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년 2월부터 ‘개 식용 금지’ 전면 적용
업자들 보상·개 피해 최소화 논쟁 계속될 듯
[주간경향] 지난 2월 제정된 ‘개 식용 종식법(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은 동물 복지 증진을 위해 수십 년간 논란이 된 개 식용 산업을 국가가 철폐하기로 선언했다는 의미다. 이 법에 따라 2027년 2월 7일부터 한국에서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사육·도살·유통·판매하는 것이 전면 금지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9월 26일 개 식용 종식까지의 구체적인 절차를 담은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식용 개 1마리당 60만원 지원은 되고, 국민 1인당 25만원 지원은 안 되냐”고 발언하며 정치 논쟁으로 흘렀지만, 개 식용 종식 절차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기존에 개 식용 산업에 종사하던 농장주, 도축·유통·판매업자들은 “국가가 마음대로 폐업을 강제하면서 보상도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며 반발하고 있다. 전국 개 농장에서 사육하는 46만6000마리의 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선 확실한 대책이 없다. 동물보호단체들은 “개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농장주·상인들 정부 계획에 반발
농식품부는 이번 기본계획에서 개 식용 업계 5898개소의 전·폐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내년도 예산안에 관련 예산 1095억원을 편성한다고 밝혔다. 전·폐업하는 업자들에게 지원하는 보상금의 액수가 쟁점이다. 정부는 내년 2월까지 폐업하면 개 1마리당 60만원을 지원하고, 폐업 시기가 늦어질수록 지원금 액수를 줄이기로 했다. 2027년 2월 폐업하면 개 1마리당 22만5000원으로 지원금이 줄어든다. 유통·판매업자, 식당 등 식품접객업자에게는 폐업 때 400만원, 전업 때 250만원을 지급한다.
육견업자들은 지난 10월 8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전국육견상인회 주최로 정부안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보상액이 터무니없이 적어 ‘생존권 박탈’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오랫동안 생계를 위해 해온 일을 갑자기 폐업할 수 없고, 60대 이상 고령이 많아 다른 업종으로 변경하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개 식용이 금지되면서 염소가 대신 주목을 받았지만, 수요가 크지 않아 염소로 전업해 생계를 유지하기도 힘들다는 게 업자들의 말이다.
이귀재 전국육견상인회 회장은 집회에서 “1997년 IMF(외환위기) 때 사업 실패의 시련을 겪은 뒤 먹고살기 위해 개 농장, 개 식당을 시작했고, 365일 쉬는 날 없이 죽기 살기로 일만 하고 살았는데 정부가 한순간에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며 “요즘 경기가 최악인데도 자리 잡고 일하는 개 농장주, 식당, 유통상인의 생존권을 빼앗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길수 대한육견상인회 사무총장은 “나이가 80을 내다보는데 지금 폐업 신고를 하라고 하면 드러누우라는 소리밖에 더 되느냐”라며 “생존권 보장을 해주지 않는 한 나는 접을 수 없다. 정부가 강압적으로 언제까지 끝내라고 해도 끝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장주들의 단체인 대한육견협회는 폐업지원금으로 개 1마리당 최소 200만원 지급 등 5년의 영업손실을 정부가 보상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유통·판매 상인 단체들은 2년의 영업손실 보상, 3년간 최저생계비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육견업자들은 집회를 계속해 정부를 압박할 계획이다.
정부 “개 도살 위법이지만 탄력 운용”
개 식용 종식법의 배경엔 개 식용을 산업화한 한국의 특수한 상황과 이에 대한 정부의 모호한 태도가 있다. 축산물위생관리법은 소·말·양·돼지·닭·오리·사슴·토끼·칠면조 등은 먹는 용도로 도축할 수 있되 고통을 받지 않게 도축하는 방법을 규정하고 있다. 반면 개에 대한 규정은 없다. 즉 개를 식용 목적으로 도축하는 것은 법에 근거한 행위가 아니다. 하지만 정부는 그간 개 식용 산업 종사자들을 일제 단속하거나 처벌하지는 않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국제사회 비판이 나올 때만 한시적으로 규제했을 뿐 사실상 방치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개 식용 종식법이 만들어졌다. 육견업자들이 “그동안에는 규제하지 않다가 갑자기 폐업하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발하는 게 이 때문이다. 정부는 현재 기준 개 농장에서 식용 목적으로 사육된 개의 수 46만6000마리를 2027년 ‘0마리’로 만드는 것(제로화)을 목표로 한다.
어떻게 0마리로 만들 수 있을까. 기자가 동물권단체 케어의 김영환 대표를 통해 확보한 농식품부 공문을 보면, 농식품부는 지난 4월 각 지방자치단체에 보낸 협조 공문에서 “식용 목적 개 도살 행위는 동물보호법상 위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개 식용 종식법 성실 이행 농가 등은 법 목적 달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탄력적으로 법 운용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식용을 위한 개 도살을 위법행위로 명시하면서도 위법행위에 따른 처벌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농식품부의 이런 태도는 ‘남는 개들의 처리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개 1마리당 22만5000~60만원 지급’은 폐업에 대한 지원금 성격이지, 국가가 개를 산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에 개의 처리는 농장주가 해야 한다. 개 식용 종식법의 전면 적용이 3년간 유예된 상황에서 당분간 기존과 같이 개 식용과 도살을 계속할 수 있게 하고, 결과적으로 이를 통해 개의 개체 수가 줄어드는 셈이다.
농식품부는 이번 기본계획에서 남는 개를 어떻게 할 것인지 확실히 밝히지 않았다. 그 이유도 농장주의 자발적인 폐업과 개 처리를 최우선으로 해 유도한다는 취지로 보인다. 박범수 농식품부 차관은 브리핑에서 “3년 동안 자연사해서 처리되는 경우가 있을 것”이라며 “(남는 개에 대한) 계획이 없는 것은 아니고 자연사해서 (개체 수가) 줄어들고 남게 되면 농장에서 관리하도록 하면서 관리비를 저희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지난 10월 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개 농장을 개 보호소로 전환하고 농장에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하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뜬장을 없애고 울타리만 치면 어려울 것이 없다”며 “하지만 정부가 개들을 어떻게 처리하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대안이나 발표가 없는 것이 혼란스럽고 무책임하다고 느껴진다”고 했다. 이 대표는 “많은 국민이 염원하고 요구해 개 식용 종식법이 국회에서 통과됐으면 법의 취지와 목적을 실현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데 그 실현이 빨리 개를 잡아먹고, 보상과 지원을 하자는 것으로 흐르고 있다”며 “착취당하며 산 개들의 남은 여정을 인도적으로 이끌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논의는 안 하는 게 문제”라고 했다.
케어는 지난 8월 입장문에서 “개 식용 종식법의 목적은 무엇보다 개들을 죽이는 것을 막는 것인데 그 목적 달성을 위해 개들을 더 쉽게 죽이도록 해주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농식품부는 개농장과 개도살장에서 동물을 학대하고 죽이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단속해야 한다. 그것이 개 식용도 조기종식시키는 길”이라고 밝혔다.
남은 개 보호는 확정된 계획 없어
2027년 2월 이전까지 개 식용과 도살이 계속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상당수 개가 남을 가능성이 있다. 개 식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해 소비량이 줄었다고도 한다. 지난 10월 9일 기자가 과거 ‘개 시장’으로 유명했던 경기 성남시 모란시장에 방문해 살펴보니 식당 외부 간판은 대체로 ‘흑염소탕 전문점’이라고 돼 있었다. 다만 식당 내부 메뉴판을 보면 ‘보신탕’이 적혀 있었다. 사회적 비판을 고려해 외관상 개를 팔지 않는 것처럼 한 것이다. 한 유통업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최근 소비량이 많이 줄었고, 내년엔 더 줄 것”이라며 “상당히 많은 개가 남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육견업자들이 암수 분리 등 추가 번식을 막기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아 개체 수가 감축되지 않을 수도 있다. 육견업자들 집회에서 한 참가자는 “우리의 힘은 남아 있는 개”라며 “22만원을 받을 바에는 지금 46만 마리에서 1000만 마리까지 불려서 대한민국이 식용견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똑바로 보고 싶다”고 말했다. 보상 문제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경우 추가 번식 최소화 노력을 하지 않겠다는 주장이다. 농식품부는 “사육 규모의 선제적 감축을 위해 농장주의 자발적인 번식 최소화 등 개체 관리를 유도하고 체계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농장주가 성실하게 계획대로 사육 규모를 감축하지 않으면 지원금을 주지 않고, 개 소유권을 지자체가 넘겨받은 뒤 관리비를 청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지만 이후 상황은 예측하기 어렵다.
많은 개가 남으면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은 충분치 않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동물보호센터는 지난해 228개로 이중 직영이 71개, 위탁이 157개다. 정부는 올해 직영 센터를 84개로 늘렸는데, 매년 구조되는 동물이 11만 마리(개 8만 마리)에 달한다는 점에서 개 농장의 개까지 보호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의견이 많다. 민간 사설 보호소도 포화상태다. 보호 공간도 부족하지만 사료비, 병원비 등 개 보호에 드는 비용도 부족하다. 도사견 등 맹견은 국내 가정 입양이 쉽지 않다고 한다. 동물보호 국제단체로 개 농장주 전·폐업 지원사업을 해온 한국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한국HSI)도 남은 개들은 모두 미국·캐나다 등지로 해외입양을 보냈다.
동물보호단체 행강의 박운선 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행강 유기견 보호소에서 도사견이 아닌 진도·백구·황구 등 270마리를 보호하고 있는데 월 운영비용이 5000만원씩 들어간다”며 “(농장주가 소유권을 포기한) 포기견들의 경우 예방접종도 안 돼 있을 것이기 때문에 절차대로 진료를 거쳐 보호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비용이 소요될 것인데 정부가 두루뭉술하게 보호하겠다고만 하는 게 문제”라고 했다. 박 대표는 “지금은 46만6000마리로 집계되지만 불법으로 운영되는 소규모 개 농장이나 마당개들까지 합치면 마릿수가 어마어마하다”며 “그런 부분까지 고민해야 하는데 정확한 준비가 없는 것 같아 걱정된다”고 했다. 일각에선 재원 마련을 위해 반려동물세 도입을 검토하자는 의견도 제기한다.
이런 현실적이고 복잡한 상황 때문에 일부 동물보호단체 쪽에선 불법 도살과 식용보단 고통 없는 안락사가 낫지 않느냐는 말도 나왔다. 다만 이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꺼리는 분위기다. 박 차관도 브리핑에서 “정부가 안락사시키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하는데 절대 그럴 계획은 없다. 그거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고 했다.
동물자유연대 등 13개 단체는 지난 9월 26일 논평에서 “모두가 노력해도 개들을 전부 구제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 과정을 거치며 겪어야 할 뼈아픈 고통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공동으로 짊어질 숙제가 되겠으나 그 책임은 전적으로 개 식용 산업 종사자들에게 있다”며 “그럼에도 죄 없는 개들의 희생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해도 부족한 이들이 정당한 보상을 운운하며 욕심만을 앞세우는 행태에 기가 찰 노릇”이라고 했다.
더 깊이 있는 동물권 논의로 가야
개 식용 금지가 전면 적용되기까지 크고 작은 갈등과 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동물보호단체와 동물권 연구를 해온 이들은 이 과정이 단순히 보상 액수나, 남은 개를 안락사할 것인지의 차원으로 축소되지 않고 동물복지 전반을 짚어보는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고 했다. 소, 닭 등 다른 동물의 도축, 무분별한 동물생산, 판매, 실험 등 여러 문제가 쌓여 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개가 길러지고 도살되는 과정 전체가 개의 복지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본질적으로 동물 학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어서 이런 산업은 국가 예산과 사회적 비용을 들여서라도 금지하는 게 맞겠다는 합의 속에서 법이 만들어진 것”이라며 “비용 문제에만 매몰되기보다는 개 식용 문제가 끝나고 나서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동물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다”고 했다.
김도희 동물해방물결 소장은 “지금은 개 식용 종식 논의가 보상과 전·폐업에 매몰돼 있지만, 사회에서 한 종에 대한 산업을 종식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곱씹어봐야 한다”며 “고기를 만들기 위해 동물을 키우는 것이 지속 가능한지, 자본주의 산업구조 속에서 동물이 공장식 축산과 같이 상품으로만 취급되는 것이 적절한지 등의 논의는 우리의 실존의 문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