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사 당할 것 같아요. 통제 좀 해주셔야 될 것 같은데...”
이태원 핼러윈 참사 당일, 사고 발생 4시간 전부터 경찰에 인명사고를 우려하는 시민들의 112 신고가 경찰에 다수 접수됐다. 이후에도 “난리가 났고 다치고 한다” “큰 일이 날 것 같다”는 신고가 이어졌다. 참사 발생 약 1시간30분 전에는 “사람이 쓰러졌다”는 신고도 접수됐다. 참사 당일 오후 6시34분부터 참사 직전인 10시11분까지 접수된 11건의 신고 가운데 ‘압사’라는 단어는 총 13회 등장했다. 신고자들이 9차례에 걸쳐 ‘압사’라는 표현을 썼고, 신고를 접수하는 경찰관도 ‘압사’를 4차례 입에 올렸다.
그러나 이렇게 이어진 다급한 신고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경찰은 “최초 신고 당시는 사고 날 정도로 위험도가 있지 않았다”며 안일한 모습을 보였다.
1일 경찰청은 이태원 핼러윈 참사 당일인 지난달 29일 경찰에 신고된 압사 사고 우려 관련한 112 신고 내용을 공개했다. 첫 신고는 참사 발생 4시간 전인 오후 6시34분에 있었다. 당시 신고자는 이태원역 인근 해밀톤호텔 부근 골목을 특정하며 “그 골목이 지금 사람들하고 오르고 내려오고 하는데 너무 불안하다. 사람이 내려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 올라오니까 압사당할 것 같다. 겨우 빠져나왔는데, 이거 인파 너무 많은데 통제 좀 해주셔야 될 것 같다”고 했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관도 “압사 밀려서 넘어지고 그러면 큰 사고 날 거 같다는 거죠?”라고 말했다. 신고 내용을 명확히 인지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신고자는 “경찰이 진입로에서 인원통제 등 조치를 해주셔야 할 것 같다”며 “(몰려드는 인파로) 너무 소름끼친다”고 했다. 언급된 해밀톤호텔 골목은 압사 사고가 발생한 골목과 동일했다.
“큰 사고가 날 것 같다” “사람이 쏟아지는데 아무도 통제를 안 한다”는 신고자의 호소에도 경찰은 ‘일반적인 불편 신고’로 판단해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경찰은 첫 신고자가 밝힌 ‘압사당할 것 같다’는 표현을 두고 “평상시에 ‘아 죽을 것 같다’라고 말하듯 (으레껏 하는 표현이) 아닌가 한다”며 “최초 신고는 시간대나 장소나 어떠한 사고가 날 정도로 위험도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이 상황을 방치하는 동안 신고 내용은 ‘사람이 쓰러졌다’는 내용을 알리는 수준까지 수위가 높아졌다. 오후 8시9분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정체가 돼서 사람들 밀치고 난리가 나서 막 넘어지고 난리가 났고 다치고 하고 있다”는 신고에 이어 오후 8시33분에는 “이태원 A 매장 앞에서 사람들이 길바닥에 쓰러지고 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신고자는 “사람이 쓰러지고 있는데 현장 통제가 안된다”며 “큰일 날 것 같다, 심각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신고자가 언급한 매장은 압사 사고가 발생한 골목에 위치한 가게였다. 참사 발생지에서만 두 번의 ‘압사 우려’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을 뿐더러, 사고 발생 2시간 전부터 시민들이 쓰러지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참사 발생 1시간 전인 오후 9시 무렵에는 경찰에 압사 사고를 우려하는 112신고 건수가 급증했다. 8시53분 신고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막 압사당할 것 같아서, 우리가 브론즈라운지라는 곳이다. 좀 부탁드린다”며 “사람들이 압사당하고 있다, 거의”라고 했다. 신고자는 “아수라장이에요 아수라장” “장난 아니에요, 장난전화 아니에요”라는 말을 다급하게 반복했다.
9시 신고자는 “지금 대형사고 나기 일보 직전”이라고 했다. 9시2분 신고자는 “이러다가 진짜 사고날 것 같다. 사람들 다 난리났다. 진짜 사람 죽을 것 같다”고 했다. 9시7분 신고자는 “여기 지금 사람들 너무 많아서 압사당할 위기에 있다”고 했다. 9시10분 신고자는 “압사당할 것 같다. 축제 중인데”라며 “상태가 심각하다. 안쪽에 애들 막 압사당하고 있다”고 했다. 사고 발생 직전인 오후 10시 무렵에는 “압사 당할 것 같다”는 말과 함께 비명소리가 112신고에 함께 녹음됐다.
경찰은 사고 발생 직전까지 접수된 11건의 신고 중 4건은 현장출동종결, 6건은 전화상담후종결, 1건은 처리 결과가 불명확하다고 밝혔다. 특히 9시7분 이후 접수된 5차례 신고 전화에는 당장 긴급 출동이 필요한 코드1으로 분류하고도 현장 출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이 이날 공개한 11건의 녹취록은 시민들의 다급한 신고에 경찰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아 참사로 이어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도 황창선 경찰청 치안상황관리관은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대략 18시부터 1건이 (신고가) 접수되기 시작한 건 맞다”면서도 “일반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불편 신고 정도에 불과했다”고 했다.
녹취록 공개로 국가의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를 총괄하며 경찰을 관할하는 행정안전부는 물론 정부 역시 책임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이 왜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는지, 신고 내용을 어지까지 보고했는지 등은 경찰의 감찰·수사로 규명해야 할 사안이다.
참사 발생 당일 이태원을 찾았던 시민들은 “경찰이 참사를 막을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입을 모았다. 첫신고 이전부터 이태원 일대는 몰려드는 인파로 포화상태였다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오후 4시부터 2시간가량 핼러윈 축제 현장에 있었던 이모씨(29)는 “그날 이태원은 대낮에도 몸을 옆으로 틀어야만 안 부딪히고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며 “사실상 그때부터 인파를 통제하기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권모씨(31)도 “오후 9시30분 무렵에는 이태원역을 올라가는 것 자체가 한참 걸렸다”며 “사실상 사고 발생 직전까지도 현장 통제가 거의 안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경찰은 참사 발생 한시간 전인 오후 9시에서야 전조 증상이 보였다”고 답했다. 잇따른 신고들은 참사를 우려할 수준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어 ‘11건의 신고자 가운데 희생자가 포함됐을 가능성도 있느냐’는 질의에 “가능성은 있다”며 “다만 현재까지는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