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여서만 살 수 있는 사람들, 무시된 '방역 이외'의 삶

민서영 기자
노숙인 A씨가 지난달 29일 서울의 한 공원에 앉아 있다. 권도현 기자

노숙인 A씨가 지난달 29일 서울의 한 공원에 앉아 있다. 권도현 기자

누군가와 함께, 모여야만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안정적인 주거 공간이 없거나, 사업주의 허가 없이는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거나, 활동지원사 도움 없이 일상 생활을 할 수 없는 신체를 가진 이들의 삶이 그렇다. 함께 모여 사는 게 당연했던 삶은 코로나19 이후 당연하지 않은, 더 나아가 ‘방역의 적’이 돼버렸다. 방역을 이유로 노숙인이 이용하던 시설은 폐쇄되거나 PCR 음성 확인서를 요구하고,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받지 않으면 벌금을 물린다는 강도 높은 행정명령이 손쉽게 내려졌다. 방역당국과 지자체는 취약계층을 방역과 감염 예방의 대상으로만 보았다. 이들의 주거와 돌봄, 의료 등 ‘방역 이외’의 삶을 면밀히 들여다 보는 정책은 K방역에 부재했다. 코로나 이후 회복돼야 할 일상엔 취약계층의 일상도 포함된다. 방역 완화와 일상회복에 샴페인을 터트리기에 앞서, 감염병 상황에서 드러난 취약한 구조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과정이 수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봉투 네 뭉치, 차별의 역사

낮에는 서울역 근처 쉼터에서, 밤에는 역사 안에서 생활하는 A씨(45)의 세간살이는 도톰한 검정색 서류가방이 전부다. 지난달 29일 만난 A씨는 가방에서 봉투 네 뭉치를 꺼내보이며 “나의 역사”라고 했다. 그는 지난해 1월부터 매주 한 번도 빠짐없이 PCR 검사를 받아온 ‘증거’를 남겨왔다고 했다. 봉투 하나당 4개월치의 코로나19 음성 확인서가 들어있다. 1년 반 가까이 A씨는 사람이 그나마 적다는 토요일 아침을 골라, 60번도 넘게 코를 찔렀다. 이제 찌르는 고통에 익숙해졌다는 그는 “코로나 검사를 제일 많이 받은 사람으로 기네스북에 도전해보자는 생각도 한다”며 웃었다.

노숙인 A씨가 지난달 29일 서울의 한 공원에서 자신의 코로나19 음성확인서를 들고 있다. 권도현 기자

노숙인 A씨가 지난달 29일 서울의 한 공원에서 자신의 코로나19 음성확인서를 들고 있다. 권도현 기자

A씨의 봉투는 차별의 역사다. 지난해 1월 서울역 등 노숙인 밀집 지역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자 서울시는 일부 노숙인 지원시설이나 무료 급식 지원소 등을 일주일 이내의 음성 확인서가 있어야만 이용할 수 있도록 정책을 바꿨다. A씨를 비롯한 많은 노숙인들은 “시설 이용을 하고, 밥도 먹어야 하고, 물도 마셔야 해서” 매주 PCR 검사를 받았다. 검사 받는 게 번거롭고, 검사 받으러 줄을 섰다가 감염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상당수 노숙인들은 검사를 받지 않고 시설 이용을 포기하기도 했다. 보건복지부의 2021년도 노숙인 등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무료급식과 복지시설 이용 등 노숙인의 사회복지서비스 이용률이 코로나19 이전보다 크게 감소했다.

황성철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잠복기 등 변수를 고려하면 음성 확인서로 정확한 감염 여부를 파악할 수도 없는데 서비스 접근권을 떨어뜨린 것”이라며 “작년 11월 사회복지시설의 출입 요건이 단기간 강화됐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출입이 자유로웠어야 하나, 서울시는 다른 복지 시설에는 적용하지 않는 강한 제재를 노숙인시설 이용자들에게만 시행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주노동자들이 지난달 11일 충북 음성군 음성읍의 한 아파트 앞에서 통근버스에 올라타고 있다. 권도현 기자

이주노동자들이 지난달 11일 충북 음성군 음성읍의 한 아파트 앞에서 통근버스에 올라타고 있다. 권도현 기자

지난해 초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3차 유행이 휩쓸고 간 뒤였다. 취약계층의 집단감염은 곧바로 선제검사나 전수조사 행정명령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2월 방역당국이 거리 노숙인 1만여명에 대한 선제검사를 실시한 데 이어 3월엔 경기도가 15일간 외국인 노동자에게 코로나19 검사 의무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2월 중순부터 남양주·동두천·평택 등 수도권 영세 사업장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한 데 따른 조치였다. 기숙사 등 감염에 취약한 노동·주거 ‘환경’ 대신 ‘외국인’이라는 인적 특성을 문제 삼았다는 비판이 각계에서 쏟아졌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이주노동자만 분리·구별해 진단검사를 받도록 한 정책은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조치’라며 시정을 권고했다. 이에 경기도는 ‘채용 전 진단검사 행정명령’은 시행하지 않기로 했지만, 전수조사 행정명령은 기간이 만료될 때까지 유지됐다.

■주거가 백신이다

서울역 인근에서 생활하는 노숙인 김정수씨(가명·74)는 지난해 12월 거리에서 ‘재택치료’를 했다. 델타 변이 유행으로 병상·인력 부족이 심각했던 시기다. 시설 이용을 위해 매주 PCR 검사를 받다가 확진됐다는 김씨는 ‘병원에 확진자들이 꽉 차서 들어갈 수 없다’는 답변을 통보 받았다. 확진된 노숙인들이 임시로 머무르는 컨테이너도 자리가 없어 김씨는 “비 오면 비 맞고 눈 오면 눈 맞으며” 보름동안 서울역 광장 구석에서 ‘야외격리’를 했다. 재택치료 지침에 따라 ‘감염에 취약한 주거환경에 사는 확진자’는 재택치료 예외 대상이지만, 유행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지침은 고려되지 않았다. 격리기간 동안 김씨는 무료 급식소를 이용하지 못해 종교단체에서 나눠주는 빵을 받아 먹고, 그것마저 없으면 굶었다고 한다. 김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한겨울이라 많이 추웠다”면서 “정책을 대체 이런 식으로 하는 데가 어딨냐는 생각을 했다”고 토로했다.

다산인권센터가 지난해 11월 공개한 ‘경기도 코로나19 지원정책에 대한 사회적 약자 경험분석 인권보고서’를 보면, 주로 기숙사나 컨테이너 숙소 등에서 많은 인원이 숙식을 해결하는 이주 노동자의 경우 제대로 된 자가격리와 거리두기를 실천하기 어려웠다. 화장실과 부엌 등 공용 공간을 함께 사용하는 고시원과 쪽방 주민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에 확진됐던 김정수씨(가명)가 지난 2일 격리기간 동안 머물렀던 야외 펜스 앞에 서 있다. 강윤중 기자

코로나19에 확진됐던 김정수씨(가명)가 지난 2일 격리기간 동안 머물렀던 야외 펜스 앞에 서 있다. 강윤중 기자

황 활동가는 “주거가 백신”이라며 “아무리 밀집 시설에서 칸막이를 치고 음성 확인서를 받아도 집단 감염이 계속 일어났던 것에 대해 깊이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랄라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는 “한국 방역 정책이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주거를 기준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불안정한 주거에 놓인 사람들에게 더 취약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며 “그들의 주거 조건을 안정적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특정 집단에게 검사를 강요하거나 스스로 감당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무것도 못하는 입원 대신 ‘셀프’ 재택치료

누군가에겐 선택이 아닌 필수인 돌봄 지원도 방역을 이유로 제한됐다. 올해 초 확진된 50대 장애인 B씨는 입원을 포기하고 재택치료를 선택했다. B씨는 평소 24시간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는 최중증 장애인인데, 병원에 활동지원사는 함께 들어갈 수 없다고 통보 받았기 때문이다. 사지마비로 목 아래를 움직일 수 없는 B씨에게 활동지원사가 없는 병원에서의 격리 생활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감옥에 가까웠다. 결국 B씨는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집에서의 치료를 결정했다.

14일 격리 기간동안 관할 보건소에선 ‘중증 장애인은 재택치료가 아니라 입원 치료 대상’이란 연락만 반복하고, B씨를 돌보는 활동지원사에 대한 방호복 등 일체의 지원은 없었다고 한다. 활동지원사도 결국 확진 판정을 받았다. 김필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기획실장은 “아동은 (보호자와 함께 격리하는 게) 가능한데 장애인에겐 적용이 안 되더라”며 “병원에 활동지원사가 같이 들어갈 수 있는 건 병원장 권한인데 지금까지 본 그런 케이스는 딱 두 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나마 B씨처럼 활동지원사가 자원해 돌봄에 나서지 않으면 혼자 재택치료를 해야 했다. 오미크론 유행으로 확진자가 폭증하자 정부는 중증장애인 확진자도 집중관리군이 아닌 재택치료를 받는 일반관리군으로 분류했다. 재택치료 중 증상이 악화해도 병원에 가지 못하거나 약을 제때 복용하지 못하는 일도 생겼다. 지난 3월엔 광주에서 한 중증장애인이 재택치료를 하다 사망하는 일도 발생했다. 방역당국에 따르면 2020년 11월부터 지난 1월까지 장애인 코로나19 치명률은 3.7%로 비장애인 치명률(0.16%)의 23배에 달한다.

서울역 앞에서 휴대품이 든 가방을 들고 있는 노숙인. 강윤중 기자

서울역 앞에서 휴대품이 든 가방을 들고 있는 노숙인. 강윤중 기자

■모두의 ‘일상 회복’이 되려면

재난 상황에서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는 건 당연한 명제다. 그럼에도 지난 2년동안 개인이 겪는 위험의 수준은 사회적 위치와 조건에 따라 달랐다. 일상의 불평등 구조가 재난과 만나 ‘폭발’한 것이다. 랄라 활동가는 “코로나로 인해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일상회복의 첫걸음이 돼야 한다”며 “우리 사회가 공동으로 재난을 넘어서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뭐였는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한데, 방역 정책 완화로만 얘기가 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 기획실장은 “2년의 경험치를 갖고 사회적 약자층이 처한 취약한 부분을 국가가 어떻게 채울 수 있을지 계획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난약자지원 조례 등 법제화에 대한 제언도 나왔다. 랄라 활동가는 “재난안전기본법이나 감염병법 등엔 재난안전 계층이 여성, 어린이, 노약자 등으로만 구분돼있는데 재난의 사회적인 성격도 고려해 재난 취약계층을 포괄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재난 약자들이 일상에서도 평등한 조건이어야 재난이 터졌을 때도 평등한 조건이 되는 만큼, 일상에서부터 평등한 조건을 만들 수 있도록 상시 점검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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