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청년은 효자가 아니라 ‘시민’…모두가 ‘돌봄자’가 되는 세상 꿈꾼다읽음

(20) 영 케어러로서의 코다

케어러를 생각한다

이길보라(영화감독, 작가) 영 케어러는 만성적인 질병이나 장애, 정신적인 문제나 알코올·약물 의존을 가진 가족 등을 돌보고 있는 청년을 일컫는 말이다. 가족돌봄청년 혹은 돌봄청년이라고도 부른다. 영 케어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일본에서 진행된 ‘케어러를 생각한다’라는 온라인 포럼을 보고 나서였다. 코다와 농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써왔던 마루야마 마사키 작가와 코다, 소다(SODA·Sibling of Deaf Adults의 줄임말로 농인의 형제자매를 뜻함), 코다 자녀를 키우는 농인, 영 케어러가 참가자로 등장했다. 각자가 수행했던 돌봄의 경험을 돌봄제공자와 돌봄수혜자의 입장에서 논했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주체가 당사자로서의 경험을 나눈다고만 생각했다. 논의는 보편적 돌봄으로 이어졌다. 돌봄 사각지대에 처해 있는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경유하여 돌봄의 권리에 대해 말했다. 난생처음으로 코다와 돌봄이라는 단어를 이어보았다.

2022년 7월 6일 코다코리아가 주최한 코다 연구사업 〈영 케어러와 코다〉 온라인 강연 및 대담 행사 갈무리. 코다코리아 제공.

2022년 7월 6일 코다코리아가 주최한 코다 연구사업 〈영 케어러와 코다〉 온라인 강연 및 대담 행사 갈무리. 코다코리아 제공.

아빠의 아빠가 됐다

돌봄제공자이자 영 케어러로서의 코다를 발견하게 된 것은 영 케어러 당사자이자 작가·영화감독으로 활동하는 조기현 작가의 글을 읽고 나서다. 조기현 작가는 스무 살 때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돌봄의 경험을 책 <아빠의 아빠가 됐다>에 담았고 치매가 시작된 아버지의 노동과 생애를 영화로 기록했다.

아버지의 병으로 급작스럽게 돌봄을 받는 사람과 돌봄을 하는 사람의 역할이 변경되면서 겪어야 했던 일들, 각종 수속 및 지원을 받기 위해 서류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부모와 자신의 관계를 증명하기 어려웠던 순간,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대리자이자 부양의무자, 가장이 되어야 하는 영 케어러의 모습이 어렸을 때부터 음성언어 중심 사회에서 농인 부모를 보호하고 대신해야 했던 코다의 경험과 겹쳤다. 친구들이 입시와 취업을 준비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갈 때 가족을 돌보며 이러다 뒤처지는 건 아닌지 불안해하고, 나의 돌봄은 이력서에 쓸 수 없는데 이 공백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던 건 일상 속에서 통역과 통역을 넘어서는 돌봄을 하는 코다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영 케어러와 코다 모두 자신의 돌봄을 ‘돌봄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나는 단지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돌봄을 수행하고 있는 것뿐인데 돌봄을 제공받는 부모는 수동적 존재가 되고 돌봄을 제공하는 영 케어러와 코다는 능동적 존재가 되는 경험을 한다. 쉽게 말해 부모는 불쌍하고 안타까운 존재가 되고 자녀는 효자가 되어 효행상을 받는다는 말이다. 이는 돌봄수혜자와 돌봄제공자 사이에 위계를 설정하고, 돌봄을 권리로서 말하지 못하게 한다.

영 케어러로서 통역 돌봄을 수행하는 코다의 일기. 이길보라 제공

영 케어러로서 통역 돌봄을 수행하는 코다의 일기. 이길보라 제공

작가는 <아빠의 아빠가 됐다>에서 “나는 효자가 아니라 시민”이라고 선언한다. 아버지와 나는 부모와 자식이 아니라 시민과 시민으로 관계 맺을 것이며 자신의 돌봄이 비가시적인 소모가 아니라 사회적인 의미를 갖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코다로서의 경험과도 이어진다. 나는 그저 통역을 했을 뿐인데 착한 아이가 되고 그로 인해 받은 표창장은 나와 농인 부모의 관계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돌봄을 제공하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부모는 사라지고 말 못하는 불쌍한 장애인으로서의 모습만 남았다. 누구나 돌봄수혜자이자 돌봄제공자가 될 수 있으며 그건 모두의 권리여야 한다는 논의는 없었다.

코다의 시선으로 영 케어러를 읽으면 읽을수록 코다와 영 케어러의 경험은 정확하게 만났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2021년에 공표된 실태조사를 통해 중학생 17명 중 1명, 고등학생 24명 중 1명이 영 케어러에 해당한다고 발표했다. 영 케어러의 범위와 역할은 다음과 같다.

①돌봄 대상자를 보살피는 성인 가족원을 대신해서 가사노동을 함

②아픈 가족을 대신해서 어린 형제자매를 돌봄

③장애나 병이 있는 형제를 보살핌

④눈을 뗄 수 없을 정도의 상태인 가족(주로 치매 등)을 신경 쓰기

⑤모국어가 제1언어가 아닌 가족이나 장애가 있는 가족을 위해 통역을 함

⑥가정의 경제 유지를 위한 노동

⑦알코올, 약물, 도박 등의 문제가 있는 가족을 보살핌

⑧암, 질환, 정신질환 등의 만성질환을 앓는 가족을 간호함

⑨장애나 병이 있는 가족을 수발함

⑩장애나 병이 있는 가족의 입욕, 배변 등을 보조함

[이길보라의 논픽션의 세계] 돌봄청년은 효자가 아니라 ‘시민’…모두가 ‘돌봄자’가 되는 세상 꿈꾼다

가족을 돌보는 청년 ‘영 케어러’
농인 가족 통역하는 코다도 해당
다문화가정 아이들도 마찬가지
청소년 인구의 5~8% ‘영 케어러’
한국은 18만~29만명 존재 추정

‘아빠의 아빠가 됐다’ 조기현 작가
“돌봄 행위는 사회적 의미 가져야”
돌봄제공자인 영 케어러가
동시에 돌봄수혜자가 되는 사회


이 중 ⑤의 경우가 정확하게 코다를 지칭한다. 상황에 따라 ②와 ⑨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코다는 음성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부모를 대신하여 형제자매의 보호자이자 통역사가 된다. 농인 부모가 다른 질병 및 장애를 갖고 있거나 다른 가족 구성원이 만성질환 및 장애가 있는 경우 그에 따른 여러 역할을 수행한다.

국가별로 특정 연령대를 중심으로 영 케어러를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 비교가 어렵지만 청소년 인구의 약 5~8%가 영 케어러라고 한다. 한국에는 청소년 인구 368만4541명 중 18만4000~29만5000명의 영 케어러가 존재한다고 추정한다. 지난 2월 보건복지부는 영 케어러에 대한 지원 대책 수립 방안을 발표하여 그에 따른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코다와 같은 통역 돌봄을 수행하는 영 케어러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모국어가 제1언어가 아닌 가족이나 장애가 있는 가족을 위해 통역을 하는 영 케어러에는 다문화가정과 같은 이주민의 자녀도 포함된다. 지난번 ‘이길보라의 논픽션의 세계’ 19화에 언급했던 미등록 이주아동도 이에 해당한다. 미등록 이주아동 중에는 부모가 몽골 국적 이주민이면서 동시에 농인인 경우가 있다. 미등록 이주아동이면서 동시에 코다로서의 중첩된 경험을 하게 된다. 언론에 소개된 영 케어러 중에도 급성질환으로 쓰러진 농인 부모를 돌보는 코다의 사례가 등장한다.


이처럼 영 케어러의 경험은 단일하지 않다. 돌봄의 범위가 넓고 다양한 것처럼 영 케어러의 범위와 역할 또한 마찬가지다. 다문화가정 자녀와 코다는 집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집 바깥에서 사용하는 모국어가 다르기에 통역을 비롯한 일상의 전반적인 돌봄을 수행한다. 통역 돌봄 또한 영 케어러의 경험이다.

돌봄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며 돌봄사회로

지난 7월, 영 케어러로서 코다를 인식하고 바라보기 위해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코다코리아에서 조기현 작가를 초대하여 ‘영 케어러와 코다’라는 제목으로 온라인 강연을 진행했다. 코다코리아는 코다의 고유한 유산과 다문화적 정체성을 축복하고 기념하며, 코다를 연결함으로써 코다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것을 미션으로 삼고 있는 비영리 단체다. 강연 후에는 영 케어러의 시선으로 코다를, 코다의 시선으로 영 케어러를 보는 대담도 이어졌다.

조기현은 코다의 돌봄은 영 케어러가 수행하는 돌봄 범위에 포함되는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며 추후 영 케어러 지원 대책 및 실태조사에 통역 돌봄을 수행하는 이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한국 정부와 언론은 코다를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코다의 돌봄에는 주목하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도 짚었다.

돌봄 의제를 연구해온 사회학자 시부야 도모코는 영국과 일본에서 실시한 영 케어러 실태조사와 그 결과를 토대로 지원책을 마련하는 과정을 <영 케어러>에서 소개한다. 그는 일찍이 영 케어러이자 이중언어사용자, 이중문화를 경험하는 코다를 <코다의 세계>에서 다루기도 했다. 일본 정부와 사회에서는 코다를 돌봄제공자이자 동시에 돌봄이 필요한 수혜자로 설정하고 있다. 이는 영 케어러로서 코다의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고 지원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시부야 도모코는 다음 세 가지를 영 케어러의 지원 방향성으로 꼽는다.

첫째, 영 케어러가 돌봄에 대해 안심하고 말할 수 있는 상대와 공간 만들기. 영 케어러들의 자조 모임과 그를 기반으로 한 활동을 일컫는다. 둘째, 영 케어러가 집에서 맡는 돌봄과 책임 줄이기. 이는 실제 도움이 필요한 영 케어러가 이용할 수 있는 행정적 서비스로 이어져야 하며 영 케어러의 부모와 가족에 대한 지원 체계를 포함한다. 셋째, 영 케어러에 관한 사회의식 높이기. 학교를 대상으로 한 설명회를 비롯해 영 케어러가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교사 및 의료·복지 전문가에 대한 연수가 이에 해당한다. 당사자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은 영 케어러가 누구이며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실질적으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위 지원 방향은 코다에게도 해당된다. 코다 당사자들의 자조 모임으로부터 출발하여 코다에게 통역 돌봄을 시키기보다는 코다 자신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자고 말하며 코다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활동해온 코다코리아의 사업 방향이기도 하다.

조기현은 현재 진행 중인 영 케어러 지원 대책은 우리가 어떤 돌봄사회를 만들 것인지에 대해 논의하고 실험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지역사회 통합 돌봄(커뮤니티 케어)과 비공식 무급 돌봄에 대한 지원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영 케어러에 대한 논의 및 지원 대책이 먼저 이루어진 것은 ‘돌봄제공자에 대한 체계적인 첫 지원’을 뜻하기도 한다고 말이다. 돌봄과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발견하고 지원하는 것은 결국 모두가 돌봄자가 되는 사회, 돌봄사회로 가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는 더 케어 컬렉티브가 책 <돌봄 선언>에서 던졌던 질문과도 이어진다.

“여기에서 우리는 묻는다. 우리가 돌봄을 우리 삶의 중심에 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영 케어러는 돌봄사회를 논할 수 있는 장

코다는 영 케어러이자 (평생) 케어러다. 음성언어 중심 사회에서 통역 돌봄을 수행하는 영 케어러로서 코다를 인식하고 지원하는 것은 곧 돌봄사회로 향하는 출발점이다. 조기현은 영 케어러에 대한 논의와 대책은 단순히 어떤 집단을 지원하자는 의미를 넘어 여러 이슈를 논의할 수 있는 장이 된다고 말한다. 이렇게 코다는 돌봄 의제와 만난다.

그러나 놓치지 말자. 누군가를 돌보는 경험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벤테 스톰 모와트 호글랜드는 “돌봄 책임과 그 역할 수행이 공감 능력, 문제해결 능력, 위기조절 능력 등을 향상시키고 탄력회복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경험은 복잡하다. 인생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영 케어러이자 장애 부모의 자녀이자 언어적 소수자의 자녀인 코다는 복잡다단하지만 동시에 두터운 삶의 경험을 지닌다.

연재를 통해 논픽션을 경유하여 세상을 바라보았다. 나와 비슷하고도 닮은 경험들을 만났다. 질문과 사유는 다른 논픽션으로 이어졌고 논의의 장을 직접 여는 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를 통해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기를 연습한다. 논픽션은 내게 더 큰 세상을 만나는 장이자 질문의 도구다. 논픽션을 사랑하고 아끼는 창작자로서 발견의 경험을 이어가고 싶다. 이것으로 연재를 마친다. <시리즈 끝>

■이길보라


[이길보라의 논픽션의 세계] 돌봄청년은 효자가 아니라 ‘시민’…모두가 ‘돌봄자’가 되는 세상 꿈꾼다

영화감독이자 작가이다.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이 이야기꾼의 선천적 자질이라고 믿고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든다. 저서로는 <반짝이는 박수 소리> <우리는 코다입니다>(공저)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당신을 이어 말한다> 등이 있고, 연출한 영화로는 <로드스쿨러> <반짝이는 박수 소리> <기억의 전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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