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모두 반발한 ‘최저임금 9160원’…“경제회복 가능성 고려”

이혜리 기자
박준식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2일 밤 9차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을 9160원으로 의결한 뒤 위원들과 인사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준식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2일 밤 9차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을 9160원으로 의결한 뒤 위원들과 인사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간당 9160원’으로 결정된 내년도 최저임금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노사간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은 채 법정 시한(6월 말)을 넘겨 최저임금위원회 위원 절반이 퇴장한 끝에 의결이 이뤄졌다.

지난 12일 오후 3시 최저임금위원회 9차 전원회의가 시작될 때 박준식 위원장(한림대 사회학과 교수)은 “위원 27명 모두가 최저임금 결정까지 완주하길 기대한다”고 했으나, 노사 양측은 각각 3차 수정안까지 내놓고도 접점을 찾지 못해 결국 공익위원의 중재안을 바탕으로 자정 무렵 표결이 이뤄졌다. 민주노총 추천 노동자위원들과 사용자위원 전원이 항의하며 퇴장했고, 한국노총 추천 노동자위원 및 공익위원들만 남아 표결에 참여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를 이유로 지난해 역대 최저 인상을 결정했던 최저임금위원회는 이번엔 경제 회복 가능성을 고려해 인상폭을 늘렸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최저임금 결정이다.

■노·사 모두 반발

최초안으로 1만880원을 냈던 노동계는 올해 최저임금(8720원)에서 1280원(14.7%)을 인상하는 1만원을 3차 수정안으로 냈다. 동결을 최초안으로 냈던 경영계는 130원(1.5%) 인상하는 8850원을 3차 수정안으로 냈다. 여기서 양측은 더 이상 수정안을 낼 수 없다고 했고, 공익위원들이 9030원에서 9300원 사이로 심의 촉진 구간을 제시했다. 인상률로 따지면 3.6%에서 6.7%다. 지난해 0.35~6.1%의 구간을 제시했던 것과 비교하면 구간의 폭이 좁다.

민주노총 추천 위원들은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구간이 자신들의 요구안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라며 더 이상 심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의견을 표명하고 밤 11시15분쯤 회의장에서 퇴장했다.

퇴장 직후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코로나로 인한 재난시기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활 안정을 확보하고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필요하다고 요구해왔다”며 “그러나 위원회에서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부 규탄과 ‘저임금 노동 철폐’, ‘생활임금 쟁취’를 위한 투쟁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12일 밤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9차 전원회의에 참석한 박희은 부위원장 등 민주노총 추천 노동자위원들이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구간으로 9030원에서 9300원 사이를 제시한 공익위원들에 대한 항의 표시로 회의장에서 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2일 밤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9차 전원회의에 참석한 박희은 부위원장 등 민주노총 추천 노동자위원들이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구간으로 9030원에서 9300원 사이를 제시한 공익위원들에 대한 항의 표시로 회의장에서 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2일 밤 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위원들이 정부세종청사에서 9차 전원회의 중 공익위원의 안에 반발하며 퇴장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2일 밤 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위원들이 정부세종청사에서 9차 전원회의 중 공익위원의 안에 반발하며 퇴장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후 박 위원장이 공익위원 단일안으로 올해 최저임금에서 440원(5.1%) 인상한 9160원을 제시하며 표결을 선포했고, 밤 11시40분쯤 사용자위원 9명이 반발해 모두 퇴장했다. 사용자위원들은 퇴장 직후 “시급 9160원은 영세 중소기업, 소상공인의 지불능력을 명백히 초월하는 수준”이라며 “벼랑 끝의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현실을 외면한 공익위원들의 인상안에 대해 충격과 무력감을 감출 수 없다”고 했다. 결국 밤 11시55분쯤 찬성 13표로 9160원안이 의결됐다. 사용자위원들 몫은 기권 처리됐다.

한국노총 추천 노동자위원 5명은 끝까지 회의장 자리를 지켰다.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모두가 다 힘든 상황에서 책임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찬성표를 던졌다”면서도 “수백만 저임금 노동자들이 원하는 만큼의 인상률을 달성하지 못해 송구하다”고 했다.

■공익위원 “경제회복 고려”

역대 최저 인상이었던 지난해 결정(인상률 1.5%·인상액 130원) 때보다 인상폭을 높인 배경에 대해 공익위원 측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경제 회복 가능성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익위원 중 한 명인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코로나 위기가 지속되고 소상공인 등이 여러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올해 들어 경제가 수치상 상당히 회복되는 기미가 보였다”며 “코로나에서 벗어나 정상사회로의 복귀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판단이 있었다”고 말했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은 경제 회복을 전제로 결정해야 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 5월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을 기존보다 1.0%포인트 올린 4.0%로 전망하고, 국내 취업자 수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 등 최근 경제 지표들은 개선됐다. 공익위원들은 기획재정부·한국은행·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발표한 올해 경제전망치를 활용해 계산했다. 3개 기관의 경제성장률 평균 4.0%와 소비자물가상승률 평균 1.8%를 합친 뒤 취업자증가율 0.7%를 뺐다.

권 교수는 “코로나 위기의 직격탄을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 맞았지만, 저임금 근로자들도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며 “소상공인 등의 어려움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 정책을 통해 해소 노력을 병행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박준식 위원장은 “노·사 모두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공익위원들 입장에서는 코로나 위기 극복과, 경제사회적인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조치로써 이 정도가 최선이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인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왼쪽)이 지난 12일 밤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9차 전원회의를 마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인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왼쪽)이 지난 12일 밤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9차 전원회의를 마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계는 문재인 정부를 향한 총력 투쟁에 나서겠다고 선언하고, 경영계는 정식으로 이의신청을 내겠다고 밝히면서 최저임금을 둘러싼 진통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절차적으로는 최저임금 결정 후 10일 내에 이의신청할 수 있고, 이의신청이 합당하면 재심의하게 돼있다. 현재까지 재심의가 이뤄진 적은 없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다음달 5일까지 최저임금을 고시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지 않도록 사전 진화에 나섰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13일 국무회의에서 “지금 우리에게는 갈등으로 허비할 시간과 여력이 없다.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공존과 상생을 위해 서로가 한 발씩 양보하는 미덕이 필요하다”며 “대승적 차원에서 최저임금위원회 결정을 수용해 주실 것을 노·사 양측에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정부는 이번에 결정된 내년 최저임금의 현장 안착을 위해 시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는 한편, 근로장려세제(EITC)와 소상공인 희망회복자금·손실보상 제도화 등 근로자와 코로나 충격이 컸던 사업주들의 부담 완화를 위한 지원을 최대한 보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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