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차 농업에서 여성 농업인이 담당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여성들은 농업인으로서의 지위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농가 중심의 문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가 공고하기 때문이다.
2회에 걸쳐 성별 임금격차 감소를 위해 노력한 사례를 소개한다. 2회는 밭농사의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 횡성군 여성 농민들 이야기다.
‘남자 11~13만원, 여자 6~8만원.’
2020년 강원 횡성군에서 남녀가 받는 밭농사 일당은 5만원 차이가 났다. 밭농사는 대부분 여성이나 이주노동자 몫이었지만 남성이 5만원 더 받았다. “남자들은 연장 들고 일하니까 많이 받는다는 인식이 있는데 실제 밭농사 일은 차이가 없어요. 그냥 여자 일당을 적게 준 거예요.” 지난달 22일 횡성군 여성농업인종합지원센터에서 만난 한영미 센터장은 말했다.
2007년 농사를 시작한 김은숙씨(51)는 젊은 시절 서울에서 판매직으로 일할 때는 임금 차이가 없었는데 횡성에 와 농사를 시작하니 성별에 따라 임금 차이가 커서 놀랐다고 했다. 김씨는 “이제 힘 쓰는 일은 기계가 많이 하고 고추따기 같은 밭일은 여자들이 더 잘하는데 남자라고 일당을 많이 주는 게 부당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기계화율이 99%에 이르는 논농사와 달리, 63%에 머물러 있는 밭농사는 여전히 인력이 많이 투입된다. 논농사를 주로 했던 남성은 밭농사를 해도 여성보다 일당을 많이 받았다. 한 센터장은 “남성은 (밭농사) 노동시장에 많지 않은데도 지역 인식은 남성이 여성보다 일당이 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남성이 100이면 여성은 60 정도 받는다”고 말했다.
2021년 김이선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의 <농업·농촌의 변화와 성인지적 정책방향> 보고서를 보면 2019년 기준으로 농가 인구의 51.1%, 농업 종사자 중 49.7%가 여성으로 나타났다. 반면 자기 농업에 대한 전반적 책임을 갖고 경영을 총괄하는 경영주 중에는 여성이 18.7%에 불과했다. 김 위원은 “농업 인력으로서 여성의 비중에 비해 경영주 지위는 여전히 남성이 독점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여성 농민들은 농업인으로서의 지위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횡성군은 2021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농촌의 성차별을 해소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하기 위해 여성친화도시 사업으로 ‘횡성형 여성일자리 사업’을 시행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어떤 동력으로 성별 임금격차 해소에 나설 수 있었을까.
지역과 젠더 결합…‘젠더 거버넌스’ 3각 체계
2016년 처음 여성가족부 여성친화도시(여친도시)로 지정된 횡성군은 2021년 12월 같은 사업 2단계 도시가 됐다. 여친도시는 지역 정책 수립·집행 과정에 여성과 남성이 균형 있게 참여해 지역사회 활동 역량을 강화하고 돌봄과 안전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가부가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라 2009년부터 지정하기 시작했다.
횡성군이 2단계 도시로 진입하려면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젠더’ 정책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민연경 강원도여성가족연구원 연구위원은 2020년 <강원도 지역특성 기반 여성친화도시 시범사업 개발> 보고서에서 “2단계에서는 지역 특성을 반영해 여성의 사회·경제적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여성 농업인들이 가정과 사회에서의 입지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현장 전문가와 젠더 전문가, 공무원이 3각 체계로 움직이는 ‘젠더 거버넌스’가 중요했다. 횡성군은 2020년 6월부터 군에서 추진할 수 있는 젠더 이슈를 발굴하기 위한 간담회를 진행했다. 현장 전문가가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젠더 정책을 발굴하고 젠더 전문가들이 자문을 제공했다. 공무원들은 성인지적 정책 개선안을 도출할 수 있도록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현장 전문가였던 한 센터장, 젠더 전문가였던 유은주 원광디지털대학교 교수, 행정 담당이었던 박은정 횡성군 전 여성가족팀장(현 홍보팀장)은 모두 “젠더 거버넌스 3각 체계가 유기적으로 돌아갔던 것이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먼저 지역 주민의 수요 파악이 중요했다. 횡성군은 여성농업인단체협의회, 여성경제인(언니네텃밭), 여성친화도시 군민참여단, 여성귀농인·마을사업추진위원장, 여성이장·부녀회장 등 25개 기관 38명을 대상으로 집단심층면접(포커스그룹 인터뷰·FGI)를 진행했다. 유 교수는 “‘농업이 어떻게 하면 여성에게 매력적인 직업이 될 수 있을까’가 주된 고민이었다”라고 말했다.
농촌은 전통적으로 가부장 성향이 강하다. 농촌에선 새마을 운동 시절의 잔재로 여전히 ‘여성회’가 아니라 ‘부녀회’라고 부른다. 남자가 돈을 벌어오고 여자가 살림하는 구조에서 여성 농민은 노동자가 아닌 ‘농가의 주부’로 인식되니 ‘무급 가족 종사자’로 남게 된다. 한 센터장은 “여성 농민의 법적 지위 보장을 위해 30년 가까이 투쟁해오고 있는데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라면서 “농업이 지속가능하려면 여성 농민들이 지역 사회에서 살 만하도록 불평등한 지점들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FGI에서 여성 농업인 맞춤형 농업 기술·농기계 사용 교육, 성평등 마을 규약 만들기, 마을 사업에 여성의 동등한 참여권 확보 등 여러 의제가 발굴됐다. 특히 여성 농민들은 ‘성별 고정관념에 따른 임금격차’에 많은 불만을 토로했다. 한 센터장은 “남자들은 삽, 낫, 괭이 하나 더 들면 담배 피우고 왔다갔다 해도 일당을 더 받는다면서 약 오른다는 말도 나왔다”고 말했다. 간담회에선 농가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임금 차이를 줄이는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그러나 간담회 이후 성인지적 정책 개선안 실현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선 “문제의식에는 동의하나 현재로선 행정이 아닌 민간 시범사업으로 추진하는 게 필요하다”고 정리됐다. 횡성군이 직접 임금격차 해소 정책을 추진하기는 어렵다고 본 것이다.
“다들 그게 되겠냐고, 현실성 없다 했죠”
모두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 박은정 팀장은 군청 사업으로 추진 가능하다고 봤다. 오히려 박 팀장은 “행정 입장에서 그렇게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1997년 임용된 박 팀장은 9급부터 7급까지 승진할 때마다 여성팀에 배치돼 전문성을 쌓아왔다. 유 교수는 간담회 때 “박 팀장이 군에서 할 수 있다”고 했을 때 놀랐다고 했다. 그는 “행정의 그간의 관행으로 봤을 때 성별 임금격차 문제를 군에서 해소하는 방식은 ‘후순위 사업’이자 ‘안할 가능성이 높은 사업’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횡성군은 성별 임금격차 해소 사업을 ‘공공 일자리 사업’으로 끌어오는 방법을 구상해냈다. 박 팀장은 공공 일자리는 군이 최저시급(2020년 하루 8만원)을 지원하는 일자리인데 ‘시간 때우는 일자리’가 아니라 농가에 필요한 일을 제공한다면 의미가 커질 거라고 봤다. 그는 “공공 일자리 정책과 여성 일자리 정책을 결합시킨 것”이라며 “군 입장에선 도로변 풀을 뽑아도 8만원을 주고 농가에서 일해도 8만원을 주는 건데 성별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 봤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같은 일을 해도 여성의 노동력이 평가절하되는 것을 개선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당시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여서 공공 일자리를 확대하는 추세이기도 했다. 여성 임금을 남성 임금 13만원에 맞출 수 있도록 군이 공공 일자리 예산으로 8만원을 지원하고 농가가 5만원을 부담하는 구조였다. 농가는 여성 농민에게 주는 일당 3만원을 절약할 수 있고, 여성 농민은 일당이 전보다 5만원 상승하니 모두에게 ‘윈-윈’이었다.
박 팀장은 많은 우려가 있겠지만 설득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실제 농가들은 여성 임금이 높아지면 전체 인건비가 올라갈까 우려했다. 인건비를 절약하게 된 일부 농가만 이득을 보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차근차근 설득했다. 농민들이 고령화되고 있는데 지금 같은 임금 구조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고 격차를 줄이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팀장은 “일단 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시도해야 가능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21년 ‘횡성군 농업인 동일노동, 동일임금 시범사업’이 닻을 올렸다. 군은 2021년 예산 3432만원을 투입해 여성 농민 13명을 지원했다. 2022년에는 농민 1인당 지원 기간을 늘려 4477만원을 투입해 8명을 지원했다. 여성가족부 우수 사례로 선정됐고 다른 지자체들이 벤치마킹하고 싶어하는 ‘상징성 큰 사업’이 됐다.
참여자 호응 높았지만 ‘대농’ 중심 한계도
참여자 호응도 좋았다. 이귀자씨(54)는 2021년 사업 대상자로 선정돼 여성 인력을 썼다. 이씨는 “농번기에는 인력을 구하기가 힘든데 한 사람을 고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고 인건비를 군에서 일부 지원받을 수 있어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농민 입장에서도 돈을 많이 받을 수 있어 이득이었다. 이씨는 “우리집에 왔던 분은 다시 신청할 수 있으면 꼭 자신을 불러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공 일자리 사업으로 시작했기에 대상을 늘리기 힘들다는 한계가 있었다. 임금을 지원받는 농민은 소득과 재산 기준이 일정 수준 이하여야 했고, 실제 농가와 ‘연결’도 되어야 했다. 농가 수요만큼 ‘연결’하지 못한 이유다.
대규모 경작 농가(대농) 중심으로 지원되는 한계도 있었다. 실제로 이 정책이 “여성들의 지위가 올라간다는 점에서 좋다”고 생각했던 김은숙씨는 사업에 지원하지 못했다. 김씨가 하고 있는 농사는 규모가 작아 ‘주 5일 하루 8시간’ 해야 할 만큼의 일거리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대농들이 주로 혜택을 받는 구조가 됐다. 김씨는 “마을 당 여성 인력이 한 사람씩 연결돼 월요일에 우리집 일 해주고 화요일에 옆집 일해주는 식으로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소농들은 농번기 2~3개월만 일손이 필요한데 초창기 사업이었기 때문에 세부적인 요구까지 충족시키기엔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중단…“동일노동 동일임금 시도했다”
‘시범사업’은 올해 중단됐다. 공공 일자리 지원 사업을 넘어서 여성 일자리 사업으로 확장하는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2021년 참여했던 임현자씨(55)는 “여성 농민들은 공공 일자리 사업이 아닌 일자리 사업으로 확대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잘 안 됐다”면서 “농가에도 농민에도 도움이 되니 확대되길 바랐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여성 농민들이 좀 더 군의 정책에 지지를 보내야 했던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임씨는 “왜 여성 임금을 군에서 지원하느냐는 항의도 많고 군에서 동력이 부족했을 텐데 여성 농민들이 더욱 목소리를 높였어야 했다”고 말했다. 횡성군 관계자는 “여성들에게 단순하게 임금 지원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일자리를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이 없는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실제 임금격차를 줄인 것은 아니라는 한계도 지적된다. 유 교수는 “군 예산으로 성별 임금 격차를 잠시 보전하는 방식에 그쳤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상징성은 작지 않다. 그는 “농촌에서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시도했다는 상징성이 커서 타 시·군에 확산되길 바랐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종식 이후 횡성군 인력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외국인 노동자가 부족해 일당이 계속 올랐다가 지금은 12만원 선이다. 인력 부족으로 인해 성별 임금격차도 줄어들었다.
여가부에서 ‘여친도시’ 지정 외에 이렇다 할 지원이 없었던 것은 아쉬운 지점이다. 박 팀장은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만 중앙정부 예산 지원이 없으니 한계점이 있다”고 말했다.
“농촌서 ‘동일임금’ 얘기는 몇 천 년 만에 처음”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식 변화의 단초를 마련했다는 성과는 남았다. 뜯어보니 성별 임금격차가 생길 이유가 없었다는 게 드러났다. 여성들의 노동력이 평가절하 됐을 뿐이다. 박 팀장은 “농촌에서 동일 임금 얘기는 몇 천 년 만에 처음 한 것”이라면서 “여성들이 하는 일에 대해 평가절하된 부분이 어느 정도 정상 수치로 올라와야 하는데 이 얘기를 처음 꺼낸 것”이라고 말했다.
지자체 스스로 성별 고정관념을 환기하는 계기도 됐다. 박 팀장은 “군 내부에서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는데 성별 임금격차를 해소한다는 대의를 생각하자고 했다”면서 “단시간에 임금격차가 해소될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계란으로 바위 치는 일일 수 있지만 우선 치기라도 해야 조금씩 변화의 소리가 나지 않나”라며 “이러한 시도들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성별 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지자체가 움직였다는데 의미가 있다”면서 “공무원들이 타 시·도 자료 베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역 내 욕구를 적극적으로 읽어낸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성별 임금격차 해소는 농촌이 지속가능하기 위한 재생산 구조의 핵심에 닿아 있다. 한 센터장은 “농촌에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도 가부장적 문화, 잘못된 성별 인식에 불만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농업은 인구, 기후변화와 같이 지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빼놓을 수 없다”면서 “그렇지만 성평등 문화를 확산시키고 농촌의 현실을 우리 스스로 개선하지 않으면 재생산 구조를 만드는 건 요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 임아영 젠더데스크 layknt@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