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부정당한” 길 위의 해고자들

정대연 기자

131주년 노동절의 분노

공공운수노조, 정부세종청사 ‘포위 시위’ 제131주년 노동절을 하루 앞둔 30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원들이 정부세종청사를 포위하며 행진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는 코로나19 시대 필수 서비스에 대한 공공성 강화와 노동권 보장 등의 ‘대정부 10대 요구안’을 제시했다. 연합뉴스

공공운수노조, 정부세종청사 ‘포위 시위’ 제131주년 노동절을 하루 앞둔 30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원들이 정부세종청사를 포위하며 행진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는 코로나19 시대 필수 서비스에 대한 공공성 강화와 노동권 보장 등의 ‘대정부 10대 요구안’을 제시했다. 연합뉴스

아시아나 2차 하청업체 김정남씨
300일 넘긴 농성장에서 정년 맞아
생계 막막한데 회사·정부는 침묵

현대중 하청업체·이스타 조종사…
끝이 없는 싸움, 몸도 마음도 고통

“일생에 한 번인 정년인데 동료들한테 수고했다는 한마디는 듣고 회사를 나오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길에서 해고자로 정년을 맞게 됐네요.”

제131주년 노동절을 하루 앞둔 30일 아시아나항공 2차 하청업체인 아시아나KO 해고노동자 김정남씨(60)는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 천막농성장에서 단식 18일째를 맞았다. 그사이 몸무게는 10㎏ 넘게 빠졌고 허리상태가 좋지 않아 가만히 앉아 있기도 어렵다. 지병인 당뇨도 단식 이후 악화됐다.

이날은 원래 김씨의 정년퇴직일이다. 그는 2011년부터 10년간 김포공항에서 수화물을 분류해 옮기는 일을 했다. 소속된 업체는 2번이나 바뀌었지만 하는 일은 다르지 않았다. 최저임금에 열악한 노동환경이었지만 여느 직장인처럼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는 삶에 만족하며 살아왔다.

평범했던 삶은 지난해 5월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 이후 송두리째 무너졌다. 회사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을 이유로 무기한 무급휴직에 동의할 것을 요구했다. 김씨를 비롯해 무급휴직에 동의하지 않는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를 통보받았다. 억울함을 호소할 방법이 없어 시작한 천막농성은 벌써 330일이 넘었다. 김씨는 “10년을 다니던 회사에서 갑자기 해고되면서 당장 어떻게 생계를 유지해야 할지 막막했다. 1년을 싸워도 회사와 정부는 묵묵부답이니 이제는 씁쓸하기도 하고 분노가 치민다”고 말했다.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해 김씨 등에 대한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하지만 회사는 억대 강제이행금까지 부담하면서 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오는 7일 시작하는 재판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 지난 1년은 그의 인생에서 사라진 시간이 됐다.

▶바로가기: [인터랙티브] 김진숙을 만나다

다른 해고자들도 김씨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에서 일했던 윤태현씨(38)도, 이스타항공 조종사였던 박이삼씨(52)도 지난해 해고 이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생계를 위해, 그리고 회사를 위해 살아온 삶이 부정당하자 찾아온 사회에 대한 분노와 홀로 남겨졌다는 고립감은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이들에게 평범한 일상은 언제 되찾을 수 있을지 모를 꿈이 됐다.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아서” 거리로 나섰지만 끝을 알 수 없는 싸움은 고통의 연속이다.

“저항하지 않으면, 다 빼앗기니까”

■거리로 나선 해고노동자

노동절을 하루 앞둔 30일 아시아나KO 해고노동자 김정남씨(왼쪽 사진)가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 천막농성장에서 18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10년을 다니던 회사에서 갑작스럽게 해고 통보를 받은 김씨는 지난해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지만, 회사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김씨처럼 지난해 해고돼 복직투쟁 중인 이스타항공 조종사 박이삼씨(오른쪽 위)와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에서 일했던 윤태현씨에게도 5월1일 노동절은 더 서글프고 아픈 날이다. 김창길 기자·박이삼·윤태현씨 제공

노동절을 하루 앞둔 30일 아시아나KO 해고노동자 김정남씨(왼쪽 사진)가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 천막농성장에서 18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10년을 다니던 회사에서 갑작스럽게 해고 통보를 받은 김씨는 지난해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지만, 회사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김씨처럼 지난해 해고돼 복직투쟁 중인 이스타항공 조종사 박이삼씨(오른쪽 위)와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에서 일했던 윤태현씨에게도 5월1일 노동절은 더 서글프고 아픈 날이다. 김창길 기자·박이삼·윤태현씨 제공

13년 다닌 첫 직장 잃은 용접공
하늘 날 수 없는 27년차 파일럿
“이런 세상 후대 물려줄 수 없어
우리들은 끝까지 싸울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 회사로 돌아간 해고자들도 마음에 새겨진 상처를 쉽사리 치유하지 못하고 있다. 스물다섯에 KTX 승무원으로 입사했다 해고된 뒤 12년 만인 2018년 복직한 김승하씨(42)는 해고를 “10년 넘게 ‘정상궤도’에서 벗어나 헤매고 다니게 만든, 인생을 바꿔버린 사건”이라고 정의했다. 해고 후 그는 사회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고 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 김득중씨(51)는 20대 때 첫 직장으로 이곳에 들어왔다. 2009년 동료 2000여명과 함께 해고됐다 11년이 지난 지난해에야 회사로 돌아왔다. 그를 끝으로 해고노동자들의 복직은 마무리됐지만 그 세월 동안 쌍용차 해고자와 그 가족 30명이 목숨을 잃었다. 김씨는 “자본이 ‘산 자’와 ‘죽은 자’를 나누면서 모두에게 생긴 상처는 다 아물지 않았다”고 했다.

용접공인 윤태현씨는 지난해 8월 해고자가 됐다.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 현대건설기계의 사내하청업체인 서진ENG는 지난해 5월 노조와 단체교섭을 진행하던 중 돌연 폐업을 통보했고 석 달 뒤 문을 닫았다. 윤씨의 생애 첫 직장이었던 이 회사는 그가 다니던 13년간 두 차례 이름을 바꿨지만 사장부터 모든 게 그대로였다.

윤씨는 “13년 동안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일만 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임금은 그대로고 노동환경은 갈수록 나빠졌다. 너무 억울했다. 조금이라도 바꿔보려고 2019년 노조에 가입하자 탄압이 더 심해졌다”고 말했다. 회사는 최저임금이 인상되자 실제 지급되는 임금을 올려주지 않기 위해 기본급을 삭감했다. 평생직장으로 생각했던 회사로부터 당한 배신에 분노와 상실감이 밀려왔다.

그의 투쟁은 사회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윤씨와 동료들은 해고 후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현대중공업 앞에 천막을 쳤다. 최근에는 한 달간 고공농성도 벌였다. 윤씨를 비롯한 하청노동자들은 원청인 현대건설기계로부터 직접 업무지시를 받아왔고,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말 불법파견 판정을 내리고 직접고용을 지시했다. 하지만 회사는 법원 판단까지 받아보겠다며 지시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윤씨는 “끝까지 싸워서 우리가 정당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다”고 했다.

27년간 조종사로 일해온 박이삼씨에게 해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었다. 그랬던 그가 “정상적인 삶에서 인생의 바닥으로 떨어지게 된 것”이다. 3년 동안 몸 담은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10월 경영난과 인수·합병을 이유로 직원 600여명을 해고했다. 정리해고 대상에서 빠진 직원들도 임금이 나오지 않자 하나둘 회사를 떠났다. 박씨는 그래도 끝까지 싸울 생각이다.

“노동절마다 노동자들이 거리에 나와 억울함을 호소해도 세상은 들으려고 하지 않아요. 답답하지만 그래도 끝을 볼 겁니다. 원직 복직이 된다고 해도 그동안 투쟁하며 본 피해를 다 보상받지 못하겠지만 이렇게라도 저항하지 않으면 약자인 노동자는 모든 것을 다 빼앗길 수밖에 없어요. 자식들에게 이런 세상을 물려줄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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