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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은 왜 간호법에 반대하나

허남설·민서영 기자
지난 4월6일 대한간호협회 회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서 열린 간호법 제정 촉구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지난 4월6일 대한간호협회 회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서 열린 간호법 제정 촉구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의사단체가 국회를 상대로 ‘총력투쟁’을 선포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오는 15일 ‘간호법 제정 저지를 위한 전국 의사 대표자 궐기대회’를 연다고 밝혔다. 의협은 지난해 말부터 국회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며 간호법 제정 중단을 요구했다. 간호법은 간호사 업무를 현실에 맞게 조정하고 인력 확보 등으로 처우를 개선한다는 취지로 추진되고 있다. 지난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하고 전체회의 상정·의결을 앞두고 있다. 간호사와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의사들, 그들은 왜 이 간호법에 반대할까.

간호법 제정은 대한간호협회(간협)가 1977년부터 추진한 숙원이다. 1951년 제정한 ‘의료법’ 틀 안에서는 갈수록 다양해지는 간호 업무를 제대로 규정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빠른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 때문에 간호사의 업무 영역은 더 이상 ‘간호’에 그치지 않고 취약계층 대상 방문건강관리, 가정간호, 노인장기요양 방문간호, 만성질환관리 등으로 넓어졌기 때문이다. 이미 지역보건법, 학교보건법, 노인장기요양보험법 등 10개가 넘는 법률이 간호사의 다양한 영역을 규정하고 있다.

반면 의료법은 간호사의 임무를 ‘환자의 요구에 따른 간호’, ‘의사의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라고만 정의하고 있다. 간호사들은 이 개념이 다분히 의사 중심적이며, 자신들의 전문성을 제대로 담지 못한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 실제로 많은 국가에서 간호사들은 전문의료인으로 인정받으며 1차 의료를 수행한다. 미국에선 독자적인 약 처방과 의료기관 개원도 가능하다. 1903년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시작해 1923년 모든 주가 간호법을 제정했다. 독일 ‘간호직업에 관한 법’(1985), 캐나다 ‘간호사법’(1988), 영국 ‘간호사·조산사 법’(2001) 등 간호사만의 법제를 갖춘 나라는 적지 않다. 일본은 1948년에 ‘보건부조산부간호부법’을 만들었다.

국내에선 의사들의 반대 등에 부딪쳐 번번이 좌절되다가 코로나19 사태로 탄력을 받게 됐다. 의료진을 응원하는 ‘덕분에 챌린지’가 유행했을 정도로 간호사들의 수고가 사회적으로 집중 조명을 받게 된 것이다. 여기에 20대 대선까지 겹쳤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대선 후보들이 간호법 제정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2020년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의료인 중 간호사는 43만6000여명이다. 단 한 표라도 더 끌어내야 하는 정당 입장에선 무시할 수 없는 ‘표밭’인 셈이다. 국회 복지위에서도 여야 모두 간호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지난 1월11일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를 방문해 신경림 대한간호협회장과 함께 방호복을 입고 간담회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지난 1월11일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를 방문해 신경림 대한간호협회장과 함께 방호복을 입고 간담회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사회적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은 이번에도 간호법에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간호사 등의 역할과 책임을 규정한 의료법을 벗어나 간호사만의 법이 생긴다는 사실 자체를 불편해 한다. 간호법을 “간호단독법”이라고 부르는 데서 알 수 있다. 의사들은 자신들의 고유 업무라고 여겼던 ‘진료’와 ‘처방’ 권한을 간호사와 나눠갖거나, 간호사가 의사 없이 단독 개원을 할 가능성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간호사들은 달라진 간호사의 업무를 법 체계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의협은 “간호사의 불법·무면허 의료행위를 합법화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다만 현재 이 쟁점은 어느 정도 해소된 상태다. 원래 김민석·서정숙·최연숙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모두 간호사의 업무를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라고 규정해 의사들이 반발했다. 하지만 복지부도 이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문하고, 복지위 법안소위도 이를 받아들여 의료법과 똑같이 ‘의사의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라고 규정하기로 합의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간호사가 의사 없이 단독 개원하기는 사실상 쉽지 않은 셈이다. 이 밖에도 간호사의 역할과 관련해 간호법을 다른 법에 우선해 적용한다는 등 여러 조항들을 수정했다.

의협 역시 이 같은 ‘독소조항’들이 사라졌다고 인정하면서도 간호법 폐기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일단 간호법을 만들면 앞으로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등 의료기관에서 종사하는 다양한 직역이 독자적 법 체계를 요구할 명분을 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의협은 “모든 의료인이 유기적 협조체계를 통해 국민에게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도모하는 현행 시스템에 균열을 초래해 자칫 의료 자체를 붕괴시킬 수 있는 악법”이라고 주장했다.

간호사들은 일단 첫걸음을 뗐다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간협은 지난 10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일부 내용이 삭제된 것은 다소 아쉽다”면서도 “우수한 숙련간호인력 양성과 적정 배치, 처우개선을 통한 지속 근무 등이 가능해 국민의 건강 증진과 환자 안전에 기여할 길이 열리게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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