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일률적 방역조치, 부작용 많아…스스로 관리 ‘자율방역’이 필요한 이유읽음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코로나 6차 대유행 극복 어떻게 ③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비상한 상황에는 비상한 조치가 따른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부터 오미크론 유행까지 2년여간, 전대미문의 전 지구적 감염병 위기를 맞아 평소라면 용납될 수 없을 조치들이 대거 시행되었다. 국가가 나서서 사람들의 감염 여부를 검사했고, 만난 사람과 방문한 장소를 캐물었으며, 감염자와 접촉자를 1~2주간 집에 가둬두었다. ‘위험한’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이 생업을 이어갈 수 없게 막았다. 사람들이 가는 장소를 제한했고 만날 사람의 숫자도 정해주었다. 백신을 안 맞으면 갈 수 없는 곳이 생겼다.

이 모든 조치는 팬데믹이 ‘국가적 위기’이기에 정당화되었다. 개개인이 합리적으로 행동해도 질병의 외부효과로 인해 사회 전체에 피해가 발생한다. 감염성 질환은 주변 사람에게 전파된다. 유행 규모가 의료체계 역량을 넘어가면 감염자는 물론 그 외 질환자들도 적절한 치료를 못 받게 된다. 대규모 감염 확산은 거래 축소와 인적자본 손실로 인한 경제적 피해로 이어진다. 이 피해는 결국 개인에게 전가되므로 정부의 적절한 개입을 통해 유행을 일정 수준 이하로 통제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정부 주도의 일률적 방역조치는 막대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초래한다. 감염의 위험성은 개개인의 연령, 건강상태, 백신 접종 여부, 가족구성, 직업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감염 예방을 위해 포기하는 활동의 편익 역시 각자 다르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부가 정할 경우 개인의 비용·편익 분석을 통한 의사결정에 왜곡이 발생하며, 이는 특정 집단에 대한 불균형한 피해로 귀결된다. 자영업자, 대면서비스업 종사자, 학생, 학부모, 예비부부, 문화예술인, 종교인 등 삶의 중요한 자리에 ‘고위험 활동’이 놓여 있는 사람들의 생계와 일상이 침해받았다. 보상은 모자랐으며 보상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했다. 그래서 국가 주도 방역은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당면한 국가적 위기 앞에 공동체 차원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했지만, 그 노력은 개개인의 삶에 파괴적인 영향력을 미쳤다. 이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해선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유행의 ‘사회적 위험’이 그 유행을 감당할 ‘위험수용능력’보다 작아지는 것이다. 효과적인 백신과 치료제 개발, 병독성이 비교적 작은 변이의 등장, 대규모 유행에 따른 감염면역 획득 인구 증가 등은 다음 유행의 파급력을 약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한편 확진자 재택치료 활성화, 동네 병·의원에서의 검사·진료 체계 구축, 입원환자 병상 마련, 감염의 심리적 비용 감소 등을 통해 대규모 유행을 감당해낼 역량이 증대됐다.

‘더블링’, ‘확진자 폭증’, ‘켄타우로스 변이’ 등 자극적인 문구가 다시금 헤드라인을 장식하지만 예전과 지금은 다르다. 해외 상황을 보면 올 초 혹독한 오미크론 유행을 겪었던 나라에선 이번 재유행의 크기가 이전에 한참 못 미친다. 이미 정점을 지난 독일, 프랑스, 덴마크, 이스라엘 등에서 이번 유행의 최대 재원 중환자는 직전 오미크론 유행의 20~35%에 불과하며, 최대 일 사망자는 직전의 12~33% 수준에 머문다. 유행 크기가 감당 가능하다는 판단하에 대부분의 국가가 강제적 방역조치를 도입하지 않았다. 조심스럽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재유행의 크기가 사회가 가진 역량을 뛰어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개인의 행동이 사회 전체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면 국가가 개인의 삶을 통제할 근거가 사라진다.

다만, 사회적 위험이 작아졌다고 모든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코로나19는 여전히 개인에게 만만치 않은 질병이므로 각자 자기 활동의 위험과 편익을 판단하여 스스로 조심할 필요가 있다. 개인위생 관리와 유증상 시 휴식은 코로나19뿐 아니라 다른 질환으로부터 본인과 주변인을 지키는 방법이기 때문에 지속해야 한다. 국가에도 남은 역할들이 있다. 개인과 시설 특성에 따른 맞춤형 지침을 제공하고, 아프면 쉴 수 있는 제도와 인식 정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불균형한 피해를 야기했던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한 장기적인 대책 마련도 정부의 몫이다. 국가는 국가의 역할을, 개인은 개인의 역할을 다한다면 이번 위기도, 또 얼마나 자주 올지 모르는 앞으로의 위기도 넉넉히 이겨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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