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6년간 일하던 중 악성 뇌종양에 걸려 투병하다 7일 사망한 이윤정씨(32)는 삼성반도체에서 숨진 32번째 사망자다. 삼성전자 LCD 사업부와 다른 계열사를 합치면 55번째다.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에 제보된 삼성반도체 노동자 32명 중에는 백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가 14명으로 가장 많다. 다른 이들은 재생불량성 빈혈, 뇌종양, 피부암, 자궁암, 유방암, 난소암, 폐암 등에 걸려 목숨을 잃었다. 지난 3월3일에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유방암 진단을 받은 김도은씨(36)가 사망했다.
삼성전자 LCD 사업부에서는 노동자 7명이 백혈병, 피부암, 뇌종양 등으로 사망했다. 휴대폰을 만드는 삼성전자 구미공장에서도 7명이 목숨을 잃었다. 삼성전기 7명, 삼성 SDI도 2명의 노동자가 백혈병, 피부암, 자궁암으로 숨졌다.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2007년 반올림이 본격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제보가 들어오기 시작해 집계한 숫자”라며 “우리에게 제보하지 않은 노동자들까지 생각한다면 더 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서울행정법원은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씨와 이숙영씨에 대해 산재로 인정했다. 이후 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성 암에 대한 산재 인정의 물꼬가 트였다. 지난 4월 근로복지공단은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했던 김지숙씨에 대해서 최초로 산재를 인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죽음은 이들이 산재로 인정받는 속도보다 더 빨리 노동자들을 덮치고 있다.
7일 숨진 이윤정씨는 재생불량성 빈혈에 걸려 투병 중인 유명화씨(30)와 함께 서울행정법원에 산재 신청을 했다. 그러나 이들의 재판은 지난해 9월 단 한 차례 열린 이후 아직까지 열리지 않았다. 유씨는 숨진 이씨와 반도체칩을 고온으로 테스트하는 공정의 같은 라인에서 일했다. 유씨의 아버지 유영동씨는 “이씨와 명화 말고도 다른 세 명의 노동자가 병에 걸렸다”며 “딸은 수혈을 받지 않으면 온 몸에 피멍이 들고 혈관이 터져 걸음을 걷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삼성전자 반도체 및 LCD 공장과 매그나칩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노동자 가운데 22명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이 가운데 10건은 1·2심이 진행 중이다.
이종란 노무사는 “지난해 4월 2차로 4명의 노동자에 대해 집단 산재소송을 냈지만 1년이 넘도록 한 건도 결론이 나오질 않았다”고 말했다.
이 노무사는 “산재 인정 기준이 워낙 까다롭고 어려워 소송까지 오게 되지만 소송에서 다시 긴 시간 동안 법정 싸움을 하는 것 자체가 피해 노동자들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근로복지공단 단계에서 산재인정 기준을 완화하도록 법제도를 개선하고 직업성 암 피해자에 대한 산재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작업환경 유해물질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사업주들을 감시하고 규제할 수 있는 법적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산재 발생 사업장의 사업주를 강력 처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