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장벽의 도시
투명장벽의 도시

기획취재팀 | 김보미(전국사회부) 배문규·김한솔·김지혜(스포트라이트부)

시각장애인 영어교사 김헌용

서울 신명중 김헌용 교사가 지난달 15일 지팡이를 두드리며 학교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맞은편 거울에 비치고 있다. 그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장애인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느끼는 소외감을 털어놨다. 지난 12년 동안 보이지 않는 차별과 맞서온 그는 “이젠 장애인 교사의 존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동훈 기자 zenism@kyunghyang.com

서울 신명중 김헌용 교사가 지난달 15일 지팡이를 두드리며 학교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맞은편 거울에 비치고 있다. 그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장애인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느끼는 소외감을 털어놨다. 지난 12년 동안 보이지 않는 차별과 맞서온 그는 “이젠 장애인 교사의 존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동훈 기자 zenism@kyunghyang.com

복도 위 노란 점자블록을 시각장애인이 지팡이를 두드리며 걸어간다. 이곳은 학교, 시각장애인은 선생님이다. 이 광경에 위화감이 드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장애인 교사도,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춘 학교도 흔치 않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에게 학교의 벽은 높다. 교육부는 장애인 고용의무를 지키지 못할 때 납부하는 벌금을 공공부문에서 가장 많이 낸다. 지난해 장애인 교사를 뽑지 않아 낸 고용부담금이 385억원. 전체의 79%다. ‘교대·사범대에 지원하는 장애인이 없어서’ 교원 50여만명 중 장애 교원이 1%에 불과한 것일까. 장애인은 교사에 부적합하다는, 감히 누구를 가르치냐는 ‘장애인 차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김헌용 신명중 교사

김헌용 신명중 교사

김헌용 신명중 교사(36)는 지난 12년간 학교 현장에서 이런 차별 구조에 맞서왔다. 그에게는 ‘시각장애인 영어 교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서울에서 1급 시각장애인 최초로 임용고시 일반 교과에 합격했다. ‘인간 승리 주인공’으로 불렸지만, 학교 현장은 좌절의 공간에 가까웠다. 학생들과의 만남은 기쁨이었지만, 장애인이 교사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설득하고 얻어내야 하는 것 투성이었다.

지난달 14일 학교에서 만난 그는 “이전엔 장애인 교사가 교실에 있는 것만으로 의미 있다는 생각으로 버텼다면 이제는 차별적 현실을 바꾸려 한다”고 말했다.

- 왜 선생님이었나.

“다섯 살 때 시력을 잃었다. 막연히 안마사나 물리치료사, 맹학교 교사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직업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대학 진학을 한다면 교사 말고는 선택지가 없어보였다.”

- 특수교육과에서 영어 교사가 됐다.

“지난해 진주교대가 장애인 지원자를 고의 탈락시켜 문제가 됐다. 진주교대는 그나마 장애인학생 선발절차가 있던 것이고, 아예 뽑지 않는 곳이 더 많다. 일반전형에 ‘무모한 도전’을 할 순 없었다. 특별전형으로 특수교육과에 진학했다. 장애 당사자면서도 몰랐던 것들을 배우는 값진 경험을 했다. 영어 교과를 준비한 건 사실 교사가 되고 싶다면 자연스러운 일었다. 선발 인원, 지역에서 선택이 더 넓었다.”

시각장애인 선생님이 가르치는 수업 광경을 쉬이 떠올리는 이는 드물 것이다. 김 교사가 있는 5층 교실에 학생들이 찾아와 지정석에 앉는다. 자리 배치를 외우고 목소리에 익숙해지면 아이들과 교감하기가 어렵지는 않다. 교단에는 점자 영어 교과서가 놓여 있다. 그가 메고 다니는 작은 가방은 점자정보단말기 ‘한소네’. 수업에 쓸 자료를 단말기에 입력한 뒤 버튼을 조작하면 텍스트가 점자로 바뀐다. 업무지원인이 김 교사와 호흡을 맞춰 자료 배부나 출석 관리 등 보조 역할을 한다. 이런 체계가 저절로 갖춰진 것은 아니었다.

- 수업 준비는 어떻게 하나.

“수업 준비 과정은 비장애인 교원과 다를 게 없다. 문제는 학교와 교육청에서도 장애 교사는 처음이었고, 나도 수업은 처음이었다. 점자책이 없어 복지관에 맡겨 일일이 준비해야 했고, 점자단말기도 대학 때 대여받아 쓰던 걸 무단 연장했다. 국립특수교육원에서 점자 교과서를 제공하기 시작한 2017년 전까지는 교과서와 지도서 준비만으로도 학기 초가 다 지나갔다.”

김 교사가 점자정보단말기 ‘한소네’를 조작해 수업 자료를 읽고 있다. 성동훈 기자

김 교사가 점자정보단말기 ‘한소네’를 조작해 수업 자료를 읽고 있다. 성동훈 기자

- 기술 발전은 도움이 안 됐나.

“장애인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은 디지털 전환은 또 다른 장애가 된다. 대표적인 것이 전자칠판이다. 시각장애인을 고려한다면 버튼을 눌렀을 때 어떤 기능인지 소리가 나야 한다. 영상을 보여주다 판서로 전환하려 해도 바뀌었는지 알 수 없다. 이런 기기는 사용자가 위축될 수 있다. 기술발전이 오히려 격차를 키운 것이다.”

- 코로나19 이후 원격수업도 부담됐을 것 같다.

“그나마 교실에서는 느껴지던 학생들의 반응을 비대면 수업에선 전혀 느낄 수 없다. 청각장애인 교사는 마스크를 쓰면 입모양을 볼 수 없어 학생, 동료 교사들과의 소통이 더 어려워진다. 첨단 기술보다 투명 마스크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 누군가는 이런 생각을 할 것 같다. 장애인 교원이 왜 있어야 하냐고.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사회 구성원 중 누군가는 장애가 있을 수 있고, 그렇다면 장애인 교원도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경우 인구 대비 장애출현율은 5%대인데 장애 교원은 1.5%에 불과하다. 1991년 장애인의무고용제도가 도입됐지만 2007년에야 교원임용시험에서 장애인 구분 모집을 시작했다. 이후 15년이 지났지만 사대·교대의 66%가 장애인을 뽑지 않는다. 다양한 사람들이 교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기본 전제이고, 고민해야 할 것은 장애 교사가 어떻게 교직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지이다.”

주위선 ‘인간 승리’라 부르지만
성적 덜 민감한 1학년만 맡거나
주요 보직서 배제, 교원평가 낮아

- 장애인 교원은 어떤 존재인가.

“유령이다. 주요 업무에서 아예 배제된다. 13년차인데 담임을 한 번도 맡아보지 못했다. 담임이나 보직을 맡지 못하니 승진과 성과급까지 영향을 받는다. 항상 B등급(교원평가 등급은 S, A, B로 나뉜다)이다. 눈에 띄지 않는 장애를 가진 선생님들도 장애를 밝혔다가 ‘하자 있는’ 교사가 될까봐 장애를 숨기게 된다.”

지난 5월 강원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청각장애 교사를 모욕하는 교권침해가 발생했다. 당시 학생들은 교사가 떠들어도 못 듣는다며 반복적으로 책상을 치고 욕설을 했다. 학생들은 교권보호위원회에서 징계를 받았지만, 교사는 단순 교권침해로 다뤄졌다며 인권위에 진정했다.

- 무엇이 문제였나.

“강원 사건 직후 충남 홍성에서도 교권침해(학생이 교단에 드러누워 교사를 촬영)가 발생했다. 충남은 이슈화됐지만, 강원은 그렇지 못했다. 교권침해는 언어폭력, 신체폭력, 불손한 행위 등 다양한 유형이 있지만 장애인 차별은 빠져있다. 애초에 장애 교원이 없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강원 교사의 호소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라는 점을 명확히 해달라는 것이다.”

- 본인이 겪은 차별은 없었나.

“예전 중학교에서 3년 내내 1학년을 맡은 적이 있다. 2·3학년을 맡겠다고 해도 1학년을 시켰다. 알고 보니 학교가 학부모회장과 협의를 했더라(1학년은 자유학기제라 성적에 덜 민감하다). 명백히 장애에 근거한 차별이었다.”

- 장애와 관련한 혐오 표현도 많다.

“애들끼리 평소에 ‘장애인이냐’는 말을 많이 쓴다. 그럴 때 ‘누가 선생님 부르니?’라고 하면 움찔한다. 학생이 수업 시간에 종이비행기를 날리거나 돌아다니는 경우도 있다. ‘내 수업시간에 그러는 건 다른 선생님 경우와 다르다, 장애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주의를 준다. 타인의 존재를 인식하고, 타인의 고통에 민감해지는 게 인권교육이라고 생각한다.”

- 교사로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인력지원, 업무분장… 한두 가지로 꼽을 수 없다. 장애인으로 살다보면 뭐가 제일 힘드냐는 질문도 받는데 솔직히 제일 힘든 걸 꼽기 어렵다. 눈뜨고 자기 전까지 겪는 모든 일에 장애가 관여된다. 장애감수성이 교육행정에도 반영돼야 하는데 현재는 담당자만 정하고 그쪽으로 업무를 몰아넣는 식이다.”

장애교육의 화두는 통합교육이다. 특수교육대상자가 일반 학교에서 장애 유형, 정도에 따라 차별받지 않고 함께 교육받는 것을 의미한다. 2007년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 만들어지면서 물리적 통합은 이뤄졌지만, 따돌림이나 배제 같은 보이지 않는 벽은 여전하다. 입시 위주인 중·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통합’은 어려워진다.”

- 통합교육은 무엇인가.

“장애인을 한 공간 안에 두는 것만으로 통합이 이뤄질 수 없다. 통합을 돕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수행평가나 프로젝트에 장애학생도 함께할 방법이 필요하다.”

- 장애학생이 다른 기준(쉬운 기준)으로 평가받는 것이 ‘공정하지 않다’는 반감이 있다고 들었다. 성적에 예민하니 비장애인 ‘역차별’ 얘기도 나온다고 한다.

“공정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가치는 인권이다. 인권이 무너지는데 공정을 외쳐봤자 무슨 소용인가. 장애학생들은 공정을 말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2019년 출범한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장교조)’은 세계 첫 장애인 교원 노조다. 김 교사는 지난해 2대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장애교사들의 정보 교류 모임이 노조 결성으로 이어졌다.

감수성 없는 교육행정에 고되고
생존 위해 설득하는 과정 치열
차별적 현실 바꾸려 ‘장교조’ 결성

- 기존 교원단체도 있지 않나.

“기존 단체들이 장애 의제를 전면적으로 다루는 데 한계가 있었다. 장애인 교원은 장애인고용촉진법에 의해 구분 모집된 사람들이다. 할당제는 취업에 도움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그 자체로 낙인이다. 다른 교사와 어울리거나 업무를 맡는 데서 한계가 있다. 현재 5200명을 장애인 교원(국공립)으로 추정한다. 노조에는 15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교육감 선거 때 장애교원 전담 행정부서 설치, 인사상 차별 철폐, 편의지원 등을 요구했다.”

김 교사는 2010년 임용시험 합격 이후 언론 인터뷰를 많이 했다. 당시 기사들에 대해 말을 꺼내자 갑자기 한숨을 쉬었다.

“합격하고 갑자기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교육청에서 협의도 없이 보도자료를 낸 것이었다. 인터뷰를 하긴 했는데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언젠가는 스승의날 교실에 가보라 해서 갔더니 웬 파티를 하고 있었다. 방송사에서 촬영을 나와 있었다. 나한테 알리지도 않고 윗선이랑 협의한 거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인터뷰에 응했다. 장애교원 첫 세대로서 의무감도 있었다.”

- 장애를 ‘극복’ 대상으로 쓴 기사들도 불편했을 듯싶다.

“장애를 드러내는 게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계속 이야기하면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진다. 장애는 자연스러운 거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아프게 되니 특별한 게 아니라고. 장애도 삶의 일부라는 인식이 정착되었으면 한다.”

교사로서 학교 출근하는 건 즐거움
‘장애인 교사’ 당연시 되었으면 해
국립장애인도서관장 되는 게 꿈

- 교사로서 목표가 있나.

“장애인 교사의 존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면 좋겠다. 나는 학교로 출근하는 게 즐겁다. ‘선생님 수업 재밌어요’라는 말에 기쁨을 느낀다. 단기 목표는 담임교사다. 제자들과 끈끈한 관계를 맺고 싶다. 개인적 목표는 국립장애인도서관장이다. 워낙 책을 좋아한다.(웃음)”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취미에 대해 이야기하다 덮으려던 노트북을 다시 열었다. 그는 “그림 감상을 좋아한다”고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미술 책을 읽다보면 그림이 눈으로 보이는 듯하다(그는 불빛을 구분하는 정도다). 이건희 컬렉션 전시에 갔다가 클로드 모네의 ‘수련’을 봤다. 화가가 시력을 잃어가면서 그린 그림이라 내가 느끼는 세상과 비슷할 것 같았다. 어떤 흐릿한, 아련한 빛의 느낌으로 다가왔다. 인상파 화가는 색채로 표현을 하니 형태의 경계가 모호하지 않나. 장애와 비장애를 나누는 것, 장애를 경증과 중증으로 나누는 것 역시 부자연스럽다. 눈으로 봐도 놓칠 수 있고 보이지 않아도 인식할 수 있는 세상이 있다.”

김 교사가 망설임 없이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그만한 내공을 쌓기 위해 버텨냈을 시간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의 눈을 가만히 바라봤다. 희게 변한 눈동자가 그만의 유일무이한 특성처럼 보였다.

클로드 모네의 '수련'

클로드 모네의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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