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보도 ‘세상 속으로’

그날, 그놈에게 세 아이 잃은 뒤 내게 남겨진 것은 지옥같은 삶

박주연 기자

살인 피해 유족들의 끝나지 않는 고통

연쇄살인범 정남규가 지른 불에 자식 잃은 송씨 “믿기 힘든 이 모든 일 차라리 악몽이었으면”

지난 10일 오후 3시15분. 약속시간을 조금 넘겨서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검 내 범죄피해자센터의 출입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턱수염을 기른 얼굴에 모자를 깊게 눌러쓴 송민호씨(55·가명)였다. 그는 셔츠 속에 목폴라를 껴입고 있었다. 턱수염도, 모자도, 목을 가린 옷차림도 모두 화상 흉터를 감추기 위해서였다. 7년 전 그의 가족에게 돌연 가해진 끔찍한 살인방화범죄가 남긴 흔적들이었다. 세 자녀가 사망했고 그는 전신 76%에 3도 화상을 입었다. 이마, 귀, 콧등, 양손, 팔의 윗부분, 등, 목 등 화상이 심한 부위에 당시 불에 타지 않은 허벅지 안쪽살을 떼어내 수차례에 걸쳐 이식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는 한여름에도 목까지 올라오는 상의와 긴 바지를 입는다고 했다.

그러나 옷으로 감추지 못한 양손은 부자연스러운 모양으로 그날의 참극을 말해주고 있었다. 피부이식을 한 손등은 유난히 두텁고 우둘투둘했다. 색상도 화상흉터가 남아 있는 팔 아래쪽의 피부색과 확연히 구분될 만큼 검었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선 이식 피부가 터서 갈라진 틈으로 기형적으로 돋아난 핑크빛 새살이 혹처럼 둥근 모양으로 돌출돼 있었다. 악수할 때 악력이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도 곧 알게 됐다. 이식한 피부조직이 생착되는 과정에서 피부가 쪼그라드는 반흔구축(화상 후 구축)이 발생한 탓에 손가락 관절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두꺼운 테이프를 손등에 붙인 채 손가락을 구부린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꾸준한 노력으로 지금은 물건을 겨우 잡을 수 있는 정도까지 관절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며칠만 움직이지 않으면 다시 뻣뻣해진다고 한다.

지난 10일 만난 살인피해 유족 송민호씨(가명)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송씨는 정남규의 살인 방화로 세 남매를 잃고 자신도 전신 76%에 3도 화상을 입었다. 피부이식한 송씨의 손등은 팔과 경계가 뚜렷할 만큼 검고 두꺼우며 우둘투둘해 그날의 참극을 말해주고 있다. |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지난 10일 만난 살인피해 유족 송민호씨(가명)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송씨는 정남규의 살인 방화로 세 남매를 잃고 자신도 전신 76%에 3도 화상을 입었다. 피부이식한 송씨의 손등은 팔과 경계가 뚜렷할 만큼 검고 두꺼우며 우둘투둘해 그날의 참극을 말해주고 있다. |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 큰딸이 2층 방 창문에 매달려 울부짖고 있었다

시계태엽을 되감아 그의 인생에서 가장 기억하고 싶지 않을 2006년 1월18일 새벽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자 그의 표정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가슴 저 밑바닥부터 치고 올라오는 참담한 고통과 분노, 공포가 그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말없이 허공을 응시했다. 힘겹게 입을 뗀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였다.

“저는 매일 새벽 5시30분 무렵이면 잠에서 깼어요. 그런데 그날은 매캐한 냄새 때문에 눈을 떴어요. 순간적으로 아이들이 음식을 해먹다 태우나 싶었지요. 그런데 안방문을 여는 순간 거실에서 불길이 치솟으며 번지고 있었어요. 현관 옆에 소화기를 보관해놨는데 현관 앞도 불길 때문에 접근할 수가 없었어요. 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TV브라운관이 터지는 소리가 귓청을 때렸지요. 서둘러 안방에서 자고 있던 아들과 자기 방에서 자던 큰딸을 깨워 불이 났으니 빨리 부엌 쪽 창문으로 빠져나가라고 소리친 후 작은딸을 깨우러 갔어요. 그런데 열기로 뜨거워진 손잡이는 안에서 잠긴 채 돌아가지 않았고 대답도 없었어요. 그 길로 저는 부엌 창문을 통해 탈출했어요.”

그러나 먼저 집 밖으로 나갔을 것으로 생각한 아이들은 모두 집 안에 있었다. 큰딸이 2층 자기 방 창문에 매달려 울부짖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동네 주민들과 딸의 방 창문에 사다리를 걸쳐놓고 올라가 구조하려 했으나 방범창이 뜯기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큰딸은 화마에 목숨을 잃었다. 눈 뜬 채 그 참혹한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그는 울부짖었다. 나머지 아이들도 그렇게 집 안에서 희생됐다. 그때만 해도 송씨는 자기 몸이 심각하게 불에 탄 것도 몰랐다. 출동한 119 구조대원들이 그를 구급차에 실어 도봉구 쌍문동의 한일병원(현 한전병원)으로 이송했다. 몰려든 간호사들은 몸부림치며 통곡하는 그에게 “아저씨, 많이 다쳤으니 가만히 있어요”라고 소리치며 몸 전체에 생리식염수를 뿌려대고 붕대로 칭칭 감았다.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여기까지 말하고 그는 눈을 감았다.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우리 애들은 참 착했어요. 셋 다 공부도 잘해 잔소리할 일이 없었지요. 자기 할 일 알아서 잘하는 좋은 애들이었는데….”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송씨의 가정은 남부럽지 않을 만큼 단란했다고 한다. 백의의 천사가 되고 싶었던 큰딸(당시 21세)은 서울대 간호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었고, 혜화여고 2학년이었던 둘째딸(당시 17세)은 꿈 많은 소녀였다. 아들(당시 12세)은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었다. 부부는 수유동 집에서 300~400m 떨어진 곳에서 여관을 운영해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었다. 송씨 가족은 50평 정도 되는 2층 전체에 세들어 살았고, 1층에는 다른 두 가구가 세들어 있었다.

화상치료 과정은 끔찍한 고통을 수반한다. 온몸에 붕대를 감은 그는 일주일간 생사의 고비를 넘긴 다음, 타버린 피부와 죽은 조직을 긁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그는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속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죽은 조직을 걷어낸 후 매일 아침 반복되는 치료 과정도 생지옥을 방불케 했다. 온몸을 생리식염수로 소독하고 까끌까끌한 촉감의 물에 적신 거즈와 칼을 이용해 환부의 오염물질과 괴사 조직을 떼어낸 다음 다시 소독 후 약을 발라 새 붕대로 감았다. 마취 없이 피부가 없는 붉은 생살 위에 하는 것이기에 온몸의 세포가 부들부들 떨리는 것 같았다. 피가 뚝뚝 떨어지고 피부가 없는 몸 여기저기에선 계속 진물이 흘렀다. 그는 같은 치료를 수개월간 받은 후 수차례에 걸쳐 피부이식수술을 받았다.

■ 경찰은 물론 아내마저 나를 의심…고통의 날들이었다

그러나 그를 더 힘들게 한 건 자신을 자식을 죽인 살인범으로 의심하는 시선들이었다. 경찰은 다른 정황과 함께 탐문수사 과정에서 아래층 세입자로부터 “새벽에 위층에서 둘째딸과 남자가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를 용의자로 지목한 것이었다.(2006년 당시 경찰청 범죄행동분석팀에 있으면서 범인 정남규를 면담한 권일용 경찰수사연수원 교수는 최근 기자에게 “정남규가 범행 당시 피해자들과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을 얘기해줬다.)

“입원하고 보름쯤 지나자 경찰이 계속 찾아와서 같은 질문을 던졌어요. 17일과 18일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것이었죠. 처음엔 통상적인 절차로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어느 날은 아무도 없는 방으로 저를 데리고 가 6명의 수사관들이 빙 둘러선 채 같은 질문을 했어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제가 범인이라는 40여가지의 증거물을 제출해놨다는 얘기까지 했고요. 나중에 들었지만 당시 경찰은 제 통화기록을 조회한 뒤 여자동창생들에게 여러번 전화해 관계를 물었다고 해요. 혹시 제게 내연관계가 있어서 자식들을 그렇게 했는지 의심한 것 같아요.”

경찰이 압박해오자 아내도 ‘설마, 설마’ 하면서도 점차 남편을 의심하는 눈치였다. “○○아빠 아니지?” “아니지?” 하고 반복적으로 물었다. 그는 “내가 평생 우리 애들에게 손찌검을 하거나 욕설이라도 하는 걸 봤느냐”며 소리를 질렀다. 당시 검찰에서 근무하던 오랜 친구조차 “변호사를 구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병원에서도 수군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꼼짝없이 범인으로 몰릴 판이었다.

“자식들이 그렇게 되고 몸의 고통도 너무 끔찍해서 하루에도 열두번씩 죽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저더러 자식들을 죽인 짐승같은 살인범이라고 하니, 억울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죽을 때 죽더라도 누명은 벗고 죽어야 하잖아요.”

만약 범인 정남규가 잡히지 않았다면 그는 어찌됐을지 모른다. 정남규가 검거되기 전까지 3개월의 기간 동안 그는 경찰로부터의 시달림과 몸의 고통, 그리고 외로움과 처절한 사투를 벌여야 했다.

■ 뉴스를 전해듣고 알았다, 그 죽일 놈이 정남규란 걸

정남규가 검거된 건 그해 4월22일이었다. 그날 새벽 4시40분쯤 영등포구 신길6동 단독주택에 침입해 작은 방에서 자고 있던 김모씨(당시 24세)의 머리를 파이프렌치 공구로 내리쳤지만 잠에서 깬 김씨가 대항했고 옆방에서 잠자던 김씨의 아버지가 합세해 제압하면서 경찰에 넘겨진 것이다. 그는 검거되기 전까지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무려 13명을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20명에게 중상을 입힌 연쇄살인마였다.

정남규는 2004년엔 길거리에서 무차별로 사람의 배, 가슴 등 앞부분을 찔러 살해하다가 2005년 4월부터는 가정집에 침입했다. 패턴은 일정했다. 작은 방에 먼저 들어가서 쇠몽둥이 등 둔기로 잠자던 사람을 살해하거나 미수에 그쳤고 2005년 10월19일 봉천10동에서 벌인 사건부터는 둔기로 머리를 수차례 내려친 후 피해자들이 탈출하지 못하도록 문을 걸어 잠그고 방화했다. 정남규는 송민호씨의 집에 침입해서도 작은 방에 먼저 들어가 자고 있던 작은딸을 둔기로 내려친 후 목졸라 살해한 다음 집 안 사람들이 탈출하지 못하도록 화장실 문을 잠갔다. 그런 다음 장롱에서 가져온 옷가지와 화장실 앞 세탁물을 거실과 현관문 앞으로 옮겨 불을 붙이고 밖에서 현관문을 잠갔다.

뒤늦게나마 정남규가 검거되고 송씨 가족을 살해한 것도 자신의 짓임을 자백했지만 경찰은 송씨에게 단 한마디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남규가 우리 자식들을 죽였다고 자백한 것도 뉴스에 보도된 걸 다른 사람에게 전해들었어요. 진범이 잡혔다는 얘기조차 해주지 않은 거죠. 이후론 경찰이 병원에 찾아온 일도 없었고요.”

■ 어머니는 충격에 돌아가시고, 아내는 곁을 떠났다

수사는 종결됐지만 송씨가 입은 피해는 삶 전체였다. 자식도, 어머니도, 아내도, 외모도, 건강도, 재산도, 그리고 평범한 인생도 거짓말처럼 다 사라졌다. 병원에 누워 있던 그는 어머니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 뒤늦게 아들 가족에게 생긴 변고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듣고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시름시름 앓다가 사건이 일어난 지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사건에 대한 충격과 자식에 대한 그리움으로 우울감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아내는 넋을 놓은 채 지내다가 그가 병원에서 퇴원하자 헤어져 살 것을 요구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몸이 불편했지만 송씨는 결국 아내의 뜻대로 했다.

그는 방화에 의한 재산피해도 보상받지 못했고 1년간의 입원치료비와 수술비도 사비로 충당해야 했다. 이후 여관을 처분했지만 은행빚 등 채무를 정리하고 아내에게 위자료를 주고 병원비를 갚고 나자 그의 통장에 남은 돈은 600만원이 채 안됐다. 정부에서는 범죄피해구조금 중 유족구조금으로 2006년 당시 1000만원을 지급했지만 그마저 송씨 부부는 대상이 아니었다. 사건 당시 재산이 있는 유족에게는 구조금이 지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체장애 3급 판정을 받은 그는 손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해 힘든 노동도 할 수 없게 됐지만 국가도, 어느 누구도 책임지는 이는 없었다. 사건 후 무일푼 신세가 된 그는 모두가 등을 돌렸을 때에도 끝까지 그를 믿어주고 격려해온 고향친구 박준표씨(55)가 얻어준 10여평의 작은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심부름이나 배달 같은 일을 가끔씩 하면서 살아요. 집에 있으면 자꾸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까 되도록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요. 동네 야트막한 산에도 오르고, 우리 아이들도 자주 만나러 가요. 집에 있을 때에도 TV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은 안 봐요. 흉악범죄 이야기가 나오면 과거의 악몽이 되살아나니까요.”

범죄에 희생된 송씨의 세 남매의 유골은 화장 후 자연으로 돌아갔다. 그가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곳은 49재 후 아이들의 영가(영혼)를 모신 수유동 화계사다.

“우리 아이들 또래를 보거나 명절, 어린이날 같은 때 더 그립죠. 사찰에 가서 애들을 만나면 ‘잘 있었느냐’고 먼저 물어요. ‘할머니 할아버지께도 잘해드려라’고도 말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미안하다’고….”

그는 말을 마무리짓지 못했다. 입을 꾹 다문 그가 다시 먼 곳을 응시했다. 그의 눈에 얼핏 눈물이 어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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