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본관 앞에 차려진 1000명분의 밥상

박철응 기자

28일 저녁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푸짐한 밥상을 차린다. 지난 17일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분회장으로 활동하던 고 염호석씨가 목숨을 끊은 후부터 전국 각지에서 상경해 농성 중인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을 응원하기 위해서다. 행사명은 ‘밥 한 끼, 양말 한 켤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밥 600인분과 제육, 전, 김치 등 반찬을 사흘동안 준비했다. 당초 김밥을 만들려고 했으나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그동안 김밥과 컵라면을 너무 많이 먹었다는 얘기를 듣고 메뉴를 바꾼 것이다.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노동자들은 소고기국과 카레라이스를 만들었다. 영등포 산업선교회가 비빔밥을, 학교비정규직노조는 닭죽을, ‘데모당’이 삼겹살을, 전국노점상연합회가 떡볶이와 돼지껍데기를 마련했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은 껍질째 먹을 수 있는 유기농 참외 세 박스를,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는 방울토마토를,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는 떡을 준비했다. 막걸리는 서울남부노동상담소가 맡았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쌀, 김치와 함께 참횡성한우사골국물을 선물로 준비했다.

귀가하지 못하고 노숙하는 사정을 감안한 선물도 있다. 현대차·기아차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750켤레의 양말을 준비했고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쌍화탕과 파스, 비상약 등을 전달한다.

앞서 서울성모병원 무기계약직, 사회진보연대, 건강한일터안전한성동만들기사업단, 사회적파업연대기금 등에서 많게는 1000만원까지 지원했으며 서초동 농성장을 지나던 시민들도 투쟁 기금과 생수, 빵 등을 전해주고 있다고 노조는 전했다. 이화여대,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 경희대 등에서도 대학생들이 염호석 열사 분향소를 설치했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지난해 7월 “삼성전자서비스가 진짜 사용주”라고 주장하며 노조를 결성했다. 지난해 10월 삼성전자서비스 기사였던 최종범씨가 “배고파서 못살았다”며 자살한데 이어 두번째 비극을 겪었다. 고 염호석씨는 ‘노조가 승리하는 날 화장해달라’는 유서를 남겼으나 유족의 갑작스런 입장 변화와 경찰의 개입으로 이루지 못했고 농성 과정에서 위영일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지회장과 라두식 수석 부지회장이 구속됐다.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삼성바로잡기운동본부는 “지금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심장은 찢어질 듯 하다”면서 “양말을 빨지 못해 발냄새가 진동하고 돈이 없어 김밥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새벽녘 추위와 비바람에 온 몸을 떨면서도 목숨을 던진 동료의 뜻을 지키겠다며 싸우고 있다. 탐욕의 골리앗에 맞서 싸우고 있는 다윗들에게 연대의 손길이 절실하다”고 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은 지난 27일 조계사에서 고인을 추모하며 108배를 했으며 이 자리에서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은 “도울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말했다. 노조는 임단협 체결을 통해 노조 탄압 중단 및 노조 활동 인정, 생활임금 보장 방안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6일 저녁 문화제에서 경북의 한 센터 조합원은 “성수기인 여름철에는 아침부터 새벽 1시까지 두 달간 일했다. 아침 7시에 교육이 있으면 도저히 못 일어날 것 같아 센터에서 의자 두 개를 모아 새우잠을 잤다”면서 “너무 일이 몰려서 한번은 결국 화장실에서 쓰러졌고 열흘동안 입원을 했는데 센터 팀장이 면회와서 ‘PDA(휴대정보단말기)로 해피콜을 하라’고 업무 지시를 하더라”고 말했다. 해피콜은 고객들에게 전화를 걸어 서비스 기사들의 고객 만족도를 물어보는 일이다.

중단됐던 교섭은 28일부터 재개됐다. 금속노조 ‘염호석열사투쟁대책위원회’는 사측에 교섭 요구를 해서 ‘노사 상호 조건을 붙이지 않고 공개적으로 교섭 재개를 선언해 28일 오후 3시부터 노사 실무교섭을 한다’는 내용의 답변을 받았다고 28일 밝혔다. 실무교섭에서 의견 접근시 본교섭을 열어 합의하며 본교섭 합의 방식은 간사 교섭에서 세부적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다만 원청업체인 삼성전자서비스와 협력업체, 교섭권을 위임받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중 어느 곳과 교섭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금속노조는 ‘삼성의 직접 사과 및 열사 명예 회복’ ‘노조 탄압 중단 및 노조 인정’ ‘위장폐업 철회 및 고용 보장’ ‘월급제 생활임금 보장 및 임단협 체결’ ‘염호석열사 시신 탈취 책임자 처벌과 공개 사과’ 등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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