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만 앞선 ‘문 정부 최저임금’…재계 반발·코로나에 ‘정책 후퇴’

고희진 기자

임기 내 ‘1만원 공약’ 무산 왜

내년도 최저임금 9160원 결정

치밀한 계획·전략 없이 추진

최저임금위 조직 개편 필요성

내년도 최저임금이 9000원대 초반으로 결정되면서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이 끝내 무산됐다.

문재인 정부 5년간 평균 인상률은 7.2%로 박근혜 정부 때(7.4%)보다도 낮다. 정부 초기 두 자릿수 인상률을 보였다가 큰 폭으로 꺾인 최저임금 인상률 추이가 보여주듯, 현 정부가 의욕만 앞세운 채 치밀한 계획·전략 없이 추진했다 재계의 반발에 밀려 정책 후퇴를 자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저임금을 심의·의결하는 사회적 대화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12일 밤 제9차 전원회의에서 2022년도 최저임금을 9160원으로 의결했다. 전년보다 5.1% 오른 금액이다. 이번 정부 들어 최저임금은 2018년도 16.4%, 2019년도 10.9%로 크게 오르다 2020년도부터 2.87%로 주저앉았다. 2021년도 최저임금은 1.5% 인상으로 1988년 최저임금제도를 시행한 이래 역대 최저 인상률을 기록했다. 평균 인상률은 7.2%로 박근혜 정부 4년 평균인 7.4%보다 0.2%포인트가량 낮다.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이란 변수가 생기긴 했지만 낮은 인상률의 원인을 이것만으로 설명할 순 없다. 두 자릿수 증가율에서 갑자기 2%대로 주저앉은 2020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은 코로나19 확산 전인 2019년 여름 결정됐다.

이 같은 결과를 예견이라도 한 듯, 문 대통령은 집권 후 2년이 지난 무렵 공약 달성이 어려울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2020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있던 2019년 5월 문 대통령은 KBS와의 취임 2주년 대담에서 “(최저임금 1만원 인상) 공약에 얽매여서 무조건 그 속도대로 인상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대선 공약인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위해서는 매년 10% 넘게 최저임금이 올라야 했지만, 재계의 강한 반발과 저항을 고려해 사실상 속도조절에 들어간 셈이다.

정권 내내 널뛰기한 최저임금 인상률에 대해서는 최저임금위원회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박준식 최저임금위 위원장은 내년도 최저임금 의결을 알리며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된 이후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란이 이번 정부만큼 드라마틱하게 변화한 적도 없었던 것 같다”며 “냉정하게 평가해보면 초기 2년의 인상은 의욕에 비해 현실이 뒷받침하지 못했던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은 최저임금 인상률 하락을 더 부추겼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은 1.5%라는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고, 노사 갈등은 회복할 수 없이 악화됐다. 이 과정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자영업자 등 소상공인의 경영 악화를 일으키는 주범이라는 왜곡된 논리도 확산됐다.

건물주에겐 ‘을’의 위치지만, 노동자에게는 ‘갑’의 위치인 자영업자들은 어려움을 타개할 활로로 노동자 임금 줄이기에 집중했지만, 실제 자영업자 경영 악화의 가장 큰 주범은 급격한 임대료 상승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 카드 수수료나 배달 비용 상승 등도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9월 소상공인연합회가 소상공인 3415명에게 ‘코로나19 이후 사업장 경영비용 중 가장 부담되는 것은 무엇인지’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9.9%가 ‘임대료’를 꼽았다.

최저임금제도에 대한 막연한 불신 속에 최저임금위원회는 합의의 장이 아닌, 각 진영의 입장을 고수하는 대리전의 장으로 굳어졌다. 노사 요구안을 고려해 정부가 임명한 공익위원들이 최종 중재안을 제시하면 위원들이 찬반 투표로 해당 금액을 의결하는 방식이 몇해째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권 초반 대폭 변화를 예고했지만 이후 지지부진한 성과를 보였다는 점에서 최저임금 정책의 실패는 현 정부의 대표적 노동 공약이었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과도 비교된다. 전문가들은 최저임금위원회가 임금 줄다리기를 넘어서 한국사회 임금구조의 문제를 다양하게 논의하는 조직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최저임금을 경제회복 상황에 맞춰 반년마다 단계적으로 인상한 독일의 사례처럼 최저임금 결정 방식에도 다양한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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