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폭력 사회’ 피해 경험·상담 2배 이상 늘어나

박용하 기자

회사원 4명 중 1명 “맞거나 폭언”·연인 10명 중 1명 “데이트폭력”

보사연, 청년 1586명 조사…“아동폭력 경험 85.9%는 성인 돼서도 노출, 체벌금지법 필요”

[단독]‘폭력 사회’ 피해 경험·상담 2배 이상 늘어나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꿈꾸며 신생 벤처기업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2년가량 일한 ㄱ씨(27)는 당시 겪은 폭력의 경험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는 “미니 선풍기 등 개인용품을 구매해 회사에서 썼다는 이유로 대표에게 맞은 적이 있다”며 “대표가 운영하는 카페에 지원을 나간 친구는 ‘셔츠를 잘못 입고 왔다’며 맞은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ㄱ씨의 이야기는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IT 노동자 직장갑질·폭행사례 보고회’에 소개되기도 했다.

한국 사회에서 폭력에 노출된 것은 비단 ㄱ씨만의 문제는 아니다. 회사원 4명 중 1명, 데이트 경험이 있는 10명 중 1명은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가 전체적으로 인권을 강조하고 있으나 ‘폭력의 일반화’는 더욱 심화된 것이다. 제도적인 보완은 물론, 아동기의 폭력 경험이 성인기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공개한 ‘생애주기별 학대 경험 연구’ 보고서를 보면, 만 18~29세의 청년 158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직장폭력 피해를 경험한 적이 있다는 이들은 응답자 1083명 중 274명(25.3%)에 달했다. 가해 경험이 있는 이들도 103명(9.6%)이었다. 직장폭력은 물리적 공격이나 욕설, 따돌림, 말이나 글을 통한 위협 등을 받는 경우를 모두 포함한다.

직장폭력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한 채용정보업체가 자사 웹사이트의 회사 평가를 모아 조사한 자료를 보면, 회사에서 폭행을 당했거나 목격했다는 후기는 2015년 419건에서 2018년에는 1031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직장인들은 “임원이 직원에게 욕설은 기본이고 가끔 손찌검도 한다” “강제 회식에 업무 중 욕설, 회식 중 구타가 발생할 정도로 후진적인 문화가 있다”고 전했다. 한 기업 대표가 설렁탕 뚝배기가 뜨겁지 않다는 이유로 그릇을 직원들에게 던졌다는 소문도 전해졌다.

데이트폭력 경험도 10명 중 1명꼴을 넘었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이번 조사에서 데이트 경험이 있는 1013명 중 102명(10.1%)은 데이트폭력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실제 데이트폭력 신고 건수는 계속 늘고 있다. 여성긴급전화1366이 지난해 1~4월을 기준으로 측정한 결과, 이 기간의 상담 건수는 총 3903건으로 전년도보다 2배 이상(107%) 늘어났다.

그간 정부는 직장폭력 예방을 위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법에 명시하는가 하면, 데이트폭력을 세 번 이상 저지르면 정식 재판에 넘기는 ‘삼진아웃제’를 적용해 처벌을 강화하는 조치를 내놨다.

보고서는 이뿐 아니라 어린 시절의 폭력 경험을 예방하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아동기의 학대 피해 등 부정적 경험이 청년이나 성인기의 폭력 경험과 밀접하게 연관되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에서 아동기에 학대나 또래폭력, 가정폭력 등을 경험한 이들 중 85.9%는 성인기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가정에서의 체벌을 법으로 금지할 필요가 있다고도 강조했다. 가정에서의 체벌은 아동학대로 발전하기 쉽고, 이는 생애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민법에 규정된 부모의 ‘체벌권’을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최근 밝힌 바 있다.

류정희 보사연 연구위원은 “아동기의 학대로 인한 부정적인 경험은 성인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적·실천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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