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노동자 “안전 문제 제기했지만 회사서 받아들이지 않아”
SPC 계열사 제빵공장인 SPL에서 발생한 20대 노동자 끼임 사망사고는 ‘2인 1조’ 근무 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일어난 사고였다는 현장 노동자들의 주장이 제기됐다. 회사 측은 시신 수습 등을 한 현장 노동자들이 트라우마를 호소했음에도 다음날 바로 정상 출근을 요구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SPL 경기 평택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 A씨는 17일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사고가 난 공장에서 2인 1조 근무 규칙은 지켜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사고로 숨진 노동자 B씨(23)는 이 회사 냉장샌드위치 라인에서 근무했다. 당시 B씨는 소스 배합작업을 위해 교반기(액체 등을 휘저어 섞기 위한 기계)를 작동하고 있었는데, 기계의 회전날에 말려 들어가면서 숨졌다. 공장 근무 매뉴얼은 해당 작업을 실시할 때 2인 1조로 하게 돼 있으나 사고 당시 동료 직원 1명은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
이를 두고 A씨는 “2인 1조 근무 규정이 있지만, 기계를 만지는 1명을 제외한 나머지 1명은 재료를 나르거나 주변을 정리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는 상황이 많았다”며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다면 기계 앞을 2명이 지킬 수 있게 3인 1조 근무를 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A씨는 이어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노동자를 추가로 채용해야 하고, 회사에서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노동자들이 문제를 제기해도 들어주지 않았고, 결국 이번 참사가 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강규형 화섬식품노조 SPL지회장도 이날 통화에서 같은 취지의 말을 했다. 강 지회장은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선 3인 1조로 해야 했던 것인데, 회사는 비용 탓에 그러지 않았다”고 했다.
강 지회장은 “하루 목표 배합량이 40개라고 한다면 무조건 채워야 했다”면서 “관리자들은 빠르게 작업하라고 독촉했고, 노동자들은 항상 과중한 업무량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트라우마 호소’ 노동자도 사고 다음날 현장 투입
사고 발생 이후 회사의 대처에서도 문제점이 나타났다. 사고 직후 교반기에 낀 B씨를 처음 꺼낸 것은 현장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기계 안을 가득 채운 소스를 퍼내고 B씨를 직접 꺼냈다. 당시 사고 현장에서는 4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함께 근무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신을 직접 수습한 노동자들 외에도 트라우마를 호소한 이들이 많았지만 대부분 다음날 바로 현장 작업에 투입됐다.
이에 SPC 관계자는 “인원을 충원해 달라는 요청은 없었다”고 말했다. 사고 발생 이후 대처에 관해서는 “사고를 수습한 노동자들은 즉시 업무에서 배제했다”며 “현재는 주변 근무 노동자들에게까지 일주일간 유급 휴가를 제공했다. 추가적으로 심리치료도 지원할 예정”이라고 했다.
시민단체인 파리바게뜨공동행동과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는 이날 SPL 평택공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철저한 원인 조사와 수사를 촉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예견된 사고로 20대 꽃다운 청년이 황망하게도 생을 마감했다”며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이번 중대재해에 대한 철저한 원인 조사를 통해 경영자에게 책임을 물어달라”고 말했다.
허영인 SPC 회장은 계열사 직원 사망사고와 관련해 이날 공식으로 사과했다. SPC가 사과문을 낸 것은 지난 15일 사고 발생 후 이틀 만이다.
SPC는 허 회장 명의의 사과문에서 “사업장에서 발생한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신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허 회장은 전날 저녁 사고 직원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