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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이몽’ 과학적 근거, 의대증원 2000명 의·정 갈등의 끝은 어딜까요?

김원진 기자    김나연 기자
지난 17일 오후 서울의 한 의과대학의 모습. 이날 대한의사협회와 의대 교수 단체 등은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은 향후 공공복리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상황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연합뉴스

지난 17일 오후 서울의 한 의과대학의 모습. 이날 대한의사협회와 의대 교수 단체 등은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은 향후 공공복리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상황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연합뉴스

지난 16일 서울고등법원이 의료계 측의 의대증원 집행정지 신청을 각하·기각하면서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은 1500명 가량 늘어납니다. 의대 총 정원은 올해 3058명에서 내년도 최소 4547명~최대 4567명 규모가 됩니다. 아직 본안 소송이 남아있고, 대학별 학칙 개정 등 절차도 지켜봐야 하지만 적어도 2025학년도 의대증원은 확정적인 사실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잠시 숨을 돌린 듯 보이지만 의·정 갈등은 해소될 기미가 없습니다. 갈등의 한 축에는 2000명 의대 증원의 ‘과학적 근거’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의·정은 서로에게 과학적 근거를 요구합니다.

의료계는 여전히 정부의 의대증원 추진 과정이 불투명하고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의료계는 정부가 의대증원 2000명의 근거로 삼은 연구보고서 3개 중 일부에는 편향이 있을 수 있고, 각 보고서에서 이뤄진 의사인력 추계 또한 검증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의대 증원 규모는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결정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향신문 자료사진

정부는 의대증원 추진이 3개의 연구보고서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비 의사수 등 각종 데이터를 종합한 과학적 근거에 기반했다고 반박합니다. 의료계에 과학적 근거를 갖고 오면 2025학년도 이후 의대 정원 규모에 관한 논의 가능하다는 말도 되풀이합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의료계가 통일된, 합리적인, 과학적인 안을 제시하면 언제라도 정부는 정원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게 논의하겠다”고 했습니다.

정부는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다고 하고, 의료계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반박하는 상황이 수개월째 공전하고 있습니다. 의·정간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는 상황에서 과학적 근거를 둘러싼 공방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의료계가 의대 증원 결정의 효력을 멈춰달라는 집행정지 사건의 항고심 결정이 내려진 16일 서울 용산구 의사협회에서 열린 2005년도 수가협상에 대한 의협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마친 임현택 회장이 현수막 앞으로 지나가고 있다. | 김창길기자

의료계가 의대 증원 결정의 효력을 멈춰달라는 집행정지 사건의 항고심 결정이 내려진 16일 서울 용산구 의사협회에서 열린 2005년도 수가협상에 대한 의협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마친 임현택 회장이 현수막 앞으로 지나가고 있다. | 김창길기자

우리가 “과학적이다” 주장하는 의·정

정부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을 두고 흔히 ‘근거기반정책’이라 합니다. 정부의 정책이나 사업 추진 전 과학적 근거를 확인하는 일부 절차는 법령에 명시돼 있기도 합니다. 정책 추진 전 연구용역을 맡기거나 사업 타당성 조사를 하는 것도 근거기반정책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해관계자가 많거나 의대증원처럼 이해관계자의 목소리가 큰 상황에선 과학적 근거가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의·정간 갈등에서 보듯 각자의 입장에서 정책 근거가 과학적이라고(혹은 과학적이지 않다고) 내세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래를 예측해 필요한 의사수를 추정하는 과정에서 단 하나의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의료인력 추계는 말 그대로 추정입니다. 여러 가지 변수를 가정한 뒤 부족 의사수를 추계하는데, 추정에 사용한 변수 하나만 빠지거나 더해도 예측값이 달라집니다. 관점과 입장에 따라 추계에 사용하는 가정과 변수가 달라지고, 이에 따라 부족한 예상 의사수도 차이나기 마련입니다.

정부가 의대증원의 근거로 내세운 홍윤철 서울대 예방의학과 교수의 연구에서도 몇 가지 시나리오가 제시됩니다. 시나리오마다 가정이 달라집니다. 홍 교수의 연구에선 65세 이상 의사의 생산성을 어떻게 가정하느냐에 따라 향후 필요한 의료인력 추계값에 차이를 보입니다. 홍윤철 교수의 추계에서 65세 이상 의사의 생산성을 높게 평가할수록 필요 의사수는 줄어드는 구조입니다. 나이든 의사들이 젊었을 때처럼 환자를 돌볼 수 있다면 그만큼 새로운 의사가 늘어날 필요성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선 의·정간 서로 과학적임을 내세우며 벌이는 ‘숫자 싸움’ 자체가 비과학적이라고 지적합니다. “늘어난 의사들이 공공을 위해 어떻게 복무하게 하고 지역에 안착시킬지에 대한 논의는 없이, 2000명이 과학적인 근거가 있느냐 없느냐만 두고 다투는 논쟁은 공허하다”(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는 것입니다.

지난 14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행정대학원 한국정책지식센터에서 ‘의사 정원 어떻게 해야 하나?’란 주제로 열린 정책 & 지식 포럼에서 홍윤철 서울대 의대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4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행정대학원 한국정책지식센터에서 ‘의사 정원 어떻게 해야 하나?’란 주제로 열린 정책 & 지식 포럼에서 홍윤철 서울대 의대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숫자’ 아닌 ‘범위’로 공론화해 좁혀갔어야”

증원 규모 2000명이 과학적 근거가 있느냐는 논쟁은 정책 추진의 절차적 정당성과도 맞물립니다. 의료계는 의대증원 2000명은 과학적 근거도, 절차적 정당성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정부가 증원 규모 2000명이 과학적인지 충분한 논의도 없이, 그러다 갑자기 정부가 2000명 증원을 발표했다는 것입니다. 반면 정부는 의료현안협의체,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등 총 37회에 걸쳐 논의를 했고, 이 과정에서 대규모 증원은 예측할 수 있었다고 반박합니다.

전문가들은 이 대목에서 정부가 의대증원을 ‘범위’로 접근해 범위를 좁혀가는 방식을 택했어야 했다고 봅니다. “정부가 처음부터 2000명을 박아놓은 건 근거기반정책의 관점에서 보면 자충수”(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라는 것입니다. 공론화 과정을 거치며 입장차를 좁혀가는 과정을 공개했어야 한다고 김태윤 교수는 지적합니다. 그는 “이해관계자에 따라 최적의 의사수는 다를 수밖에 없다. 신중하게 공론화 과정을 거치며 (의대 증원) 범위를 좁혀갔다면 어느 순간 정부가 결정을 내렸어도 지금과는 다른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홍윤철 교수는 ‘하나의 숫자’로 접근하는 것은 과학적이지도 않다고 했습니다. 그는 지난 14일 서울대에서 열린 정책지식포럼에서 “어떤 한 지점으로 추계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타당하지 않고, 과학적이지 않다는 말씀드리려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의대 증원 규모를) 500~1000명이라는 숫자로 결론 부분에 써놓긴 했다. 그런데 제 보고서에 2000명은 사실 없다”고도 했습니다.

실제로 의대증원 절차를 보면 정부가 처음부터 반드시 2000명을 못박아 둘 필요는 없었습니다. 의대 증원 규모의 결정은 보건복지부에서, 학교별 정원 배정은 교육부에서 맡습니다. 복지부에서 공론화를 통해 증원 범위를 정한 뒤, 교육부에서 대학별 시설 등 여건에 따라 정원 배정을 했다면 지금과는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① 절차적 정당성 ② 과학적 근거 측면에서 모두 정부가 명분을 얻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정해진 숫자(2000명)에 맞춰 불과 나흘 만에 대학별로 ‘자 대고 자르듯’ 정원 배정을 했다는 비판은 피했을 것입니다.(의대 증원분 배정 절차는 나흘간 세 차례 회의만에 이뤄졌습니다)

법원 또한 ‘2000명’에 연연하지 말라고 정부에 당부했습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16일 의대증원 집행정지 소송 각하·기각 결정을 내리면서 “향후 의대정원 숫자를 구체적으로 정할 때 매년 대학 측 의견을 존중할 것”을 정부에 요구했습니다. 대규모 증원으로 인한 실습실 부족 등 의대생들의 학습 여건이 침해되지 않게 “대학 측이 자체적으로 산정한 숫자를 넘지 않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가 담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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