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것에 진심인 사람들

“당신 사기꾼이야” 삿대질해도, 아이들은 밥부터 먹여야죠읽음

최미랑 기자

사회복지 연구자가 ‘노답’ 아이들 사장님 된 사연

보호자이자 고용주, 이중 역할 익히는 중

아이들은 돌아온다, ‘떠나겠다’ 말하면서도

먹거리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앞치마를 두른 사회복지 연구자, 안윤숙 청년식당 대표입니다.

안윤숙 청년식당 대표·청소년자립학교 이사장이 5월 20일 전북 익산의 청년식당 2호점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안윤숙 청년식당 대표·청소년자립학교 이사장이 5월 20일 전북 익산의 청년식당 2호점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H는 희한한 아이였다. 열 여덟 살에 몸무게가 35㎏. 자그마한 여자 아이인데 눈빛 하나로 모두를 제압하는 오라가 있었다. 소년 재판을 받고 경기도 양주의 시설에 왔을 때, 먼저 온 아이들과 선생님 중 누구도 H를 건드리지 못했다.

6호 처분시설. 소년원에 보낼 정도는 아니지만 재범 가능성이 있고 가정의 교육 환경이 좋지 않은 아이들이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까지 머무는 곳이다.

H도 6호 처분시설에서 1년을 보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가정이 이미 파탄 상태라 돌아갈 집이 없었다.

퇴소 청소년을 위한 자립 플랫폼 청년자립학교에 처음 들어왔을 때, H는 안 대표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스팸만 먹어요.”

햄이라곤 사지 않던 안 대표는 H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런천미트’를 사서 구워줬다. “이게 아니”라며 입에도 대지 않았다. 가격이 한참 비싼 ‘스팸’을 가져오면 그제야 숟가락을 들었다.

“사람 미치겠더라고요. 어떻게 애한테 스팸만 먹여요!”

우당탕탕 좌충우돌, 속 터지는 3년의 시작점이었다.

먹는 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아이들

안윤숙 청년식당 대표(53)는 원래 청소년 상담에 관심이 많았다. 스물 셋에 결혼과 임신으로 중단한 학업을 서른을 훌쩍 넘겨 다시 시작했다. 청소년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자연스레 복지와 교정 시설에 관심이 갔다. 결국 사회복지학을 전공했고 박사 논문도 청소년 교정시설을 주제로 썼다.

박사과정 때 전국의 청소년 교정 복지지설을 싹 다 둘러보았다. 마침 지속 가능한 먹거리 연구에 관여하고 있던 터라 아이들 밥에 관심이 갔다. 식생활이라는 필터를 씌워 보니 놀라운 일들이 보였다.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라면과 과자, 탄산음료를 주식으로 여겼다. 일반 아동 결식률이 25%라면, 교정시설 청소년들은 60% 이상이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 똑바로 살라고 교육하는 것에 앞서 먹는 법부터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설을 나온 아이들은 얼마 못가 성인이 된다. 집밥을 가르치면 아이들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관련 일거리도 찾아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족과 같이 산다는 게 뭐예요. 먹는 법을 배우는 것부터 시작하는 거잖아요.”

시설 퇴소 청소년을 위한 안전한 정거장

H처럼 시설을 나온 아이들을 어떻게 사회에 적응시킬까. 앞서 안 대표와 사회복지 전공자, 청소년 교정시설 관계자,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2년간 이 문제를 연구했다. 시설 관계자들이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보호처분 기간이 끝난 아이들을 보낼 데가 없어요.’

‘왜요? 집에 가면 되잖아요.’ 안 대표도 처음엔 이런 순진한 생각을 했다. 바로 그 ‘집’이 문제의 시작인 경우가 대부분이란 걸 지금 만큼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최근 3년 아이들과 살아 보니 무슨 말인지 고스란히 이해가 됐다. 성적 학대에 노출될 위험이 큰 경우, 범죄 행위에 가담할 것을 부모가 요구하는 경우, 아이에게 나오는 지원금을 노리는 가족….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바깥으로 돌지 않으려면 대안적 모델이 있어야 되겠다고 판단했다. 때마침 ‘사회적 경제’가 크게 주목 받던 때라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어 보자고 덤볐다.

청년식당 2호점에서는 지역 취약계층 청소년에게 끼니를 무료로 제공하기도 한다.

청년식당 2호점에서는 지역 취약계층 청소년에게 끼니를 무료로 제공하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은 시장 경제를 통해서는 자립하지 못할 테니, 대안 경제를 통해서 자립할 수 있는 모델을 연구해 보자고 생각했어요.”

2년간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2019년, 사회적협동조합 청소년자립학교를 출범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제안해 설립 자금을 지원 받고, 안 대표가 이사장을 맡았다.

2019년을 시작으로 청소년자립학교를 거쳤거나 머무는 청소년은 30여명이다. 이들은 최장 1년까지 공동주택 ‘블루하우스’에 거주하면서 공부도 하고 일도 배운다.

원광대 앞 대학로에 위치한 청년식당은 이 청소년들의 일 거점이자 자립학교의 사업 모델이다. 2020년에 1호점, 지난해 2호점이 문을 열었고 3호점이 준비 중이다. 안 대표는 블루하우스와 청년식당을 오가며 청소년들의 일과 생활을 두루 돌보고 있다.

좌충우돌, 청년식당의 3년

아이들의 재사회화를 위해서는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교육해야 한다. 먹는 법, 직업관, 사람을 대하는 태도. 식당은 이 모두를 아우르기에 괜찮은 공간이다.

실상은 만만찮다. 안 대표는 아이들의 엄마 또는 선생님 역할에다 고용주의 고충까지 얻었다. 노동인권을 가르치는 동시에, 일하다 도망간 아이들을 잡아와야 한다.

“아이들이 처음엔 일 주일도 못 버텨요. 용역을 나가서 하루 벌고 일 주일을 노는 삶에 익숙해져있거든요. 안정된 직업 또는 일터 같은 것을 잘 상상하지 못해요.”

어렵게 식당에 고용한 사회복지사를 몇 명이 작심하고 따돌려 내보낸 적도 있다고 한다.

청년식당 1호점 밥상.

청년식당 1호점 밥상.

다행히 함께 아이들을 지켜보는 지역사회 손님들이 너그럽다. 직원이 손님에게 ‘툭’ 그릇을 던진 날, 단골 손님이 대표에게 이렇게 묻는다. ‘OO이는 오늘 무슨 일이 있었 나봐요?’

“1개월을 버티던 아이가 3개월을 버티고, 3개월을 버티던 아이가 6개월을 일해요. 떠났다가 다른 데서 힘들면 또 돌아와요. 여기서 잘 버틴다 해도 다른데 가면 더 힘들거든요.”

청소년기본법상 청소년인 24살까지는 이들 만을 위한, 특성에 맞는 일터가 따로 있어야 한다고 안 이사장은 본다.

“3년 간 40명쯤 겪으면서 시행착오를 많이 했어요. 아직도 모르는 게 많지만 일단 이거 하나는 알겠어요. 아이들은 기다려 줘야 한다는 것.”

함께 키우는 아이들

한 아이를 보호하는 데 때로는 전국적 연대가 필요하다. A의 사례가 그랬다.

제주서 자란 A는 어릴때 강력 범죄로 가족을 잃었다. 보육 시설에서는 수녀와 복지사들에게 침을 뱉고 머리를 뜯었다. 모두가 ‘노답’이라고 고개를 젓는 아이였다.

청소년자립학교에 적응하는 듯 하더니 집을 나가겠다고 했다. 도주 중인 고향 친구와 달셋방을 얻겠다는 것이었다. 반대하는 안 대표에겐 “거품을 물고” 달려들었다.

그런 그가 지금, 대학을 졸업하고 잘 산다. 변화는 그냥 찾아온 건 아니다. 안 이사장을 비롯해 A가 거친 여러 시설에 그의 선생님, 이모, 엄마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알게 모르게 전국적 연결망을 형성하며 연락을 주고 받고 A를 챙겼다.

“죽어라 싸울 땐 다시 못 볼 줄 알았는데….” 이젠 명절에 고향 찾듯 안 대표에게 찾아올 때도 있다.

“격정의 시기만 지나면 아이들은 달라질 수 있으니 기다려야 되는구나, 하고 알았어요.”

청년식당 2호점 밥상.

청년식당 2호점 밥상.

지금 청년식당에서 일하는 청소년 가운데 한 명은 요리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자기 식당을 열겠다고 준비를 한다. 두 명은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있다.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아이들은 ‘익산이 지긋지긋하다’ 하면서도, 청년식당 주변을 떠나지 않고 맴돈다. 안 대표는 이들에게 ‘일하지 않아도 좋으니 밥이라도 먹고 가라’고 한다.

“당장 아이를 몇 명 취업시켰다는 숫자가 성과인가요? 우리가 조급해하거나 우리의 필요에 의해 다그치면 아이들은 삐뚤어질 수 밖에 없어요.”

지역사회 연대의 힘

안 대표의 일과는 오전 4시쯤 시작된다. 연구 자료를 정리하고, 사업보고서를 작성하고, 청년식당 1호점에 들러 상황을 점검한다. 오전 10시쯤 2호점으로 넘어간다. 점심 장사를 마치고 1호점으로 돌아와 배달용 도시락을 만들고 저녁 예약이 있으면 또 식사를 준비한다.

체력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니 웃으며 “목욕탕”이라고 답했다.

원광대에서 공부하며 동네 목욕탕에 다니기 시작한 게 10년을 훌쩍 넘었다. 탕에서 매일 만나는 ‘언니들’은 청년식당을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한 축이다.

‘속옷 언니’, ‘주유소 언니’, ‘고시원 언니’…. 각자의 생업에 따라 별명으로 불리는 이들은 집 근처에서 각자의 텃밭을 일구고 있었다.

깻잎을 한 푸대, 상추를 또 한 푸대, 그 다음엔 오이, 고추…. 안 대표가 식당을 열었다 하니 ‘올타쿠나’ 하고 식재료를 가져오곤 했다.

청년식당에서는 익산 지역에서 난 식재료를 주로 쓴다. 지역 주민이 청년식당 김장 김치에 쓸 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청년식당에서는 익산 지역에서 난 식재료를 주로 쓴다. 지역 주민이 청년식당 김장 김치에 쓸 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식당이란 공간이 공동체를 엮기에 참 좋아요. 청소년자립학교만 열었을 때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거든요. 식당을 하니까 사람들이 밥을 먹으러 와요. 로컬 푸드나 친환경 먹거리의 중요성을 알리기에도 좋죠. 사회복지학 연구자가 밥을 해준다니까 좀 신기하기도 한가봐요.(웃음)”

‘집밥’을 콘셉트로 한 청년식당 1호점은 인근 병원과 대학 사람들이 가장 큰 고객이다. 코로나19 확산 영향으로 지금은 주로 도시락을 주문 받아 운영하고 있다. 민간 기업 등의 후원을 받아 지역 아동, 청소년, 취약계층에 무료 도시락을 배포하는 일도 이곳을 통해서 한다.

청년식당 2호점은 대학생들이 많이 찾는다. 메뉴는 김치찌개, 부대찌개, 짜글이. 지역의 취약계층 청소년은 누구나 여기 와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현재까지 청년식당은 예비 사회적기업이다. 청년식당에 주거와 교육까지 통합한 전체 프로그램을 사회적협동조합인 청소년자립학교가 총괄하고 있다. 앞으로는 학교 밖 청소년, 시설 퇴소 청소년, 보호종료아동을 두루 보호하는 법정 시설을 만드는 게 목표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청년식당 1호점은 도시락을 주문 받아 배달해 수익을 내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청년식당 1호점은 도시락을 주문 받아 배달해 수익을 내고 있다.

H는 밥을 잘 먹게 되었을까

‘사기꾼이다’ ‘고소하겠다’…. 안 대표는 지난 3년간 아이들로부터 욕이란 욕은 다 들어 봤다. 한밤중에 경찰이 찾아와 아이들 셋을 체포해 간 일도 있었고, 퇴소한 아이들이 숙소 문을 따고 들어와 물건을 털어간 일도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재밌고 행복하다” 말한다.

입맛을 계발할 기회가 없었던 아이들을 위해, 같이 텃밭도 일궜다. 함께 키운 상추를 따서 양푼이에 밥을 비벼먹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다. ‘갓 딴 오이가 진짜 연하고 맛있으니 딱 한 입만 먹어봐라. 딱 한 입만.’ 스팸만 먹던 H에게 네 살 아이에게 하듯 음식을 먹이던 일도 이제는 추억으로 남았다.

청소년자립학교의 공동 주거 시설 ‘블루하우스’ 앞마당에 만든 텃밭.

청소년자립학교의 공동 주거 시설 ‘블루하우스’ 앞마당에 만든 텃밭.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잘 뭉쳐요. 가족을 구성할 줄 알거든요. 누군가 위협하면 절대 용납 못해요. 의리가 있는 거에요.” 이 의리가 좋은 방향으로 쓰이려면 아이들의 비빌 언덕이 될 공동체가 중요하다고 안 대표는 말한다.

하지만 청소년자립학교에서 거주하는 건 딱 1년까지다. 돌보는 일 만큼이나 의존하지 않고 독립하도록 등 떠밀어 내보내는 일도 중요하다.

“아이들이 계속 변하는 게 정말 신기해요. 눈 부라리고 삿대질 하던 아이들도 어느새 다 제 주변에 돌아와 있어요. 적어도 스물 네 살 때까지는, 아이들이 원한다면 기회를 계속 줘야 돼요.”

스팸만 먹던 H는 얼마 지나지 않아 떡볶이를 먹기 시작했다. 이후엔 고기도 먹었다. 청소년자립학교를 나가 독립한 그는 여전히 좌충우돌 힘들게 살지만 가끔 청년식당을 찾아 김치찌개 한 그릇을 뚝딱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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