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전기요금 인상에 생활비 부담…“추위 피해 쇼핑몰 가요”

이유진·김송이·윤기은 기자

“먹고사는 비용은 다 올랐죠. 집에서도 난방을 어떻게 틀어.”

지난 8일 오후 6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인근 노상에서 분홍색 꽃 한 단을 집어 노란 끈으로 묶으며 A씨(59)가 말했다. 영하를 밑도는 날씨에 A씨의 열 손가락은 모두 벌겋게 부어 있었다. 이곳에서 꽃다발을 만들어 파는 A씨 곁에는 온풍기도, 핫팩도 없었다. A씨는 “핫팩도 사서 쓰면 한도 끝도 없이 돈이 든다”며 “지하상가 화장실에서 잠깐 몸을 녹인다”고 했다.

줄줄이 오른 각종 공공요금
소상공인·취약계층 직격
1분기·하반기 추가 인상 예고

올겨울 한파는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에게 유독 가혹하다. 전기요금을 필두로 각종 공공요금이 줄줄이 올랐다. 9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을 보면 지난해 1~3분기 소득 하위 20% 가구가 연료비로 지출한 금액은 월평균 6만6950원으로 1년 전(5만9588원)보다 12.4% 늘었다. 같은 기간 소득 상위 20% 가구 연료비 증가율(6.8%)의 두 배다. 한파가 본격화한 4분기에는 지출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서울 용산구 한 식당은 지난달부터 저녁 장사를 접고 점심에만 문을 연다. 식당 주인 김모씨(62)는 “지난해 말 처음으로 전기요금만 40만원이 넘었다”며 “난방비랑 가스비라도 줄여보려 한동안 점심에만 가게 문을 열 생각”이라고 말했다. 강서구 한 PC방 사장 박모씨는 “전기요금이 10% 가까이 오른 탓에 이용료 인상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10년 가까이 한 시간 이용요금 1000원대를 유지했는데, 2000원을 고려 중”이라고 했다.

난방비 부담에 집이 아닌 곳에서 추위를 피하는 이도 늘고 있다. 신도림역에서 만난 길모씨(66)는 “주변을 보면 가스비 걱정 때문에 역에 나와 있다는 사람도 있고, 은행 가서 책 본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서울 여의도역과 대형쇼핑몰을 잇는 지하통로에도 추위를 피해 모여든 이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일용직 노동자 B씨(50)는 “일 없는 주말에는 돈 안 쓰고 시간을 때우기 좋다”고 말했다. 그는 “화장실엔 따뜻한 물도 나온다”고 했다.

지난해 전기요금을 3차례 올린 정부는 올해 1분기 전기요금을 kWh(킬로와트시)당 13.1원 인상했다. 역대 최대 인상치다. 올 하반기에도 전기료 추가 인상과 가스요금 인상이 예고된 터다. 지하철·시내버스 등 대중교통 요금도 4월부터 오를 것으로 보인다.

정부 “에너지바우처 확대”
시민단체 “예산 400억 깎여
지원 대상 32만가구나 줄어”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에너지 취약계층의 비용 부담 완화를 위해 겨울철 에너지바우처의 가구당 평균 지원단가를 7000원 추가 인상한다고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한다.

김은정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간사는 “지원 예산 총액을 늘리지 않고 (바우처) 단가만 인상하는 것으로는 대책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했다. 올해 에너지바우처 예산이 지난해보다 약 400억원 깎인 탓에 지원 대상이 32만가구나 줄었다는 것이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취약계층은 연료비가 올라가면 식대를 줄이기 위해 극단적으로 노력하거나, 인간관계를 포기하는 등 여러 생활요인에 악영향을 받게 된다”며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규모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기초생활수급자를 에너지 빈곤층으로 단순 치환하는 것도 부적절하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주거환경 마련 등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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