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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서울지하철에서 역무원으로 일하는 A씨는 최근 수시로 고객안전실의 잠금장치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고객 응대나 순찰 업무를 하다 보면 출입문을 개방해 놓을 때가 많은데,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한 이후 불안한 마음이 커졌기 때문이다. A씨는 “일터에서 내가 안전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면서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이 스토킹 살인으로까지 이어진 것인데, 회사가 과연 앞으로도 나를 지켜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서울지하철 신당역 화장실을 점검하던 한 여성 역무원이 그를 스토킹하던 전 직장동료 전모씨(31)에게 흉기에 찔려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지하철 역무원들의 ‘안전할 권리’를 보장하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9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한 서울교통공사의 여성 역무원들은 “이번 사건은 젠더폭력 문제에 안전하지 않은 노동 환경이 중첩돼 일어난 사건”이라면서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 보호 대책을 보완하고 남성이든 여성이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숨진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교대 조로 야간근무(오후 6시~오전 9시)를 한다는 B씨는 “이번 사건은 가해자가 철저하게 범행을 계획한 사례이긴 하지만 평소에도 역무원들은 상시로 위험에 노출돼 있다”면서 “칼이나 총을 소지한 사람이 있으니 나가보라는 신고도 종종 들어온다”고 했다.

한 시민이 18일 스토킹 살인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사 내 여자 화장실 앞을 지나가고 있다. 이준헌 기자

한 시민이 18일 스토킹 살인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사 내 여자 화장실 앞을 지나가고 있다. 이준헌 기자

현장의 불안감이 커지다 보니 일부 역에서는 여성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이들을 화장실 순찰 등 일부 업무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A씨는 “젠더폭력으로 발생한 일 때문에 여성들이 할 수 없는 일이 하나둘 늘어나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면서 “우리는 일상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들은 화장실 야간 순찰 등의 업무를 할 때 2인1조로 움직일 수 있도록 인력이 확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4일 밤 피해자는 혼자서 순찰을 하다 변을 당했다. B씨는 “만약 피해자가 2인1조로 움직였다면 적어도 일터에서만큼은 끔찍한 죽음을 맞는 걸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현장 역무원 인력 총 3357명 중 교대 근무자는 2970명이다. 지하철 1~8호선의 265개역 중 교대 조가 2~3명씩 운영되는 곳은 126개역(47.5%)에 이른다. 교대 조 당 3~4명 근무하는 역이 117곳, 4~5명 근무하는 역은 22곳이다. 모두 4개 교대 조가 돌아가는데, 교대 조당 2~3명밖에 없는 곳은 늘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터라 화장실 점검 등 야간 순찰을 혼자 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들은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보호 조치도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해자 전씨는 경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 서울교통공사에서 직위 해제됐지만 사내 전산망에 접속할 권한은 유지됐다. 이를 통해 피해자의 바뀐 근무지를 알아냈다.

시민들이 17일 서울 중구 신당역 10번 출구 앞에 모여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의 피해자를 추모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시민들이 17일 서울 중구 신당역 10번 출구 앞에 모여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의 피해자를 추모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A씨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신체적 분리’뿐만 아니라 ‘온라인상 분리’도 필요하다”면서 “직장 내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회사 차원에서 대응해야 할 체크리스트를 더 촘촘하고 치밀하게 짜야 한다”고 말했다. B씨도 “피해자가 직장 내에 있는 것을 알았다면 가해자가 피해자에 관련한 정보를 알 수 없게끔 노력해야 하고 적어도 혼자 근무하는 환경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이에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피해자가 누구인지, 공사 내 직원인지 아닌지도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서 “경찰에서 가해자의 범죄사실에 관한 내용만 통보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치 매뉴얼은 굉장히 잘 돼 있는 편”이라면서 “지금까지 나온 지적을 반영해 최대한 보완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플랫]“서울교통공사도 피해자인 언니 죽음에 책임져야 한다”

상시 2인1조 보장 계획에 대해서도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내부 의견을 종합해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인력확충은 예산이 필요한데 안 그래도 (경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사람만 늘리는 건 오히려 방만 경영이란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대책에 대해 시에서 먼저 개입할 수 있는 건 아니다”면서 “공사에서 의견을 전달하면 검토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은 기자 eeun@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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