 10월 1심은 학교의 손을 들어줬다.

2심은 다르게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 10월 27일 학교가 징계권 남용 등의 불법행위로 학생들의 학습권과 양심의 자유 등을 침해했다고 봤다. 학생들의 정신적 고통 등 손해를 인정했다. 학교가 소책자를 배포해 학생들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켰다고 판시했다. 학교는 서씨에게 300만원, 다른 3명에겐 200만원씩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장로회신대 신학대학원 학생 서총명씨 등 학생들이 2018년 5월 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무지개색 옷을 맞춰 입고 채플에 참석했다. / 서총명씨 제공

장로회신대 신학대학원 학생 서총명씨 등 학생들이 2018년 5월 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무지개색 옷을 맞춰 입고 채플에 참석했다. / 서총명씨 제공

“돈이 아니라 사과를 원한다”

사건 발생 4년 만이다. 서씨는 그러나 “그렇게 기쁘지 않다”고 말했다. 학교로부터 사과나 최소한의 유감 표명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교는 징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서씨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은 돈 때문이 아니라 학교가 부당하고 위법한 징계를 인정하고 사과하길 바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낙인의 파장은 컸다. 서씨를 비롯한 학생들은 징계 뒤 교회 전도사직에서 사임했다. 특히 A씨는 2019년 7월 목사고시에서 합격하고도 최종 불합격 처리됐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의 자문기구인 ‘동성애대책위원회’가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A씨는 앞서 군종사관후보생(군종목사)으로도 선발된 이른바 ‘우수 자원’이었다. 군종사관후보생은 국방부가 신학대 1·2학년을 대상으로 시험을 통해 선발한다. 추후 장교 신분인 군종목사로 입대하게 된다. 군종목사는 군대 내 포교 등을 담당해 의미 있는 자리로 평가받기 때문에 교단 내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군종사관후보생은 다른 목사 지원생보다 목사 안수도 일찍 받을 수 있다. 이런 이점 때문에 경쟁률이 높다고 한다.

이후 A씨는 학교를 휴학했다. 군종사관후보생 자격도 취소돼 최근 일반 병사로 입대했다. 서씨는 “최소한 군종목사에 합격한 A씨만큼은 목사가 되는 데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라며 “징계무효 판결이 났지만 한번 찍힌 낙인이 계속 영향을 주는 것 같아 막막했다”고 말했다. 2019년 2학기에 복학한 서씨도 A씨의 불합격 소식을 접하고 한 학기 만에 휴학을 결정했다. 그는 “인생 계획이 모두 틀어졌다”고 했다.

학생들은 손해배상 소송 2심 과정에서 학교가 제출한 자료를 보고 한 번 더 상처를 받았다. 학교 측은 학생들이 징계사건 이후에 학교생활을 무리 없이 잘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학생들과의 교제 보고’라는 문건을 법원에 제출했다.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는 학생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였다.

이 문건은 B교수가 서씨 등 학생 4명과의 만남 내용을 정리해 학교에 보고한 것이다. B교수가 학생들과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고 어떤 대화를 했는지 상세히 적혀 있다. 학생들이 2019년 2학기 복학한 이후 학교 선배인 B교수가 다가왔다고 한다. 서씨는 “B교수가 밥을 사주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등 친근하게 대해줬다. 그래서 우리도 마음의 문을 열고 속마음을 털어놨다”라며 “B교수는 자신이 학교에서 보내서 왔다는 얘기를 하거나 학교에 보고해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상황이 안타까워 잘 챙겨주는 줄 알았는데 실은 관리를 한 것이었다”라며 “큰 충격을 받았다.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이라고 했다.

학생들을 대리한 ‘희망을 만드는 법’(공익인권 변호사 모임) 소속 박한희 변호사는 “과연 교육기관으로서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할 책무에 걸맞은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무지개옷’ 승소한 신학생들, 목사 되는 길 ‘가시밭’

목사가 꿈

서씨는 2019년 12월 뜻을 함께하는 학생들과 ‘무지개신학교’를 만들었다. 목사의 진로가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신학을 계속 공부할 방법을 모색한 결과다. 퀴어신학, 여성신학, 장애신학, 생태신학 등을 주제로 강연을 개최하고 친교 모임도 진행한다. 서씨는 “교단 내에서 다뤄지지 않은 이슈를 신학적으로 풀어보고 공부한다”라며 “사회가 요구하는 것들에 대해 한국 교회가 응답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러면 계속 사회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응답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서씨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계획을 세우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아직 목사의 길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는 “20년 이상을 교회 안에서 살아왔고 목회자를 꿈꿔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게 어렵다”며 “목회자를 꿈꾸며 살아가려고 한다. 세상이 언제 바뀔지 모르겠지만 잘 버텨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덧붙였다. “다시는 우리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피해는 우리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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