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세 청년의 ‘간병살인’ 비극…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백경열 기자

10일 2차 선고 앞두고 정치권에 대책 마련 목소리

1심 재판부, 권고형 범위보다 낮은 징역 4년형 선고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22살 청년이 저지른 이른바 ‘간병살인’ 비극에 대한 안타까움과 대책 마련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향신문>은 오는 10일 강도영(가명)씨 사건의 항소심 선고공판을 앞두고 이 사건의 경과를 1심 판결문을 토대로 살펴봤다.

간병 관련 일러스트. 김상민 화백

간병 관련 일러스트. 김상민 화백

■“22살 청년 혼자 거동 못하는 아버지 1년 넘게 돌봐”

강도영씨는 지난 8월13일 대구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이상오)의 1심 선고공판에서 존속살해 혐의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강씨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1년 가까이 돌보던 자신의 아버지에게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고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999년생으로 올해 22살인 강씨는 피해자인 아버지 A씨(56)의 외동아들로 약 10년 전부터 둘이서만 함께 살고 있었다. A씨는 지난해 9월부터 뇌졸중 등 증세를 보여 대구 달서구와 남구에 있는 병원 등지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강씨는 비싼 치료비를 감당하기 힘들어져 올해 4월23일 A씨를 퇴원시켰다. 당시 A씨는 왼쪽 팔과 다리가 마비돼 혼자서는 움직일 수가 없었고, 정상적인 음식 섭취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병원에서는 A씨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경관 급식’(코에 호스를 삽입해 음식물을 위장으로 바로 공급하면서 영양 상태를 유지하는 방식) 형태로 음식물을 섭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A씨가 스스로 대소변을 가릴 수 없어 도뇨관을 삽입하는 방법으로 소변을 제거해야 했고, 폐렴으로 인한 호흡곤란 증세가 반복돼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한 상태로 봤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었다”면서 “피해자의 아들인 피고인에게는 피해자가 지속적으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도록 보살피는 등 피해자의 생명과 신체에 위험이 발생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할 법적인 보호 의무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퇴원한 다음 날인 4월24일, 강씨가 A씨의 집에서 ‘아무런 기약도 없이 2시간 간격으로 피해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돌보면서 살기는 어렵고 경제적으로도 힘드니, 피해자가 사망하도록 내버려 둬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판시했다.

이후 A씨에게 처방약을 주지 않고, 정상적인 영양 공급을 위해 섭취가 필요한 치료식(하루 3개)도 같은 달 30일까지 모두 10개만 제공했다.

또 강씨는 지난 5월1일부터 같은 달 8일 오후 8시까지 약 8일 동안 치료식은 물론, 물과 처방약의 제공을 끊고 A씨의 방에 전혀 들어가지 않는 방식으로 아버지를 방치했다. 그 결과 A씨는 심한 영양실조 상태에서 폐렴 등이 발병하면서 결국 숨졌다.

■1심 재판부, “존속살해의 고의 있다”

1심 재판부는 드러난 범행 당시의 정황으로 피고인 강도영씨에게 존속살해의 고의가 있었다고 봤다.

우선 재판부는 강씨가 민법상 아버지를 부양할 의무가 있는 피해자의 아들이며, 퇴원 당시 의료진으로부터 간병 지식을 익힌 만큼 피해자의 생명과 신체를 돌볼 책임이 강씨에게 전적으로 맡겨진 상황이라는 점을 주목했다. 병원 측은 A씨 퇴원 과정에서 강씨에게 소변통을 비우는 방법과 경관으로 물·음식·약을 주입하는 방법, 기저귀를 갈아주는 방법 등을 안내했다.

또 A씨가 퇴원하기 전인 올해 4월15일 발급된 ‘장애 정도 심사용 진단서’에는 “(피해자는) 보행이 불가능하며 모든 일상생활 동작의 수행에 전적으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라는 병원 의료진의 소견이 적혀 있었다.

병원 측은 퇴원을 요청하는 강씨에게 “지금 퇴원하면 피해자의 생명이 위태롭다”는 말을 건넸고, 강씨 역시 수사과정에서 “피해자에게 호흡 곤란의 상황이 오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상황을 알고 있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종합적으로 재판부는 강씨가 의식적으로 적극적인 간병 행위(작위) 등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지만, 이를 저버린 것이라고 판단했다.

A씨는 강씨가 작위의무를 지키지 않은 지난 5월1일 이후 약 1주일 만에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망 당시 A씨의 몸무게는 약 39㎏으로, 키(166㎝)과 대비한 이상적인 체중(약 62.1㎏)의 약 63%에 불과했다.

검안의는 A씨의 시신을 부검한 뒤 피해자가 영양실조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A씨가 입원치료를 받았던 병원 의료진은 “일반인의 경우에도 8일간 물과 음식을 전혀 먹지 않으면 숨질 수 있다”면서 “A씨의 경우 뇌질환과 폐렴 증상 등으로 인해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었기에 더욱 사망할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고 밝혔다.

■강도영, “이렇게는 살기 어렵겠다”…독하게 마음 먹었지만

수사 과정에서 피고인 강도영씨는 “2시간마다 피고인의 자세를 바꿔야 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었다”, “혼자서는 피해자의 병간호를 담당할 능력이 되지 않았고, 피해자가 회복할 가능성이 전혀 없어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채무의 존재 등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심적으로 많이 힘들어 잘못된 판단을 하였다”는 등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수사에서 강씨는 범행 경위를 이렇게 밝혔다.

그는 “피해자(아버지)가 퇴원한 당일에는 병원에서 안내받은 대로 피해자에게 처방약과 물, 영양식을 줬다. 하지만 그 다음날부터는 ‘이렇게는 살기 어렵겠다. 2시간에 한번씩 피해자를 챙기는 것이 너무 힘들고, 그냥 돌아가시게 둬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어 강씨는 “그러다가도 피해자(아버지가)가 본인을 불러 배고픔이나 목마름을 호소하면 마음이 약해져서 한 번씩 영양식을 호스에 주입하는 등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상태였다”며 “그러던 중 5월1일부터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아예 피해자 방에 들어가지 않고 그냥 죽을 때까지 내버려 두기로 했다. 피해자를 그대로 두면 사망하게 될 것이라는 사정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A씨는 5월1일부터 이틀간 간헐적으로 피고인에게 “아들, 아들아”라고 하면서 도움을 요청했고, 강씨는 이를 들었음에도 모른 척했다. 이후 A씨의 방에 한 번 들어갔으며, 피해자가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피고인에게 물이나 영양식을 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고 강씨는 전했다.

강씨는 이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울다가 그대로 방문을 닫고 나온 뒤 피해자가 사망할 때까지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수사기관에 자백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수사 단계에서의 진술이 매우 구체적이고 피고인이 작위 의무의 불이행에 이른 자연스러운 경위가 드러나 있어 충분히 믿을 만하다”면서 “달리 피해자가 심리적인 압박 등으로 인해 위와 같은 자백 진술에 이르렀다고 볼 만한 사정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밝혔다.

■1심, 권고형 범위보다 낮은 수위 판결 내려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을 인정하면서도, 범행에 이르게 한 여러가지 정황 증거를 고려해 징역 4년형을 선고했다. 형법 제250조 제2항은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정한다. 1심 재판부는 같은 법 제53조와 제55조를 들어 유리한 정상을 참작했다. 권고 형량은 징역 5~12년이지만, 그보다 낮은 수위의 판결이 내려진 셈이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전적으로 피고인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상태에 있던 피해자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별다른 보호 없이 피해자를 방치했다”면서 “피해자는 심한 영양실조 상태에 이르러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인 목숨을 잃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그 동기와 경위가 어떻든 혼자서는 거동이 불가능한 존속인 피해자를 의도적으로 방치해 사망의 결과를 발생시킨 피고인의 범행은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덧붙였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 이전 아무런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초범”이라면서 “피고인은 어린 나이로 아무런 경제적 능력이 없어 피해자의 동생 B씨의 도움으로 피해자의 입원치료 비용을 대다가, B씨가 더 이상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피해자의 연명 입원치료 중단 및 퇴원을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적극적으로 행동해 피해자가 숨지도록 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피고인은 피해자를 사망하도록 놔두어야겠다고 결심한 이후로도 피해자가 배고픔이나 목마름을 호소하면 물과 영양식을 호스에 주입하는 등 포기와 연민의 심정이 공존하는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한 “피고인은 피해자를 방치한 행위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출소한 이후에도 피해자의 사망에 관해 깊은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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