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간병비 13만5000원”…가족·보호자의 삶을 옭아맸다

김향미·이창준 기자

비용뿐만 아니라 서비스 질도 낮고

돌봄 위해 일 그만두는 ‘간병파산’도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만족도 높지만

인력부족으로 병상 확보 저조 ‘한계’

전문가들 “지역사회서 돌봄 제공해야”

한 경증 치매환자가 자신의 집에서 책을 읽고 있다. 이상훈선임기자

한 경증 치매환자가 자신의 집에서 책을 읽고 있다. 이상훈선임기자

요양병원에서 뇌경색 치료 중인 아버지의 유일한 보호자인 김율씨(28)는 아버지의 간식비·생필품 구매를 위해 월 10만원 가량을 지출한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아버지가 의료급여를 받은 덕분에 의료비가 크진 않지만 아버지가 외래진료를 받아야 할 때면 목돈을 당겨 써야 한다. 김씨는 청년 대상 상담·음악 관련 커뮤니티를 운영하는데, 코로나19로 일부 프로그램은 수 개월째 잠정 중단돼 최근 수입은 월 200만원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19살부터 장애인 어머니를 홀로 돌보는 A씨(39)는 2017년 4월 유통업계에서 일하다 교통사고가 나면서 허리 수술을 받고 2년6개월간 일을 할 수 없었다. 의료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사채에 기댔고, 허리 디스크로 장애 등급을 받은 어머니가 올해 초 재수술을 받으면서 빚은 4000만원까지 불어났다. 최근 영업직으로 일하면서 물건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해 월 수입은 250만원 가량이다. 어머니 수술비 카드 값 150만원, 약값 10만~20만원, 사채 이자 50만원씩 다달이 나간다.

27살부터 몸이 불편한 장애인 어머니를 돌본 B씨(40)는 5년 정도 대학병원에 치료를 다니는 어머니의 의료비로 월 100만원이 넘는 금액을 감당해야 했다. 콜센터 단기계약 만료를 한 달 앞두고 올 6월엔 어머니가 넘어져 병원에 입원하면서 간병인을 고용해야 했다. 하루 간병비 13만5000원. ‘지인’이 알아봐준 덕분에 긴급복지 의료비로 300만원을 지원받았지만 35만원 가량은 스스로 부담해야 했다. 지금은 실업급여를 받는 상태다.

최근 경향신문이 인터뷰한 청년 돌봄자(영케어러) 3명의 사례를 보면 질병·장애 등으로 간병돌봄이 필요한 당사자와 그 가족·보호자를 옭아매는 것은 의료비(간병비)다. ‘의료비 부담을 가중하는 3대 비급여’(간병비·선택진료비·상급병실료) 중 선택진료비는 폐지됐고 상급병실료도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간병비는 비급여로 부담이 크다.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굶겨 죽음에 이르게 한 ‘강도영씨(가명) 사건’을 계기로 간병돌봄에 대한 공적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간병’이라는 산

간병 때문에 시민운동에 뛰어든 사례도 있다. 지난해 11월 출범한 간병시민연대의 활동가인 김인규씨(45)는 2015년 암 진단을 받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이듬해부터 오랜 병원 생활 끝에 2019년 어머니가 생을 마감하기까지 6년 동안 부모님의 병원 생활을 지켜보면서 ‘간병의 현실’을 몸소 겪었다고 했다. 김씨는 “아버지는 체격이 큰 ‘남자 환자’라는 이유로 간병인들이 꺼려해 직장을 그만두고 2개월 가량 직접 병원에서 간병을 했고, 어머니는 병원 등에서 간병인·공동간병인을 고용하면서 5년간 간병비로만 3180만원 가량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기간·병원별 간병비 내역을 기록했다. 이를 테면 ‘2016.1.25~2.1 개인 간병인, 일일 8만원씩 8일간 64만원’ ‘2017.1.23~2018.3.5 병원 2곳, 개인 간병인·공동간병실 814만원’ ‘2019.9.19~11.26 공동간병실 250만원’ 등이다.

김씨는 간병 비용뿐만 아니라 서비스의 질도 낮았다고 했다. 그는 “병원에선 주로 개인 간병인을 알음알음, 혹은 간병인업체 전단을 보고 고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간병인 측에서 거동이 불편하지 않은 환자만 골라 맡기도 한다. 일부 의료행위를 하게 되는데도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는 분이 있는가하면, 한국어를 못해 소통이 어려운 외국인이 맡는 경우도 있다”면서 “(비용이 더 낮은) 간병인 1명이 여러 환자를 돌보는 공동간병인실을 운영하는 병원도 가 봤지만 제대로 된 돌봄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요양병원은 대부분 소규모 공동간병인실로 운영되고 있고 간병비를 포함해 병원비가 과거에는 100만~120만원이었는데 최근엔 120만~150만원, 강남에선 300만원 이상인 곳도 있다고 들었다”며 “저한테 물어보면 우선 3~4인실이 좋고 6인이 넘어가면 안 된다고 말해준다”고 했다. ‘전문 간병인제’ 도입 등 간병에 대한 전문화된 법률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게 김씨 생각이다.

한국은 2025년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출생률 저하, 1인가구·조손가정 증가 등 인구 구조 변화에 따라 간병돌봄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다. 간병의 주책임자는 가족이다. 의료급여를 받을 수 없는데,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가족이 있다면 누군가는 일을 그만두고 직접 간병을 하고, 누군가는 빚을 내 사설 간병인을 고용한다. 이렇다보니 ‘간병파산’이란 말까지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사적 간병’에 대한 공식적인 실태조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국정감사 당시 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는 학술지 <보건경제와 정책연구> 제27권 제1호(2021년4월)에 실린 ‘사적 간병비 규모 추계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정책적 시사점’이란 논문이다. 국민건강보험 의료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이 논문에 따르면 사적 간병비 규모는 유급 간병인을 고용할 때와 가족 간병인의 기회비용 등을 더해 2008년 3조6550억원에서 2018년 8조240억원으로 늘었다. 사적 간병 수요는 연 인원 기준으로 같은 기간 5773만7000명에서 8943만8000명으로 불어났다. 유급 간병인의 일평균 임금은 2008년 5만1728원에서 10년 후 7만3334원으로 뛰었다. 논문은 “입원환자의 60~70%는 입원기간 의료기관에 고용된 간호인력 외에 다른 사람에게 간병을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전통적인 가족 중심 문화를 반영하듯 대부분이 가족이나 친척에게 도움을 받고 있었다”고 했다.

■부족한 간병돌봄제도

정부는 2013년 포괄간호서비스제도를 시범 운영하다 2015년부터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도입했다. “보호자나 간병인이 필요 없도록 간호 인력에 의해 전문적인 간호뿐만 아니라 간병 서비스까지 제공받을 수 있도록 개발된 입원서비스”다. 간병이 일부 건강보험 체계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환자·보호자 만족도는 비교적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복지부가 발표한 ‘2019년 의료서비스 경험조사’에 따르면 일반병동 입원 시 간병비용을 포함해 9만660원이었던 본인부담금이 간호간병통합병동 입원 시에는 2만2340원으로 대폭 완화된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성을 갖춘 간호인력이 간병을 하기 때문에 낙상·욕창 발생 등의 안전사고 위험이 줄어들었다는 보고도 있다.

‘사적 간병비 규모 추계…’ 논문에서도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시행됨에 따라 ‘사적 간병률’ 자체가 감소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연구진은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통한 간병서비스의 급여화는 간병으로 인한 개인의 경제적 부담을 경감하고 이를 사회적 연대를 통한 공적 부담으로 전환하는 의미가 있다”며 “고령화와 질병구조의 변화로 간병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건강보험의 재정부담도 동시에 커지겠지만 간병으로 인한 가구의 과부담 비용과 생산성 손실비용을 예방함으로써 사회의 전반적인 이익은 향샹될 것”이라고 했다.

현재 간호간병통합 서비스는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문재인 정부는 2022년까지 간호간병통합 10만 병상 확충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해왔으나 김성주 민주당 의원이 복지부·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8월 기준으로 6만여 병상 확보에 그쳤다. 공공병원은 의무적으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해야 하지만, 96개 공공병원 중 85개만 참여하고 있다. 현장에선 중증환자들이 되려 이 서비스에서 거부당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또 급성기 병원 위주로만 제공되고 요양병원에선 이용할 수 없다. 간호간병통합 병상이 확대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간호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반병동에 근무하는 간호사에 비해 직무 스트레스가 높다는 실태조사도 있는 만큼 인력 충원과 처우 개선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간호간병통합 병상을 확대한다고 해도 급성기 병원을 떠나, 돌봄이 필요한 환자는 대부분 요양병원이나 요양시설(요양원)로 가게 된다. 요양병원은 병원비(간병비) 부담이 높고, 의료기관이라 노인장기요양보험 급여를 받을 수 없다. 요양시설에선 노인장기요양보험을 통한 급여를 받을 수 있지만 등급 인정률이 지난해 기준 10% 수준에 머문다. 김인규씨는 “요양병원·시설은 이윤 추구 때문에 불법운영이나 인권침해 등의 문제가 빈번한데도 당국의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의료·요양·돌봄이 통합돼야

전문가들은 병원·시설이 아닌 지역사회 안에서도 간병돌봄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한다. 김보영 영남대 새마을국제개발학과 교수는 “간병이 필요한 환자(가족)가 있다면 주민센터에서 다양한 복지요구 조사를 진행해 사업과 연계해주고, 간병인이 찾아와 필요한 돌봄을 제공하고, 필요한 시기에 의료기관에 가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이동서비스 담당자가 찾아오는 식으로 지역통합돌봄(커뮤니티 케어)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특히 “돌봄재정 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1%까지 올라왔는데도 현실은 그대로인 이유는 제도가 다 흩어져 있기 때문”이라며 “있는 자원을 더 효율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도 이 같은 문제 인식 속에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실제 장기요양보험 이용자 수는 2018년 65만명에서 2020년 81만명으로 늘었다. 노인 진료비도 2016년 25조원에서 2019년 36조원을 기록했고, 2025년엔 58조원(건강보험 지출의 50.8%)까지 늘 것으로 전망된다. 복지부는 지난 23일 “제3기 범부처 인구정책 TF에서 고령층 의료·돌봄 수요 대응 및 사회보험의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한 세부 과제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의료·요양·돌봄 간 통합판정체계 시범 도입, 요양보호사 중간관리자 제도 도입 검토, 공립 요양시설 지자체 건축지원 단가 인상 등이 새로 담겼다. 모두 올해 말~내년 사이 추진되는 것으로, 이제 ‘출발선’에 서 있는 셈이다.


Today`s HOT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가자지구 억류 인질 석방하라 지진에 기울어진 대만 호텔
사해 근처 사막에 있는 탄도미사일 잔해 개전 200일, 침묵시위
지구의 날 맞아 쓰레기 줍는 봉사자들 경찰과 충돌하는 볼리비아 교사 시위대
한국에 1-0으로 패한 일본 폭우 내린 중국 광둥성 교내에 시위 텐트 친 컬럼비아대학 학생들 황폐해진 칸 유니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