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예방·역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유근영 서울대 의대 교수가 정년퇴임을 앞두고 ‘암 정복의 여정’ 제하의 글을 경향신문에 보내왔다. 오는 8월말 33년간 교수로 재직하던 서울대 의대를 퇴직(동기들과 맞춰 1년 조기 퇴직)하는 유 교수는 의학연구방법론 및 의학통계의 개척자로 꼽힌다. 암 예방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며 역학과 예방의학의 학문적 승격에 기여했다. 특히 국제학회 및 단체들과 공조하며 국내 암 역학연구를 세계수준으로 이끈 공로 또한 높이 평가받는다. 그는 국립암센터 원장으로서 국가암관리사업을 지휘했으며, 국군수도병원장을 맡아 군의료 발전과 개혁에도 헌신했다. 암 종말론(100회), 암과 나(10회) 등을 경향신문 매체에 연재해 국민의 암에 대한 인식을 높였다. 자신의 인생과 국내 암 정복의 발전사를 담은 유 교수의 글을 경향신문 인터넷판에 5회 연재한다.
<5·끝>우리는 암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있는가?(2006년 국립암센터 원장~2011년 암발생 감소)
대학교수로서 30여 년을 투자한 상아탑에서의 연구결과를 사회에 환원시켜야 했다. 2006년 정부로부터 국립암센터 원장 제의가 들어왔다. 당시 필자는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주임교수이면서, 대학의 기획위원 및 인사위원, 그리고 대학원생과 연구비도 가장 많았던 관계로 교수로서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이었다.
국립암센터는 2001년 개원하여 박재갑 원장의 지도 아래 병원으로서의 골격은 다 갖추었지만, 정부의 시각은 달랐다. 한국인 사망원인 1위로 등극한 암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시작한 국가암관리사업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평가하는 전문기구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취임 직후 순환보직, 경영컨설팅, 평가제도개선, 인사제도 등 조직의 관리체계를 재정비하고 비전과 목표를 재설정했다. 연구중심의 암센터로 만들기 위해 암연구비 확충과 우수 연구원의 확보, 첨단 연구실험장비의 도입과 연구 인센티브제 도입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나가기 시작하였다. 최초의 국제암심포지엄도 이 시기에 시작되었다.
국립암센터의 임무 중 하나는 국가단위의 암 통계를 생산하는 것인데, 2003년 제정된 암관리법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모든 암환자에 관한 정보가 중앙암등록본부에 수집-관리되면서 국가단위의 암 발생률 통계가 생산되기 시작되었고, 이는 국제적으로 가장 신뢰성이 높은 양질의 통계로 인정받고 있다. 1999년 시작된 국가암조기검진사업이 조기암 발견에 큰 기여를 하고, 전 국민이 5대암 내지 6대암에 대한 검진을 받게 되었다.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하여 매년 생존여부를 확인하면서 생산되는 암생존율 역시 크게 향상되었는데, 국립암센터가 중심 역할을 하였다.
2007년에는 국립암센터 내에 4번째 건물인 국가암예방검진동 준공을 축하하는 행사를 마련하였다. 암검진업무는 물론 국가암관리사업단의 기획-평가-조정기능을 수행하는 조직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능률적이고 효율적인 정부 자문조직이 둥지를 튼 것이다. 대통령께서 축하 메시지를 친필서명으로 보내주시고, ‘암 예방시대의 개막’이라는 구호를 전면에 내세웠다. 암 예방과 관리를 본격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한편, 일반인들을 위한 ‘국민 암 예방 수칙’도 제정했다. 암센터 직원들과 국내 암 연구자의 사기진작을 위해 매년 3월 21일 ‘암예방의 날’을 제정하여 행사를 주관했으며, 이 날 국가암유공자를 포상하는 제도를 최초로 만들기도 하였다.
암 조기검진 사업의 결과로 암 생존율은 괄목할만한 수준까지 연장되었으나 위암·간암·폐암 등 암에 의한 사망자 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었으며, 암 환자는 매년 남자 1.6%, 여자 5.5%씩 발생이 증가하여 결국 암 유병자 수는 2011년에 이르러 100만명에 달하게 되었다. 정부로서는 의료비 상승 등 경제적 부담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정책적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암의 발생 자체를 감소시키는 것이었다. 2006년부터 시작된 ‘제2차 암정복10개년 계획’ 기간 중에는 주요 목표를 ‘암의 발생을 막자’는 예방으로 정한 것이다. 국내외에서 연구된 그간의 역학적 연구결과를 종합하여 한국인 암 발생에 관여하는 위험요인과 보호요인도 충분히 연구되고 있었다. 국립암센터 연구진과 합동으로 완성된 박수경·박보영 교수의 ‘한국인 유방암 예측모델’과 같은 연구논문이나 신해림 박사·박소희 교수 등의 ‘한국인 암의 기여위험도 추정’에 관한 연구, 그리고 전재관 교수 등의 ‘위암에 대한 국가암조기검진의 효율성 평가’와 같은 연구결과들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의 대표적 암예방의 업적으로 평가된다.
1971년 닉슨 대통령에 의해 ‘암과의 전쟁’이 선포된 이후 미국은 막대한 양의 연구비를 암 연구에 투자하였다. 이후 30여 년간 현재 항암제나 면역치료제 같은 암 치료법이나 MRI, CT, PET 같은 진단장비 그리고 방사선요법이나 양성자치료기 같은 고가의 첨단 치료장비가 이 시기에 개발되었다. 이제는 곧 암이 정복될 것같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국제암퇴치연맹(UICC) 회장인 카발리 박사 같은 사람은 “그건 착오였다” 라고 후회하고 있다. 암의 진단과 치료장비 개발에 따라 암 환자의 완치율이나 생존율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불행하게도 암의 발생 자체를 막지는 못하였다. 암이 생기지 않게 막지 못하면 암과의 전쟁에 이길 수 없다.
2007년 1월 초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미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암연구소(NCI-NIH)를 방문하였다. 1월 17일 미국인에서 암 사망자가 역사 이래 최초로 감소하였다는 뉴스를 보고 ‘이는 국가가 선포한 암과의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국립암연구소의 쾌거’라고 치하하기 위함이었다는 후문이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멈출것 같지 않던 암 환자 발생의 증가추세가 2011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암 발생율 감소가 201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야 나타날 것으로 전망하였으나 그해 처음 감소가 시작된 것이다. 국가 단위에서 보면 국가암관리사업이 진행됨에 따라 ‘생존율 증가시기-사망률 감소시기-발생률 감소시기’의 순서대로 이행이 이루어진다. 우리나라는 제2기 말에 속하는 ‘사망률 감소시기’로 평가되었으나, 2012년부터 제3기인 ‘발생률 감소시기’에 진입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국민에서 암의 발생이 역사상 처음으로 줄어들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은 온 국민의 칭송을 받을 일이면서 동시에 국가암관리사업에 헌신적으로 종사해 온 관계자 여러분의 노고를 크게 격려해 주어야 하는 부분이다. 국립암센터 국가암관리사업 관계자 여러분에게 감사와 존경을 드린다.
■유근영(柳槿永)교수 주요 약력
서울대 의대 졸업, 서울대 의대 기획실장·국립암센터 원장·국립암센터 발전기금 이사장·국군수도병원장·아시아코호트컨소시움(ACC) 공동의장·국제암퇴치연맹(UICC) 회원 및 한국대표·아태암예방기구(APOCP) 사무총장 및 회장·질병관리본부 NIH 코호트 포럼 공동대표·대한예방의학회 회장 등 역임, 한국과학기술 우수논문상·국립암센터 SCI저작상·대한암학회 사노피-아벤티스 학술상·홍조근정훈장(암예방의 날) 등.
■‘암정복의 여정’ 연재를 마치며
[박효순 기자] 국가암등록통계 최신 자료를 보면, 2012~2016년 사이 진단된 암 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은 70.6%로 2001~2005년 진단된 암 환자의 상대 생존율 54%보다 크게 높아졌다. 상대생존율은 암환자가 일반인과 비교해 5년간 생존할 확률을 말한다. 갑상선암(100.2%), 전립선암(93.9%), 유방암(92.7%) 순으로 높았고 간암(34.3%), 폐암(27.6%), 췌장암(11%)의 생존율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2001~2005년과 비교해 생존율이 10%포인트 이상 상승한 암종은 위암(18%), 간암(13.9%), 전립선암(13.5%), 폐암(11.1%)로 나타났다.
1999년 이후 우리나라에서 암 확진 후 치료 중이거나 완치된 누적 암 유병자수는 2016년 기준 약 174만명을 기록했다. 이는 우리나라 국민 전체의 3.4% 수준이다. 한국이 암 정복의 희망봉은 돌았지만 암 정복의 대장정은 여전히 멀다. 암 유병자와 사망자 수를 줄이려면 암 환자 발생률 자체를 낮추는 정책과 국민의 암예방 수칙 실천이 절실하다. 또한 암 유병자 200만 시대를 앞두고 ‘암 이후의 삶’에 대한 국가 사회적인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우리 시대의 ‘휴머니스트’ 유근영 교수의 기고에 감사하며, 정년퇴임 이후에도 건강과 행복이 늘 함께하길 기원드린다. 유 교수는 오는 9월부터 국립암센터에서 근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