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성 쓰려고? 굳이?”…이런 사회 균열내러 갑니다

임아영 젠더데스크

3월8일 세계여성의날, ‘성·본 변경 청구서’ 내러 법원 향하는 100여명

6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엄마 성 빛내기’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성·본 변경 청구서 작성 세미나 준비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mjw@kyunghyang.com

6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엄마 성 빛내기’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성·본 변경 청구서 작성 세미나 준비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mjw@kyunghyang.com

‘엄마 성 빛내기’ 프로젝트로 모인 137명의 다양한 사연들
“성·본은 여성이어서 가져보지 못한 권리…가부장제의 마지막 실낱”
‘아버지의 성과 다르지 않을 복리’가 곧 ‘자녀의 복리’인 법 넘어서야
90여명은 ‘즉시항고’ 뜻도…“손에 잡히는 희망 갖게 돼”

지난해 12월 플랫 입주자 프로젝트로 시작한 ‘엄마 성 빛내기’ 신청자는 최종 137명으로 집계됐다. 이 프로젝트는 어머니의 성·본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성평등을 근거로 법원에 성·본 변경 청구를 하는 프로젝트다. 기획자인 김준영 그림책 작가는 “엄마 성을 쓰는 것이 별나지 않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프로젝트 규모가 커지면서 성·본 변경 청구를 서울로 한정하지 않고 전국 법원을 통해 하기로 했다. 현재 신청자 중 100여명이 3월8일 세계 여성의날 전국 법원에 청구서를 제출하겠다고 의향을 밝혔다. 가족 설득이 더 필요해 다음번으로 청구를 미룬 경우도 있다.

6명의 법률자문단·13명의 조력팀

‘엄마 성 빛내기’ 프로젝트 기획자 김준영 그림책 작가(맨 위)와 김 작가의 어머니 김선경씨,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김산하씨. 문재원 기자 mjw@kyunghyang.com

‘엄마 성 빛내기’ 프로젝트 기획자 김준영 그림책 작가(맨 위)와 김 작가의 어머니 김선경씨,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김산하씨. 문재원 기자 mjw@kyunghyang.com

신청자가 많아지면서 원의림 변호사(법률사무소 의림) 외 5명의 변호사가 결합해 6명의 법률자문단이 꾸려졌다. 자문단은 성·본 변경 청구 절차에 대해 강의를 하고 청구서와 관련해 의견을 주는 방식으로 신청자들을 돕기로 했다. 자문단은 공익 목적으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프로젝트 규모가 커지면서 신청자들이 ‘조력팀’이 되어 힘을 보탰다. 자료집 편집, 굿즈 제작, 세미나 준비 등을 편집팀·홍보팀·굿즈팀·정보팀으로 일을 나눠 맡았다.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고민하며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김 작가는 자문변호사가 늘어 법률자문단이 되고 프로젝트를 도와주겠다는 조력팀이 13명이 되자 큰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늘 ‘엄마 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는 조심스럽게 해야 했는데 눈앞에 열심히 설득하지 않아도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분들이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성·본 변경 청구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법원에 제출하기 위한 청구서를 작성하고 소명 자료도 준비해야 한다. 자문단과 김 작가, 조력팀은 잠을 줄여 새벽까지 성·본 변경 청구에 필요한 절차 등을 정리한 자료집을 완성했다. 자료집에는 법원의 판단 근거, 소명 서류, 신청 방법 등의 내용이 담겼다.

“‘성·본’은 여성이라 가져보지 못한 권리”

신청자 사연은 다양했다. 김 작가는 “마음 아픈 가족사를 고백한 분들도 많아서 여러 마음을 담아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현재 신청자 중에는 이혼·재혼 가정도 제법 있다. 김 작가는 “성인의 경우에는 부모님이 이혼했거나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엄마 성을 쓰겠다는 청구가 기각되는 일이 적지 않다”며 “부성우선주의에 반대하는 취지에 대해 잘 작성해서 함께 청구하는 것이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산하씨(34)는 ‘이런 기획도 가능하다니’라는 호기심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혼인신고 때는 자신의 성을 물려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아이에게 자신의 성을 줄 수 없게 됐다. 산하씨는 올해 임신을 계획 중인데, 엄마 성을 물려받아 ‘오산하’가 되고 싶다. 엄마에게 오산하는 어떠냐고 물었더니 “아버지가 서운해하지 않을까”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해되면서도 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엄마들은 지금껏 섭섭하지 않았단 말인가.’

산하씨는 부성우선주의에 대해 크게 문제의식을 가져본 적 없었다. 전통이 만들어져온 과정이 있을 테니 그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다만 김 작가가 엄마 성을 쓰겠다고 하면 주변 친구들조차 ‘굳이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반응한다는 부분에 마음이 쓰였다. 부성우선주의에 ‘왜?’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굳이’라는 표현은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부성우선주의는 잘못이라는 생각이 이어졌다.

다른 신청자 김유원씨(36·가명)는 가부장적 사회 구조에서 성·본은 ‘태어나자마자 자연스럽게 얻는 기득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성·본’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져보지 못한 권리를 남성이라면 고민할 필요가 없이 갖고 있는 것”이라며 “호주제 폐지 후 ‘성’은 가부장제의 핵심이자 마지막 남은 실낱같은 것 아닐까”라고 말했다.

“부계 성은 남자의 역사…끊어내고 싶었다”

6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엄마 성 빛내기’ 프로젝트팀이 준비한 성·본 변경 청구서 작성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문재원 기자 mjw@kyunghyang.com

6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엄마 성 빛내기’ 프로젝트팀이 준비한 성·본 변경 청구서 작성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문재원 기자 mjw@kyunghyang.com

지난 6일 오후 7시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엄마 성 빛내기 프로젝트팀’은 성·본 변경 청구서를 작성하고 제출하는 방법에 대한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세미나에는 40여명이 참석했다. 서울 외 지역이거나 당일 시간이 안 되는 신청자들은 유튜브 비공개 계정에서 세미나를 볼 수 있도록 했다. 딸을 위해 먼저 자신의 어머니 성으로 성·본 변경을 시도했던 김 작가의 어머니 김선경씨는 “다들 제 아이를 비난하고 구석으로 몰아갈 것 같아 안타까웠는데 요즘 준영이는 자랑하려고 전화한다”며 “제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걱정한 것보다 훨씬 더 괜찮은 것 같아서 든든하다”고 말했다.

세미나에는 2020년 ‘엄마 성’으로 성·본 변경을 허가받은 배세정·세진 자매도 참석했다. 자매는 호주제 폐지 운동에 앞장서고 성평등을 실천해온 어머니의 의지를 이어받고 싶었다. 언니 세정씨는 “부계 성을 따르는 건 남자의 역사를 이어간다는 뜻으로 끊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부모님이 이혼했지만 청구할 때 가부장제를 뿌리 뽑고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이유를 중심으로 작성했다”며 “성인이 허가받았다는 점에서도 우리 자매 사례가 의미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자매는 이제 성을 바꾼 지 3년이 넘었다. 세정씨는 “법원이 미성년보다 성인의 성·본 변경을 까다롭게 보는 이유는 오랫동안 동일 성·본으로 여러 사회관계망을 형성해 사회적 혼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인데, 사람들은 생각보다 유연했고 ‘배세정’을 금방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법원의 결정 이후 자매는 은행, 통신사, 보험사 사이트에 하나씩 들어가서 성을 변경했다. 세진씨는 “하도 혼란이 있을 거라고 겁을 주길래 걱정했는데 전화 몇번 하고 마우스 클릭 몇번 하니 끝났다”고 말했다.

3월8일, 함께 법원으로 간다

법원은 성인이 엄마 성으로 바꾸는 일에 대해 ‘복리를 위한 성·본 변경의 필요가 적다’고 보고 있다. 김윤진 변호사는 “성인 청구인으로 인용된 것은 배세정·세진 자매 사례가 유일하고 자녀 성·본 변경 청구의 경우 성평등 사유로 인용된 사례는 2건 정도”라며 “법원의 인용률이 낮은데 ‘자의 복리’는 ‘아버지와 성이 다르지 않을 복리’와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자신의 복리를 위해 성평등에 대한 가치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서술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신청자들은 2월 한 달간 청구서를 작성하고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3월8일 세계 여성의날 전국 법원에 청구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당일 서울가정법원에는 50여명이 모여 함께 청구서를 낸다. 신청자가 늘면서 이제 프로젝트 목표는 ‘많은 사람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청구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돕자’가 됐다. 물론 법원의 인용 결정을 이끌어내는 것은 ‘당연한 목표’다. 법률자문단은 신청자들이 15일까지 청구서를 작성하면 2주 동안 청구서를 검토할 예정이다.

현재 청구서를 작성하겠다고 의견을 밝힌 100여명 중 90여명은 ‘즉시항고’도 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법원이 허가하지 않으면 다시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함께하면서 김 작가는 “추상적 희망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희망을 갖게 됐다”며 “백래시가 심해지는 사회를 보면서 세상이 얼마나 후퇴할지 비관적이었던 스스로를 바꾼 것도 큰 성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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