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정치 개입’ 수사 발표 때 어떤 일이
18대 대통령선거 마지막 3차 TV토론이 2012년 12월16일 오후 8~10시 열렸다.
대선 사흘을 남기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간발의 차로 쫓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 때였다. 일부에선 뒤집어졌다는 설도 나왔다.
국정원 직원 김모씨 댓글 논란을 두고 후보 간 격론이 벌어졌다. 문 후보는 “국정원 직원 여론조작이 선거법을 위반했느냐, 안 했느냐가 문제”라고 밝혔다. 이에 박 후보는 “댓글을 달았다고 하는데 하나도 증거를 못 내놓고 있지 않으냐”, “(민주당이 직원) 집주소를 알아내기 위해 고의로 성폭행범이나 쓰는 수법으로 차를 받아서…”라고 말했다.
문 후보는 “박 후보가 왜 여직원을 두둔하고 변호하느냐. 그분은 피의자”라고 하자, 박 후보는 “어찌 됐든 감금하고, 차 들이받고 이런 거 인권침해 아닌가. 부모도 못 만나게 하는 자체가 인권침해”라며 국정원 직원을 두둔했다.
▲ 밤 11시 중간수사 결과 돌연 공개… 급조 논란 불러
박빙 경합하던 여야 대선 후보 간 ‘댓글 논란’ 격론
국정원 직원 댓글 사건을 수사 중이던 서울 수서경찰서는 밤 11시 돌연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한다는 문자메시지를 서울경찰청과 수서서 출입기자들에게 발송했다. 박 후보가 일방적으로 밀린 것으로 평가받은 토론이 끝난 지 한 시간 만이었다. 당시 수서서 관계자도 “갑자기 서울경찰청에서 지시가 내려왔다”고 당혹했다.
수서서는 이어 밤 11시19분쯤 서면 보도자료만을 내고 “국정원 직원이 댓글을 단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급조·졸속 수사 결과 발표 논란이 일었다.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은 당시 통화에서 “언론에는 최대한 빨리 알리는 게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7일 공식 브리핑을 잡아놓고 갑자기 전날 밤 서면 브리핑을 내놓은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국정원은 이어 밤 11시30분 “국가정보기관 직원에 대한 미행·신분노출·감금·주거침입 등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불법행위가 있었으며 이는 정치적 목적으로 정보기관을 악용한 국기 문란사건”이라며 “이번 사건으로 인해 국정원 직원 개인의 인권이 철저히 짓밟혔음은 물론 국정원의 명예가 크게 실추됐다. 감금 등 범죄행위 관계자에 대해서는 모든 민형사상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 정보기관으로서 불법적인 정치개입을 저질렀다는 본질적 문제는 무시한 역공세였다.
새누리당 이상일 대변인도 비슷한 시간대에 “국정원 여직원 댓글과 관련된 진실은 명백히 드러났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 측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저지른 선거공작”이라고 했다.
문재인 후보 측 박광온 대변인은 밤 11시40분 “경찰이 내일 수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TV토론이 끝난 한밤중에 기습적으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한 것은 TV토론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판단을 호도하려는 명백한 경찰의 선거 개입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본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날 밤 박 후보의 토론회 발언과 뒤를 이은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로 국정원 직원 대선 개입 사건은 일부 성격이 바뀌었다. 불법 선거 개입과 증거 인멸 의혹이 졸지에 ‘국정원 여직원에 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치부된 것이다.
이날 경찰의 갑작스러운 수사 결과 발표는 수사 착수 3일, 국정원 직원 김씨 소환 하루 만이었다.
앞서 경찰과 선관위는 12월11일 민주당 제보를 받고 김씨가 살던 서울 역삼동 오피스텔을 급습했다. 김씨가 문을 잠근 채 지루한 대치가 진행됐고, 민주당은 12월12일 김씨를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수서서는 12월13일 김씨 컴퓨터 2대를 임의로 제출받아 서울경찰청에 분석을 의뢰한 뒤 12월15일 김씨를 1차 소환조사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