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백신 이상반응, 병원선 “원인 몰라” 당국은 “원인 아냐”…피해는 ‘개인몫’읽음

허남설 기자

강요당한 백신, 커져 가는 불신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가 서울 청계광장에 마련한 합동분향소에 1일 피해자들의 영정이 놓여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가 서울 청계광장에 마련한 합동분향소에 1일 피해자들의 영정이 놓여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접종 경험·자료 축적 짧아
이상반응 원인 규명 어렵고
재판 통한 보상도 쉽지 않아
피해보상 심의는 4만875건
사망 사례서 인과 입증 6명뿐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후 죽거나 이상 증세를 겪은 사람 혹은 그 가족은 서로를 ‘번호’로 구분하는 데 익숙하다. “저는 ③입니다”라거나 “우리 아이는 ④-1인데요”라고 말하는 식이다. 질병관리청이 정한 ‘예방접종 피해보상 심의기준’에 따라 매긴 번호이다. 이상반응의 종류, 이상반응이 나타나기까지 걸린 시간, 이상반응에 관한 연구 결과 등에 따라 ①, ②, ③, ④-1, ④-2, ⑤-1, ⑤-2, ⑤-3 등으로 나뉜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을 ‘백신 피해자’라고 부르지만, 법적으로는 어느 번호를 받았는지에 따라 피해자 대우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①부터 ③까지는 피해보상을 받지만 나머지는 받지 못한다. 다만 ④-1은 의료비와 사망위로금 지원을 받는다. 팬데믹 위기 속에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정부의 백신 정책을 따랐지만, 이후 나타난 부작용과 피해는 온전히 본인과 가족 등 개개인의 몫으로 남고 있다. 정부가 지금 이들을 보듬지 않는다면, 언제 닥칠지 모르는 또 다른 팬데믹에서 백신 접종을 얘기할 순 없을 것이다.

■ 어쨌든 백신은 아니다?

인천에 사는 A양(19)은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④-2’에 속한다. 고3이던 지난해 7월21일 화이자 백신 1차 접종을 받고 12일 후인 8월2일 학원에 다녀오는 길에 버스에서 실신했다. 당시엔 A양도, A양 어머니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방역당국의 권고대로 3주 뒤인 8월11일 화이자 2차 접종을 했다. 2주 후인 8월25일 학교에서 또 정신을 잃었다. 이번엔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지만 의사는 “고3 학생들은 미주신경성 실신(극심한 긴장 상태에서 나타나는 의식 소실)을 할 수 있다”고만 했다.

9월7일 학교에서 세 번째 실신을 한 다음엔 모든 게 달라졌다. 어머니는 A양을 대형병원에 입원시켜 검사를 받게 했다. 사흘째부터 혼자 걷지도, 서지도 못하도록 증세가 심해졌다. 인천시가 작성한 ‘중증 이상반응 기초조사서’를 보면, A양이 받은 진단은 ‘원인불명의 소뇌실조증’ ‘원인불명의 뇌전증’ ‘상세불명의 운동실조·경련’ 등 15가지다. 지금까지 약물·재활치료를 위해 열흘~한 달씩 입원과 퇴원을 반복 중이다. 하지만 질병관리청 예방접종 피해조사반은 그해 12월24일 회의에서 A양의 증상에 대해 “백신 접종보다는 환자의 전신 상태에 의한 소뇌실조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했다.

병원은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하고, 질병관리청은 “백신은 원인이 아니다”라고 한다. ‘인천 고3 백신 부작용’으로 알려진 A양의 사례는 논쟁적이다. 당사자와 가족은 기저질환이 있긴 했어도 지금껏 별다른 문제없이 살아왔기 때문에 갑자기 닥친 비극의 원인으로 지목할 만한 건 오직 백신뿐이라고 판단한다. 당국은 백신 피해를 인정하지 않는다. 코로나19 백신만을 둘러싸고 이런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다. ①~⑤로 구분되는 예방접종 피해보상 심의기준은 다른 백신에도 적용된다. 중대한 차이는 코로나19 백신의 역사가 훨씬 짧다는 점이다. 수년~수십년간 접종 경험과 자료가 축적된 다른 백신과는 다르다. 의사 출신 변호사인 박호균 대한변협 의료인권소위원회 부위원장은 코로나19 백신이 어떤 이상반응의 원인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신만이 아는 것”이라고 말한다. 화이자·모더나 백신 접종 후 흔하게 나타난 심근염은 당국이 지난 3월에야 인과관계를 인정하기로 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과 이상반응 연관성은 누적된 자료가 없는, 사실상 ‘실시간 업데이트’ 중인 셈이다.

또 짧은 기간에 접종을 많이 한 만큼 이상반응을 호소한 사람도 다른 백신과 비교할 수 없게 많다. 2차 접종 완료자는 1일 현재 4455만명(전 국민의 86.8%)이다. 이상반응 신고 건수는 46만7042건(지난달 28일 기준)이며, 이 중 사망·중증 등 주요 이상반응만 1만8224건이다. 반면 피해보상 심의 4만875건 중 사망 사례에서 백신 인과성이 인정된 건 6명뿐이다.

박 변호사는 “현재 접종 자료 자체가 집적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과거에 보고되지 않은 부작용, 후유증, 사망 사례에선 의학적으로 인과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며 “법원 역시 논란이 되는 사례를 두고 확실히 증명하는 게 어렵기 때문에 재판을 통한 보상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판단 기준을 산업재해처럼
‘규범적 인과관계’로 바꾸고
입증 책임의 전환 주장도
후유증 치료 길고 유족 염두
연금 등 장기적 보장도 필요

■ ‘백신 피해보상=사회보장’

방역당국이 코로나19 백신으로 인한 피해를 너무 보수적으로 인정한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최근엔 판단 기준의 틀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기존 판단 기준인 ‘의학적 인과관계’를 ‘규범적 인과관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백신 접종 후 B라는 증상을 보이는 사람을 두고 원래는 B와 백신 접종 관련성을 보고한 근거 자료가 있는지에 치중했다면, 이제는 ‘사회적 상식(규범)’ 수준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규범이란 국가적 위기에 희생되거나 피해를 입은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코로나19 비상대응특별위원회 위원인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직업병이나 산업재해, 고엽제 후유증 관련 법들은 모두 의학적 인과관계를 토대로 하되 사회보장 차원에서 규범적 인과관계를 적용해 보상할 수 있도록 법체계를 갖췄다”며 “코로나19 백신 피해보상도 같은 구조를 갖추도록 법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인수위는 최근 ‘인과성’에 따라 ①~⑤로 구분한 예방접종 피해보상 심의기준에 ‘관련성’을 새로 만들겠다고 밝혔는데, 이 역시 의학적 인과관계만을 따질 때보다 폭넓게 백신 피해를 인정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최 교수의 설명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입증 책임의 전환’을 주장하기도 한다. 국회에는 이미 질병관리청이 백신 접종과 질병·장애·사망 사이 인과성이 없다고 입증하지 못하면 보상을 하도록 규정한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모든 감염병 백신과 이상반응의 입증 체계를 바꾸는 게 부담스럽다면 코로나19 백신에 한해서만 특별법을 만들자는 제안도 있다.

피해보상이 일시에 지급하는 보상금으로 끝나선 안 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심각한 후유증은 오랜 시간 치료가 필요하고, 피해자 죽음 다음엔 유족이 남기 때문이다.

박 변호사는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유행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 보장 제도를 만드는 게 맞다”며 연금 방식의 지원을 주장한다. 독일은 보훈법인 ‘연방원호법’을 준용해 백신 피해를 보상하고 있는데 한국도 같은 방식을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정부는 피해보상 제도가 있으니 접종하라고 했지만 막상 문제가 생기니 증명을 못했다고 하는 건 국가의 보호 의무를 다하는 게 아니다”라며 “지금 보상을 하지 않으면 또 다른 감염병 유행이 왔을 때 국가가 또 백신을 맞으라고 말하는 건 대국민 사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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