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가지 정부 실책이 ‘5차 대유행’ 불렀다

김향미·이창준 기자

전문가 경고에도 ‘미리 병상 확보’ 안해

백신 과신…효과 예상보다 빨리 떨어져

방역조치 순차적 조정 없이 한번에 완화

코로나19 확진자가 이틀째 7000명대를 기록한 가운데 9일 서울시청 광장 임시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코로나 검사를 받고 있다.박민규 선임기자

코로나19 확진자가 이틀째 7000명대를 기록한 가운데 9일 서울시청 광장 임시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코로나 검사를 받고 있다.박민규 선임기자

코로나19 신규 확진 규모가 9일 이틀 연속 7000명대를 기록하고 위중증 환자(857명)도 1000명대를 향해 가고 있다. 최근 9일간 450여명이 코로나19로 생을 마쳤다. 코로나19 방역지표가 이렇게까지 악화한 것은 ‘단계적 일상회복’을 시행하면서인데, 결국 정부가 준비 안된 상태에서 위드코로나에 들어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 5차 대유행은 병상 준비 부족, 백신 효과에 대한 오판, 섣부른 방역 완화 등 정책 실패가 빚어낸 결과나 다름없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연구팀이 지난 8일 공개한 ‘수리모델링으로 분석한 코로나19 유행예측’을 보면 현 유행 상황이 지속(감염재생산지수 1.28)될 경우 이달 15일쯤 신규 확진자는 6846명, 22일에는 8729명, 31일에는 1만2158명에 도달한다. 중환자 수는 15일 994명, 22일 1272명, 31일 1767명까지 늘어난다. 거리 두기 4단계 수준을 적용할 경우(감염재상산지수 0.77)에도 중환자 수는 15일 930명, 22일 975명, 31일 940명으로 예측됐다. 4차 유행 이후 치명률도 상승세(8월 0.41%→11월 0.94%)다.

이런 위기가 닥친 데는 당국의 정책적 판단 및 실행에 있어 3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 병상 확보 문제다. 전문가들은 겨울철엔 호흡기 질환이 유행하고 고령층의 면역력이 떨어지는 시기로 코로나19 이전에도 응급실·중환자실 병상이 빠르게 찼기 때문에 중환자 병상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일상회복 시작 후 지난달 수도권·비수도권 상급종합병원·국립대병원 등에 순차적으로 대규모 병상 확보 행정명령을 내렸지만 병실 개조 공사 등에 최소 3~4주 시간이 소요됐다. 재택치료는 응급환자 이송체계나 건강 모니터링 체계가 뒤늦게 구축되면서 환자나 동거인들의 불안·불편이 컸고, 선택권이 주어졌던 11월 한 달간 재택치료를 크게 늘리진 못했다. 그러는 사이 확진자 대비 위중증 환자 발생 규모가 예상보다 커지면서, 지난달 중하순 무렵 중환자 병상이 동이 나기 시작했다. 전날 오후 5시 기준 전국 중환자 병상 가동률은 78.8%(수도권 85.0%)다. 이날 0시 기준 수도권에서 1일 이상 병상 배정을 대기하는 사람은 1003명에 달한다.

둘째, 백신의 효과를 과신한 영향이 적지 않다. 정부는 단계적 일상회복 시점을 ‘인구 70% 백신 접종 완료’ 시점과 결부지어왔다. ‘K 방역’의 성과로 애초 전체 인구대비 감염력을 가진 인구가 너무 낮은 상태였고, 델타 변이가 우세 변이가 되면서 백신만으로는 집단면역이 형성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특히 백신 효과가 예상보다 빨리 떨어져 60세 이상 확진자 비중이 20%대에서 30%대로 뛰면서 중증화율이 높아졌다. 부랴부랴 추가접종(3차접종) 간격을 단축했지만, 현재 대상자 대비 추가접종률은 28.5%에 그친다. 정부도 백신 효과에 대한 오판을 인정했다. 박향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중수본) 방역총괄반장도 이날 라디오 방송에서 “일상회복을 하면서 1만명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예상 시나리오가 있었으나, 생각보다는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며 “백신 효과가 6개월 갈 줄 알았으나 3~4개월 만에 떨어졌다”고 말했다.

세 번째 문제는 단계적 일상회복 1단계에서 영업시간이나 사적모임 인원, 행사·공연장 허용 인원 등 방역을 한꺼번에 완화한 것이다.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손실 등 사회적 피해도 누적된 상황이라, 일상회복을 더 미룰 수 없는 측면도 있었다. 다만 방역조치를 일시에 풀지 않고 조정이 가능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부가 사실상 경제적 피해에 대한 재정지원에는 소극적으로 나서면서 의료계가 부담할 수 있을 것으로 오판한 측면이 있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엄중한 상황”이라며서 “면역도 저하 속도에 대한 문제, 단계적 일상회복에서 완화하는 부분들을 잘 관리했느냐는 문제점, 의료대응체계에 대한 준비 등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지금 위기에 대응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정재훈 가천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단계적 일상회복 준비가 부족했고 같은 문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지금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현재도 의료역량이 한계에 다다랐는데 다음주, 그 다음으로 미루면 더 큰 위기가 온다”고 했다. 김탁 순천향대 감염내과 교수도 “여기서 환자 수를 억누르지 않으면 보건 의료체계가 감당할 수 없게 된다”며 “정부가 영업시간 제한 등의 강제적 방역 조치를 다시 도입하려면 (충분한) 재정정책을 씀으로써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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