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장애인 의료·돌봄, 언제까지 가족이 전부 맡아야 할까요”

민서영 기자
14일 국회도서관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 시민단체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연 ‘중증·중복장애인 의료돌봄체계 구축을 위한 증언대회 및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민서영 기자

14일 국회도서관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 시민단체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연 ‘중증·중복장애인 의료돌봄체계 구축을 위한 증언대회 및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민서영 기자

매일 쓰는 숟가락과 밥그릇을 바꾸는 일이 ‘의료행위’인 사람들이 있다. 위루관(뱃줄)으로 영양을 공급받거나 기관 절개 후 목에 캐뉼라(튜브)를 꽂은 중증 장애인들이다. 이들이 먹고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기구인 위루관과 캐뉼라가 갑자기 빠지는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의료 먼허를 가진 사람이 이를 다시 꽂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론 매번 병원을 찾기 어려워 중증 장애인의 가족이 의료법을 어기면서 이를 대신 하고 있다.

돌봄에 더해 의료 부담까지 홀로 감당해야 하는 중증 장애인의 가족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14일 국회에서 나왔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시민단체는 이날 국회도서관에서 ‘중증·중복장애인 의료돌봄체계 구축을 위한 증언대회 및 토론회’를 열었다. 이 증언대회·토론회는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다수 민주당 의원들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중증 장애인 부모 당사자들과 관련 단체들은 중증 장애인 의료 소모품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하고, 지역사회에 긴급돌봄센터 등 의료·돌봄체계를 구축하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어머니! 불법 의료행위를 교사에게 강요하지 마세요!”

뇌병변 장애와 지적장애, 호흡장애를 갖고 있어 캐뉼라를 꽂고 생활하는 중증 장애인 자녀를 둔 조지연씨는 8년 전 학교 체육시간 중 캐뉼라가 빠진 아이의 응급처치를 대신 하다 교장에게 “불법 의료행위를 교사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볼멘소리를 들었다. 조씨는 “아이의 안정과 응급상황에 대한 정황도 확인하지도 않은채 책임자로서의 부담감만을 토로하는 학교장의 태도에 진심으로 실망했고, 또다시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절망했다”고 회상했다.

섭식·배설·호흡 등 의료조치가 필요한 중증 장애 학생에 대한 의료 지원 시범 사업이 실시되고 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조씨는 “처음에 ‘우리보고 이런 애를 어쩌란 말이냐?!’라는 식의 태도를 보인 학교장을 보기 드문 이상한 교육자라고 생각했는데, 이 사안이 특수교육의 하나의 아젠다로 형성되면서 교육계 종사자 많은 분들께서 같은 얘기를 하시는 것을 보며 정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말했다.

배에 위루관을 삽입한 14살 중증 장애인 자녀를 둔 양희원씨도 “위루관의 교체는 의료행위임으로 학교에서는 할 수 없다”는 학교 측 말에 점심시간마다 직접 학교로 가 자녀의 위루관을 교체해왔다. 지방에 있는 할머니댁에서 실수로 위루관이 빠진 날엔 위루관 삽입을 할 수 있는 병원을 찾는 데만 7시간이 걸려 아이가 쫄쫄 굶는 걸 지켜봐야 했다. 양씨에게 무엇보다 부담이 되는 건 돌봄·의료에 드는 비용이다. 양씨는 “3개월에 한 번씩 교체하는 위루관은 어느 한순간에 희귀난치병 환자의 인원수가 너무 적어 코드에서 빠지면서 보험이 적용되지 않게 됐다”며 “우리 아이한테 위루관은 숟가락, 밥그릇 같은 건데 보험이 되지 않아 큰 금액이 지속적으로 빠져나가고 있다”고 했다. 보험이 적용되던 때 2만5000원 수준이었던 위루관 교체 비용은 비급혀 항목으로 전환 후 자부담으로 25만원을 내야 한다.

가족에게 떠맡겨진 의료·돌봄 숙제···건보 적용 확대하고 지역 긴급 돌봄센터 설치해야

이날 발제는 김신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중복장애특별위원회 위원장이 맡았다. 자신도 26살 중증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라고 소개한 김 위원장은 “20년 전 딸이 병원에서 퇴원할 때 두 달 동안 석션 같은 기술을 간호사가 교대할 때마다 하루 세 번 배웠다”면서 “그런데 그 (의료·돌봄의) 숙제가 왜 저에게, 부모에게 왔느냐는 생각을 이제서야 하게 됐다. 지역사회 간호체계나 지역사회 의료노동체계로 들어가야 하는 숙제들이 온전하게 가족에게 역할을 떠맡기는 식으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중복장애특별위원회의 요구 정책으로 장애인 보조기기나 의료 소모품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하고, 치과치료시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중증 장애인의 건보 적용과 수가를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위루관 특수분유 등 장애인 일상에 필수적인 약품은 유동식 퇴장방지 약품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또 중복장애인을 돌보는 활동지원사에게 석션과 위루관 교체 등의 의료행위를 허용하고, 지역 단위 긴급 돌봄센터를 설치해야 한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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