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 ‘여성 출산 도구화’ 역사…7년 전에도 “여성 ‘고스펙’ 줄여 저출생 해결”

김원진 기자

조세연 “조기 입학” 논란

2017년 보사연 보고서

‘하향결혼’ 유도 계획도

세종시의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전경. | 경향신문 자료사진

세종시의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전경. | 경향신문 자료사진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의 한 연구위원이 ‘여성의 조기입학’을 저출생 대책으로 내놓은 보고서가 논란이 되면서 7년 전 또 다른 국책연구기관의 저출생 보고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7년 전 보고서에는 ‘여성의 고스펙을 줄여 초혼 연령을 앞당기고 배우자 눈높이를 낮추자’는 제언이 담겼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은 2017년 2월 ‘결혼시장 측면에서 살펴본 연령계층별 결혼결정요인 분석’ 보고서를 냈다. 당시 원종욱 인구영향평가센터장(선임연구원)은 이 발표 보고서에 여성들의 불필요한 ‘고스펙’을 줄이면 초혼 연령을 앞당기고 동시에 배우자 눈높이도 낮출 수 있다는 주장을 담았다.

저자는 보고서에서 “초혼연령을 낮추는 것은 인적자본투자기간(스펙쌓기)을 줄이거나 남녀가 배우자를 찾는 기간을 줄이는 것”이라며 “고학력·고소득 여성이 소득과 학력 수준이 낮은 남성과도 결혼을 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면 유배우율(혼인상태에 있는 인구의 비율)을 상승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내용도 담겼다.

저자는 보고서에서 초혼연령을 낮추는 방법으로 이른바 ‘스펙’을 줄이는 방법을 제시했다. 보고서에는 “(결혼은) 개인의 합리적 선택으로 (개입이)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다”면서도 “채용 과정에서 채용 조건을 명확하게 하고 불필요한 스펙(휴학·연수·학위·자격증·언어능력)이 오히려 불리한 요건으로 작용한다면 일부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같은 주장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형태의 정책 제안에 가깝다. 휴학·연수 기간이 길거나 언어능력이 뛰어나다고 이력서에 적으면 정책적으로 패널티를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읽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또 보고서에서 여성들이 ‘하향결혼’을 피하지 않도록 문화 콘텐츠 개발을 할 필요도 있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보고서에서 “사회적 규범과 문화를 변화시키는 것은 단순한 홍보 차원을 넘어 거의 ‘백색음모’ 수준으로 철저하게 기획되고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7년 전 보사연 보고서가 여성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저출생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지난달 조세연 보고서와 유사하다. 두 보고서의 저자는 모두 경제학자이기도 하다. 이들의 분석은 주로 각종 데이터를 통해 원인을 분석해낸 뒤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저자들은 저출생 원인을 도출할 때 이용한 데이터에 담긴 배경이나 맥락은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데다, 손쉽게 정책 대안까지 제시해 논란을 부른 것으로 보인다.

올해 조세연의 정기 간행물 <재정포럼> 5월호에는 장우현 선임연구위원의 ‘생산가능인구 비중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정책 방향에 대한 제언’이 담겼다. 장 연구위원은 이성 교제를 성공시키기 위해 정부가 만남을 주선하거나 사교성을 개선해 주거나 자기 개발을 지원하는 방안을 예시로 들었다. 여성을 1년 조기 입학시키는 방안도 제시했다. 장 연구위원은 “남성의 발달 정도가 여성의 발달 정도보다 느리다”며 “여성들을 1년 조기 입학시키면 향후 적령기 남녀가 서로 매력을 더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 기관이 저출생 대책을 제시하며 여성의 자유나 인권은 도외시하고 여성을 ‘출산 도구화’한다는 비판은 끊이지 않고 있다.

2016년에는 행정안전부의 ‘출산지도’가 논란이 됐다. 행안부는 2016년 12월 ‘대한민국 출산지도’ 홈페이지를 공개하며 ‘가임기여성인구수’를 표기한 지도를 공개했다. 홈페이지에 공개된 전국 지도에서 각 지자체를 클릭하면, 해당 지자체에 가임 여성이 얼마나 거주하는지 1명 단위로까지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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