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계층부터 두껍게” 선별복지 방점…재원 확보는 흐릿

김향미·민서영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노후빈곤 해결을 위해 65세 이상의 소득하위 70%에게 주는 기초연금을 월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한 가운데, 한 노인이 모아온 폐지를 손수레에 싣고 가는 모습. 정지윤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노후빈곤 해결을 위해 65세 이상의 소득하위 70%에게 주는 기초연금을 월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한 가운데, 한 노인이 모아온 폐지를 손수레에 싣고 가는 모습. 정지윤기자

기초연금 월 40만원으로…출산 후 1년간 부모급여 월 100만원
‘재정 고갈 위기’ 국민연금 개혁, 정권 초기에 논의 본격화할 듯
복지공약 266조 쓴다지만 ‘윤석열표 복지 비전 부재’ 지적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복지정책과 관련해 “어려운 계층부터 두꺼운 지원을 하겠다”고 공약했다. 다만 “무차별 현금 뿌리기는 없다”고 했다. 보편복지보다는 선별복지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저출생·초고령화, 불평등·양극화 심화로 이전 정부들부터 ‘복지 확대’는 피할 수 없는 길이 됐다. 윤 당선인도 “두툼하고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기초연금 40만원으로 인상, 부모급여 1년 1200만원 지급, 기초생활보장제 생계급여 확대 등을 공약했다. 다만 돌봄과 같은 사회서비스를 확대하면서 정책 수행 주체를 민간에 위임하는 방식을 강조해, 공공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공약은 많지만 전체적으로 ‘윤석열표 복지’로 불릴 만한 철학이나 비전은 안 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돌봄정책에 신경을 썼지만 ‘구호’만 있을 뿐 재원 확보 방안은 제시하지 않아 구체성·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차기 정부의 최대 현안 중 하나인 연금개혁과 관련해선 정권 초기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 취약계층 지원 확대한다지만 근본적 개혁 없어

윤 당선인은 공약집 복지 분야 첫머리에 근로장려세제(일정 소득 이하 가구에 세금 환급의 형태로 자금 지원)의 요건을 완화하고 지원액을 최대 20%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일하는 저소득층을 지원해 탈빈곤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기초생활보장제 생계급여 대상자와 지원금도 늘린다. 급여액 결정 시 근로·사업 소득 공제를 30%에서 50%까지 확대하고 지급 기준도 중위소득 30%에서 35%까지 상향한다. 장애인·노인·아동·근로능력이 없는 가구원을 포함한 가구에 월 10만원을 추가 지급한다.

현행 긴급복지지원제도는 국민안심지원제도로 확대 개편한다. 현재 소득 기준을 따져 위기 가구에 현금 등을 단기간 지원하는데, 코로나19와 같은 국가 위기 상황이나 실직·이혼·질병 등으로 생계가 어려워진 국민 누구나 신청할 수 있게 한다. 지원금액을 현재 중위소득 26% 수준에서 중위소득 40% 수준으로 인상한다. 지원기간도 기본 1개월에서 3개월로 확대한다.

윤 당선인은 만 65세 노인 기준 소득하위 70%에 지급하는 기초연금을 월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노인빈곤율이 심각한 상황에서 노후소득 보장을 위한 공약이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38.9%(2020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차기 정부 집권기인 2025년 한국은 초고령화 사회(노인 인구 비율이 20% 이상)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된다.

전반적으로 소득 취약계층의 현금성 지원을 확대하고, 복지 혜택을 늘리는 정책이 공약집에 담겼다. 다만 시민사회는 “심화된 불평등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김은정 참여연대 사회경제국장은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더 부실해진 사회안전망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 단편적인 공약들도 효과가 있겠지만 불평등·양극화를 깨뜨릴 근본적인 구조를 건드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현재 빈곤층 생활환경을 개선하려면, 정부 정책(2020년 기준 73개 사업) 지원 대상자를 가리는 기준이 되는 ‘기준 중위소득’을 통계청 중위소득 수준으로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문재인 정부도 재정부담을 이유로 기준 중위소득 인상에 소극적이었다. 증세에 부정적인 윤 당선인의 입장을 고려하면 차기 정부에서도 기준 중위소득 현실화를 두고는 논쟁이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가 공약했으나 미완으로 남긴 ‘기초생활보장제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도 언급이 없다. 다만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이 대선 후보 시절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공약한 바 있다.

■ 아동 돌봄에 공들였지만 구체적 실현 방안 담보해야

윤 당선인의 출산 장려, 아동 돌봄 공약은 기존 정책의 지원을 확대하는 내용을 주로 담았다. 난임부부 치료비를 소득에 관계없이 지원하고, 유급 난임 치료 휴가 기간을 3일에서 7일로 확대하기로 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1년간 월 100만원의 부모급여를 지급하겠다고 했다. 현재 생후 24개월까지 월 30만원씩 영아수당이, 만 8세까지 월 10만원의 아동수당이 지급되고 있다. 현재 부부 합산 최장 2년인 육아휴직 기간을 3년으로 확대한다고 공약했다.

윤 당선인은 특히 아동 돌봄 및 교육에 여러 공약을 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서비스 체계를 통합하는 ‘유보통합’도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영·유아 하루 세끼 친환경 무상급식’도 공약했다. 모든 초등학교에 방과후교실(오후 5시까지)과 초등돌봄교실(오후 8시까지)을 운영해 맞벌이 부부에 맞는 돌봄·교육을 제공한다는 구상도 밝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돌봄의 사회화를 강화하고 돌봄 서비스를 질적으로 제고하기 위한 정책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돌봄 정보를 통합 제공하거나, 유치원 및 어린이집에 영·유아 발달 전문가를 파견해 발달 지연 및 장애 영·유아에 대한 조기 개입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공약은 구체적이고 세심한 정책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개별 공약으로 보면 각 정책의 현실적인 한계, 그에 대한 대책이 무엇인지 불분명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예를 들어 ‘유보통합’이 그동안 좌절된 원인에 대한 분석 없이 추진하겠다는 약속만 한 것이 대표적이다. 유보통합은 교원 양성과 시설 보수 등에 드는 막대한 재원, 소관 부처 통합, 사립유치원의 국가 개입에 대한 반발 등 여러 문제가 중첩돼 있다.

경실련은 육아휴직의 경우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 육아휴직급여 현실화 등이 시급한 문제로, 부부 합산 3년 육아휴직을 추진하면 자칫 여성의 유급노동 참여와 경쟁력을 저해하는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남은경 경실련 정책국장은 “오후 8시까지 초등학교 돌봄이 가능하도록 한 정책은 야근을 상정하게 된다. 노동자들이 정시 퇴근하고 가정에서 아이 돌봄이 가능한 노동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 1월 경기 용인의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를 방문해 안내견 체험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 1월 경기 용인의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를 방문해 안내견 체험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간병돌봄 확대는 가야 할 길, 장애인 개인예산제는 ‘갈등’ 우려

윤 당선인은 간병비 부담 경감 정책을 추진하고, 가족돌봄 휴가·휴직 기간을 확대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윤 당선인은 건강보험 급여 확대를 골자로 한 ‘문재인케어’와 관련해 비판적 입장을 펴왔지만 재난적 의료비 확대, 상병수당 도입,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 중증질환·희귀암 건보 적용 확대 등을 공약해 건보 보장성 강화 정책은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공공의료 확충과 관련해서는 민간병원에 지원을 확대하는 공공정책수가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윤 당선인은 장애인 고용 확대를 위해 현재 2곳인 장애인 디지털훈련센터를 맞춤훈련센터로 기능을 강화해 17개 광역 시·도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저상버스를 시외·고속·광역버스로 확대 운행하고, 중증 장애인 콜택시 서비스도 늘리기로 했다. 장애인 공약 중 새로운 것은 ‘개인예산제’다. 돌봄 서비스 영역에 개인예산제를 도입해 이용자가 필요한 서비스를 선택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장애인의 선택권을 보장해줘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장애인 이동·교육·탈시설 등 권리예산은 충분히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예산제를 시행하면 결국은 한정된 예산을 두고 장애인들끼리의 갈등, 분열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윤 당선인은 일자리 공약을 내면서 “정부 주도보다는 민간 주도”를 강조했기에 의료를 비롯해 아동 돌봄·요양·장애인 활동지원 등 각 사회서비스 분야에서도 민간 참여를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공공성을 약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남은경 국장은 “돌봄·교육·의료를 공공이 직접 공급하기보다는 민간 시장을 활성화하려는 기조를 보여 우려스럽다”며 “공공이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정부 관리·감독하에서 서비스 질과 비용의 기준을 세우고 시장도 견제할 수 있다”고 했다.

■ 새 정부 복지 비전은 무엇, 복지 재원은 어떻게

윤 당선인의 복지공약을 두고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시민단체 내가만드는복지국가(내만복)는 지난 14일 발표한 성명에서 “박근혜 정부는 ‘한국형 복지국가’, 문재인 정부는 ‘포용적 복지국가’를 주창했다”며 “복지국가 비전이 실제 정책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 출범 초기 복지국가를 향한 강력한 의지와 전략을 다듬는 성격을 지닌다. 인수위는 혁신적 복지국가 비전을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약집에 재정 확보안을 담지 않아 개별 정책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복지공약 재정을 266조원 정도로 추계한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토론회에서 “모든 국민이 질병·실업·장애·빈곤 등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해주는 복지는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기초가 되고 성장은 복지의 재원이 된다”고 말했다.

복지 재원을 구조조정할 가능성도 있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토론회에서 한 해에 100만원 정도만 내고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 반까지 돌봄을 국가가 책임지는 ‘이스라엘식 탁아 제도’를 도입하자면서 재원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10조~15조원을 충당하면 된다고 했다. 이는 교육예산을 보육예산으로 돌려쓰는 것이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정창률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윤 당선인이 후보 시절 문재인 정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비판하면서 보험료를 너무 올렸다고 이야기해왔는데, 건보 보장성 강화 공약을 냈다. 상병수당 도입,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 대상자 확대도 방향은 바람직하지만 상당한 재원이 필요한데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설명이 부족하다. ‘믿을 수 있는 것인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내만복은 “공약가계부도 없고 조세개혁도 없다. 나라를 운영할 계획인 공약을 내면서 재원 방안을 제출하지 않는 건 심각한 무책임”이라며 “심지어 선거운동에서 주식양도세 폐지까지 내걸어 자산 양극화 시대에 조세정의를 허물고 있다. 인수위는 국정운영에 필요한 재정세입계획을 충실히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 연금개혁은 정권 초 논의 급물살 탈 가능성

국민연금법에 따라 2023년 국민연금의 장기적 재정 상황을 점검하는 제5차 ‘국민연금 재정 추계’를 해야 한다. 국민연금을 개혁하지 않으면 2054~2057년쯤 재정이 고갈될 것으로 전망된다. 법으로 보장하는 사회보험이기 때문에 재정이 고갈된다고 가입자가 연금을 못 받는 일은 없다. 하지만 개혁하지 않으면 미래세대가 세금으로 더 많은 부담을 져야 한다. 인수위는 지난 15일 경제1분과 간사로 최상목 전 기획재정부 차관을 임명하면서 인수위가 검토할 주요 경제공약 중 하나로 연금개혁을 꼽았다. 이에 따라 정권 초기 연금개혁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대통령 직속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설치해 MZ세대에게 부담이 과중되지 않도록 세대 공평한 연금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구체적인 개혁안을 공약하지는 않았지만 현행 9%인 보험료율 인상, 40% 소득대체율 현행 유지, 연금 수급 개시 연령(현재 만 62세, 2033년부터 65세) 연장 등이 언급된다. 안 인수위원장이 후보 시절 토론회에서 “지금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0% 정도로, 더 낮추면 안 된다. 그러면 남은 건 보험료율을 올리는 것인데 동의하나”라고 질문하자 윤 당선인은 “불가피하다. 재원이 한정돼 있으면 수급 개시 연령도 뒤로 갈 수밖에 없지 않겠나 싶다”고 했다.

윤 당선인은 공약집에서 ‘국민연금, 기초연금, 퇴직연금, 주택연금·농지연금을 포함한 총체적 다층 연금개혁’과 ‘공적 직역연금 개혁으로 지속 가능한 제도 건전성·형평성 확보’를 내세웠다. 기초연금 인상을 공약하면서는 “노후소득 보장체계 전반에 대한 구조적 개혁”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기초연금 인상, 특수직 연금(공무원·사학·군인 연금) 개편을 포함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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