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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청소년 지원기관 성소수자 직무교육 ‘0건’···상담실적도 민간보다 저조읽음

노도현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쉼터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빌려 쓴다거나 훔쳐 쓴다는 느낌을 받았다.”

2019년 갓 스무살이 된 트랜스젠더 여성 A씨는 가정 내 폭력과 성소수자 혐오를 피해 여성 청소년쉼터 문을 두드렸다. 쉼터 직원들이 긴급 회의를 거쳐 다른 이용자들에게 양해를 구한 끝에 입소할 수 있었다. 한 이용자는 “수술도 안 한 트랜스젠더라길래 무서웠는데 직접 보니 괜찮다”고 했다. 호의였지만 불편했다. 남들 눈에 여성으로 보이지 않으면 쉼터에 머물 수 없다는 말로 들렸다. 운이 좋았을 뿐 정당하게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튿날 퇴소했다.

청소년 지원 현장에서 성소수자 관련 규정과 매뉴얼 등이 미비해 도움이 절실한 당사자들이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5년간 청소년 지원기관에서 성소수자 관련 직무교육을 단 한 번도 실시하지 않았고, 청소년 성소수자 상담 실적이 민간단체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1일 여성가족부로부터 제출받은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 관련 현황’ 자료를 보면 여가부는 “청소년쉼터는 성정체성에 따라 입소를 거부하지 않으며 가정 밖 청소년 누구나 입소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현장 상황은 제각각이다. 여가부가 남·여 성별을 분리해 단기·중장기쉼터를 운영할 것을 지침으로 제시할 뿐 성소수자를 고려한 규정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이 지난 6월 공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탈가정 경험이 있는 트랜스젠더 청소년 47.4%는 ‘성별정체성을 존중받을 수 없거나 입소가 불가능해서’ 쉼터에 가지 못했다고 답했다. 정민석 띵동 대표는 “쉼터 종사자들도 트랜스젠더 청소년을 돕기 위해 고민하지만 매뉴얼이 없고 교육도 진행되지 않아 답답해한다”고 전했다.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청소년지원센터 꿈드림, 청소년쉼터, 청소년자립지원관 등 청소년 지원기관에서 최근 5년간 진행한 성소수자 관련 교육과 예산은 전무했다.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종사자들이 이용하는 ‘청소년상담 종합DB’에서 성소수자 상담 관련 정보를 제공할 뿐이다. 정부는 최근 10년간 청소년 성소수자 관련 연구를 진행하지 않았다. 2006년 한국청소년개발원의 ‘청소년 성소수자의 생활실태 조사’가 사실상 마지막이다.

최근 5년간 여가부가 관리하는 청소년 상담기관에서 진행한 성소수자 상담 건수는 연 60~102건으로 파악된다. 같은 기간 민간단체인 띵동이 수행한 상담(연 314~487건)보다 훨씬 적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공적기관보다는 민간기관을 더 신뢰하고 의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권인숙 의원은 “청소년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부처에서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이 형편없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이들의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 시급히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승희 띵동 사무국장은 “청소년쉼터에서 성소수자를 차별없이 맞이할 수 있도록 명확한 지침과 종사자 교육이 필요하다”며 “전체적 변화에 시간이 걸린다면 탈가정 성소수자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전용쉼터를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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