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5주년 여성의날 : 공간의 공포 - 홀로 일하는 여성들

“근로자성 인정 못 받고, 무급 노동 시달리는 골프장 내 최약체…그렇기에 더 뭉쳐야”

이유진 기자

③ 골프장 경기보조원

김유리 전국여성노동조합 조직국장(맨 오른쪽)과 드림파크CC 노조 간부들이 지난 14일 인천 서구 드림파크CC 노조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김유리 전국여성노동조합 조직국장(맨 오른쪽)과 드림파크CC 노조 간부들이 지난 14일 인천 서구 드림파크CC 노조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김유리 전국여성노조 조직국장이 말하는 ‘캐디 노조의 필요성’

“재입사 받아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그리고 이렇게 저를 밑바닥까지 망가뜨려주신 건 끝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2020년 9월 경기 파주시 한 골프장에서 일하던 캐디(경기보조원) 배모씨가 세상을 등졌다. 그는 ‘캡틴’으로 불리던 상사 A씨에게 심한 괴롭힘을 당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배씨에게 모든 캐디가 듣는 무전으로 “뛰어라. 뚱뚱해서 못 뛰는 거 아니잖아” “너 때문에 뒷사람들 전부 다 망쳤다” 등의 발언을 했다. 2020년 8월 배씨가 A씨의 괴롭힘을 알리는 글을 커뮤니티에 올렸으나, 배씨는 이 글로 인해 강제 탈퇴 처분을 받았다. 근무수칙과 출근표가 올라오는 커뮤니티에서의 ‘강퇴’는 사실상 해고였다.

배씨 사망 2년 만인 지난 2월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민사1부(재판장 전기흥)는 배씨 유족이 가해자 A씨와 소속 회사인 건국대 법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유족에게 약 1억7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특수고용노동자 신분인 캐디들
산재보험 의무화됐지만 유명무실
‘배토’ 등 업무시간 외 잡무도 많아

유족의 싸움이 길어진 배경에는 캐디 노동자의 불안정한 고용형태가 있다. 골프장 측은 배씨가 일종의 프리랜서인 ‘특수고용노동자(특고노동자)’여서 자신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노동청은 A씨의 괴롭힘은 인정하면서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2019년 7월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결국 유족은 민사소송을 택했다.

지난 14일 인천 드림파크CC 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김유리 전국여성노조 조직국장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더라도 직장 내 괴롭힘이 성립할 수 있음을 인정한 판결”이라면서도 “캐디 노동자의 근로자성은 인정받지 못한 절반의 승리”라고 했다. 재판부는 “경기보조 서비스의 상대방은 ‘캐디피’를 지급하는 이용객”이라고 했다. 대법원도 2014년 근로시간 규정 미비, 봉사료 지급, 구체적 지휘·감독이 없는 점 등을 이유로 캐디의 근로자성을 부정한 바 있다.

캐디들은 골프장에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로 계약을 맺고 건당 14만~15만원의 캐디피를 받는다. ‘산재적용 제외 신청’이 관행처럼 내려온 탓에 전치 4주 이상의 부상을 입어도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김 국장은 “2021년 7월부터 캐디를 포함한 특고노동자의 산업재해보험 가입이 의무화됐지만, 보험료 부담 등을 이유로 보험 가입을 하지 않은 사업장이 많다”고 했다.

‘배토’와 ‘당번제’ 등 무급 노동도 여전하다. 배토는 골프채로 잔디가 파인 부분을 모래로 메우는 보수 작업이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배토를 캐디의 근골격계 질환을 유발하는 유해·위험요인 중 하나로 분류할 만큼 고된 작업이다. 당번제는 대기실 청소나 잡무를 돌아가면서 맡는 것으로, 규칙 위반 시 ‘벌당’(벌로 서는 당번)을 서기도 한다. 골프장들은 캐디피에 배토와 당번 업무가 포함된다고 주장하지만, 캐디 노조는 업무 시간 외 무급 노동이라고 반박한다.

그나마 노조가 있는 소수 골프장
배치거부권·조기정년 철폐 등
단체협약 통해 처우 개선 이뤄

캐디의 처우 개선은 노조의 성장과 궤를 함께한다. 캐디의 노조 가입률이 90%에 이르는 드림파크CC의 경우 2020년 단체협약을 통해 ‘배치거부권’이라는 권리를 쟁취했다. 캐디를 상대로 폭언이나 성추행을 한 이력이 있는 고객이 배치될 경우 캐디가 거부할 수도 있도록 한 제도이다. ‘42세 조기정년’ 관행을 없앤 것도 노조다. 88CC 노조는 1999년 정년 연장을 요구하며 결성됐다. 일부 조합 간부들이 해고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2017년 단체협약에서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성과를 일궈냈다.

김 국장은 “전국 500여개 골프장에서 캐디 노조가 결성된 곳은 여성노조 산하 5개 분회뿐”이라며 “그나마도 공공기관 산하 골프장들로, 캐디의 노조 가입률은 10%도 채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캐디는 이해 관계자가 많은 골프장에서 최약체”라며 “노조가 있는 곳은 단체협약을 통해 처우 개선이 가능하다. 그렇기에 캐디들이 더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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