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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브리핑] 백신 접종 후 월경 이상 호소하는 여성들


백신 맞고 월경 이상? 여성들의 불안은 과민반응이 아니다[플랫]

발열, 피로감, 접종 부위 통증, 부기, 발적….

코로나19 예방 접종 후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이상반응이다. 하지만 최근 질병관리청이 언급하지 않은 이상반응을 경험했다는 여성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백신 접종 후 평소보다 생리량이 늘거나, 생리 주기가 앞당겨지거나, 생리통이 심해졌다는 ‘월경 이상’ 증세다.

백신과 월경 이상의 인과관계는 아직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다. 다만 한국보다 먼저 백신 접종이 이루어진 해외에서는 갑작스러운 월경 패턴의 변화를 경험했다는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월경이 고통스럽거나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일시적인 증상인 만큼 백신 접종을 재고할 만큼의 ‘중대한 부작용’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성의 불안을 ‘과민 반응’이라고 넘기기 전 아직 물어야 할 질문이 남았다. 월경 이상은 애초에 질병관리청의 이상 반응 목록에서 빠져있었을까. 여성의 월경 주기는 왜 통증이나 발열처럼 중요한 건강 지표로 다뤄지지 못할까.

여성들은 모르니까 불안한 것이다



이새봄씨(27)는 6월 중순 마지막 생리가 끝나고 6월21일과 7월12일 총 2차에 걸쳐 화이자 백신을 맞았다. 평소 생리주기가 규칙적인 편이었는데, 백신 접종 후 첫 주기는 한 달을 건너뛰었다. 그 다음 주기엔 ‘오버나이트’ 생리대가 넘칠 정도로 생리량이 비정상적으로 늘었다. 2019년 다낭성난소증후군 판정을 받았던 이씨는 백신 접종 후 자궁부위 통증과 부정출혈이 다시 심해졌다고도 했다.

이씨는 “당시는 백신을 접종한 2030 여성이 많지 않았고 SNS를 많이 하지 않는 편이라 백신 후유증으로 월경 이상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몰랐다”며 “진작 알았다면 자궁 상태를 고려해 백신 접종을 조금 더 신중하게 했을 텐데 정보가 없어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박아름씨(30)는 화이자 1차 접종 2주 뒤 극심한 생리통을 경험했다. 평소엔 약을 먹으면 곧바로 괜찮아졌던 생리통이 아무리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다리가 붓고, 속이 메스꺼운 증상도 동반됐다. 출근도 못한 채로 3일을 꼬박 앓고 나서야 겨우 통증이 가셨다. 박씨는 “산부인과 의사에게 ‘백신 부작용일 수도 있냐’고 물었지만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여 답답했다”고 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백신 접종 후 예상치 못한 월경 변화가 나타났다는 여성들의 경험담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70대 어머니가 하혈을 했다” “생리가 2주 넘게 멈추지 않고 있다” 등 증세도 다양하다. 지난달 31일엔 “월경 이상을 코로나19 백신 부작용으로 신고할 수 있게 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라왔다.

그래픽 | 이아름 기자

그래픽 | 이아름 기자

이상 증상을 경험한 여성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개별 사례만으로는 월경 이상과 백신 접종과의 인과 관계가 입증될 수 없다. 현재까지 백신 접종 후 월경 이상의 ‘기전’(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을 밝힌 연구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없다. 사람마다 생리 패턴은 매우 다양하고, 생리를 하는 달마다 주기가 달라지는 것도 흔한 일이다.

하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불안감을 호소한다. 발열이나 근육통처럼 ‘예상 가능한’ 이상반응이 아니었던 데다, 백신때문이 아니라면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전혀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신 접종 후 부정출혈과 생리일 지연을 경험했다는 서유진씨(27·가명)는 “깜짝 놀라 검색해보니 스트레스를 받거나 컨디션이 안좋으면 생길 수 있는 일이라고 해 일단 한 달정도는 지켜보려 한다”면서도 “다른 여성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지만 병원에서 명확한 대처를 못해줬다는 내용을 보고 좌절감을 느꼈다”고 했다.

정부 “관련 사례 모니터링하겠다”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금까지 의약품안전관리원에 접수된 월경 관련 백신 부작용 신고는 18건 뿐이다. 하지만 백신 접종이 먼저 시작된 해외에서는 예상치 못한 월경 변화를 경험했다는 사례들도 조금씩 쌓이고 있다. 영국의 의약품ㆍ의료제품규제청(MHRA)에 따르면 지난달 18일까지 영국 여성에게 총 4600만회 접종이 이뤄졌고 이 가운데 생리일 연장ㆍ지연, 예상치 못한 질 출혈 등 월경 이상이 보고된 경우는 3만2455건이었다.

논란이 계속되자 한국 정부도 관련 사례를 모니터링을 하겠다고 밝혔다. 조은희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 안전접종관리반장은 1일 온라인 브리핑에서 “백신 접종 후 부정출혈 등 생리 이상 반응에 대한 국내 보고는 있으나 (백신과의) 인과성이 확실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면서도 “당국이 자료를 수집하고 신고해서 그에 대한 연관성, 인과관계가 있으면 이른 시일 내 안내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월경 이상은 이상 반응으로 신고할 수 없다’는 일각의 주장은 운영상의 실수에서 벌어진 ‘오해’라고 했다. 발열, 피로감 등 널리 알려진 부작용이 아니면 ‘기타’ 항목을 선택하고 주관식으로 서술해야 하는데, 홈페이지에 ‘기타’ 항목이 빠져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별도의 사전 안내 없이 ‘기타’ 항목으로만 신고를 받는 이상, 월경 이상에 대한 정확한 현황 파악은 불가능하다. 월경 이상이 얼마나 지속되어야 심각한 것인지 접종자가 자체 판단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발열의 경우 체온별로 보건소 보고가 필요한지 여부, 해열진통제의 적정 복용량과 간격, 이틀 이상 지속되는 경우 보건소를 찾으라는 대처 방법까지 자세히 안내하고 있다.

그래픽 | 이아름 기자

그래픽 | 이아름 기자

미국 CDC 움직인 14만 여성들의 증언



해외에서도 월경 이상이 처음부터 큰 문제로 다뤄졌던 것은 아니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지난 2월 백신 접종자 1300만명을 한 달간 추적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접종자의 78.7%가 두통이나 피로, 어지럼증 같은 부작용을 호소했다. 하지만 월경 이상을 호소한 이들은 없었다. 임상 실험 참여자들에게 월경 패턴 변화에 대한 질문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빈틈을 메운 것은 SNS에 쏟아진 여성들의 증언이었다. 미국 일리노이대 의료인류학과 교수인 케이트 클랜시는 지난 5월 모더나 1차 접종 이후 발생한 부정출혈 현상을 트위터에 올렸다. 이후 다섯 달간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여성들의 경험담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클랜시 교수는 여성 호르몬 관련 연구를 하던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소속 생물인류학자 캐서린 리와 함께 비슷한 사례를 모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모은 사례만 14만건이 넘었다.

클랜시와 리의 연구가 화제가 되자 당초 “월경 이상 조사 계획이 없다”던 CDC도 자체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백신 안전성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월경 관련 이상반응을 모니터링하겠다고도 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도 지난주 코로나 백신과 생리불순 간 상관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연구 프로젝트를 새롭게 시작했다.

두 학자들은 NPR과의 인터뷰에서 자신들을 “백신 찬성론자(pro-vaccine)”라고 규정했다. 14만건 사례 대부분은 1~3주기 안에 끝나는 단기적인 현상이었고, 코로나19 감염과의 위험성을 비교해도 백신을 맞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다만 이들은 월경 이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가 백신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음모론을 확산시켰고 지적했다.

산부인과 의사이자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젠 군터는 자신의 웹사이트 '바젠다'에 올린 글을 통해 “발열이 백신 부작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고 상상해보라”며 “당신은 전형적인 백신 접종 후 증상을 겪었을 뿐인데 ‘몸에 이상이 생겼다’고 걱정할 것이다. 생리불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생리 주기는 (발열과 달리) 연구할 가치가 없는 주제로 여겨지기 때문에 많은 데이터들을 놓쳐버리고 있다”고 했다.

18~49세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난달 26일 오전 광주 북구 백신 예방접종센터에서 한 여성이 화이자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연합뉴스

18~49세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난달 26일 오전 광주 북구 백신 예방접종센터에서 한 여성이 화이자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연합뉴스

월경이 ‘간과된 이상반응’이 된 이유



월경 이상이 ‘간과된 이상반응’이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코로나19 백신 개발 자체가 긴급하게 이루어졌다. 혈전증같이 생명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중대한 부작용’ 위주로 안전성 검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월경 주기나 양에 관한 질문을 따로 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월경 이상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왔다.

화이자 백신 개발 단계에서 제3자 데이터 모니터링 위원회에 참여했던 케이틀린 에드워드 벤더빌트 의대 교수는 NPR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여성들을 무시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 다만 당시에는 우리가 가져야 할 몇 가지 우선순위가 있었다”고 밝혔다. 여성의 월경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워낙 다양하고 변화를 느끼는 기준도 주관적이어서 연구가 쉽지 않은 측면도 있다.

하지만 기존 의료계가 남성을 ‘기본값’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여성 건강 논의에 소홀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클랜시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의 젠더 전문매체 '더 릴리'와의 인터뷰에서 “백신은 아주 오래전부터 남성에게만 테스트가 되어왔기 때문에 ‘당신은 생리 주기의 변화를 경험했습니까’같은 질문들은 아마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월경이 여성 건강의 지표로서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은 백신 접종 이전부터 있었다. 노동자 조사, 지역사회 건강 조사 등 그 어떤 정책 조사에도 ‘생리가 얼마나 규칙적인지’ 묻는 질문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백신이나 신약개발 연구에서도 여성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불임이나 난임, 혹은 유산을 유발할 수 있는지에 국한돼있다.

김새롬 시민건강연구소 젠더와건강연구센터장은 “기존의 여성 건강 연구는 저출산 대책의 관점에서 ‘가임력’의 유무에만 초점을 맞출 뿐 여성의 생리 경험이 어떤지엔 관심이 없었다”며 “이때문에 일하는 여성들이 자주 경험하는 다낭성난소증후군이나 생리 통증, 생리불순에 대한 연구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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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 연구 진전시킬 계기로 삼아야



월경 이상의 기전을 밝힌 공식적인 연구는 없지만, 몇 가지 가설은 존재한다. 현재 가장 유력한 것은 면역체계 이상이다. 백신은 우리 몸을 비롯한 면역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궁 내막에 있는 면역세포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경우 예상치 못한 질 출혈이나 생리통은 발열이나 근육통처럼 몸에서 항체가 생기는 과정에서 생기는 정상적인 면역반응으로 볼 수 있다.

윤정원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 전문의는 “월경은 호르몬의 영향이라고만 생각하지만 혈액응고인자, 혈류량, 미량원소, 자궁내막 등 굉장히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관여한다”며 “호르몬과 자궁내막이 안정적이어서 월경을 하지 않는 완경 여성 등에게도 출혈이 발생한 점을 미루어보면 면역체계 이상일 가능성이 있어보인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월경 이상에 대한 지나친 우려는 경계했다. 미국산부인과학회(ACOG)는 성명을 통해 “백신이 난임이나 유산을 유발한다는 근거가 부족하고, 임신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여성에게 접종을 강력히 권고한다”고 밝혔다. 윤 전문의도 “임신한 여성은 코로나19에 취약하고 임신하지 않은 여성에 비해 코로나19로 위중한 상태가 될 가능성, 조산 위험이 더 높다”며 접종을 권고했다.

코로나19는 그동안 미진했던 월경 주기의 메커니즘 연구를 발전시킬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려면 여성들의 월경 경험은 지금보다 더 많이 알려지고, 기록되고, 관리되어야 한다. 데이터 없이는 인과관계가 규명되지 않고, 인과관계를 밝히지 못해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으면 데이터를 쌓을 수 없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코로나19 백신을 둘러싼 논의는 의료계 성별 불평등을 공론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윤 전문의도 “코로나19 백신 이상반응 집계를 포함해 앞으로 의학 연구, 신약개발에 생식 건강 정보를 반영하지 않는다면 과학계와 정부 당국에 대한 불신과 소외로 이어질 수 있다”며 “여성들의 문제 제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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