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로 기소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무죄를,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 금고 3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태원 참사 1차 책임자로 지목된 공직자들에게 내려진 1심 판결이다. 유가족은 박 청장 무죄 판결에 대해 “납득할 수 없는 결론”이라고 반발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배성중)는 30일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된 박 구청장 등에게 이같이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전 서장에 대해 경찰의 참사 예견 가능성, 참사 대응에 관한 주의 의무 등이 있었다며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각 자리에서 주의 의무를 다했다면 예방할 수 있거나 피해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었던 인재를 부인할 수 없어 결코 가볍지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전 서장이 “이태원 일대 인파 집중 상황 파악에 소홀했고, 소속 경찰관에 대한 지휘 및 감독이 미흡했다”고 밝혔다. 허위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는 무죄라고 봤다. 이 전 서장은 구속기소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왔다. 재판부가 이 전 서장의 보석은 계속 유지해 불구속 상태에서 항소심 등 재판을 이어가게 됐다.
반면 박 구청장을 비롯해 유승재 전 용산구 부구청장, 문인환 전 용산구청 안전건설 교통국장, 최원준 전 용산구청 안전재난과장 등 용산구청 관계자들은 모든 혐의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참사 이전 사전 대책 마련, 참사 당시 유관기관과의 협조 요청, 실효적 안전 대책 수립 미지시 및 직원들에 대한 지휘 등 모든 단계에 대해 “용산구청의 권한에 해당하는지 충분한 입증이 없고,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앞서 검찰은 박 구청장과 이 전 서장에게 각각 징역 7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두 피고인이 “이번 사고를 막을 가장 큰 책임자였다”며 “부여된 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고 사고를 막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두 사람은 마지막 공판에서도 혐의를 부인했다. 박 구청장 측은 “참사 대응에 있어 권한도 책임도 없었다”며 현장 수습 책임을 다른 기관에 돌렸다. 이 전 서장 측도 “구체적 주의 의무를 위반한 사실은 없다”며 상급기관인 서울경찰청으로 참사 발생의 책임을 돌렸다.
이 전 서장 선고 내용은 같은 혐의로 기소된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재판부는 이 전 서장에 대해 “각종 안전사고 발생을 예방 대응하기 위해 지리적 조건 등 모든 위험 요소를 검토해 정보·경비·교통 등 계획을 적절히 수립해야 할 업무상 책임이 있었다”고 봤다. 참사 발생 및 대처 과정에서 경찰의 주의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재판부가 이 전 서장이 “차량 통제를 하거나 이태원에 배치된 인력을 서울경찰청에 강력 지원 요청하는 등의 주의 업무를 다하지 않았다”라고 판단한 부분은 김 전 청장에게 유리하게 해석될 수 있다. 김 전 청장의 인지·예견 가능성을 낮추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김 전 청장의 선고는 오는 10월17일로 예정돼있다. 지난 2일 검찰은 김 전 청장에게 금고 5년을 구형했다. 최종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10·29 이태원참사 TF 변호사는 “이 전 서장 판결에서 경찰이 참사를 예견했을 것이라 인정됐지만, 김 전 청장 재판에서 똑같이 인정될 것인지는 검찰의 항소 과정에서 증명돼야 한다”라고 했다.
이태원 참사 유족들은 “재판 결과에 절대 승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가족협의회는 박 구청장의 무죄 판결에 강력 반발하며 “엄중한 처벌을 간곡히 바라던 유가족의 믿음과 한 가닥의 희망마저 저버렸다”고 비판했다. 일부 유족은 법원 앞에서 바닥에 주저 앉아 “내 아들 살려내라” “이게 나라냐”라고 외치며 오열했다.
이정민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오늘의 재판 선고 결과는 부실한 특별수사본부와 검찰의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둔 것이기에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라며 “앞으로는 특별조사위원회 조사가 더욱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부지검 관계자는 “판결문 분석 후 항소 여부를 검토하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