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보도 ‘세상 속으로’

큰형 피살되자 두 동생 자살, 형수·조카는 지금 행방도 몰라요읽음

박주연 기자

유족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사회서 고립, 가정 파탄

“저주받은 집안도 아닌데 너무 비참하고 정작 가해자는 멀쩡히 살아” 법집행에 격노

가족이 끔찍한 살인범죄에 희생되면 유족은 심각한 고통과 후유증을 앓는다. 가족이 해체되고 장기 치료와 관찰이 요구되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보이는 경우가 대다수다. 특히 피해자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온 가장인 경우 가정 경제가 파탄되어 유가족들은 빈곤층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살인피해 유족들은 다른 범죄 피해자에 비해 관심과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게 현실이다. 직접 피해자가 사망하고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지난 1일 서울 성동구 도선동 자택에서 만난 안대영씨(48·가명)의 삶은 어둡고 절망적이었다. 20평이 채 안돼 보이는 집안은 적막만 감돌고 작은방 창호문은 다 뜯겨져 있었다. 벽시계는 고장나 멈춰 있었고, 거실 한쪽엔 쉰 김치와 손대지 않은 찬밥 한덩이가 나뒹굴고 있었다. 끼니도 잘 안 챙겨먹는 눈치였다.

살인마 유영철 때문에 4형제 중 3명 떠나고… 지난 1일 찾은 안대영씨(가명)의 집 거실에 먼저 세상을 떠난 세 형제와 아버지의 사진이 놓여 있다. 안씨의 큰형(가운데)이 연쇄살인마 유영철에게 희생된 후 둘째형(오른쪽)과 막내동생(왼쪽)이 잇따라 자살하면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살인마 유영철 때문에 4형제 중 3명 떠나고… 지난 1일 찾은 안대영씨(가명)의 집 거실에 먼저 세상을 떠난 세 형제와 아버지의 사진이 놓여 있다. 안씨의 큰형(가운데)이 연쇄살인마 유영철에게 희생된 후 둘째형(오른쪽)과 막내동생(왼쪽)이 잇따라 자살하면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 “저기 끈 보이죠? 나도 자살하려고 해요”

“나도 자살하려고 해요. 저기 끈 묶여 있는 거 보이죠? 죽으려고 매달아 놓은 거예요. 세상이 미워서 어떤 땐 나도 거리로 뛰쳐나가 아무한테나 해코지를 하고싶어요.”

그는 불안정해 보였다. 감정의 진폭도 컸다. 큰형(당시 44세)이 살인범죄로 희생된 이래 그의 가족에게 연거푸 불어닥친 불행이 그를 이렇게 만든 듯했다. 그는 지금도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서울 황학동에서 노점을 하던 그의 큰형은 지난 2004년 4월14일 연쇄살인범 유영철에게 희생됐다. 유영철은 그해 7월18일 경찰에 검거되기 전까지 2년여 동안 서울에서 노인과 여성 등 20명을 무자비하게 살해했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유영철은 경찰을 사칭해 안씨의 형에게 접근했고, 수갑을 채운 채 승합차에 태워 납치한 후 목숨을 빼앗았다.

“유도로 단련된 건장한 형이었는데 그놈이 형의 손목에 수갑을 채운 후 수갑의 한쪽을 차 안 손잡이에 고정시켜놓아 당하고 만 거예요. 저와 둘째형은 형의 사체도 직접 봤어요. 칼로 60번이나 난자당하고 머리도 뭉개져 있었어요. 두 손은 잘린 채 없는 상태였고요.”

그는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여전히 분노감을 주체하기 힘들어 했다. 사건의 충격은 다른 가족의 목숨까지 앗아갔다고 했다. 둘째형과 막내동생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는 “큰형과 우애가 깊었던 둘째형은 유영철의 재판과정에서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고 우울감이 깊어지면서 투신자살했다”고 말했다. 몸이 성치 않았던 막내동생이 자살한 건 그로부터 얼마 안돼서라고 한다. 4형제 중 남은 이는 이제 그뿐이다. 안씨는 “형들과 동생이 꿈에 나타나 ‘너도 우리 있는 데로 빨리 오라’면서 손짓한다”고 말했다.

“우리 형제들은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어려서부터 뿔뿔이 흩어져 살았어요. 사건이 일어나기 몇년 전에야 겨우 가까이 모여살게 됐죠. 이제야 좀 사람 사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결혼해 자식들을 둔 우리 큰형은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작은형도 체격이 좋았어요. 경호업체에서 일하면서 정치인들도 수행하다가 나중에 큰형과 다른 품목으로 노점상을 시작했어요. 그런 작은형에게도 동거하던 여자가 있었어요. 하지만 둘째형이 자살하고 나서 얼마후 따라 죽었다고 해요. 큰형수와 조카들은 지금 어디로 갔는지 행방을 몰라요.”

살인범죄로 인해 집안은 풍비박산났고, 그 역시 급격하게 사회에서 고립됐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도,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도 모두 그를 떠났다. 그는 “저주받은 집안도 아니고, 우리 형제들이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너무 비참하다”고 말했다. 그는 수년 전부터 병원에 가는 일 외에는 세상과 담을 쌓고 거의 집안에서만 지낸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정부와 사회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말은 이랬다. 한껏 높인 목소리에 절망적 분노가 가득 배어 있었다.

“우리 식구들은 이렇게 다 죽어나갔는데, 가해자인 유영철 그놈은 사형도 안 시키고 지금껏 국민 세금으로 먹여살리고 있는 게 말이 됩니까.”

2007년 12월25일 막내딸을 범죄로 잃은 경기도 안양의 이달순씨(46) 가족의 삶도 나을 게 없다. 2007년 당시 11살이던 이혜진양은 9살 우예슬양과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나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실종 77일 만에 혜진양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웃에 사는 정성현이 두 아이를 납치하고 살해한 후 서로 다른 곳에 유기했다.

딸의 죽음과 함께 가족의 꿈, 단란함, 유대관계 등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났다. 아버지 이창근씨(52)는 사건 당시 실종된 딸을 찾아다니느라 다니던 인쇄소를 그만뒀다. 괴로움에 습관적으로 마셨던 술에 대한 의존도도 높아졌다. 어머니 이달순씨의 고통 또한 말로 헤아릴 수 없다. 혜진양의 언니와 오빠 역시 정신적 충격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살인범 정성현의 집과 지척인 데다 혜진양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안양집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것도 이 가족에겐 고통이다. 소문이 나면서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 딸 잃은 후 엄마는 단 한번도 웃어본 적이 없다

이들을 면담한 공정식 경기대 교수는 “얼마전 혜진 엄마를 만났는데 잘 못먹고 못자고 스트레스가 심해서였는지 치아가 성한 게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혜진 엄마는 아이를 그렇게 잃은 후 지금까지 한번도 웃어본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요즘에도 부정기적으로 심리상담을 받고 있는 혜진 엄마는 몇년 전부터 식당일을 돕고 있다고 한다.

지난 13일 만난 하성근씨(67·가명) 역시 다시 도진 상처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이제는 사건을 좀 잊고 무념상태로 살아갈 수 있으려나 싶을 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어요.”

■ ‘여대생 청부살해’ 가해자 회장부인 “호화 병실” 생활

하씨는 2002년 3월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여대생 공기총 청부살해사건’의 피해자 하모양(당시 22세)의 아버지다. 판사 사위가 이종사촌 간인 하양과 불륜관계에 있다고 의심한 중견기업 회장의 부인 윤모씨(67)가 조카 등을 사주해 하양을 공기총으로 쏘아 살해토록 한 사건이다. 2004년 5월 대법원은 윤씨와 윤씨 조카 등 3명에게 각각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그런데 당연히 교도소 안에 있는 줄 알았던 윤씨가 형집행정지를 받고 지난 6년 동안 서울 세브란스병원과 경기 고양시 일산병원 호화병실에서 지내왔다는 소식을 누군가가 전해왔다. 직후 이 같은 사실은 모 지상파방송 시사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세상에 알려졌다.

“이 나라에 사법정의라는 것이 있는지 묻고 싶어요.” 그는 분노했다. “형을 선고하고 집행하고 감시하는 과정 모두가 허술한 거예요. 전형적인 유전무죄, 무전유죄이고요. 검찰에 세브란스 주치의와 현재 윤씨가 머물고 있는 일산병원 주치의를 고발했고 청와대, 법무부, 검찰청, 경찰청 등에 진정서를 냈어요.”

그는 “범죄피해자들을 위하는 첫번째 일은 가해자를 법에 의해 단호히 응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답답해했다. 허술한 법집행이 겨우 버티고 있는 유족을 두번 죽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가족에게도 살인범죄가 남긴 후유증은 컸다. 가족은 사건이 종결된 후 서울 강남에서 경기도 모처로 이사했다. 아내는 새로 이사한 집에도 죽은 딸의 방을 예전과 똑같이 꾸며놨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하씨만 강원도로 옮겼다. 딸아이를 앗아간 도시의 인연이 싫어 자연 속에 묻히고 싶은 마음도 컸다고 한다. 그는 그곳에서 작은 텃밭을 가꾸고 있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지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같이 엄청난 일을 겪은 가족은 같이 살기 어려워요. 만나면 자꾸 죽은 아이 생각이 나니까요. 살아있을 때에도 가족의 중심일 만큼 밝고 예쁜 아이였는데, 그런 딸이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에게 그렇게 갔으니… 우리 가족 모두 멍한 채로 버텨 왔어요. 멍한 채로…”

■ 잘못된 언론보도·이웃의 부적절한 관심도 ‘고통’

잘못된 언론보도와 이웃의 부적절한 관심이 유족에게 이중 고통을 안겨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숙희씨(51·가명)는 2006년 9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모두 10명의 부녀자를 살해한 강호순에 의해 딸을 잃었다. 최씨는 당시만 해도 수도권에 작은 빌라와 아파트 한채를 보유했을 만큼 중산층 가정이었다. 하지만 범죄로 딸이 사망한 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맞벌이하던 최씨 부부는 충격으로 하던 일을 놓았고 2년여간 하루가 멀다하고 딸이 묻힌 납골당을 찾아가 눈물을 쏟았다. 빚이 쌓이면서 집 두채 모두 남의 손에 넘어갔다. 검거 당시 강호순은 상가건물, 축사와 빌라, 예금 등을 합해 9억원 상당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드러나 당시 언론에서 피해자 유족당 1억5000만~1억8000만원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최씨 가족에게 돌아온 몫은 없었다. 최씨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안양 범죄피해자지원센터 관계자는 “그럼에도 이웃은 ‘딸 죽여 부자돼 이사갔다’고 얼토당토않게 수군거려 최씨 마음에 또 다른 멍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2010년 일명 ‘서울 중화동 인질 살인사건’은 경찰의 부적절한 초기대응과 언론 오보로 피해자 유족이 2차 피해를 입은 경우다. 당시 이 사건은 결혼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여자친구 김희경씨(당시 26세·가명)의 어머니를 범인 박모씨(당시 25세)가 흉기로 베어 숨지게 한 것으로 보도됐다.

그러나 김씨가 한국범죄피해자지원 중앙센터 이용우 이사장 등에게 털어놓은 진실은 달랐다. 김씨는 “그는 남자친구가 아니라 스토커였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김씨가 박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09년 9월 친구 모임에서였다. 교제를 한 것은 그해 12월부터 이듬해 초까지 아주 짧은 기간이었다. 김씨가 박씨에게 이별을 통보한 건 박씨가 폭력성과 함께 김씨의 문자메시지를 일일이 확인하는 편집증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박씨는 김씨 집을 수시로 드나들며 김씨와 가족을 괴롭혔다. 김씨 가족이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하고 김씨가 박씨를 피해 회사를 그만둘 정도였다.

김씨 가족은 이사까지 했지만 주소를 알아낸 박씨는 사건 당일 “등기우편이 왔다”고 속여 문을 열게 한 후 집안으로 들이닥쳤고, 김씨 어머니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비명을 들은 이웃의 신고로 20분 만에 경찰이 출동하자 김씨는 사경을 헤매는 어머니를 밖으로 내보내자고 간청했다. 그러자 박씨는 경찰이 현관문 앞에서 철수하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경찰이 제때 철수하지 않아 어머니는 끝내 숨지고 말았다.

그런데도 경찰은 가해자인 박씨와 피해자 김씨를 같은 차에 태워 호송했다. 그뿐만 아니라 박씨의 진술만 듣고 언론에 두 사람을 연인 사이로 브리핑했다. 당시 기사에 ‘결혼을 반대해서 죽였다’ ‘함께 밥을 지어 먹었다’ 등의 이야기가 나온 배경이다. 이 이사장은 “언론보도로 피해자는 어머니를 죽게 한 원인제공자라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까지 받아야 했다”며 “이후 그는 이민길에 오름으로써 상처뿐인 한국땅을 떠났다”고 말했다.


경향티비 배너
Today`s HOT
한 컷에 담긴 화산 분출과 오로라 바이든 자금모금행사에 등장한 오바마 미국 묻지마 칼부림 희생자 추모 행사 황사로 뿌옇게 변한 네이멍구 거리
이강인·손흥민 합작골로 태국 3-0 완승 젖소 복장으로 시위하는 동물보호단체 회원
모스크바 테러 희생자 애도하는 시민들 독일 고속도로에서 전복된 버스
코코넛 따는 원숭이 노동 착취 반대 시위 불덩이 터지는 가자지구 라파 크로아티아에 전시된 초대형 부활절 달걀 아르헨티나 성모 기리는 종교 행렬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