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꼴찌, 성별임금격차

(4) 저임금 업종에 몰려 있는 여성

OECD 국가 대부분 여성 고용률 50대 이후 하락

한국만 30대에 크게 추락 후 40대 다시 상승

돌봄·육아를 여성의 일로 치부하는 사회

재취업 선택지는 ‘저임금 단순 일자리’뿐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매우 커 OECD에 가입한 원년인 1996년부터 27년째 ‘꼴찌’다. 2021년 기준 성별임금격차는 31.1%로 남성이 100만원을 받을 때 여성은 68만9000원을 받는다. 두번째로 격차가 나는 일본에 비해서도 10%포인트 내외의 큰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경향신문 특별기획팀은 성별임금격차의 원인을 데이터로 뜯어보고자 했다. 4회는 ‘저임금에 머무른 여성노동자’ 실상과 ‘경력단절 이후 저임금이 되는 구조’를 들여다봤다.


[‘27년 꼴찌’ 성별임금격차]30대 여성 고용률 추락 부르는 ‘경력단절’, 한국이 최악

김지영씨(41·가명)는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2005년 12월 처음 외국계 유통 기업에 취직했다. 김씨는 이 기업에서 5년 6개월, 외국계 의류회사에서 5년 6개월, 외국계 에이전트에서 3년여를 합쳐 14년간 회사 생활을 했지만 2021년 퇴사를 결정했다. 코로나19가 심각해지면서 학교를 못 가게 된 9세 딸을 돌볼 방법을 찾지 못해서다. 재택근무를 하기도 했지만 일과 육아가 한꺼번에 김씨를 짓누르자 ‘퇴사’밖에 답이 없었다. 직책 ‘부장’, 연봉 8000만원이던 ‘회사원 명함’을 포기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아이를 낳고서는 늘 ‘위기’였다. 출산 직후에는 친정에 아이를 보내 5세까지 키워 ‘1차 위기’를 넘었고 저녁까지 돌봐주는 전일제 유치원이 당첨돼 ‘2차 위기’를 넘었지만 코로나19는 넘지 못했다. 현재 김씨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창업을 준비 중이다. 그는 “카페도 레드오션이라 창업이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막막하다”고 말했다. 남편이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그 일자리도 언젠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걸 안다. “남편이 일을 못하게 되면 식당 알바라도 해야죠. 다시 사무직이 되기에는 나이가 많으니까요.”

“여성의 30대 경력단절, 한국이 유독 많아”

2021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38개국)의 여성 연령별 고용률 분석을 보면 30대 고용률이 추락하는 ‘M자형’ 그래프가 한국에서 도드라진다. 25~29세 70.9%이던 한국의 여성 고용률이 35~39세가 되면 57.5%까지 13.4%포인트나 급락하기 때문이다. 성별임금격차가 한국에 이어 꼴찌에서 두번째인 일본도 35~39세 여성 고용률이 75.8%로 25~29세(83.6%)에 비해 하락하지만 한국에 비하면 미미하다. 대부분의 OECD 국가 여성 고용률은 20대부터 30대, 40대까지 계속 상승하다 50대 이후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한국만 30대에 크게 하락했다가 40대에 다시 상승하는 모습을 보인다.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만큼 여성의 ‘경력단절 현상’이 많은 나라는 없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25~29세 여성 고용률은 OECD 평균(67.7%)보다 3.1%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나지만 35~39세 여성 고용률(57.5%)은 OECD 평균(68.9%)보다 11.4%포인트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돌봄과 육아에 대한 국가적 인프라가 부족하고 노동시간이 긴 데다, 돌봄과 육아를 여성의 일로 규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30대 여성 고용률에 직격탄이 된다. 김 위원은 “여성이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분위기에서 30대 여성들의 경력단절은 당연시되고 이에 따른 고용률 급락은 필연적”이라고 말했다.

OECD에 가입한 38개국의 연령별 여성 고용률 그래프. 노란색으로 표시된 한국만 30대 고용률이 추락하는 ‘M자형’ 모습을 보인다. 회색으로 표시된 대부분의 국가들과 미국, 캐나다, 독일, 칠레, 일본 등에서는 한국과 같은 M자형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박채움 기자

OECD에 가입한 38개국의 연령별 여성 고용률 그래프. 노란색으로 표시된 한국만 30대 고용률이 추락하는 ‘M자형’ 모습을 보인다. 회색으로 표시된 대부분의 국가들과 미국, 캐나다, 독일, 칠레, 일본 등에서는 한국과 같은 M자형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박채움 기자

경력단절 여성 규모 줄었다? 실업 상태 길어져

지난해 11월 통계청은 기혼여성 중 경력단절여성(결혼, 임신 및 출산, 육아, 자녀교육, 가족 돌봄 사유로 직장을 그만둔 여성)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4월 기준 경력단절여성은 139만7000명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5만1000명이 줄었다. 경력 단절 여성 수는 2017년 183만1000명에서 2018년 184만7000명으로 늘어난 후 4년 연속 감소 추세를 보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15~54세 여성 인구가 줄어들고 있고 결혼, 출산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현상과 이어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 김난주 위원이 통계청 지역별고용조사 데이터를 분석해본 결과 경력단절여성의 경력단절 기간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경력단절 여성의 경력단절기간은 8.9년으로 전년(8.4년)대비 0.5년 상승했고 지난해에는 9.1년으로 상승해 9년을 처음 넘어섰다. 경력단절여성의 실업 상태가 길어지고 있다는 뜻으로 노동시장에 다시 진입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여성이 재취업할 때 회사에 입사하기보다 창업이나 프리랜서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 기업은 노동시간이 길고 가족을 돌보는 시간을 인색하게 내어주기 때문에 재취업하려는 여성들 입장에서 전일제 취직이 불리한 선택이라 생각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국회입법조사처의 ‘코로나19 시기의 가족 돌봄-팬데믹 상황에서의 일·생활 균형의 조건과 과제’ 보고서를 보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여성 노동자들의 자녀 돌봄 시간은 주당 43.7시간, 남성 노동자들의 자녀 돌봄 시간은 주당 41시간이었지만 팬데믹 이후 여성 노동자들의 자녀 돌봄 시간은 63시간으로 증가했다. 남성 노동자의 자녀 돌봄 시간은 주 44시간으로 소폭 늘어 코로나19 이후 성별 격차가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경력단절되면 ‘저임금 업종·규모 작은 사업장’

20대에 좋은 일자리에 있던 여성도 일단 경력이 단절되면 재취업 시 ‘저임금 일자리’이나 ‘규모가 작은 사업장’으로 갈 확률이 높다. 김난주 위원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2022년 54세 이하 기혼 여성 임금 근로자 중 ‘일 중단 경험이 없는’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305만3000원이지만 ‘경력단절 사유’로 일을 중단한 경우 228만7000원으로 76만원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경력단절 사유’로 회사를 그만뒀다 재취업한 여성들은 계속 고용이 유지된 여성들에 비해 서비스 종사자, 판매 종사자, 단순 노무자 비중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재취업한 사업체의 규모도 작았다. 경력단절 이후 재취업한 경우 5인 미만 사업체 비중이 높고 300인 이상 종사 비중은 낮았는데 특히 300인 이상 종사 비중은 고용 유지가 가능했던 기혼여성에 비해 2배 이상 작았다. 김 위원은 “경력이 단절되면 다시 취업하기도 힘들지만 재취업한 경우에도 작은 규모 사업체, 저임금 업종에서 일하게 되는 것”이라며 “그동안 정부는 경력단절 이후 재취업을 돕는 것이 주요 목표였는데 그보다는 경력단절을 예방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경력단절 예방’을 주요 목표로 두기 시작했다. 2021년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 촉진법’이 13년만에 전면 개정되면서 ‘여성의 경제활동 촉진과 경력단절 예방법’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김 위원은 “과거 법은 여성의 경력단절이 어쩔수 없다고 전제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개정된 법은 여성이 경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기본 방향으로 설정했다”고 말했다. ‘여성경제활동법’은 경력단절 이후 사회 복귀를 지원하던 것에 나아가 경력단절을 예방하고 여성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법으로 범위가 확장됐다.

“여성의 경력단절의 결과, 비혼과 무자녀”

이 법의 핵심은 결혼, 출산, 육아만이 아니라 ‘근로조건’도 여성의 경력단절 사유로 인정한다는 점이다. 성별임금격차 등 불평등한 노동시장 구조도 여성의 경력단절로 이어지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한편 ‘경력단절’이라는 용어가 기혼 여성의 퇴직 사유로 통용되면서 ‘경단녀’가 사회적으로 낙인화됐고 결혼한 여성들이 일을 그만두는 것이 ‘정상 경로’처럼 여겨지면서 여성을 부수적 노동자로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는 문제의식도 더해졌다.

여성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회사를 그만두는 존재로 고착화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여성 노동력에 투자할 유인이 적어진다. 김 위원은 “‘경단녀’라는 용어를 통해 여성 노동력을 부차적으로 만드는 담론이 계속 만들어졌다”며 “이에 대해 2030 여성들이 ‘비혼’과 ‘무자녀’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저출생 현상이라는 결과”라고 말했다.

2002년 육아휴직급여를 유급화하면서 정부는 돌봄 지원 정책을 펴왔지만 정규직 중심이라는 한계가 컸고 절반에 달하는 비정규직 여성들을 지원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성경제활동법’을 통해 정부는 자영업자, 프리랜서 등 여성 노동자 전체를 포괄해 30대 여성들의 경력단절을 예방하겠다는 쪽으로 정책 목표를 바꿨다.

경력단절 이후 취업을 돕는 것이 주목적이었던 ‘여성새로일하기센터(새일센터)’도 경력단절 여성을 고용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계속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컨설팅하는 방향으로 확대했다. 2009년 운영을 시작한 새일센터는 전국에 159개가 있다. 김 위원은 “정부는 단시간,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을 여성경제활동법으로 포괄해 경력단절을 예방하겠다는 것”이라며 “성별임금격차 문제에서 여성의 경력단절 현상을 없애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임아영(소통·젠더데스크) 황경상·배문규·이수민·박채움(데이터저널리즘팀 다이브)
조형국(사회부) 이아름·유선희(플랫)

[‘27년 꼴찌’ 성별임금격차]30대 여성 고용률 추락 부르는 ‘경력단절’, 한국이 최악

📌[기획·연재]‘27년 꼴찌’ 성별임금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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