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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5) 평균만 맞추라는 ‘적극적고용개선조치(AA)’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매우 커 OECD에 가입한 원년인 1996년부터 27년째 ‘꼴찌’다. 2021년 기준 성별임금격차는 31.1%로 남성이 100만원을 받을 때 여성은 68만9000원을 받는다. 두번째로 격차가 나는 일본에 비해서도 10%포인트 내외의 큰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경향신문 특별기획팀은 성별임금격차의 원인을 데이터로 뜯어보고자 했다. 5회는 여성 고용률은 늘렸지만 성별 임금격차를 줄이지 못한 AA제도의 한계, 성별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한 대표적인 노력인 ‘성별 임금공시제도’에 대해 정리했다.


배를 만드는 조선소는 대표적인 ‘남초 직장’이다. 한국 조선업의 메카 거제의 흥망성쇠를 들여다본 양승훈 경남대 교수의 책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에선 중공업(조선소) 회사 안팎의 풍경을 전한다. 생산직의 99%는 남성이고, 사무직을 포함해도 남성 비율이 95%에 달한다. 남편은 회사 생활을 하고, 아내는 살림살이를 하는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이 일반적이다. 여성들을 위한 괜찮은 정규직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거제의 딸들’은 대학에 진학하는 스무 살쯤 대도시로 떠나 고향에서 결혼해 정착하지 않는 이상 돌아오지 않는다. 책에선 “기존의 중공업 가족보다 훨씬 더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형태의 공동체를 모색하며 내일을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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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계의 여성노동자 비율은 전 산업 최하위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2021년 적극적고용개선조치(Affirmative Action·AA) 남녀 근로자 및 임금 현황’ 자료를 보면 에서 조선업계 빅3 대기업의 여성 노동자 비율은 5%에도 못 미쳤다. 현대중공업은 여성노동자비율 4.5%이고 남성대비여성임금률(성별 임금격차)은 75.4%이며, 삼성중공업은 여성노동자비율 4.3%, 남성대비여성임금률 71.1%다. 대우조선해양은 여성노동자비율 3.7%, 남성대비여성임금률은 36.5%에 그쳤다. 이들 기업은 “남녀 성별에 따른 임금 차별은 없다”며 “업종 특성상 여성 근로자 수가 적은데다 여성은 출산·육아 등으로 근속연수가 적고, 낮은 직급에 집중되어 있어 급여 수준이 낮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일자리 젠더 불평등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정부는 2006년 여성 고용률을 높이고 고용상 성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고용개선조치(AA)’를 도입했다. AA 대상 사업장은 매년 직종별, 직급별 남녀 노동자 수와 임금 현황을 제출한다. 이 제도에 따라 여성 고용률과 여성 관리자율 둘 중 하나라도 동종업계 평균치의 70% 미만인 기업은 이를 개선하기 위한 시행계획서를 제출해 다시 평가받는다. 이 과정에서 3년 연속 기준에 미달하고, 개선 노력이 부족하다고 최종 판정되는 회사는 고용노동부가 ‘미이행 사업장’ 명단에 넣어 공개한다.

동종업계 평균의 70%라는 ‘면죄부’
실효성 없이 ‘하향평준화’를 야기
일정 수준 미만이면 기준 미달로 봐야

현재 AA 적용 대상 사업장은 근로자 500인 이상 민간기업(공시대상 기업집단 중 300인 이상 사업장 포함), 전체 공공기관 및 전체 지방공사·지방공단 등이다. 2021년 기준으로 2553개사다. AA 제도 도입 이후 17년이 지나는 동안 대상 사업장의 여성 노동자가 꾸준히 늘어나는 성과가 있었지만, 여전히 남녀 임금격차는 크다. AA는 공공기관과 대기업의 구체적인 남녀 고용 수치, 직급별 임금 격차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대상 사업장의 수치가 업종 평균 고용률·관리자율의 70%만 넘기면 절대적으로 여성 고용이 적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 허점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업종 평균 70% 기준이 하향평준화를 야기한다며 AA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제언한다.

기준 느슨한 ‘AA’…기업이 여성고용에 적극적일 이유가 없다[플랫]

기준이 느슨하다보니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여성 고용에 나설 이유가 없다. AA 부진 사업장 명단 공표가 도입된 2014년 ‘중공업’ 부문 1000인 이상 사업장의 여성 고용률은 7.48%, 여성 관리자율은 1.41%였고, 1000인 미만(500인 이상)의 경우 여성 고용률 10.65%, 여성 관리자율 1.80%였다. 7년 뒤에도 여성 고용률은 제자리걸음이다. 2021년 ‘중공업1(비금속광물·금속가공·기계·장비·자동차)’ 부문 1000인 이상 사업장 여성 고용률은 8.92%, 여성 관리자율은 2.32%이고 1000인 미만 사업장은 각각 10.15%·2.27%다. ‘중공업2(1차금속·운송장비)’ 부문 1000인 이상 사업장의 여성 고용률은 4.56%, 여성 관리자 비율은 1.15%이고, 1000인 미만 사업장은 각각 6.55%·2.16%로 큰 차이가 없다.

업종을 세분화하면서 기준이 더 약해졌다. 중공업을 여성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중공업1’과 여성 비율이 더 낮은 ‘중공업2’로 따로 분류하면서, 특히 제철·조선사들이 속한 ‘중공업2’ 부문은 고용 기준이 더욱 낮아졌다. 업종 평균 70% 기준을 적용하면 2021년 중공업2 부문 1000인 이상 사업장 여성근로자 고용기준은 3.19%, 여성관리자 고용기준은 0.81%, 1000인 미만 사업장의 여성근로자 고용기준은 4.58%, 여성관리자 고용기준은 1.51%로 내려간다. 개별 사업장이 이 낮은 수치만 각각 넘기면 AA 기준을 충족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결국 중공업2 부문 기업 중 근로자가 가장 많은 포스코는 전체 1만7682명 중 여성이 985명(5.57%)에 불과한데도 기준을 넘겼다.

여성 고용률이 뒤에서 두 번째인 ‘건설업’ 역시 2014년 여성 고용률이 8~9%였는데 2021년 ‘건설업2(전문 건설업)’ 부문은 1000인 이상 7.31%, 1000인 미만 8.61%으로 오히려 낮아졌다. 육체노동 의존도가 높은 자동차·철강·조선·건설업계에선 여성 노동자를 쓰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지만 자동화가 진행되면서 ‘근력’이 필요한 공정이 줄어들고 있다. 생산 현장 외에 경영지원이나 설계·디자인 등 업무 분야도 다양한데도 AA 도입 17년이 지나도록 여성 고용률이 한자릿수라면 기업의 의지가 부족하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AA 제도를 업종 평균 기준을 적용해 운영하면 여성 고용률이 낮은 곳은 계속 낮은 상태에 머물게 된다”며 “기업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별 사업장의 여성 고용률이 업종별 평균 70% 이상을 충족한다해도 절대 수치가 일정 수준 미만이면 미달로 평가하고 이행계획 제출 대상 기업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성차별’ 평판 두렵지 않은 기업들
임금과 근속연수 정보만 수집해
여성 인력 다각적 평가 못한 한계

AA 제도는 양적으로는 여성 고용을 늘리는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AA 대상 기업 전체 여성 고용률은 2006년 30.77%에서 2021년 37.78%, 여성관리자 비율은 2006년 10.22%에서 2021년 21.30%로 높아졌다. 제도가 즉각적인 효과를 보여준 해도 있다. 2018년 지방공사·지방공단이 이 제도에 포함되면서 2019년 처음으로 여성 관리자 비율이 0.8%포인트 감소(19.76%)했는데, 이듬해 20.92%로 반등해 2018년(20.56%) 수치를 넘어섰다. 지방공사·지방공단이 상대적으로 여성 고용을 적게 하다가 AA 제도 적용을 받게 되니 여성 고용에 신경을 쓰게됐다는 의미다.

기준 느슨한 ‘AA’…기업이 여성고용에 적극적일 이유가 없다[플랫]

2020년 국회 입법조사처 전윤정 입법조사관이 통계를 활용하여 시계열 추이를 분석한 ‘적극적 고용개선조치의 입법영향분석’ 보고서를 보면 이 제도가 전체적인 여성의 고용률, 관리자율이 높아지는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전 조사관은 “2010~2019년 여성 고용률보다 여성 관리자율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며 “여성 관리자 비율은 여성 근로자가 늘어나면서 덩달아 증가한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업종 평균 기준을 맞추려고 노력한 정책적 효과”라고 밝혔다.

하지만 한계도 명확하다. 현재는 임금과 근속연수 정보를 수집만 하고, 여성 인력 현황을 다각적으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 노동자들이 작은 규모 회사에 집중되어 있는데 AA 제도는 이런 여성들의 일터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2019년 기준으로 전체 여성 근로자 중 300인 이상 사업장에 속한 비율은 15.5%, 500인 이상 사업장은 11.7%에 불과했다. AA 적용 대상 사업장을 확대하고 임금 및 근속연수 성별 격차를 평가 지표에 추가할 필요성이 있다.

현실은 녹록치 않다. 근본적으로 AA는 기업 ‘자율’에 맡겨진 제도이기 때문이다. 사업주가 ‘실질적인’ 노력을 했다고 판단되면 공표 대상에서 빠지면서 실제 공표되는 사업장은 확 줄어든다. 해마다 70% 기준에 미달하여 시행계획을 제출하는 사업장은 1000여개지만 시행계획 평가 결과 부진할 경우 ‘이행촉구’ 등급을 받는 사업장은 300개 남짓으로 줄어들고, 최종 심의를 거쳐 ‘미이행 사업주’로 명단 공표되는 곳이 30여개다.

기업들로선 AA가 ‘그냥 귀찮은 제도’가 되어버렸다. 일자리 성평등이라는 제도의 목표 달성에는 열의가 없는 것이다. AA 제도 설계에 참여한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한국이 AA 제도를 벤치마킹한 미국에선 AA 보고서를 위한 컨설팅 시장이 형성될 정도로 기업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며 “국내에선 민간 기업 대상이라 자율에 맡겨야 했다”고 말했다. 이 차이는 무엇일까. 장 연구원은 “기업들이 성차별적 일자리라는 평판을 치명적인 문제로 받아들여야 행태도 바뀐다”며 “공시를 통해 모두가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했다. 성차별이 심각한 사업장 몇 곳만 ‘명단’을 공개해 주목도를 높이고, 미이행 기업 사업주에 대한 교육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제안된다.

기준 느슨한 ‘AA’…기업이 여성고용에 적극적일 이유가 없다[플랫]

일자리 성평등은 ‘사회적 책임’
성차별 심한 사업장 명단 공개 등
기업들 더 진지한 참여 이끌어야

2020년부터 남녀 임금과 근속연수가 제출자료에 포함되면서 새로운 이슈가 불거졌다. 임금 자료를 기업이 제출하다보니 숫자 오류나 오기 등으로 부적합한 비중이 높고, 기업이 가공한 수치다보니 신뢰성이 낮았던 것이다. 기업마다 인사 관리가 다르다보니 AA 제도상 관리자 범위를 어떻게 규정할지도 논란이다.

노동부는 지난해부터 개편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노동부는 “기업이 근로복지공단에 신고하는 고용산재보험료징수법상 보수총액자료로 제출하도록 바꿨다”고 밝혔다. 정부는 개편 후 더 많은 자료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윤수경 노동부 여성고용정책과장은 “고용보험료와 연계된 자료라 정확성이 높고 기업이 스스로 기입해서 발생하는 자료의 부정확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며 “기존에는 분석할 수 없었던 근속기간별 성별 격차, 연령대별 성별 격차 등도 분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수 자료에는 관리자 직급 정보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 ‘고용의 질’을 살펴볼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윤 과장은 “전문가 의견을 토대로 임금 분위별 성별 비율과 관리자 데이터를 보완하기로 했다”며 “구체적 내용은 올 상반기 중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경영계 화두인 ‘ESG 경영’에는 사회적 책임(Social)이 포함된다. 성평등한 일터를 만드는 일 역시 기업의 책무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국에서 흑인과 여성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기 위해 시작된 ‘적극적 개선조치(AA)’가 실제 기업의 다양성에 기여를 했다”며 “AA 제도는 기업을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인사 시스템에 문제가 없는지 스스로 돌아보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임아영(소통·젠더데스크) 황경상·배문규·이수민·박채움(데이터저널리즘팀 다이브)
조형국(사회부) 이아름·유선희(플랫)

▼ 배문규 기자 sobbell@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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